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설교(39)  마리아(요2:1-12)

 
●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어머니이다. ‘마리아’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이름 ‘미리암’(모세의 누이)의 헬라어식 발음으로, ‘높여진 자’라는 뜻이다. 마리아 역시 요셉과 마찬가지로 유다지파 다윗 가문 출신이다. 그녀의 가정생활이나 배경에 대해 성경은 침묵하고 있는데, 유대 전승에 의하면 마리아 아버지는 요아김(혹은 헬리), 어머니는 안나로, 늙어서 기적적으로 태가 열려 마리아를 낳았다고 한다. 이들의 집은 나사렛 북쪽 세포리스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세례요한의 모친 엘리사벳과는 외가쪽으로 인척관계였으며, 세배대의 아내로 살로메라고 불리는 또다른 마리아와는 자매지간이다. 목수 요셉의 아내가 되어 나중에 예수 외에 네 아들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과 여러 딸들을 두었다.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를 낳은 어머니 마리아는 분명 하나님의 크신 은총을 받은 여인이다. 하지만 마리아는 갈릴리지방 나사렛 동네의 한 평범한 여인에 불과했다. 요즘으로 치면, 충청도 지방 어느 벽촌에서 나고 자라, 배운 것 많지 않고, 또 보잘것없는 가난한 목수와 정혼한, 고생길이 훤히 열린 시골 처녀였다. 정혼자 요셉이 다윗 가문의 출신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도, 조상 대대로 올라가면 다 왕족 아니면 귀족 출신들이듯이, 실제 생활과는 큰 관련이 없는 얘기에 불과하다.

 

가이사 아구스도의 명령으로 온 백성이 호적을 하러 본적지로 갈 때, 요셉은 다윗의 집 족속인고로 베들레헴으로 가게 된다. 이때 요셉이 만삭인 아내 마리아를 데리고 먼길을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거주지 나사렛에서 딱히 마리아의 출산을 도울 사람이 없었다는 점과, 또 베들레헴에서 산모를 누일 방 한 칸 마련하기 어려웠다는 것은, 요셉이 비록 다윗 가문 출신이지만, 집안이 초라하여 베들레헴에 일가친지라고는 없었으며,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가난한 목수였음을 짐작케 한다.

 

하여튼, 마리아는 사람의 눈에 띌 아무런 조건도 갖추지 못한, 산골짝 어느 야트막한 언덕빼기에 피어난 이름모를 들꽃과 같은 여인이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의 눈길이 바로 이 순결한 시골처녀 마리아에게로 향했다. 인류를 구원할 하나님의 독생자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탄생되는, 이 놀라운 인류 최고, 최대의 역사에 마리아가 뽑힌 것이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마리아는 메시야의 모친으로서, 장차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되고, 자신이 원하는 바는 결코 아니었지만, 사람들에게 경배의 대상으로까지 높여지게 된다.

 

그렇다면, 나사렛에서 평범하게 살았던 마리아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 출산케 하시는 은혜를 내리셨다는 이 사실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나? 이는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일꾼의 선택 여부가 인간적인 학력, 지위, 빈부, 권력의 유무에 따른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에 따라서 결정되어짐을 교훈한다. 우리나라는 장로 대통령을 세웠던 나라이다. 이 나라에서 대통령보다 더 높은 지위가 어디 있나? 그래서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이 땅에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나라가 공고히 들어서겠구나! 하지만 오히려 그때를 시작으로 이 땅의 기독교는 급격히 위축되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지위가 아니라 그 사람됨이며, 외모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중심으로 보신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복된 삶을 살고 싶은가? 여러분의 자녀가 하나님께 영광돌려드리는 복된 생을 살기를 원하는가? 부정행위를 해서라도 높은 점수를 받고, 소위 장래가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런 생각으로는, 결코 거룩한 하나님의 사업에 쓰임받을 수 없다. 하나님의 시험기준은 세상 것과는 분명히 다름을 명심하고,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자녀를 아낀다면, 세상의 욕망에 눈감기지 않도록 깨어있어야 할 것이다.

 

● 마리아는 초대 교회에서는 한 사람의 정결한 여성으로 묘사되었으나, 점차 신비화, 우상화되다가 오늘날에는 신격화하기에까지 이르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가? 물론 인간의 어리석음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사탄은 이러한 방법까지 동원하여 진리를 미혹되고 망령되게 변조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가 초기 박해시대를 거쳐 로마의 국교가 된 다음부터, 전세계 로마제국의 식민지로 신속히 전파되어 나가는데, 사실 이방 세계에 기독교가 전파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모신숭배사상이었다. 사람 사는 곳에서는 어디나 먹고 사는 게 가장 근본적이고 시급한 문제였다. 따라서 이방 세계에서는 많은 생산을 보장받기 위한 종교행위가 성행했는데, 그 대표격으로 어머니를 상징하는 여성신을 숭배하고 있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할 때, 아데미여신숭배 때문에 큰 곤욕을 치르는데, 아데미여신의 형상은, 가슴에 수십개의 젖가슴을 가진 여성신이다. 즉 많은 생명을 살리고, 수많은 생산을 보장한다는 주술적 의미가 담겨져 있다.

