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설교(40)  시므온과 안나(눅2:22-38)

 

● 예수께서 탄생하신 후 일정기간이 지나자 요셉과 마리아가 결례의 율법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율법에 의하면, 자녀를 낳은 산모는 누구든지 부정한 자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일정기간(남아 40일, 여아 80일) 동안 외출 및 성전 예배를 일절 금지시켰고, 산모는 이 기간이 지나야 비로소 정결예식을 통해 부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서 난 모든 초태생은 하나님께 바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당시 하나님의 장자 재앙으로부터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를 위하여는 레위 지파 전체가 거룩하게 구별되었으므로, 모든 이스라엘의 장자가 별도로 하나님께 바쳐질 필요는 없었다. 대신에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들은 그들의 생명을 대속하는 속전을 5세겔씩 바치고 예물을 드려 자신이 봉헌된 것을 상징적으로 표시하였다. 따라서 예수께서도 요셉과 마리아의 장자로서 하나님께 드려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것이다.

 

비둘기 한쌍이나 어린 반구 둘은 마리아의 정결예식에 사용될 예물이었다. 그런데 본래 해산한 여인이 정결 예식 때 드리는 예물은 번제로 어린 양 한 마리와 속죄제로 비둘기 한 마리였다. 다만 매우 극빈하여 어린 양을 번제로 바칠 수 없는 경우에는 비둘기로 드릴 수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본절에서 요셉과 마리아가 매우 궁핍한 생활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여튼 이같은 목적 아래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갓 태어난 아기 예수님을, 뜻밖의 사람들이 맞이하였다.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연로한 시므온과 안나라는 두 노인이었다. 누가복음에만 소개되어 있는 이 시므온과 안나라는 인물은, 이제 살펴보겠지만, 경건한 유대인으로서 메시야의 탄생을 간절히 기다리던 믿음의 사람들이었다.

 

● 예수께서 이 땅에 태어날 당시 유대는, 헬라의 식민 통치에서 벗어나 잠시 독립 시대를 지내다가 다시 로마의 식민 통치 하에 들어가는 등 급격한 역사적 혼란을 겪던 시기였다. 유대를 다스렸던 헤롯왕은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으로서, 로마의 힘을 등에 업고 유대인의 왕으로 즉위했다. 자존심 강한 유대인들로서는 도저히 헤롯을 자신들의 왕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라의 독립을 쟁취할 목적으로 열심당이 생겨나 독립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열심당원들은 가슴에 칼을 품고 다니며 로마인이나 당시 권력층을 습격하고 암살하였다. 이럴 때마다 로마군인이 출동되어 범인을 추격하고 색출하는 등 살벌한 공포분위기가 빈번히 발생했다. 하지만 로마제국의 힘 앞에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굴복했고, 현실과 타협하며 소망을 잃은 채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당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은 유대교로 굳어져버렸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진정한 정신은 망각한 채 율법조문에만 얽매여 형식화 되었고, 백성들은 수많은 율법조항을 지키느라, 종교가 무거운 짐이 되어 버렸다. 종교지도자들은 정치권력과 결탁하고 야합하여 자신들의 자리 유지하기에 급급했고, 제 배 채우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혼란과 절망과 무기력으로 가득찬 암울한 시대였다. 백성들은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그 어떤 위로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유대인들 사이에 종말론적인 메시야 대망 사상이 크게 무르익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야가 하루속히 도래하여, 이 모든 고난의 상황을 종식시켜 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기대하던 메시야는 구약 성경의 예언과는 달리, 이스라엘을 적국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주며, 궁극적으로는 다윗시대와 같이 유대 나라를 온 열방 위에 군림할 강대한 나라로 만들어 줄 정치적 메시야였다. 다만, 오늘 우리가 살펴볼 시므온이나 안나와 같은 소수의 경건한 사람들만이 구약 성경에서 예언한 바대로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여 영생으로 인도할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다.

 

● 시므온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시므온’이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서 들으심’이며, 이스라엘에서는 아주 흔한 이름이었다. 야곱의 열두아들 중 레아가 낳은 둘째아들이 시므온이었고, 예수님의 족보에도 이런 이름이 들어가 있고, 베드로의 원래 이름도 시므온 곧 시몬이었다. 어떤 학자들은 이 시므온이 유명한 랍비로서, 산헤드린의 의장이었던 힐렐의 아들이요, 사도 바울의 스승이었던 가말리엘의 아버지라고 주장하나, 이러한 주장에는 많은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말하는 시므온은 A.D.13년에 산헤드린의 의장이 되었던 사람이지만, 본절에서 밝힌 시므온은 이때 이미 매우 나이 많은 노인이었으므로, 시간상 불일치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튼 누가가 기록한 시므온이라는 사람의 이름이,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서 매우 흔한 이름이었던 것을 고려해 볼 때, 그는 유대인 가운데 나이가 많고 경건하여 명망이 높았던 사람으로, 구세주이신 그리스도를 기다렸던 사람으로 보인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시므온은 평생을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왔는데, 본문 25절의 ‘의롭고(디카이오스)’라는 표현은 단순히 ‘선하고 착하다, 좋다’라는 의미라기보다는 ‘원칙이나 기준에 합당하여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시므온이 의롭게 살았다는 말은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한 생활을 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경건하여(율라베스)’란 말은 신약성경에서 누가만이 사용하는 단어로 ‘잘 붙잡다, 신중하게 취하다’는 뜻에서 나온 말로, ‘신중하고 세밀하게 주의를 기울여 행동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즉 시므온은 하나님 앞에서 신중하게 구별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따라서 의롭다는 말이 율법에 충실한 시므온의 외적 생활을 묘사한 것이라면, 경건하다는 말은 시므온의 내적인 성품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겸손한 마음을 소유했음을 묘사한 말이다.

