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 재채기 혈기 (눅 22:47-53)

 

오늘은 제1 재채기 혈기에 대하여 묵상하려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외치고 있습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4;26-27) 내가 부흥회 가면 꼭 하는 설교가 있습니다. <가문에 흐르는 저주를 차단하라>는 설교입니다.

 

가문마다 못 된 것들이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병이 흐르는 가문, 가난이 흐르는 가문, 단명이 흐르는 가문, 정신병이 흐르는 가문, 자살이 흐르는 가문, 도둑질이 흐르는 가문, 혈기가 흐르는 가문, 거짓말이 흐르는 가문, 음란이 흐르는 가문등에 대하여 나열합니다. 그 후 가장 많이 나오는 감사헌금은 혈기가 흐르는 가문인 데 혈기를 끊게 하여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 다움이 음란히 흐르는 가문입니다. 가정마다 혈기가 가장 많이 흐르고 있습니다. 참지 못 합니다. 세우는 데는 30년 걸리나 혈기 30분이면 모두를 때려 부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속성은 참음입니다. 그래서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에게 그의 외아들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만족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못박혀 돌아가시기 전 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피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그 때 예수를 죽이려는 이들이 예수님을 잡으로 기도하는 동산에 오셨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검과 몽치가 들려져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화가 났습니다. 베드로는 들고 있던 칼로 앞에 있는 이를 내리쳤습니다. 대제사장의 종 말고였습니다. 말고는 놀라서 피하다가 오른편 귀가 잘라져 나갔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은 귀를 들어 고쳐주시면서 "이것까지 참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 무엇을 위하여 이것까지 참으라고 주님은 말씀하신 것일까요? 무엇을 위하여 혈기를 부리지 말라고 하시는 것일가요? 1. 너를 위하여 혈기를 부리지 말라 예수님께서 "이것까지 참으라"고 하신 말씀은 무엇을 위하여 이것까지 참으라는 말씀일까요? 다름 아닌 바로 너 자신을 위하여 참으라는 말씀입니다. 혈기를 부리면 가장 손해보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혈기를 부리면 몸에 열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화가 난 사람은 "열 나게 하지 마"라고 눈을 부릅뜨고 외칩니다. 열이 생기면 바람 즉 풍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이 떨어졌습니다. 심한 열로 순간적으로 폭풍이 불었습니다. 폭탄 파편쯤이야 얼마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열로 인한 풍 즉 폭풍으로 수십만 명이 죽고 부상을 당한 것입니다. 이것은 몸에도 적용이 됩니다. 열이 오르면 바람이 생깁니다. 혈기를 부리면 열이 생기고, 열이 생기면 풍이 생기는 것이 중풍입니다. 그래서 혈기는 몸 건강을 해치는 아주 무서운 적입니다. 우리나라 말 가운데 <울화통이 터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혈기를 부리면 무엇인가가 터진다는 말입니다. 핏줄이 터지건 건강이 터지건 어딘가 터지고 맙니다. 혈기를 내면 부신에서 혈압을 올리는 물질이 분비됩니다. 그러면 뇌의 동맥이 갑자기 많은 피를 받고 흘리지 못 하게 됨으로 핏줄이 터짐으로 중풍이 되는 것입니다.

