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복음/ 능력/ 의

제목: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성경: 롬 1:16-17

 

 

아리조나의 피닉스에 살고 있던 어떤 사람이 일정기간의 복역을 마치고 출감되어 나왔습니다. 이 사람은 자지가 형무소에서 나가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를 형무소에 보낸 사람을 쏘아 죽이려고 마음먹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형기를 마치고 자유의 몸으로 풀려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먼저 자기 집으로 갔습니다. 가보니 어린 아들 둘만 집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두 아들을 바라보는 순간 이 사람의 마음속에는 이제 자기가 그 원수를 쏘아 죽이면 다시는 그 사랑스러운 아들들을 볼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토록 뼈가 사무치게 형무소에서 원수를 갚겠다던 생각을 포기하고 그날 저녁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로 갔습니다. 마침 그 교회는 톰프슨이라는 목사를 초청하여 부흥집회를 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생명의 말씀은 그 사람의 멍든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 말씀선포가 끝나고 결심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주님을 모시고 새로운 삶을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오십시오.” 성령에 감동을 받은 이 사람은 두 아들의 손목을 잡고 중앙통로를 걸어서 강단 앞으로 나갔습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자기 품속에 넣어 가지고 온 권총을 꺼내서 목사님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여러분! 나는 오늘밤에 한 사람을 쏘아 죽이려고 총을 품에 품고 온 악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의 복음은 나를 새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나는 이제부터 새롭게 살렵니다. 오늘 이후로 아는 권총을 들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나를 감옥에 보냈던 그 사람을 계속 찾아다니겠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복음은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능력입니까?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능력이라는 말은 “두나미스”라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다이나마이트’라는 말이 파생되었습니다. 복음은 능력 즉 파워(power)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일종의 지식으로 또는 윤리규범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들어두면 다 좋은 이야기이고 좋은 사람되라는 것이니 괜찮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그 정도의 수준이 아닙니다. 복음은 폭발적인 힘이 있습니다. 당시에 헬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면 로마는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힘을 숭상했고 그것을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연약한 나라였습니다. 철학자 세네카는 “악의 소굴”이라고 하였고, 작가 유베날은 “제국의 너저분한 것이 넘쳐흐르는 불결한 하수도”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로마를 향해 인간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을 복음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소아시아와 고린도에서 이 복음을 전하면서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복음이 로마에서도 힘있게 역사할 하나님의 능력임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러면 복음은 어떤 하나님의 능력입니까?

 

1.구원의 능력입니다(16절).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유대인이게나 헬라인 모두에게 똑같이 역사합니다. 복음은 구원의 능력을 생산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바로 복음을 통하여 믿는 자에게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구원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왜 예수 믿습니까? 구원받기 위해서 예수 믿습니다. 그렇다면 그 구원이 무엇인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로 알고 믿어야 합니다. 구원이란 곧 자유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 8:32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여기에서 말하는 진리가 무엇입니까?

요 8: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진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은 자유입니다. 즉, 무엇으로부터 풀려나는 것을 말합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물에 빠졌던 사람이 구출되면 그것이 구원이며, 병들었던 사람이 낫게 되면 그것이 구원입니다. 해방과 자유를 의미합니다.

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노릇하다가 애굽에서 풀려날 때 그것이 구원입니다. 즉, 무엇으로부터 풀려나서 해방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럼 무엇으로부터 풀려나고 무엇으로부터 구원받는 것입니까?

 

성경에 나타난 구원의 몇 가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 9:21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눅 8:36 귀신 들렸던 자의 어떻게 구원받은 것을 본 자들이 저희에게 이르매

병 낫는 것, 귀신이 나가는 것을 구원이라고 말씀합니다. 병에 매이면 사람이 자유를 잃어버리고 속박됩니다. 가고 싶은데 가지 못하고 먹고 싶은 것 먹지 못합니다. 그러나 병에서 나으면 이런 것들로부터 자유롭습니다.

