나의 달려갈 길을 마칠 때 까지

 딤후 4: 6-8. 16-18                               대전교회/ 박용래 목사

 

 

 

 

바울의 일생을 요약하는 세 마디가 7절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나는 '싸웠고, 마쳤고, 지켰노라'

오늘 한해를 마감하는 송년주일 아침에 성도 여러분은 어떤 말로 한해를 마무리할 수 있습니까?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 말은 바울의 생애를 마감하면서 부르는 승리의 노래와 같은 고백입니다.

1)  바울은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신앙을 지켜 나가기 위하여 고통스러운 싸움을 했습니다.

굶기도 하고 매를 맞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탔던 배가 파선을 당하여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넘기고, 한마디로 인간이 당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고통을 겪었던 것입니다.

그가 목숨을 각오하고 이와 같은 싸움을 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 자신이 하는 싸움이 선하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살면서 선한 싸움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 인생이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왜 공부하고, 왜 돈 벌고, 왜 사업에 성공해야 하는지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단지 나의 육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무슨 싸움을 한다면 그것은 선한 싸움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살면서 모든 싸움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분명한 사명을 자각하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한 거룩하고도 선한 싸움이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 어떤 젊은 외과 의사가 하루에 얼마나 많이 수술을 집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 의사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제가 얼마나 굶주려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 배가 고프면 수술을 많이 한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돈이 궁하면 궁할수록 그 날은 수술을 더 많이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미국 병원에서는 수술한 횟수에 따라서 돈을 받게 됩니다.)

▶ 오늘 우리는 무엇에 굶주려 있습니까? 돈이나 명예나 권력, 이런 것에 굶주려 있다면 선한 싸움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좀 더 거룩하고 고상한 것에 굶주려 있을 때 우리는 아름다운 싸움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큰 꿈과 야망을 가지는 것, 그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문제는 무엇을 위한 꿈과 야망 때문에 우리가 싸움을 벌이고 있느냐 하는 데 있습니다. 어떤 것에 굶주리고 어떤 것에 목말라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요한 웨슬리는 감리교 설교자들이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하려고 할 때 언제나 그 목적을 분명히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나라와 교회를 개혁하고 성서적 성결을 온 땅에 확장시켜나가기 위해서.

오늘 여러분의 생각과 꿈과 야심과 소망이 웨슬리의 가르침처럼 모두 거룩하고 선한 것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바울처럼 선한 싸움을 싸웠노라고 고백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진흙싸움을 해서는 안 됩니다.

2)  바울은 달려갈 길을 마쳤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달리기하는 선수가 끝까지 완주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선한 싸움을 싸웠다'는 이미지는 레슬링과 관계되어 있다면, '달려갈 길을 마쳤다'는 이미지는 달리기(race)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바울의 신앙 경주 앞에는 많은 장애물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때로 중상을 당하여 일어설 수 없을 정도가 된 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바울은 새 힘을 얻고 다시 일어나 목표를 향해 달리기를 계속해 나갔습니다.

본문 17절 보면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고 하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은 네로 황제의 대대적인 박해를 간신히 견디어 냈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험하고 힘들기 짝이 없는 경주를 완주하고 마침내 결승선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을 하든지 끝까지 하는 사람이 위대합니다. 용두사미(龍頭蛇尾)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처음과 중간에 아무리 잘해도 끝이 좋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환난과 핍박을 견디어 내고 끝까지 잘해서 최후에 웃는 자가 진정한 승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1968년 멕시코시티에서 벌어진 하계 올림픽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올림픽의 꽃이라고 일컬어지는 마라톤 경기가 열렸는데 1등한 선수를 비롯해서 모든 선수들이 다 결승선까지 들어 왔습니다. 우승한 선수들에게 메달을 달아 준 시상식이 끝난 지 한 시간이 지났고 대부분의 관중들 역시 자리를 떴습니다.

 드디어 메인 스타디움의 불도 다 꺼지고 스타디움은 썰렁하기만 했습니다. 이 때 한 선수가 한쪽 다리에 피가 흥건한 채 다리를 질질 끌면서 스타디움 안으로 들어 왔습니다.