분노를 발하면 동맥 경화를 일으키기 쉬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의 혈기가 극에 달하였을 때 내 뿜는 숨을 유리관을 통하여 액체 공기로 냉각시면 갈색의 침전물이 생깁니다. 이 침전물은 80명 정도의 건강을 해칠 정도의 독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독이 몸에 머믈면서 결국은 자기 건강을 해치게 되는 것입니다. 홧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버드 의대 개논교수는 혈기를 부리며 화를 낼 때 인체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호흡이 거칠어 지고, 심장이 빨리 뛰고, 혈압이 오르고, 위와 창자로부터 심장 근육 중추신경으로 옮겨 간다. 소화작용이 멈추고 간에 비축되어 있던 당이 배출된다. 혈기를 내면 육신과 정신이 병들게 된다> 일본 생물학자가 개를 묶어 놓고 개패듯이 팼습니다. 눈을 빤히 바라보면서 약을 올리면서 그렇게 하였습니다. 끈만 풀러 주면 자기를 때리는 이를 물어 죽일 정도의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분노가 극에 달하였을 때 주사기로 피를 모두 빼내어 실험하여 보았습니다. 핏속에서 시안이라는 독이 나왔습니다. 한 마리 개를 화나게 만든 후에 피속에 나온 독은 73명을 죽일 수 있는 독이었습니다. 혈기나 분노는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화나는 일이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분노가 치밀더라도 빨리 가라앉혀야 합니다. 예수님도 분노하셨습니다. 그러나 품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했습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4;26-27) 75세된 노인이 의사에게 건강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노인은 아주 건강하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노인에게 건강 비결을 물었습니다. 노인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50년 결혼생활하면서 아내와 이런 약속을 하였지요. 내가 성이 나면 당신은 부엌으로 나가고 당신이 화가 나면 내가 산책을 나가겠소. 지나놓고 생각해 보니 정말 산책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건강하여진 것이지요" 혈기는 건강의 큰 적입니다. 결코 혈기를 부리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혈기를 지닌 분노는 남을 죽이기 전에 자기 세포부터 파괴된다는 사실을 깊이 명심하여야 합니다. 파리에 근무 경찰은 18,500인데 매일 2,500명 가량이 결석한다고 합니다. 이유를 알아 보니까 매일 신경질적인 분노로인한 혈기로 병에 들어서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혈기는 자기를 망치는 건강의 적입니다. 혈기를 부리면 우선 자기에게 손해입니다. 자기 때문에 혈기를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것까지 참으라는 말씀은 바로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모세가 시편에서 말했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 모세시대에도 사람은 70-80살을 살았습니다. 그런 시대에 모세는 120세를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구상에서 가장 장수하는 마을은 히말라야 산속에 있는 훈자 마을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평균 수명이 120세라는 것입니다.훈자 마을 사람들과 모세가 120세를 살았는 데 그들의 공통점을 찾아 보았더니 다음과 같은 4가지였습니다.

 