 

그런데 기독교는 남성적 색채가 강한 종교이다. 하나님을 어머니라 부르지 않고 아버지라고 부른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도 남성이다. 물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남성과 여성의 미덕이 완벽하게 통합되어 있다. 따라서 당시 기독교의 일부 지도자들은 여성신을 섬기는 이방세계의 정서를 반영할 수 있는 통로가 기독교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이 메시야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한 관심이었다. 강하고 억센 남성성에서 발견할 수 없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여성성을 마리아에게 투사시켰던 것이다. 그리하여 마리아는 점점 신비화, 신격화 되어 왔다. 최근에 이르러는 남미 천주교 국가를 중심으로 삼위일체 하나님, 즉 성부, 성자, 성령에 성모까지 합하여 4위 일체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마리아는 결코 예배의 대상이 아니다. 마리아는 아담으로부터 내려온 다윗의 육신의 후손으로 죄된 인간에 불과하다. 만일 마리아가 숭배의 대상이었다면, 예수님께서 분명히 그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성경 어디에도 마리아를 예배의 대상으로 기록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까닭에 마리아가 메시야의 모친이 될 수 있었지, 마리아라는 여인이 누구보다 위대하여 성모가 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역사를 통해 내려온 잘못된 인습과 교리를 합리화하려다 보니까 천주교에서는 마리아가 산채로 승천했다는 이야기를 지어내고, 마리아상과 관련하여 온갖 기적들을 연출하게 되었으며, 성경말씀까지 무시하기에 이른 것이다.

 

우리 개신교는 마리아를 인간 이상의 그 무엇으로도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메시아를 잉태하고, 모든 곡해와 환난을 참아가면서 예수를 양육한 마리아의 공적은 대단히 크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여호와께서도 황폐한 이 지상에서 그래도 가장 순결한 여인 마리아를 발견하여 그 독생자를 위탁하셨다. 실로 마리아는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인정하는 인물이다.

 

이제 그 이상적인 여성의 전형으로서 마리아의 특성 몇가지를 알아보자.

 

● 순결

 

마리아는 갑자기 천사의 방문을 받게 되었다. 일찍이 어떤 위대한 신앙의 인물도 하늘나라의 영광된 소식을 태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사야도, 에스겔도, 다니엘도 그리고 주의 사랑하는 자 요한도 하나님의 영광에 접하는 순간 엎드려 넋을 잃고 말았다. 변화산에서 엘리야와 모세와 함께 얘기를 나누시는 주의 영광스런 모습을 환상으로 보고 제자들은 두려워 당황하면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세례요한의 부친 사가랴도 주의 사자를 보고 놀랍고 두려워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나 나이 어린 처녀 마리아는 천사의 방문을 받고 크게 놀라지 않았다. 다만 천사가 전하는 소식이 너무 뜻밖이었기 때문에 잠시 놀라고 몸둘 바를 몰랐던 것으로 성경은 당시 상황을 전한다.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마리아는 결코 정신이 혼미하지 않았다. 당시는 엘리 제사장 시절과 마찬가지로 심히 어두웠던 시대였다. 말라기선지자 이후 400년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침묵하던 시대였다.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의 방문을 처음 경험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가 침착한 태도로 천진난만하게 천사를 응대하는 모습은 참으로 놀랍다. 크게 두려워하지도 당황하지도 않았다. 다시말해 자기 할말을 다하고 있다.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이것은 마리아가 천사의 존재에 대해 무지해서가 아니라, 평소에 얼마나 신앙이 돈독하고 순결하였는가를 잘 입증해 주고 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 어떤 사람이 가장 용기있는 사람인줄 아는가? 뒤가 퀭기는 것이 없는 사람이다. “누구든지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사람들은 모두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마리아는 비록 죄된 인간의 원죄를 갖고 태어난 인간이지만, 그 누구보다 순결한 영혼을 지니고 있었다.

 

● 겸손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마리아는 천사의 말을 들었을 때,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무슨 뜻인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마리아는 자기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을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비천하고 굶주린 자기와 함께 하시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런 축복이 보잘 것 없는 자신에게 주어진 놀라운 은총임을 알기까지는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나중에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성령충만한 엘리사벳이 큰 소리,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모친이 내게 나아오니 어찌 된 일인고” 하는 말을 듣고, 그녀는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했다.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마리아의 행적은 더욱 의아하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가장 잘 전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코 교회의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님을 낳은 생모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특별한 관심도 자신에게로 끌게 하지 않았다. 마리아는 예수를 낳은 후 여러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예수 바로 다음이 야고보이다. 그런데 마리아의 둘째 아들 야고보는 신약성경 중 야고보서를 기록한 바로 그 야고보인데, 그는 초기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적인 지도자가 되어 활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교회에 어떤 영향력도 행사하고 있지 않다. 마리아는 오히려 조용히 침묵 속에 그의 말년을 보냈다. 한마디로 마리아는 말할 수 없이 겸손한 여인이었다.

