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원고작성과 학자적 목사, 그리고 설교집

흔히 하는 말이 목회자들은 학자적 목사가 되도록 노력해야하고 신학자들은 목회적 학자들이 되려고 해야한다고 합니다. 서로 반대될것같은 두 입장을 하나로 묶는 그야말로“통전적”입장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신학자들이 너무 학문에 빠져서 실제 교회와 목회와 전혀 상관없는 무인도에 상아탑을 쌓는다면 그것이야 말로 문제일것입니다. 반대로 목회자와 설교자들이 너무 목회의 바쁜 상황에 파묻혀 전혀 지적인 발전이나 신학적인 깊이를 파고들어가지못하고 점점 소리만 크고 내용은 형편없이 공허한 목회자와 설교자가 될 위험을 항상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설교원고작성을 일주일에 한번이라고 하기 시작한다면 그리고 그 한편의 설교를 위해서 연구하고 사색하고 고민하기 시작한다면 그러한 설교자는 곧 학자적 목사라는 칭송을 듣게 될것입니다. 목회자가 목회는 안하고 서재에만 들어박혀서 목회현실과 동떨어진 설교를 하는 위험도 도사리고 있긴하지만 한국교회는 기본적으로 목회의 소용돌이에 모두들 정신을 못차리고 있기때문에 목회자와 설교자들은 의식적으로 최소한 주중의 오전시간은 연구하고 사색하고 원고를 작성하는 시간으로 강한 의지를 가지고 떼어놓아야할것입니다.

저는 설교주석을 쓰는 일에 큰 비젼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 역시 부끄럽게도 게을러서 이 비젼에 좀더 몰입하지못하고 있지만 이제 곧 정신을 차리고 매진하려고 합니다. 여기에서 설교주석이라함은 예를 들어 본회퍼의 설교를 한글로 번역하고 각 설교에 주석을 다는것입니다. 성서주석이라함은 성서본문에 주석을 다는것처럼 설교본문에 세가지의 렌즈를 가지고 주석을 달려고합니다: 1) 어떻게 한편의 설교에서 이 설교자(신학자)는 성서를 다루었는가? 2) 어떻게 자신의 신학/사상을 한편의 설교에서 펼쳤는가? 3) 어떠한 설교학/수사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한편의 설교를 전달했는가? 모든 위대한 신학자와 목회자들은 자신들의 설교집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끔 설교집출판을 비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설교집의 내용보다는 책을 출판하는것에 더 의미를 둔다는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강력하게 한번뿐인 삶을 살며, 한번뿐인 목회자와 설교자로 부름받아 살면서 자신의 삶의 역사를 돌아보며 아무 흔적도 남지않는다면 그것은 슬픔이라고 생각합니다. 꼭 흔적을 남길려고 설교집을 출판하는것도 우습지만 제 말씀은 좀 더 진지하게, 비록 맘모스 대형교회 목회자가 아니었어도, 자신의 목회와 설교자의 삶을 최선을 다해, 고민하며, 살았다는 포도송이같은 결실이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다보면 남의 글에 관심이 생기고 글을 쓰다보면 글의 형태와 글의 내용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러면서 깊어집니다. “우리 목사님은 참 말씀이 깊어!” “우리 목사님 설교는 들을것이 많아!” “나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고 내 삶을 진지하게 하는 말씀이야!” 일년 52주 주일 설교를 꼬박꼬박 다 참석하는 성도들에게는 한교회에서 오래 목회하고 설교하다보면 감정적인 부흥사적 설교만으로는 한계가 분명있음을 느낄것입니다. 성도들은 점차 일시적 흥분와 재미를 주는 설교에서 좀더 깊고 진지하고 삶과 신앙을 고민하는 설교를 찾게 될것입니다. 이러기위해서는 설교원고작성이 필요합니다.

대학에서의 강의도 미국식과 독일식의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교수들은 원고를 준비하지않고 학생들과 자유롭게 대화하며 강의를 하지만 독일교수들은 철저히 준비된 강의 원고를 읽습니다. 어느쪽 강의가 더 좋은가? 단순비교는 어렵지만 왜 독일학문과 독일신학이 더 깊이있는가에 대한 답변을 할수는 있을것입니다. 원고를 가지고 설교를 진지하게 할 경우 설교청중들이 다 졸며 지루해할것이라는 선입견을 바꾸어야합니다. 내용의 진지함과 내용의 숙달로 오히려 준비없고 깊이없는 공허한 자유로움보다는 훨씬 나을것입니다.

그러나 설교원고를 작성한다고 해서 학문적 목회자로서의 설교자가 된다고해서 예배시간을 학문적 설교강의 발표의 시간으로 바꾸어서는 안됩니다. 설교는 예배라는 다집합안에 있는 부분집합입니다. 준비없이 장시간 설교하는것보다 철저히 준비된 단시간의 설교, 그리고 남은 시간에 더많은 찬양과 기도로 살아있는 예배로 만드는것이 중요합니다. 설교원고를 작성한다고 하니 설교가 아주 긴 강의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한시간 예배안에서 삼분의 일에 해당되는 이십분정도의 철저히 준비된, 강력한 포탄같은,폭포수같은 메시지가 줄기차게 원고와 함께 치밀하게 선포되고 다른 삼분의 이의 시간은 더많은 찬양과 기도의 시간이 있어야 할것입니다. 한번의 예배에 기형아적으로 말씀선포가 찬양과 기도를 제압해서도 안될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철저히 준비되고 쓰여지지않은 설교일수록 더 길고 찬양과 기도의 성도들의 예배참여를 막는다는것입니다. 미리 쓰여지고 준비될수록 설교자는 자신의 설교를 정확히 통제할수있습니다. 20분설교를 위해서는 다섯에서 여섯장의 원고면 충분하기때문입니다. 아, 이런 멋진 설교자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