1. 일용할 양식으로 만족하며 욕심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있는 것으로 족한 줄 알고 평안하였습니다. 2. 물을 반석에서 빼내마셨습니다. 좋은 물은 생명입니다. 3. 걸어다녔습니다. 모세도 40년 광야 생활에 내내 걸어 다녔습니다. 탈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훈자 마을 사람들도 산길이라 늘 걸어 다녔습니다. 등산은 최고의 운동입니다. 4. 온유하였습니다. 모세는 온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이 승하다고 하였습니다(민12;3) 훈자 마을 사람들도 특징이 온유합니다. 부드러운 사람이 오래 삽니다. 호랑이와 거북이 둘 중에 누가 오래 삽니까? 호랑이가 이기는 것같지만 20년 수명입니다. 그러나 거북이는 300년입니다. 부드러워야 오래 삽니다. 참는 사람이 오래 삽니다. 그래서 참는 것은 본인에게 좋은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롯은 40년이상을 객지 생활을 하였습니다. 객지 생활 40년동안 몸에 붙은 습관은 인내였습니다. 나그네 생활 40년 하면 참을성이 늘어납니다. 숫한 고생을 하였기 때문입니다.롯과 긴 객지 생활에 큰 복을 받아 같이 살 수 없었습니다. 짐승들이 많은 데 목초를 가지고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어린 조카 롯은 건방졌습니다. 어른 아브라함에게 순종하거나 먼저 선택을 맡겨야 하는 데 먼저 좋은 땅을 가지려고 하였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은 참으면서 말했습니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13;9) 온 땅을 바라보면서 좋은 땅을 택하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참았습니다. 그런데 롯은 지금 당장 눈에 보깆 좋은 땅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하였습니다. 그 땅은 음란한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유황불로 멸망당하였습니다.롯은 빈 손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가서 평생 얻어 먹고 살았습니다. 참으면 제일 유익을 보는 것은 바로 본인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보면서 <칼을 쓰면 칼로 망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것까지 참이라>하신 말씀은 <너를 위하여 이것까지 참으라>는 말씀입니다. 혈기부르면 네게 안 좋다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2. 그 사람을 위하여서도 혈기를 부리지 말라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것까지 참으라>는 말씀은 <너를 위하여>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하여> 참으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참으면 그 사람에게도 유익이 됩니다. 참으면 너 좋고 나 좋습니다. 누이좋고 매부 좋습니다. 서로 물고 뜯으면 피차 망할가 두려워 하라고 하였습니다. 조선시대에 이 성구라는 유명한 정승이 있었습니다. 그는 일찍 관직에서 물러 나서 후배들을 양성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낚시질을 하고 있는 데 젊은 선비가 와서 반말로 말했습니다. "여보게 늙은 이! 나를 업어 이 개울을 건너 주게나" 그러나 정승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 선비가 얼굴을 붉히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상놈이 양반의 말을 무시하는가?" 가만히 바라만 보던 정승은 이 선비를 업어 건너 주었습니다. 의연한 자세였습니다. 이상하여 마을 사람들이게 물어 보니 그가 바로 정승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젊은 이는 바로 찾아가서 사죄하였습니다. 그리고 겸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참으면 나 좋고 그이가 좋습니다. 유명한 우리나라 민요가운데 처용가가 있습니다. 처용이 외출하였다가 밤 늦게 집으로 들어오니 문 앞에 못 보던 신발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섬짓 놀라며 방안으로 들어 왔더니 자기 아내가 다른 남자와 같이 자고 있었습니다. 처용은 흥분하였습니다. 충격적인 배신감에 부엌으로 달려가 칼을 들고 안방으로 뛰어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칼을 심장에 찌르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죽일 때 죽이더라도 누구인지 확인하고 죽자> 그리고 이불을 들추어 보았습니다. 처용은 놀랐습니다. 자기 오빠였습니다. 조금 참지 못 하고 찔렀다면 평생에 한이 될 뻔하였습니다. 아내를 죽이고 처남을 죽일 뻔 하였습니다. 조금만 참아도 나도 좋고 그이도 좋은 것입니다. 나포레옹 이야기 가운데 유명한 일화가 전해내려 오고 있습니다. 어느 날 전쟁터에서 밤중에 막사를 돌아 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보초 한 명이 총대를 메고 깊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전쟁터에서 파수병이 잔다는 것은 사형이었습니다. 나포레옹은 그 총을 살며시 빼앗았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깊은 잠에 빠졌던 보초병이 깨어보니 총이 없어졌고 장군이 대신 보초를 서고 있었습니다. 당황할 때 나포레옹이 그 총을 내주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너는 사형감이다. 그러나 용서한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나포레옹이 말을 전쟁하다가 쫓기게 되었습니다. 적은 나포레옹 하나 잡는 것이 전쟁이 승리라 생각하고 나포레옹 하나만을 집중 추적하였습니다. 그 때 병사 하가 오더니 말했습니다. "장군님! 이제 은혜를 갚을 때입니다. 옷을 바꾸어 입으십시다. 적은 나를 장군으로 착각하고 따라 올 것입니다" 그리고 급히 옷을 바꾸어 입었습니다. 물론 적들은 나포레옹 옷을 입은 병사를 쫓았습니다. 그래서 나포레옹은 무사히 살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병사는 적에게 잡혀 죽었습니다. 나는 그 때 나포레옹이 탔던 말을 그대로 박재하여 둔 것을 프랑스에게 본 적이 있습니다. 나포레옹은 자기 대신 죽은 그 후손을 길이 길이 보호하였습니다. 참으면 결과가 좋습니다. 베드로가 귀를 잘랐던 말고를 예수님이 고쳐 주셨습니다. 말고는 평생 이 순간을 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말고는 평생 예수님을 잊지 않았을 것입니다.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던 로마 병정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였던 것처럼 예수님을 집으로 와서 귀가 잘라졌던 말고도 평생 예수님을 기억하였을 것입니다. 말고가 뒤에 어떻게 되었는 지 성경은 전혀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예수님을 욕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만은 능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참으면 자기가 좋고 그 사람이 좋습니다. 예수님이 <이것까지 참으라>는 말씀은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느 날 영국의 웰링턴 제독이 자기의 병사 가운데서 구제불능인 병사 하나를 사형시키게 되었습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너를 가르치려 했다. 그러나 너는 그 가르침을 받지 않았고 다시 너를 징계하여 고치려 했지만 그 징계도 너의 삶을 돌이키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너를 감옥에 가두기까지 했지만 너는 끝까지 반성하지 않았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밖에 없다. 너를 사형하는 길만이 남았다. 다 거절한 너이기에 마지막 사형을 받아라. 나는 너를 위하여 할 일을 다 하였다. 이제는 할 것이 없다" 이때 그 병사의 친구가 갑자기 뛰어들어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웰링컨 제독님! 제독님은 할 일을 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독님이 저 병사에게 안한 것이 꼭 한가지 있습니다. 각하께서는 저 친구를 용서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친구의 말에 제독은 마음에 감동을 받아 사형을 취소하고 그를 용서했습니다. "용서한다. 내가 조건 없이 너를 용서한다." 그 다음부터 이 병사는 완전히 달라져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화가 날 때 혈기를 부리지 않고 용서한 것이 결국 한 사람을 사람다운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너희는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 18:35) 그렇습니다. 혈기를 부리지 않고 참으면 나 좋고 그 사람 좋고 다 좋습니다. 3. 예수님을 위하여 혈기를 부리지 말라.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것까지 참으라>는 말씀은 <너를 위하여>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하여> 참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바로 주님을 위하여 참으라는 말씀입니다. 만일 베드로가 참지 못 하고 말고를 칼로 목을 잘라 죽였다면 순간적으로 예수님의 제자들과 무리들 사이에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잡으로 온 이들은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군관들과 장로들이라고 52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과 예수님의 11명의 제자들과 싸우면 누가 이길까요? 이들은 군인들입니다.