탄자니아의 36살 먹은 선수 잔 스태픈 아크와리였습니다. 아크와리 선수는 무릎과 발목에 심한 부상을 입어서 도저히 경기를 끝낼 수 없는 처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완주했던 것입니다.
►나중에 기자 한사람이 그에게 물었습니다."왜 경기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뛰었는가?"

아크와리의 대답은 너무나 간단하고 분명했습니다. "내 조국은 경기를 시작하라고 나를 멕시코시티에 보낸 것이 아니라 끝내라고 보냈습니다."

그렇습니다. 버스를 운전하는 기사는 종점까지 가야지만 자기의 임무를 완수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독교 신앙은 시작했으면 끝까지 완주해야 합니다. 때로 낙심이 되고 시험거리가 찾아오고 환난과 역경이 찾아와도 결코 중단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끝까지 믿음의 길을 가야합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 저는 새벽시간에 성도 여러분들이 헌금을 드린 봉투를 붙잡고 기도하여 주고 있습니다.

내년도에는 감사헌금에도 기도의 제목 감사의 내용을 기록하여 주시면 강단에서 날마다 기도할 것입니다. 십일조 감사 헌금 봉투를 들고 성도 가족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할 것입니다.

► 어떤 성도는 평생 동안 지켜온 십일조의 신앙을 금년에 조금 힘들다고 아니면 태만한 신앙심 때문에 무너트리고 살아오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우리의 일생에 아쉬운 일입니다.

아니면 십일조의 삶이 들쓱 날쓱 하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주일 헌금 봉투와 십일조의 봉투를 보시면 지난 일 년간의 신앙생활을 스스로 점검하여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내년도에는 주보함을 다시 구입하였습니다. 주보함에 성도들의 이름을 채우도록 해야 합니다.

주보함에서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스스로 점검하는 기회로 삼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달려갈 길을 마칠 때까지, 사명을 다 완수 할 때까지, 끝까지 믿음의 길을 마칠 때 까지 사명의 길을 중단하거나 포기하지 아니하고 달려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완주 하십시다.

3) 바울은 믿음을 지켰습니다.

믿음을 지켰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바울이 '믿음'이라고 할 때 기독교가 가르치는 모든 내용에 대하여 바로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 쉽게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의리와 신앙의 지조를 지켰다는 말입니다.
► 바울이 믿음을 끝까지 지켜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안으로부터 생기는 많은 갈등과 싸워야 했고 밖으로부터 오는 수많은 유혹과 환란과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믿음의 지조를 굳건히 지켜 냈습니다. 바울은 신앙의 승리자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한해를 마감하면서 바울의 승리의 노래가 성도들의 승리의 노래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죽기 직전에 쓴 편지입니다. 인생을 멋지게 끝내고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 주고 있는 말씀이 기록되었습니다.  어떻게 끝을 맺었습니까?

① 다 용서하고 끝내고 있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딤후 4;16)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 바울은 사형수 몸으로 차디찬 감옥에서 사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바울을 떠나간 것입니다.  참으로 섭섭함도 많 치만 바울은 다 용서한다는 것입니다.
► 예수님이 법정에 섰을 때 3년 동안 생사를 같이 하며 따라다녔던 12명 제자들마저 다 예수님을 버리고 떠났던 것처럼 바울의 제자들도 은혜를 받은 자들도 바울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 탕자가 돈이 떨어지고 나니 모든 친구들이 탕자 곁을 떠나갔듯이 바울이 마지막 순교의 자리에 있을 때 오히려 용기를 주고 힘을 주는 사람보다 떠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좋을 때 많은 사람이 따라왔는데 상황이 불리하여 지고 나니 많은 사람들이 떠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인심입니다. 교회는 그러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다 예수님을 떠나갔듯이 바울을 버리고 다 떠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배은망덕한 사람들이 있을 때 마음이 아픈 것입니다.