마 8:25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가로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마 14: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위험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 풍랑으로부터 제자들이 구원받은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속화와 타락으로부터의 구원이 있습니다. 우리는 죄악 세상에 살기 쉽기 때문에 오염되기 쉽습니다. 오늘날 세상이 얼마나 타락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요즘은 컴퓨터 켜기도 무섭습니다. 저도 너무나도 많은 스팸메일이 날아와서 음란스팸메일을 걸러내는 파일을 다운 받아서 깔아놓았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계속에서 저에게 날아오는 음란성 스팸메일을 감시하고 그런 메일이 오면 걸러줍니다. 여러분의 집에도 컴퓨터가 있다면 깔아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자녀들을 지켜줄 수가 있습니다. 나쁜 것도 자주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동화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일로부터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 구원입니다.

 

또한 잃어버림으로부터 구원, 즉 상실됨으로부터 구원이 있습니다. 잃어버렸다가 찾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구원은 죄와 율법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죄와 허물 때문이 영적으로 죽은 자들입니다. 죄인들은 영원한 형벌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예수님 때문에 구원을 받습니다. 죄는 율법이 없을 때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모세의 율법이 있기 전에 아브라함이나 많은 믿음의 족장들마저도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죄 때문에 사망이 그들에게 왕 노릇했습니다. 그런데 율법이 나타나니까 죄가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마귀는 그 약점을 알기 때문에 죽는 것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을 자기의 종으로 부려먹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율법의 의를 이루시므로 우리는 죄의 형벌로부터 자유함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로가 아니라면 그 어느 누구도 죄의 심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얼마 전에 국회에서는 검찰이 제출한 체포 동의안을 부결시키고 말았습니다. 이른바 방탄국회로 비난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국회회기가 끝나게 되어 더 이상 비리 국회의원들을 보호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비리를 저지른 국회의원은 아마도 밤잠을 설쳤을 것입니다. 보호막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때마침 검찰은 대대적으로 법원에 구속영장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법 앞에서는 국회의원도 어쩔 수 없습니다.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그 어떤 요구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유리는 죄와 율법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은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망과 사탄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우리는 죽음으로부터의 구원과 사탄으로부터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죽음으로부터 구원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은 것입니다. 더욱이 사탄은 예수님의 이름 앞에서는 그 권세가 무용지물입니다. 마귀를 이길 힘은 오직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그 외에는 많은 구원이 있습니다만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으로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 때문에 두려워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진노의 하나님이 아닌 사랑의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종말론적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롬 13: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고전 5:5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어떤 능력입니까?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입니다. 어떤 구원입니까? 첫째는 복음은 과거의 모든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고 죄책으로부터 구원합니다. 둘째는 미래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종말론적인 구원입니다. 셋째는 현재적인 구원입니다.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며 그 능력으로 말미암아 변화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복음은 소극적인 의미는 무엇에서 풀려는 것 즉 해방이며, 적극적인 의미는 영생이며, 현재적인 의미는 승리입니다. 이기는 것입니다.

 

2.의롭다는 하는 능력입니다(17절).

복음 하면 구원만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복음에는 구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보여주는 내용도 있습니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구약의 하박국 2:4절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씀은 부사를 어디에 위치시키느냐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지고 신학이 달라집니다.

‘의인은 산다.’라는 말과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인은 살리라.’라는 말은 서로 다릅니다. 의인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냐? 아니면 의인이 믿음으로 말미암은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만약 의인이 믿음으로 산다고 하면 윤리적인 문제가 됩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신실하게 산다는 뜻이므로 ‘신실하게 살면 의인이다.’라는 말이 됩니다. 즉 의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말미암은 의인을 말하게 됩니다. 그러면 로마서의 주제는 윤리가 되고 맙니다.

사도 바울이 하박국의 말씀을 인용하는 것은 그런 측면에서 인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함으로 말미암은 의인은 죽는다는 말입니다. 자기의 행함으로 하나님의 의의 기준에 도달하는 의인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여서 의인이 된 의인 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인은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여 칭의된 의인을 말합니다.