 

그리고 검과 몽치를 들었습니다. 제자들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11명의 제자들은 순간적으로 다 살해당하였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3년 걸려서 기른 제자들이 하루 아침에 살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이제 십자가에 예수님께서 죽으시면 제자들이 세계 곳곳에 나가서 복음을 증거하여야 할 복음의 사도들입니다. 이들이 복음을 단 한 곳에도 전하지 못 하고 처참하게 살해된다는 것은 3년 공들인 것이 모두 무효가 되는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위하여 모두 참아야 합니다. 인천 화도 교회 부흥회에 가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박 이섭 목사님이 어느 가정에 가서 심방을 가서 예배를 드리는 데 예수를 핍박하던 남편이 술이 취하여 들어 왔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목사님에게 정말 똥을 퍼 부었습니다. 재래식 화장실에 가서 똥을 한 바가지 퍼다가 기도하는 목사님에게 부은 것입니다.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그러나 목사님은 참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서 그 남자의 손을 붙들고 기도하여 주었습니다.그 후 그 남자는 예수믿고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의 딸은 목사 사모가 되어 교회를 잘 받들게 되었습니다.그 목사님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참으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참으면 모두에게 유익이 됩니다. 오래 참음중에 가장 인상깊은 이야기 하나 드리려고 합니다. 이제 오래 된 이야기라 이름도 모르고 어디에서 들었는 지도 모르는 이야기지만 내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는 이야기입니다. 농촌 어느 교회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어느 여 집사가 바람을 피우고 임신하였습니다. 옆 집 남자였습니다.남편에서 탈로났습니다. 그는 상대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여 집사는 옆 집 남자 이름을 알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에게 강간당하였다고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물론 교회는 수라장이 되었고 목사님은 그 교회에서 사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갈 곳이 없어진 목사님은 그 동네에서 그냥 살았습니다. 쫓겨나면서도 목사님은 단 한마디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아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여집사가 아이를 낳자 남편은 그 아이를 목사님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사모는 그런 아이를 자기는 눈에 흙이 들어가도 못 기르겠다고 고아원에 갖다 주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이 그 아이를 길렀습니다. 도무지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그 아이를 엎고 그 교회를 나갔습니다. 그리고 뒷 자리에 앉았습니다. 교인들은 제발 우리 교회 나오지 말고 다른 교회로 나가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너무나 철면피고 너무나 뻔뻔 하다가고 비난하였습니다.그러나 누가 무어라고 하든지 목사님은 묵묵히 살았습니다. 그렇게 수년이 지났습니다. 진실은 들어나게 마련입니다. 상대 남자가 견디다 못 하여 자백하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남자도 회개하고 여 집사도 회개하고 사모님도 회개하고 교인들도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 다시 그 교회에 모시게 되었고 그 마을에서 그 목사님은 성자처럼 대우를 받았습니다. 정말 대단한 목사님입니다. 조금만 자존심을 상하여도 못 참는 세상입니다. 혈기를 부리지 않으니까 나는 괴로워도 너도 좋고 나도 좋고 그도 좋고 하나님도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린 아이가 재채기를 7번 하고 살아 났습니다. 이물질을 다 내 토하고 살아 났습니다. 우리의 영이 맑아지기 위하여 우리는 혈기를 재채기하여야 합니다.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본문에서 이것까지 참으라는 말씀은 세 가지를 위하여 혈기를 부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1. 너를 위하여 2. 그를 위하여 3. 예수님을 위하여 혈기를 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