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이 경박한 시대에 다시 읽는 어거스틴(1): “왜 어거스틴인가?”

 

「基督敎 世界」에 실린 글

 


        <영혼의 깊이가 담긴 문학이 단절된 시대>

        얼마 전 강원도 신림에서 교역자 수련회를 마친 후 원주에 있는 박경리 선생의 「토지문학공원」에 들린 적이 있다. 원작을 읽어 본 적은 없지만 TV 드라마나 신문지상을 통하여 노벨 문학상감이라는 칭송을 자자히 들어온 터라 몹시 기대가 되었다. 토지 문화관도 볼만했지만 선생이 몸소 채마밭을 가꾸면서 『토지』의 제 4부와 5부를 집필했다는 옛집이 인상 깊었다. 집안에는 선생이 글을 쓰시던 향취를 그대로 느끼게 해주는 가구나 집필도구 등이 가지런히 보관되어 있었는데, 『토지』의 육필 원고를 보는 순간 가슴이 찡했다. 장장 26년간에 걸쳐서 완성된 5부 16권 분량의, 원고지만으로도 3만 매가 넘는다는 『토지』, 현대 한국문단에서 가장 빼어난 수작 중에 수작으로 평가받는『토지』가 컴퓨터가 아닌, 한 가냘픈 여인의 손끝에서부터 나왔다는 사실, 그것이 너무나도 신기했던 것이다! 우리처럼 컴퓨터로 글을 쓰는 사람은 아주 손쉽게 고치고 또 고쳐서 완전무결하게 글을 다듬을 수 있지만 일일이 손으로 글을 써내려간다는 것은 얼마나 힘들고 고달픈 과정이었을까! 이런 상상을 하다 보니 문득 우리 시대가 참을 수 없이 경박하다는 과격한 생각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과학 기술의 눈부신 발달로 말미암아 글쓰기를 비롯한 모든 활동 영역이 과거에 비할 수 없이 편리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깊이는 형편없이 얄팍해지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생각이 결코 나 혼자만의 단견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글쓰기에 있어서만 보더라도 형식적이고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유래 없이 휘황찬란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인간의 혼을 치는 거작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문학계의 중론이 아니던가!


        <경박한 기독교 시대를 살며>

        우리 시대, 특히 한국 사회를 특징짓고 있는 경박함은 모르긴 해도 아마 기독교계가 가장 심하지 않는가 싶다. 먼저 설교만 보더라도 홍수에 마실 물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TV, 인터넷, 설교집 등등을 통하여 이른바 명설교가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남 이야기 할 것 없이 먼저 나 자신의 설교를 비롯하여 인간의 영혼 깊은 곳을 건드리는 설교가 과연 몇 편이나 되는가 생각을 할 때 영 확신이 서지 않는다. 더욱이 남의 설교를 적당히 베껴서 마치 내 것인 냥 위선과 만용을 부리지만 도무지 양심에 가책이 오지 않는다. 전도를 하더라도 하나의 생존 전략이나 교세 불리기에 급급한 나머지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아무개 교회가 무슨 전도 전략을 사용해서 급성장의 효험을 톡톡히 봤더라 하면 내남없이 그걸 배워야 하겠다고 극성이다. 그 열심이야 아름답지만 냉철하게 생각해보면 방법을 몰라서 전도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깊은 성찰 없이 가볍기가 일쑤인 것이다. 교회 정치도 마찬가지이다. 퍼플 컬러 셔츠를 입은 교단의 지도자들에게 절로 존경심을 보내는 목회자나 평신도가 과연 몇이나 될까? 무슨 까닭인지 모르지만 얄팍해 보인다. 아, 경박해 보이기만 한 교계 안팎의 냉엄한 현실을 말로 다해서 무엇하리요! 아아, 이런 말을 하는 나 자신도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얼마나 경박해 보일까! 남을 탓하기 전에 먼저 나 자신부터 꾸짖어야 하리라!


