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복음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성경: 롬 5:1-11

찬송: 404장

 

 

덴마크의 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저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왕자가 말을 타고 시골로 사냥을 가면서 빈민촌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 시골길에서 그는 참으로 아름다운 여인을 만났습니다. 천사같이 아름답고 깨끗한 여인이었습니다. 왕궁에 돌아와서도 그는 그 여인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끝없이 생각나고, 그리웠습니다. 그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 여인에게 내 사랑의 진실을 믿게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첫째 고민이었습니다. 둘째는 신분의 격차가 엄청납니다. 그래서 그는 생각합니다. 신분의 격차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하면 알릴 수 있을까? 배우고 못 배우고, 가난하고 부하고가 문제 안 됩니다. 사랑은 그 모든 것의 위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하겠는데……. 그리고 셋째로, 잘되고 못되고, 행복하고 불행하고…….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무슨 문제가 있든 모든 책임은 내가 질 것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제 넷째로, 어떻게 하면 그녀도 내가 저를 사랑하는 만큼 사랑하게 할 수 있을까? 내 사랑을 받아들이게 하고, 저도 나를 사랑하게 할 수 있을까? 그는 이것을 고민했습니다. 물론 연구도 했습니다. 주변의 의견도 구했습니다.

많은 고민 끝에 그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왕궁에서 입던 화려한 옷을 벗어버리고 그녀가 사는 시골 마을로 가서 조그마한 방을 하나 세 얻어 살면서 목수가 되었습니다. 일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풍습을 배우고, 언어를 배우고, 그들과 깊이 사귀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많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순박한 생활 속에 엄청난 행복이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동네 사람들과 부지런히 사귀었습니다. 마침내는 그 여인하고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그는 고백합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렇듯 모든 넋을 버리고 당신을 찾아왔다.”라고.

비로소 이 여인은 왕자의 엄청난 사랑을 알고, 믿고, 깨닫고 받아들여 왕궁으로 들어가 왕후가 되었습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오늘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저는 지난 두 주간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복음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복음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복음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 봉독해 올린 본문을 보면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누리는 축복들이 있습니다.

➀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립니다.

➁믿음으로 서 있는 은혜에 들어감을 얻습니다.

➂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합니다.

이런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진 소망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롬 5: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성령께서 성도와 함께 계시는 결정적인 근거는 바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계심은 하나님의 사랑이 성도를 향해 물 붓듯이 부어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롬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부은바 됨이니”라는 말씀은 “쏟아 부은바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충분히 넘치게 부어졌을 뿐만 아니라 보이는 물처럼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우리들에게 베풀어졌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자기의 사랑을 두 가지로 확증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할 때 “십자가와 부활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고 반문할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당장 필요한 것은 물질이요, 건강이요, 자녀가 잘되는 것이 아닐까요? 만일 여러분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는 십자가 하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감격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로 십자가 이상은 없습니다.

그러면 왜 십자가가 그토록 중요합니까? 십자가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님의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사람은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죄의 문제는 물질이나 명예나 권세나 지식으로 해결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십자가 외에는 다른 해결방법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십자가가 그토록 중요하고 이것만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입니다. 또한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의를 확증해주셨습니다. 부활로서 새로운 생의 의미를 주셨고 영생의 길을 주셨습니다. 십자가 안에 내 생명의 진실한 의미를 주셨고 영생의 길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면 곧 십자가요, 십자가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게 됩니다.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계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대하시는 능력과 지혜가 십자가로 확증되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죄와 사망과 사탄과 율법의 진노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사망으로부터 자유하며, 사탄의 권세로부터 벗어나고, 율법에 매이지 않으며 진노의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형벌이요, 저주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모두가 훈련이요, 은사이며 내게 주신 축복으로 바꾸어집니다.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 3장 17-19절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엡 3: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엡 3: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엡 3:19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넓이, 길이, 높이, 깊이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1.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연약할 때에 사랑해 주셨습니다. 본문에 "연약하다"라는 말로 번역을 했는데, 이것은 약한 번역입니다. 본래 뜻은 "전혀 힘이 없다"라는 뜻입니다. 무능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무능할 그 때에 나를 사랑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에게 무슨 힘이 있었습니까? 우리가 무슨 힘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또 우리가 무슨 능력으로 죄의 자리에서 벗어나 구원에 이를 수가 있었겠습니까?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전적으로 무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를 하나님은 어떻게 사랑해 주셨습니까?