▶ 바울은 고독을 느끼고 있음을 한 마디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16- "다 나를 버렸으나” 이 말 한 마디 속에 들어 있는 바울의 심정은 착잡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다 용서하고 포용하고 이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른 말도 이해하고 혈기도 이해하고 딴 마음을 품었던 것도 이해하고 다른 행동을 했던 것도 이해하고 다 이해하고 용서한다는 것입니다.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이렇게 바울은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다 그럴 수 있다고 포용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미움이나 분노나 슬픔이나 상처 된 마음도 다 풀어낸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즐거운 마음,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 오늘 한해를 마감하는 날, 바울의 마음이 성도 여러분들의 마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음이 즐거워야 행복한 삶이 됩니다. 짓눌린 분노나 억제된 슬픔이나 감정은 인생에 독이 됩니다. 다 풀어야 합니다. 오늘은 여러분의 마음에 맺힌 것이 있다면 다 풀어야 하는 날입니다.

모두를 포용하고 사랑해야 하는 날로 삼아야 합니다. 용서하는 마음으로 다 풀어내는 아침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한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시작하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처럼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딤후 4;16)

② 소망을 잃지 말아야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으며 소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7절에“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

► 바울은 마지막까지 하나님이 곁에서 떠나지 않고 함께 계심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말씀을 전하고 전도한 것에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었습니다. 지금까지 뿌린 씨앗이 열매를 맺을 것을 믿었습니다. 소망을 잃지 않는 바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기적은 마지막 순간에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 가나의 혼인 잔치에 기적도 마지막에 일어났습니다.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포도주가 떨어지면 잔치가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더 맛있는 포도주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칭찬 하였습니다.
다른 잔치는 처음에 좋은 포도주를 주다가 취하면 나쁜 포도주가 나오는 데 이 집은 나중 포도주가 더 좋다고 칭찬하였습니다.

마지막이 더 좋아지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교회는 처음보다 끝이 더 아름다운 관계를 맺어가는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만날 때도 중요하지만 헤어 질 때도 더 중요한 것 입니다. 이제 우리는 끝을 아름답게 장식할 줄 아는 성숙한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신앙생활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아니하고 최선을 다하는 삶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가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을 때 밤새도록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오셔서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고기잡이를 포기하고 그물을 씻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눅5:5절에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그리고 그물을 내렸더니 고기가 얼마나 많이 잡혔는지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이 잡혔습니다.
마지막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바울은 마지막 시간까지 하나님이 곁에 계셔서 그 동안에 뿌린 수고의 결과가 나타날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소망을 잃지 아니하고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③ 끝에 승리자로 살아야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마지막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18절에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 지어다”
이 말씀에 최후 승리를 확신하는 바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아무리 아픔이 있었더라도 하나님이 다 건져 주신다는 확신을 마지막 순간까지 믿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인생의 경기를 마치게 되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모든 영광을 돌리며 승리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나는 '싸웠고, 마쳤고, 지켰노라'

어떻게 하면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무리 할 수 있습니까?  바울처럼 하면 됩니다.
1. 다 용서하고 끝내야 좋은 끝입니다.

2. 끝까지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3. 끝까지 승리자로 살아야 합니다.

바울처럼 끝이 좋은 교회와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선한 싸움을 싸웠고, 달려갈 길을 마쳤고, 믿음을 지켰던 바울에게는 위대한 상급이 주어질 것이 약속되었습니다.

8절을 보세요.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어 있습니다.

의로우신 재판장 되신 예수님께서 바울뿐만 아니라 바울과 마찬가지로 선한 싸움을 싸우고, 신앙 경주를 끝까지 완주하고, 믿음을 지켜낸 모든 성도들에게 주시는 상급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은 결코 허공을 치는 무익한 경주가 아닙니다.

경기에 우승한 선수들이 상금과 메달과 트로피를 받듯이 우리도 심판장 되신 예수님으로부터 사도 바울처럼 의의 면류관을 받게 되는 날이 반드시 오는 것 입니다.

한해를 마감하면서 모두가 바울처럼 의의 면류관을 받는 영광스러운 신앙에 승리자들이 다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