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고난 속에서 빛난다 (창 44:1-17)

야곱의 아들들은 애굽 총리의 성대한 오찬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이런 일이 흔히 있는 일이 아니겠지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거나 대학에 수석으로 입학을 하거나, 뭔가 특별한 일을 한 사람들이 청와대 만찬에 초대를 받습니다. 그러니까 야곱의 아들들이 애굽에 양식을 사러 갔다가 총리가 베푸는 오찬에 초대받은 것은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사실 이들이 그런 영예를 받을 만한 무슨 일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난번에 왔다가 간첩 혐의를 받고 형제들 중 시므온이 인질로 잡히는 끔찍했던 일을 겪었던 것에 비하면, 상황이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억울하게 누명을 씌우고 감옥살이까지 시킨 것에 대한 보상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간첩 혐의도 벗고, 감옥에 갇혔던 시므온도 풀려나고, 양식도 사서 집에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 여행의 핵심 인물은 막내 동생 베냐민이었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베냐민을 데려오지 않으면 간첩 혐의를 벗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반면에 아버지 야곱은 무슨 일이 있어도 베냐민은 보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베냐민이 가지 않으면 감옥에 갇힌 시므온을 구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집에 있는 온 식구가 굶주림을 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야곱에게는 베냐민이 자기 생명과도 같아서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 두려워 보내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20년 전에 사랑하던 아들 요셉을 밖에 내보냈다가 잃어버린 끔찍한 일을 당했기 때문에, 두 번 다시 그런 비극을 겪지 않으려고 극도로 방어적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온 가족이 굶주리고 있고 또 아들들이 간곡히 설득한 끝에, 야곱은 베냐민을 보내는 데 동의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곱의 아들들은 이 여행에서 베냐민에게 행여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조심에 조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총리의 오찬에 초대되었을 때 총리가 유독 베냐민에게 관심을 보였습니다. 좋은 일일까요? 아니면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징조일까요? 고맙기는 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과도한 환대가 오히려 부담스럽기만 합니다. 그냥 양식이나 가지고 집에 가도록 보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쨌든 야곱의 아들들은 한순간도 막내 동생 베냐민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바라던 대로 양식을 가지고 집에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동이 트자마자 양식을 챙겨가지고 나귀에 싣고 길을 떠났습니다. 이제 큰일은 다 지나갔고, 여행만 안전하게 마치면 될 것입니다. 집에 도착하기까지 베냐민에게 아무런 일이 생기지만 않으면 미션이 성공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마치고 집에 가는 것만 남겨둔 마음처럼 가벼운 것이 또 있을까요? 장기간 출타했다가 집에 돌아오신 분들 계시지요? 집에 돌아가려고 하는데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됩니다. 몇 년 전에 제 아내가 한국에 갔다가 한 20일 만에 장인을 모시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저도 아내가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비행기가 출발하고 몇 시간이 지나서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있어야 할 사람이 전화를 하니 이상하지 않아요? 여권을 안 가져가서 비행기를 못 탔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그런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저도 지난번에 호주 갈 때 여권 안 가져가서 여러 사람 고생시킨 적이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누가 여권 안 가져갔다 해도 무조건 이해가 됩니다. 나는 절대로 그러지 않을 거라고 자신하는 것이 참 부질없는 일이더군요.

아내가 비행기를 못 탔다고 하니 얼마나 맥이 빠지는지, 그 다음 날 비행기로 온다고 하는데도 그 하루가 무척 길게 느껴지더군요. 집에 간다고 공항까지 갔다가 비행기를 못 탄 아내는 얼마나 더 허탈했겠어요?

야곱의 아들들이 모든 일을 무사히 마치고 집에 가는 것만 남겨두고 있는데, 마음이 가볍기도 하지만 또 혹시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조심스럽기도 했을 것입니다. 양식을 나귀에 싣고 성을 떠나서 얼마 가지 않았는데, 뒤에서 누가 급하게 쫓아왔습니다. 보니 애굽 총리의 청지기입니다. 말하자면 총리의 비서실장쯤 되는 사람이지요. 다 끝나고 더 이상 볼 일이 없을 것 같은데 왜 쫓아왔을까요? 좋은 일일까요? 나쁜 일일까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더 이상 일이 생기지 않고 빨리 집에 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요.