6절 말씀을 다시 봅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우리가 아직 성장하지 않았을 때에, 또한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할 그 때에 사랑하여주셨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언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합니까? 예수 믿은 후부터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세례를 받으라고 하면 뒤로 미룹니다. 아직 수준이 미달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는 정도 수준이 올라간 다음에 이만하면 됐다 싶을 때까지 열심히 믿다가 세례를 받겠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해야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고 잘못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가 수준이 올라가면 얼마나 올라가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벌써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되었습니다. 내가 믿기도 전에, 알기도 전에 이미 받았습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바울이 여기서부터 사랑을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바울은 태어나기 전부터 사랑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스데반이 순교당할 때 바울은 박수치고 증인으로 서 있던 사람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벼락을 내리셔서 죽게 하였다면 그는 그것으로 인생이 끝장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봐주신 것입니다. 놀라운 사랑입니다. 그가 전혀 하나님의 사랑을 모를 때에도 하나님은 사랑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경건치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살았습니다. 하나님 밖에서 멀리 살고 있었던 우리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을 심어주셨습니다. 또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지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못했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생각은 허망하여 졌습니다. 그리해서 썩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죽어 마땅한 우리들, 경건치 못한 우리들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요3:16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경건치 못한 우리를 위하여 보내주셨습니다. 그리해서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기약대로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대신 십자가를 지고 죽으신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7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남을 위하여 죽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비록 그 사람이 의인이라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내가 살기 위하여 다른 사람을 죽이기는 쉽지만,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내가 희생하고 죽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많다는 뜻입니까? 적다는 뜻입니까? 간혹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어쩌다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전혀 깨닫지도 생각하지도 않았을 때에 벌써 사랑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모르고와는 관계없이 사랑하셨습니다. 단지 깨달은 것이 오늘일 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얼마나 깨닫고 그 은혜에 감격하느냐에 따라서 사랑이 결정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의 시작은 내가 전혀 몰랐을 때에 즉, 연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내가 그를 위해서 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단지 감격할 뿐입니다. 이래도 저래도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2.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사랑하셨습니다(8절).

 

좀더 다른 의미에서 또 하나의 “때”가 있습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 때는 시간 적인 때가 아니라 신분적인 때를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인이어서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사랑하셨다는 말씀입니다. 6절 말씀이 전적인 무능력을 나타낸 것이라면, 8절은 전적인 타락 또는 부패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죄인을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의인도 아니었고, 선인도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다 죄인이었습니다. 우리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었습니다. 혀로는 속임을 베풀었습니다.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었습니다. 입안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했습니다. 우리의 발은 피를 흘리는 데 빠를 뿐이었습니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사람이 간혹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죽음이란 최종적인 것입니다. 마지막 행동입니다.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주셨으니”, “내어 주신”이라는 말씀은 단순히 세상에 보내 주신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죽음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죽는 것입니까? 연약한 자, 경건치 않은 자, 죄인을 위하여 죽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죄인 되었던 우리를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아느냐?"

이렇게 단순히 말씀만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나 대신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심으로 말미암아,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증명해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3.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사랑하여주셨습니다(10절).

 

롬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연약할 때에도 사랑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경건치 못할 때에도 사랑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도 사랑해 주셨습니다. 심지어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고 사랑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기록한 바울의 삶을 통해서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본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그는 예수님과 원수 되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바울은 참 끈질겼습니다. 멀리 다메섹에도 예수 믿는 사람이 숨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사람들마저도 다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의 공문을 받아들고 그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내려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바울은 원수로서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버리지 아니했습니다. 그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 우리는 무능했습니다. 경건치 못했습니다. 죄인이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과 원수 된 우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고 사랑해 주신 것입니다.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사랑받는 위치에 있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가가와 도요히코는 일본이 낳은 유명한 종교가입니다. 그는 시장 아버지와 첩이었던 기생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집에서 자라기는 했으나 첩의 아들이라고 눈칫밥을 먹어야 했습니다. 본처의 자식들로부터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았습니다. 얼마나 저주스러운 생이었겠습니까? 왜 나 같은 것을 낳았느냐고 부모를 원망하면서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습니다. 담 모퉁이에 우두커니 기대서서 역시 자기 생을 비관하고 있을 때에 북 치고 나팔을 불면서 지나가는 구세군 전도대를 만났습니다. 저들이 전도하면서 외칩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가가와 도요히코는 그들 가까이로 다가서서 물었습니다. "기생 아들도 사랑하나요?" "아무렴요, 어떠한 죄인이라도 사랑하십니다." 그 말을 듣고 그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글 가운데에는 '나는 기생 아들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이다.' 라는 이야기가 종종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그 확실한 의식, 그 감격이 가가와 도요히코를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생 아들 뿐 아니라 원수까지도 사랑하십니다(북한에서는 원수/웬수가 있다. 원수=김일성, 웬수-대적).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믿고 선하게 살려고 애쓰면서 하나님의 자녀로 지내는 데 가끔이 의심이 생깁니다. 내가 이 정도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바울은 그런 자신을 가리켜 ‘오호라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탄식하였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느낄 수 있고 회복할 수 있을 까요?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세 가지로 말씀해줍니다.

➀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사랑하셨다.

➁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사랑하셨다.

➂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사랑하셨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하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아직도 부족합니다. 때로는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실수합니다. 때로는 쓰러집니다.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보려고 애쓰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니 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 주지 아니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사랑하여 주셨던 하나님,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사랑하여 주셨던 하나님,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라도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해 주십니다.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롬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 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롬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우리가 믿는 복음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읍시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충만한 삶을 살아가시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