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눅 21:34~36
이름  김광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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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드 레이븐힐((Leonard Ravenhill)은 그의 저서 부흥의 세대여 통곡하라(Why Revival Tarries)’ 에서 이렇게 지적합니다. “교회를 조직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고뇌하며 기도하는 사람들은 적다. 돈을 내는 사람들은 많지만 기도하는 사람들은 적다. 쉬는 사람들은 많지만 씨름하듯 기도하는 사람들은 적다. 일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기도하는 사람들은 적다. 기도하지 않는 자들은 노는 자들이다. 역동적인 신앙생활의 두 가지 필수요소는 비전과 열정이다. 그런데 이 둘이 기도의 밀실에서 발생한다. 설교의 사역은 소수에게 열려있지만 기도의 사역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에게 열려있다. 기도의 비결은 은밀하게 하는 데 있다. 세속적인 신자는 기도를 중지하고 기도하는 신자는 세속을 중지한다. 십일조는 교회를 세우지만 눈물은 교회에 생명을 준다. 이것이 현대교회와 초대교회의 차이점이다. 우리는 돈 내는 것을 강조하지만 그들은 기도하는 것을 강조했다. 우리가 돈을 낼 때는 땅을 살 수 있지만 그들이 기도했을 때는 땅이 흔들렸다.” 기도의 불로 이 땅을 완전히 태울 수 있는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단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기도의 사람들입니다.

배 한척이 침몰하고 있습니다. 선장이 모든 남자들에게 갑판으로 올라오라고 한 뒤에 지금부터 그리스도인들은 기도를 바치고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무신론자들은 물을 퍼내십시오말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오해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물을 퍼내면서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철저하게 죄를 고백하고 잘못된 삶을 청산하고 바로 살려고 몸부림치면서 기도하여야 합니다.

현대 신앙의 시대는 기도가 없는 시대입니다. 이것이 현대 교회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이 시대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철저한 자기중심성입니다. 자기가 우주의 중심이며, 자신만이 가치를 판단하는 궁극적인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도 이러한 현상이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의 요체는 분명히 다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데서 불행과 비극의 원인을 발견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탕자가 궁핍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영혼과 육체의 상태를 깨닫고 풍요로웠던 아버지의 집을 떠난 것이 불행의 근원이었음을 자각하고 일어나 돌아가기를 결단한 것과 같습니다. 물론 인간에게는 돌이킬 능력이 없기에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역사하십니다. 하지만 강력한 자기중심성은 회심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훼방합니다. 그리고 돌이켜야 할 대상은 자기가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생각게 하는 패역한 마음을 품게 합니다. 이런 잘못된 태도를 바꾸는 유일한 방법이 깨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신학적 지식을 습득한다 해도 그를 기도하는 사람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오로지 성령의 역사만이 하나님께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여기서 기도의 샘이 솟습니다. 은혜의 샘이 솟습니다. 예수께서 이런 일들과 거리가 먼 시대가 장차 다가올 것을 아셨기에, 그 덫에 걸리지 말고 깨어 기도하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도대체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마음이 둔해지기에

리처드 칼슨(Richard Carlson)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Don’t Sweat the Small Stuff...and it’s all Small Stuff)라는 책이 있습니다. 주된 내용은 사람들이 사소한 문제를 목숨을 걸 정도로 심각하게 받아들여 무기력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염려입니다. 예컨대, 계약을 해야 하는데 상대방이 나오지 않는 경우를 생각해 봅니다. 이런 경우 여러 가지 생각을 합니다.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것이 분명해” “저 사람이 내 약점을 알아본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은 항상 그래온갖 상상을 하며 의미 부여를 하다가 스스로 낙담하고 맙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회사에 바쁜 일로 긴급소집이 있어서 올 수 없었다며 사과까지 하는 것입니다. 사소한 일이었지만 염려하고 있었던 시간 내내 마치 사망의 늪에 빠져 있었던 것과 같았습니다.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졌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할 시간에 기도해야 합니다. 깨어 기도할 때 염려는 사라집니다. 하나님이 필요를 아시고 도와주신다고 약속하셨기에 염려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습니까? 깨어 기도하면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고 집중력이 생겨 위기를 돌파할 수 있습니다.

본문 34절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여기의 둔하여진다는 말은 무거운 것에 의해서 눌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이 눌려져서 그 기능이 마비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조심해야 합니까가?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입니다. 방탕은 죄악과 더불어 쾌락에 빠지는 것입니다. 술취함은 이성을 마비시킵니다. 생활의 염려는 마음을 질식시키는 가시넝쿨입니다. 이렇듯 한편으로는 쾌락주의가 마음을 질식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속을 갉아먹는 염려가 마음을 질식시키는 마지막 시대입니다.

마음은 정원과 같습니다. 가꾸지 않으면 잡초가 무성한 것처럼 마지막 시대에 마음을 가꾸지 아니하면 염려의 잡초가 무성합니다. 마음을 가꾸지 아니하면 방탕의 벌레들이 우글거리게 됩니다. 밝은 마음으로 종말의 징조들을 발견하고 분별하고 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생활의 염려와 방탕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하면 깨어 있게 됩니다. 깨어 있는 사람은 기도합니다. 기도와 영적 각성은 손을 맞잡고 동행합니다.