 

이러한 시므온의 모습은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오늘의 성도들에게 교훈하는 바가 크다. 말세에 어떻게 살아야 할까? 심판의 때에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정답은 하나님의 기준, 즉 말씀에 입각한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사람들이 노아의 때와 같이 갖은 죄악을 행한다 할지라도, 성도들은 정결한 신부와 같이 구별된 의의 옷으로 단장을 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신중함은 말세를 맞아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에게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태도이다. 왜냐하면 말세에는 우리를 미혹하는 영들이 더욱 많아질 것이므로, 신중하게 진리의 말씀을 분별하고 진리에 붙잡힌바 되어 깨어 기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 또 한가지 우리가 시므온에게서 주목할 부분은, 그는 성령의 사람이었다. 시므온은 오순절 다락방의 성령이 임하시기 전에 이미 성령의 이끄심을 받으며 살았던 사람이었다.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라는 말은 시므온이 성령의 계속적인 임재 속에 살았다는 말이다. 즉 시므온은 성령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릴 수 있었고,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의 헌신례를 위하여 예수를 안고 성전으로 들어서자마자,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그 아기가 바로 그가 대망했던 메시야이신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성령의 계시하심대로 죽기 전에 메시야의 오심을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 기쁘고 감사하여, 아기 예수를 받아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기 시작했다.

 

주의 재림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성령충만하여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만이 예수님의 재림의 순간에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어떤 자리에 있기를 원하는가? 주님께서 오셨을 때, 당시 예루살렘의 수많은 사람들처럼 영적으로 눈 어둡고 잠들어 있어, 예수님을 발견하지 못하고, 구원의 자리에서 멀어지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주님의 천국잔치에 참예하기를 원하는가?

 

 

● 안나는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로서 예루살렘의 여선지자였다. 안나라는 이름은 ‘은총’이라는 뜻이다. ‘과부가 된지 84년이라’는 직역하면, ‘84세까지 과부로 지냈더라’이다. 즉 본문은 번역할 때 잘못된 것으로, 우리가 보는 한글개역성경에 따르면 안나가 과부가 된 햇수만 84년이라는 오해를 낳아 당시 나이가 105세가 넘은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대로 하면 안나는 현재 나이가 84세가 되며 그녀는 남편과 7년동안 결혼 생활을 하다가 남편과 사별하고 지금까지 줄곧 과부로 지낸 것이 된다. 만일 당시 조혼의 관습대로 그녀가 15세 전후에 결혼했다면, 그녀는 약 60년 정도를 과부로 지내며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하나님의 전을 위해 봉사하는 일로 세월을 보냈다고 볼 수 있다.

 

여선지자 안나를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안나는 남편과 사별 후 수 십년간을 독신으로 살면서도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살 수 있었다. 이것은 그녀가 자신이 처한 형편이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주의 강림에 대한 소망만은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우리 성도들도 어떠한 어려운 상황이 닥쳐오든지 주의 재림과 또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천국소망을 버리지 않을 때, 그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기쁨의 삶을 살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안나는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고 기도함으로써 아기 예수를 알아 볼 수 있었다. 이처럼 늘 깨어서 기도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영안을 열어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혜와 총명을 주시고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안나와 같이 늘 깨어 기도함으로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알아 그대로 행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겠다.

 

안나는 60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더욱이 늙도록 충실히 자신의 직무를 잘 감당하다가 주를 만나는 복을 누렸다. 이처럼 주께서 허락하신 사명을 귀하게 여기고 충실히 감당하는 자는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게 맡겨진 사명을 무엇인가? 주께서 허락하신 것이 귀한 줄 알아 늙도록 충성할 각오로 힘써 일하고 있는가?

 

여선지 안나의 모습은 특히 노년기에 접한 성도들의 신앙의 모범이 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추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실로 자신의 형편을 올바르게 판단하고, 초지일관 진지하고 경건하게 신앙생활을 해온 안나의 삶은 얼마나 존경스럽고 흠모할 만한가! 이같이 성도는 노년기에도 힘이 닿는 한 경건히 주의 일에 몰두하며, 쉼 없이 기도하며, 찬송을 부르고 자식들에게 믿음의 본을 보이며, 남을 위로하는 신실한 믿음 생활에 힘써야 하겠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끝까지 책임지시며, 아름답게 저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 지난 주일부터 대림절이 시작되었다. 대림절이란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이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부활 승천하셨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지키는 대림절이란 절기는 단순히 초림하신 예수님을 기리는, 성탄절을 기다리는 대림절이 아니라,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의미가 크다. 이 대림절기에, 다시한번 자신의 신앙자세를 점검하고, 과연 나는 주님 오심을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그리스도의 재림은 모든 성도들이 간절히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기다림 자체만으로 그리스도 예수를 만날 준비를 다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메시야의 초림을 기다렸던 시므온과 안나의 신앙을 본받아 우리도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할 때, 시므온과 같이, 안나와 같이 메시야를 직접 목도하는 기쁨을 누리게 될 줄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