        <진리를 향해 불꽃처럼 타오른 어거스틴의 영혼>

        나는 어거스틴을 읽으면서 무엇보다도 그의 깊이가 마음에 들었다. 모든 허위와 모순으로부터 벗어나 오로지 진리 탐구에 전 생애를 건 그의 불꽃같은 투혼이 아름다웠다. 『고백록』을 몇 번씩 정독하다가 다른 책 100권을 읽느니 차라리 어거스틴의 책 1권을 읽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어거스틴은 자신이 “발전해나가면서 글을 쓰고 글을 쓰면서 발전해 나간 사람”이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수사학을 해서 그런지 그의 글솜씨는 단연 일품이었다. 문학 형식만 그런 것이 아니고 그 내용이 더욱 심오하기 짝이 없었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 어느 것 하나도 가벼이 넘길 수가 없었다. 깊이 음미할수록 새록새록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이제 맛보기로 그의 반짝반짝 빛나는 재치와 지혜, 통찰력을 예시하는 명언 몇 가지를 소개한다.


        “주여, 순결을 주시옵소서! 그러나 지금은 마옵소서!” 젊은 날 우리의 기도가 아니던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한 사람들은 누구나 다 순결해지고 싶은 염원이 왜 없겠는가만은 아직 오감(五感)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아직 아니다!”라고 주저하기 마련이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그렇다. 주님, 늙어서 미모도 기력도 다 쇠해져서 마침내 색욕마저 사라질 때 그제야 순결해지면 안 될까요? 새파란 청춘 시절 우리의 이중적인 자화상인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향해서 살도록 창조하셨으므로 내 마음이 주님 안에서 안식할 때까지는 편안하지 않습니다.” 『고백록』서두에 나오는 유명한 말이다. 이 역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의 진실이 아닌가? 내친 김에 어거스틴의 주옥같은 말들을 더 들어보자. “주님에게서 돌아설 때 넘어지게 되고, 주님을 향해 되돌아설 때 일어나게 되며, 주님 안에 머물 때 든든히 서게 됩니다…믿음으로 나를 불러 주님을 향하게 하시고, 소망으로 나를 들어 주께로 이끌어 올리시며, 사랑으로 나를 주님과 연합하게 하소서”(『독백록』1, 3). “나에게서 주님의 얼굴을 돌리지 마소서. 내가 주님의 얼굴을 봄으로써 육신이 죽게 된다 할지라도 내가 살기 위하여 주님의 얼굴을 뵙고자 합니다”(『고백록』1, 5, 5). “주님은 우리를 가르치고 고쳐주시기 위하여 슬픔으로 때려 상처를 내시며, 영원히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잠시 우리를 죽이십니다”(『고백록』2, 2, 4). “매일매일 나는 ‘주님 안에 있는 삶’을 연기(延期)해가고 있었으나 ‘내 안에서 매일 죽고 있는 나의 죽음’은 연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고백록』6, 11, 20). “오, 주님, 나는 다른 사람의 쇠사슬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의지의 쇠사슬에 묶여 있었습니다. 원수가 내 의지를 지배하여 그것으로 쇠사슬을 만들었고, 나는 그 쇠사슬에 묶여 있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내 의지가 왜곡되어 육욕(libido)이 생겼고, 육욕을 계속 따름으로 버릇(consuetudo)이 생겼으며, 그 버릇을 저항하지 못해 필연(necessitas)이 생겼기 때문입니다”(『고백록』8, 5, 10). “이 세상의 삶에서 나는 사람들이 더 슬퍼하는 일에 대해서는 덜 슬퍼해야 하고, 덜 슬퍼하는 일에 대해서는 더 슬퍼해야 합니다”(『고백록』10, 1, 1). “참다운 행복이란 주님으로부터 오는, 주님을 향한, 그리고 주님을 위한 기쁨이옵니다”(『고백록』10, 22, 32). “오 주님, 태초부터 그렇게도 오래 계셨지만 그렇게도 새로운 ‘아름다움’이 되시는 주님을 나는 너무 늦게 사랑하였습니다. 보시옵소서, 주님은 내 안에 계셨지만 나는 내 밖으로 나와 바깥에서 주님을 찾고 있었습니다”(『고백록』10, 27, 38).