로마서 4장을 보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브라함도 행함으로 의롭게 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자기의 행위로 의롭게 될 수 없다는 것이 바울의 신학입니다. 우리도 이점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면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다.

의롭다 함을 얻는다 하는 말은 칭의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의인이란 뜻이 아니며 의인이 된다는 뜻도 아닙니다. 오로지 의롭다함을 얻는 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의인으로 간주한다. 또는 취급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의인으로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죄인을 죄인이 아닌 것으로 인정하고 의로 간주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법적인 선언입니다.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면 의인이 됩니다. 실제는 그렇지 않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선언하셨기 때문에 의인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분명한 죄인이지만 하나님이 죄인이 아니라고 선언하면 그대로 끝납니다. 내가 아무리 생활자세를 고치고 회개하고 노력해도 하나님이 너는 죄인이야 하면 죄인입니다. “평생 의를 행해도 의인은 될 수 없고 죄는 한 번만 지어도 죄인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의롭다함을 얻는 길은 하나님이 의롭다고 선언해 주시는 길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믿는다는 조건으로 의인으로 선포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첫째는 법적 관계를 말하는 것이며 둘째는 하나님과의 개선된 관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관계가 무엇입니까? 두려워하는 관계에서 사랑의 관계로, 무자격자를 자격자로 관계를 개선하는 것입니다. 관계가 달라진 것입니다. 시집을 가면 흔히들 “새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남편 때문에 모르던 사람을 아버지라, 어머니라 부르게 됩니다. 남편 때문에 새로운 관계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다는 뜻입니다. 이 새로운 관계가 바로 칭의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의 조건은 믿음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내 아들이다.”라고 말씀하시면 “저는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믿음이란 의를 수락하고 자기 스스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했으니 나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의가 무엇입니까? 복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롬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롬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복음이란 직설적으로 말해서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말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의를 계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주시며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의 의를 충족시키신 것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의 옳으심, 하나님의 하나님다우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하나님다우심이 나타났다. 그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라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다우심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앞에서 말씀드렸는데 복음은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믿는 자에게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잘못 생각하면 구원의 열쇠는 내가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이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예수 믿으면 구원받고 믿지 않으면 멸망 받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무엇을 말씀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고 선포합니다. 그렇다면 구원 얻을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 안에 있는 구원,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를 살리신 것입니다. 내가 믿어서 구원을 획득한 것이 아니라 예수를 죽여서 나를 살리신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미쳤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생성시켰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믿습니다. 믿어서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믿음이 있다고 자랑하지 못합니다.

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딤후 3: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믿음은 누구 안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죄인입니다. 동시에 의인입니다. 내가 나를 생각할 때는 계속 죄인입니다. 그러나 내가 십자가를 볼 때는 계속 의인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보여 주신 하나님 의를 수락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바로 이것을 증거 합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죄인을 의롭다하는 능력입니다.

 

3.거룩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복음은 구원하는 능력이며, 의롭게 하는 능력입니다. 그것이 최종목적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하여 복음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롬 6: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우리는 과거에는 우리의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의 지체를 의에게 드려 거룩함에 이르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레 19:2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벧전 1: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벧전 1:16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

벧전 2: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더러운 죄인을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는 능력입니다.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를 말합니다. 죄악 된 것을 끊어버리고 성별된 삶을 사는 사람이 거룩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로 얼룩지고 타락한 세상에 빛으로써 소금으로써의 사명을 감당하는 길이 있다면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에는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바울과 베드로를 통하여 선포된 복음은 결국 죄악의 소굴이었던 로마를 예수님의 발 앞에 무릎을 꿇게 하였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복음은 파워 즉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파워입니다. 구원하는 능력, 의롭다하는 능력, 거룩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오로지 복음이 여러분의 삶을 지배하는 복된 한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