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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목동 가장 먼저 아기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목동입니다. 당시 목동들은 법정의 증인도 되지 못할 만큼 천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런 목동들에게 가장
먼저 성탄 소식이 알려졌습니다(눅2:10,11). 그들은 가장 기쁜 소식을 가장 처음으로 접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다윗도
누리지 못한 특권을 누렸습니다. 목동들이 얼마나 대단했기에 그런 은총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그들이 아기 예수님을 볼 수 있는 영광을 얻은
것은, 그들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목동들은 은혜 베풀 때에 은혜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는 호적 정리로 어수선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베들레헴으로 호적을 정리하러 다 갔습니다. 목동들의 주인도 집을 떠나서 베들레헴으로 다 갔습니다. 주인이 없기 때문에 목동들은
자기 마음대로 놀 수 있습니다. 쉴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목동들은 자기의 일터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양들을 지키기 위해, 일터를 떠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밤에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냥 천막치고 잘 수도 있었습니다. 놀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동들은 자기 일에 충실했습니다. 목동처럼 자기 직분에, 자기 맡은 일에 충실하고 성실할 때, 예수님을 만나는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우리도
자신이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함으로, 예수님을 만납시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최선을 다하면 성령이신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만나 주십니다. 또한 우리는 성도로서 예배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아기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기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립시다. 아기 예수님이 우리와 항상 함께해주실 것입니다. 둘째, 동방박사 성탄절에 아기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소수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의외의 인물들이 있습니다. 바로 동방박사입니다. 동방박사는 가진 것이
없는 사람도 아닙니다. 병들은 사람들도 아닙니다. 무엇인가가 필요해서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도 아닙니다. 게다가, 동방박사는 이방인입니다. 아기
예수님을 만나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아기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낙타를 타고, 사막 길을 지나옵니다. 아기 예수님을
찾아온 동방박사들에게서 우리가 배울 점은 경배심입니다. 동방박사는『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마 2:2)고 말합니다. 당시 여행길은 매우 위험했습니다. 강도가 들끓고, 자연재해로 죽을 수도 있고, 짐승의 위협을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동방박사는 아기 예수를 경배하기 위해서 먼 길을 온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동방박사는 올 때, 그냥 오지
않았습니다. 아기 예수님을 위해서 세 가지 예물을 가지고 왔습니다(마 2:11). 황금은 예수님이 왕이심을, 유향은 예수님의 신성과
대제사장이심을, 몰약은 예수님의 인성과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을 상징합니다. 이것을 드린 것은 예수님이 왕 중의 왕이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물만 드린 것이 아닙니다. 몸과 마음과 뜻도 드렸습니다. 말구유에 누워 계신 어린 예수님 앞에 그들은 몸을 던져서 엎드렸습니다. 동방박사는
모든 지혜와 체면을 버리고 완전히 낮아졌고, 이를 통해 아기 예수님을 최고로 높여드렸습니다. 과연 우리의 성탄절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주인공이십니까? 성탄절은 아기 예수님께 경배 드리는 날입니다. 아기 예수님께 선물을 드리는 날, 합당한 영광을 돌려 드리는 날입니다. 우리도
각자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귀한 것을 아기 예수님께 올려 드립시다. 동방박사처럼 아기 예수님을 경배합시다. 셋째, 시므온 성탄절을 가장 기다린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창조 때부터 기다리고 기다리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만큼이나 성탄절을 기다린 사람이
있습니다. 죽음까지 연기하면서까지 기다린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시므온입니다. 시므온은 아기 예수님을 보리라는 성령의 약속을 받은 사람입니다.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눅 2:26). 시므온은 그 약속을 붙잡고 기다렸습니다. 어느
때인지도 모르는 체 기다리고 또 기다린 것입니다.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아기 예수님을 보았을 때, 이제는 잠들게 해달라고 했습니다(눅
2:29). 뿐만 아니라,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았습니다(눅 2:28). 그리고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㰡(눅 2:30)라고
찬양합니다. 여기서 시므온이 본 구원의 역사는 이스라엘을 위한 역사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과 이방을 비추는 구원의 빛을 보았다고
했습니다(눅 2:30-32). 기독교는 기다리는 종교입니다. 기도하고, 기다리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기도한 것이 응답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시므온에게 말씀하신 성령님은 우리에게도 말씀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예수님을
기다리며, 예수님께 소망을 두며 살아야 합니다. 눈을 예수님께 맞추면서 살아야 하고, 귀를 예수님의 음성에 기울이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갈 때, 예수님을 만나는 삶을 살아가게 되고, 절망의 환경 속에서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영광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넷째, 안나 안나는 가장 마지막으로 아기 예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안나는 시므온처럼 약속을 받은 것도 아니고, 동방박사처럼 별을 본 것도 아니고,
목자들처럼 천사들이 알려준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아기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까? 안나는 교회를 사랑했습니다(눅 2:37).
성전을 떠나지 않고, 경건한 생활에 힘썼습니다. 금식하고, 기도하며, 성전을 섬겼습니다. 하루 이틀 이렇게 산 것도 아닙니다. 과부가 된지
84년 동안 교회 사랑과 경건 생활에 힘썼습니다(눅 2:36,37). 안나는 과부 된 것을 원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기도하며 섬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에 눈을 돌리지도 않았습니다. 안나는 어떤 외로움이 오고, 어떤 고통이 오고, 어떤 어려움이 와도 항상 하나님 앞에 서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매일 성전에 나오다가 아기 예수님을 만났습니다(눅 2:38). 아기 예수님은 몸 된 성전을 찾는 자들에게 찾아오십니다.
성탄절의 영광이 빛나고 있습니다. 혹시 세상의 현란한 조명에 이끌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기 예수님보다 인간의 재미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성탄절 이브와 성탄절에는 아기 예수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가족과 함께해야 하고,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고통당하는 사람과
함께해야 합니다. 또한 온 가족이 교회에 나와 아기 예수님께 예배해야 합니다. 안나와 같이 경건한 마음으로 거룩한 성탄절을 맞이합시다. 그 어느
때보다 더욱더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2007년도 성탄절을 맞이합시다. 예수님의 탄생은 창세전부터 기다려온 일입니다. 온 피조물이 고대하던 바입니다. 성탄절을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기회로 만들어 봅시다. 예수님의 탄생을 정말로 기뻐하며, 감사하며, 축하는 우리가 됩시다.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땅에는 평화가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