        “제가 여러분을 위한 성직자라는 사실에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앞서지만, 여러분과 함께 있다는 사실에는 위로를 받습니다. 여러분을 위해서는 제 자신이 감독이지만, 여러분과 더불어 있을 때에는 저 역시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일 뿐입니다. 전자는 제가 떠맡고 있는 직능의 이름이지만, 후자는 제가 받은 은총의 이름입니다. 전자는 위험을 뜻하지만, 후자는 구원을 의미합니다”(『Sermon』340, 1). 감독직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새겨들어야 할 명언 중에 명언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이 구절은 가톨릭교회가 바티칸 제 2공의회를 열었을 때 인용된 말로서 유명하다. “의롭고 경건한 삶을 사는 사람은 사랑의 질서를 잘 잡아서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을 사랑하지 않고, 사랑해야 할 것을 반드시 사랑하고, 보다 적게 사랑해야 할 것을 너무 많이 사랑하지 않고(역으로 더 많이 사랑해야 할 것을 덜 사랑하지 않고), 어느 한 편을 더 많이 사랑하거나 덜 사랑해야 할 경우에 똑같이 사랑하지 않고, 동등하게 사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 쪽을 더 사랑하거나 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 어떤 죄인도 그냥 죄인으로서 사랑해서는 안 되고, 모든 사람을 인간으로서 사랑할 때 반드시 하나님 때문에 사랑해야만 한다. 그리고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해야만 한다”(『On Christian Teaching』, I, 27-28). “오 주님, 유일하신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 이 책에서 제가 한 말들 중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에 대해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그 진실을 인정하게 하옵소서. 또한 제가 여기서 한 말들 중에 단지 제 자신으로 말미암은 것에 대해서는 당신과 당신 백성들의 용서를 구하나이다”『The Trinity』XV, 말미의 기도). “이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 대작을 집필하는 나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내가 너무 적게 말했다고 생각하거나 너무 많이 말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용서를 구한다. 그러나 내가 꼭 알맞게 말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나와 함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자”(『The City of God』XXII, 30, 말미).


        유태계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가 자신의 정부(情夫)이자 지적 동반자요 스승이기도 했던 하이데거와, 또다른 실존 철학의 거장 야스퍼스, 두 사람 밑에서 어거스틴에 관하여 박사 학위 논문을 썼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아렌트는 결국 야스퍼스의 지도로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제출한 그녀의 논문 『어거스틴에 있어서 사랑의 개념』(Liebesbegriff bei Augustine, 1929)에서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에 ‘권위’와 ‘이성’이 결정적인데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권위는, 계시의 권위든 성서의 권위이든지 간에, 항상 예비적이고 교육적인 기능을 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이성이 진리를 발견하기에 너무도 약한 까닭에 계시나 성서의 권위에 의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적어도 아렌트가 읽어낸 어거스틴의 사상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교조주의적 성향을 띤 것이 사실이지만 결코 이성을 권위에 복속시킨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어거스틴은 신학함에 있어서 철학함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도 문제가 되어버린” 어거스틴이 기독교로 개종한 다음에도 그 만큼 진리 추구에 대한 강렬한 투혼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 10회에 걸쳐서 어거스틴의 심오한 사상과 실천 목회를 할 수 있으면 쉽게 독자들에게 소개하려고 한다. 내가 이 글을 쓰는 목적이 있다면 경박한 시대에 조금이라도 자신에 대해서 성찰해보고 진리 추구에 대한 열정을 가졌으면 하는 소박한 생각에서이다. 예수님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 32)고 선언하셨는데,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진리 아닌 것에 붙들려 아주 우스꽝스러운 일들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어거스틴이 우리에게 진리에 대한 바른 방향을 지시해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한국 교회가 양적인 성장 일변도에서 벗어나 질적 성숙으로 과감히 방향을 전환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