그런데 뒤쫓아 온 청지기의 표정을 보니 좋은 일 같지가 않습니다. 청지기가 냅다 호통을 칩니다. ‘이 배은망덕한 놈들아! 감히 총리님의 은잔을 훔치다니, 그러고도 살기를 바랐더냐?’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총리의 은잔을 훔치다니요? 그러고 보니 어제 오찬 때 총리가 마시던 은잔이 생각났습니다. 청지기는 총리가 그 은잔으로 점을 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당시 애굽 사람들의 풍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잔에다 물을 따르거나 또는 잔의 물을 쟁반 같은 데 떨어뜨려서 물의 모양을 보고 점을 쳤다고 합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요셉이 그런 미신적인 점술을 행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요셉이 그렇게 말하도록 시킨 것은 그 은잔이 그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물건이라는 것과, 애굽의 총리가 당연히 그렇게 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믿음으로 자신을 위장하는 것이지요.

그 말을 들은 야곱의 아들들은 기가 막혔습니다. 집에 가는 일만 남겨두고 있는데 골치 아픈 일에 말려들게 생겼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은잔을 훔치지 않았고, 자신들의 결백에 대한 확신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 있게 대답을 합니다.

우리는 절대로 은잔을 훔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런 나쁜 사람들이 아닙니다. 지난번에 우리 곡식 자루에 돈이 들어 있어서 그것도 다시 가져왔지 않습니까? 우리가 무엇 때문에 총리님의 물건을 훔치겠습니까? 원하신다면 우리 짐을 뒤져보십시오. 만약에 우리에게서 그 은잔이 발견된다면, 그것을 훔친 사람은 죽을 것이고, 나머지 다른 사람들은 총리님의 종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모두가 양식 자루를 내려놓고 풀었습니다. 요셉의 명을 받은 청지기는 일부러 나이 많은 사람부터 차례대로 짐을 조사합니다. 첫 번째 짐을 풀었더니 웬걸 곡식 자루에서 또 돈이 나왔습니다. 모두들 가슴이 철렁했을 것입니다. 돈 나온 것만 가지고도 도둑의 혐의를 뒤집어쓸 수 있는 일 아닙니까? 그런데 청지기는 돈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열 명의 짐을 뒤졌지만 모든 곡식 자루에서 돈만 나왔을 뿐, 은잔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베냐민의 짐을 조사할 차례입니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지켜봅니다. 열 명의 짐을 조사했지만 은잔이 나오지 않았는데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돈이야 돌려주면 되고 빨리 끝내고 집에 갈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아, 그런데 베냐민의 곡식 자루를 여는 순간 모두들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청지기가 말하던 총리의 은잔이 거기서 나온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옷을 찢습니다. 왜 그것이 하필이면 베냐민의 자루에 들어 있단 말입니까? 큰아들 르우벤은 베냐민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자기 두 아들을 죽이라고 아버지에게 말했었습니다. 유다는 평생 아버지에게 죄인으로 살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런 극단적인 약속을 한 것은 그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다 끝나고 집에 가는 일만 남아 있었는데, 가장 염려하던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총리가 유난히 베냐민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가까이 하더니, 그것이 안 좋은 징조였던 모양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옷을 찢고 가슴을 치면서 짐을 다시 싸서 성으로 돌아왔습니다.

총리 공관으로 갔더니 총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총리가 무섭게 꾸짖습니다. ‘너희가 어찌 이런 일을 하였느냐? 내가 점 잘 치는 것을 몰랐던 모양이구나. 너희가 나를 속이고 내 물건을 훔쳐 가면 내가 모를 줄 알았더냐?’

유다가 나서서 총리에게 대답합니다.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어떻게 우리의 정직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적발하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종이 되겠나이다.’