 

● 신앙

 

만일 구세주이신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탄생한 것을 현대인이 믿기 어렵다면, 마리아에 대해서도 믿기 어려울 것이다. 아직 남자와 접촉한 적이 없는데, 임신한 것을 믿는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신앙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태풍 하나 제대로 못다스리는 인간 과학은, 어느새 인공수정 정도가 아니라, 부모없이 체세포만으로도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과학은 성경의 사실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성경의 역사를 증거하고 있다. 그러나 2천년전 당시로서는 처녀가 잉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신앙이 없으면 하나님은 역사하시지 않는다. 최대의 기적은 최대의 신앙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신앙을 찬양하여 말했다.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 마리아는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받아들였다. 그 후 마리아의 생애는 신앙으로 일관되어 있다.

 

처녀의 몸으로 그것도 정혼한 남자가 있는데, 천사의 수태고지를 믿음으로 받아들인 것은 목숨을 걸어놓은 행동이다. 비록 약혼자 요셉에게 천사가 현몽하여 오해가 풀리기는 했겠지만, 나이어린 마리아가 겪었을 마음고생을 어찌 다 설명할 수 있겠는가? 마리아는 ‘한마디로’ 자신을 내던져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던 진정한 믿음의 여인이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예수님의 공생애 첫 기적이 베풀어진 장면인데, 나사렛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가나에서 혼인잔치가 열렸다. 그집 하인들에게 마리아가 과감히 지시하는 것으로 보아 인척관계가 있는 집인 것 같다. 잔치집에 포도주는 제일 중요한 음식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떨어졌다. 이때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예수님의 지시에 무조건 순종할 것을 지시한다. 아직 예수님은 한번도 공식적으로 기적을 베풀지 않았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의 신성을 확고히 믿고 있었다. 비록 자신의 몸에서 태어났지만,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어 주신 메시야인 것을 마리아는 누구보다 확고히 믿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가 부활 승천한 후 마리아는 제자들과 힘써 기도 생활을 행하였다.

 

● 순종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영광에 이르는 길은 십자가의 길이기도 하다. 마리아의 앞에는 남편이 될 요셉의 오해가 있다. 그리고 음행한 여자는 돌로 쳐죽이라는 엄한 율법이 있다. 마음을 찌르려는 칼이 눈앞에 번뜩이고 있다. 간음한 여자로 지탄을 받게 된 그날부터 십자가 아래 설 때까지 마리아의 일생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만인이 모두 예수를 배반하고 불신해도, 어머니 마리아만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따라서 메시아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기 뱃속을 거쳐 탄생된 그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아가 처참하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했을 때 마리아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우리가 헤아릴 수 있을까? 어떤 비평가는, 화가들이 즐겨 마리아가 그 마음의 순결을 상징하는 백합을 하나님께 바치는 모습을 그리는 것을 보고, “어째서 마리아의 찔린 심장에서 흘러내리는 피로 물든 붉은 백합을 바치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없을까?”하고 말했다고 하는데 참으로 지당한 말이라고 하겠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이면서도, 결코 혈연적 정에 얽매이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음의 주로 받아들였던 신실한 믿음의 여인이었다.

 

● 깊은 사려

 

심사숙고는 인격의 깊이를 더하게 한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천사의 말을 깊이 생각해 보았다. 누가복음 1장 46-55절의 송가를 보면, 마리아가 구약성경에 밝았던 것을 알 수 있다. 33절은 구약성경에서 인용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마음속에 새기고 있었기 때문에 말씀이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말씀의 묵상은 존귀한 인격의 토대가 된다.

 

마리아는 모든 일에 신중하고 사려가 깊었다. 성경은 자주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마리아는 아들 예수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잘 이해하기 어려웠고 또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항상 ‘마음에 지키어 생각했다.’ 마리아는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만 의지하며 그 힘겨웠던 나날을 보냈을 것이다.

 

● 예수님의 유언에 따라, 마리아는 다른 자녀들이 아니라 여동생의 아들이자 열두 사도의 막내였던 요한에 의해 모셔진다. 후일 요한이 사역하던 에베소에 가서 말년을 보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마리아는 성경적인 이상의 여인상이라 말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여성이 어떠해야 하는 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마리아는 실로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여성의 존엄과 영광을 만세에 드러낸 위대한 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