기도 대신 염려를 계속하고 있습니까? 지나친 생활의 염려는 마음을 둔해지게 만듭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라 하듯 마음도 건강할 때 지키고 조심해야 합니다. 그 비결은 바로 기도로 깨어 있는 것입니다. 깨어 기도하는 사람은 언제나 스스로 조심하는 사람입니다.
 

둘째로 그날을 바라보기에

1896년 마크 트웨인(Mark Twain)의 예루살렘 방문 기록을 살펴보니 예루살렘은 쓰레기로 뒹구는 폐허된 도시의 형상 그 자체였다고 적었습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해야 당시에 고작 7만도 안 되는 유대인과 아랍인이 함께 살았는데 과거 솔로몬의 영화의 현장이라고 보기에 너무나도 초라했습니다. 그러나 20세기 초부터 예루살렘은 세계의 주목을 끌기 시작합니다.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하고 주변 아랍국에 연이어 유전이 발견되면서 중동지역은 세계의 화약고란 별칭을 얻게 되었을 뿐 아니라 지금에 와서는 이스라엘 문제가 세계 권력 재편의 중심에 서 있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편에 서는 세력과 아랍지역 편에 서는 동맹관계의 형성이 눈에 보이는 현실입니다. 미국, 유럽, 러시아와 중국의 세력이 어떤 이해관계로 맺어지느냐에 따라 세계판도는 달라질 것이며 그 중심에 예루살렘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루살렘에 얼마나 많은 테러가 일어나고 있습니까? 9절에 보니 난리와 소요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긴장 관계와 전쟁의 소문이 바로 마지막시대의 징조라는 것입니다.

본문 35절입니다.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 임하리라기도로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는 뜻밖에 종말이 덫과 같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주변에 너무나 많은 부패와 죄악이 들끓고 세계가 어지럽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보고 탄식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탄식이 끝날 날이 옵니다. 하나님이 모든 불의를 정리하시고 모든 죄악을 심판하실 그 날이 반드시 옵니다. 우리는 그 날이 있기에 그 날을 바라보면서 위로를 받습니다.

버스를 타면 마지막에 도달하는 종착역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시대는 터미널 시대 (Terminal Age)입니다. 언제 오실지 모릅니다. 이 터미널 시대에 주께서 우리에게 무엇으로 어떻게 대비하라고 말씀하십니까?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십니다. 종말의 징조들을 통해 그 날이 가까웠음을 바라보며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셋째로 심판을 예비하기에

웹스터 사전의 편집자이자 언론인이며 미국의 국무장관까지 지낸 다니엘 웹스터(Daniel Webster)의 일화입니다. 그가 국무장관 시절 뉴욕의 호텔에서 저명한 인사들과 같이 만찬을 할 때입니다. 모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웹스터는 머리를 숙이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친구가 웹스터, 당신의 일생을 통해 마음속에 들어온 생각 가운데 제일 중요한 생각은 무엇이라 고 생각합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웹스터는 얼굴을 들고 대답하기를 나에게 제일 엄숙하고 중요한 생각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이후에 심판을 받고, 하늘나라에 가서 내가 책임질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 생각을 할 때 마음이 제일 엄숙해집니다하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엄격하고 두려운 심판이 있다는 것을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심판은 갑자기 도둑같이 이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은 행위를 따라 추호의 가감도 없이 행하여집니다. 그러므로 심판을 예비하여야 합니다.

본문 36절입니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재앙은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피하게 될 것입니다. 장차 하나님 앞에 서는 심판을 아십니까?. 아는 것은 깨어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알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오로지 심판을 예비하는 길은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알라스카(Alaska) 빙원에서 개썰매(Dog Mushing)를 타고 가던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부부는 썰매 여행에 매력을 느끼고, 위험이 있는 빙원을 여행하기로 하였습니다. 빙원에서 절대로 졸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었습니다. 추위에 졸다보면 체온이 서서히 내려가게 되어 생명을 잃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빙원을 달리며 남편이 부인을 보니 졸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남편은 부인을 썰매 아래로 밀쳐 버렸습니다. 놀란 부인은 결사적으로 썰매에 다시 올라타며 남편을 향하여 그럴 수 있느냐?’ 며 거칠게 항의했습니다. 결국 부부는 썰매위에서 크게 싸우고 여행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여행 후 남편은 아내에게 빙원에서 일어났던 일을 설명하면서 애정이 깃든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당신을 살리기 위해 그랬으니 용서하라빙원에서 졸면 죽는바와 같이 기도하지 않는 영혼, 기도하지 않는 교회는 이미 죽은 영혼이요 죽은 교회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바람에 떠밀리듯 사는 신앙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님의 은혜를 굳게 의지하고 하나님과 생명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기도에 마음을 쏟으면 쏟을수록 기도의 지경은 넓어지고 더 많은 기도의 제목이 떠오르지만, 기도하지 않으면 기도할 이유도 제목도 찾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게으르지 마십시오. 종말론적 긴장 속에서 하나님 앞에 깨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은 졸고 있는 구경꾼이 아닙니다. 모름지기 깨어 기도하며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지금은 자다가 깰 때입니다. 죄악의 밤이 깊고 주의 오실 날이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부디 깨어 있으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마음이 둔하여지지 않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의 날을 바라보며 하나님 앞에 서도록 기도로 예비하며 언제나 깨어 있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