이 유다의 대답이 이 에피소드의 핵심입니다. 바로 이 대답을 듣기 위해서 요셉은 이 일을 꾸민 것입니다. 요셉은 이미 형들의 진실성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20년 전에 동생을 죽이려다가 노예로 팔아버린 일을 깊이 후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 형들을 만난 것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막내 동생 베냐민이 위험에 처했을 때, 형들은 과연 베냐민을 구하기 위해 자기들의 목숨이라도 내놓을 것인지, 아니면 베냐민을 버리고 자기들만 살겠다고 줄행랑을 칠 것인지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냐민의 곡식 자루에 은잔을 넣었고, 베냐민을 범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요셉과 청지기가 반복해서 하는 말은 범인에게만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죄가 없으니 집에 가도 된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정말 죄가 없습니다. 베냐민의 자루에서 총리의 은잔이 나온 것은 자기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철없는 베냐민이 정말로 그것을 훔쳤는지는 모르겠지만, 또 그런 것 같지도 않습니다. 왜 자루마다 돈이 들어 있는지도 모르겠고, 누군가가 돈을 넣으면서 실수로든 고의로든 은잔도 넣은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런 추측이나 변명이 통할 리가 없습니다. 자기들은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양식을 사러 온 외국인이고, 이곳 애굽은 막대한 양식으로 세계를 지배하게 된 대제국입니다. 힘없는 외국인이 대제국의 총리를 상대로 싸움을 하겠습니까? 재판을 하겠습니까? 그저 당하는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막내 동생 베냐민이 안 됐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베냐민 때문에 자기들의 인생을 포기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집에 가면 처자식이 있습니다. 여기서 애굽 총리의 종으로 평생을 살게 된다면 처자식을 다시 만날 수도 없습니다. 굶주리는 처자식 먹여 살리겠다고 여기까지 왔다가 도리어 가족과 영영 이별을 하게 될 판입니다. 여기서 이 야곱의 아들들은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요?

20년 전의 야곱의 아들들 같으면 두 말할 필요 없이 베냐민을 버려두고 집으로 갔을 것입니다. 살려달라고 울부짖던 동생도 노예로 팔았는데, 거꾸로 동생 때문에 자기들이 노예가 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형들은 요셉에게 행한 악행을 뉘우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비슷한 상황에서 이번에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요셉으로서는 그것이 알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의 놀라운 대답을 보십시오. 유다는 자기들이 총리의 은잔을 훔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압니다. 설명하고 증명할 방법은 없지만 베냐민이 결백하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자기들의 죄악을 적발하셨다고 말합니다. 은잔을 훔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무슨 죄악을 적발하셨다는 걸까요? 왜 베냐민의 잘못이 아니라 자기들의 죄악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유다는 20년 동안 숨겨왔던 죄악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동생을 노예로 팔아버린 죄악을 그들은 지금까지 잘 숨겨왔고 아무런 벌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죄악이었습니다. 그대로 잊혀졌으면 좋겠습니다. 2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고, 그렇게 잊혀지고 묻혀져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죄악은 그들의 가슴 속에 언제나 살아 있었습니다. 무엇으로도 그들의 가슴 속에서 그 죄악을 도려낼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지만, 그들은 늘 숨어 사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베냐민이 은잔을 훔친 범인으로 지목되었을 때, 그들은 이것이 20년 전의 죄악을 벌하시는 하나님의 행동이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형제들이 범인으로 지목된 막내 동생과 운명을 같이 하겠다는 것입니다.

집에 가는 일만 남았던 야곱의 아들들에게 갑자기 들이닥친 시련은 너무나 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가 막힌 상황에서 그들의 진면목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들이 요셉에게 행한 죄악을 얼마나 뉘우치고 있는지, 막내 동생 베냐민을 그들이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는지, 늙으신 아버지의 안위를 얼마나 염려하고 있는지, 그들의 진심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이 정말 보고 싶었던 모습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20년의 세월이 야곱의 아들들을 이렇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자기들이 저지른 죄악이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가져왔는지, 아버지의 슬픔과 고통을 목격하면서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참회의 세월을 살았기에 이런 변화가 일어난 것 아니겠습니까? 요셉이 보고 싶었던 변화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변화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못된 야곱의 아들들과 같았습니다. 이기적이고 교만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른 지금은 어떻습니까?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세월은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했습니다. 늙고 병들고 약해지는 면에서는 세월이 우리에게 불리한 것이지만, 인격이 성숙하고 믿음이 성장하는 데는 세월이 우리 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께서 오래 기다리시며 우리에게 시련도 주시고 테스트도 하시는 것은 이런 변화를 보고 싶어하시기 때문입니다. 형들의 변화를 보고 요셉은 얼마나 기뻤을까요? 우리가 성장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은 한없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저 역시 목사로서 여러분의 변화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것이 저의 보람이고 제가 목사로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저를 비롯해서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입혀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