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마음을 치유하라 (3)
돌밭의 마음
예수님께서는 두 번째로 돌밭의 마음을 말씀하십니다.
5절과 6절에 보면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킹 제임스 버전(KJV)에서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어떤 씨는 흙이 얕은 돌짝 밭에 떨어지니,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솟아오르자 시들었으며, 뿌리가 없으므로 말라 버렸고”.
여기에 대한 설명이 20절과 21절에 나옵니다.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성경은 참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돌짝밭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흙이 아주 얇게 덮혀 있었습니다.
겉으로 볼 때에는 그것이 옥토밭인지 돌밭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밭에 씨가 떨어졌습니다. 일단 그 씨는 뿌리를 내리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뿌리가 깊이 내려가질 못하고 돌부리에 딱 걸렸습니다.
한마디로 돌짝 위에 뿌리가 걸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해가 떴습니다.
해가 쨍쨍 내리쬐다 보니까 흙 밑에 있던 돌이 따뜻하게 열을 받기 시작합니다.
당연히 돌 위에 걸쳐 있는 뿌리가 마를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뿌리가 마르니까 잎사귀 역시 타 버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 나 열 받았다’는 말을 합니다.
우리가 열 받게 될 때 어떠한 행동을 합니까?
열 받는 그 순간에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은 잊어버리고 옛사람이 그 사람을 지배하면서 자기 소견대로 행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실족하게 되는 것이지요. 왜 그렇습니까?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돌짝 밭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순간적으로 그 돌짝 밭이 열을 받는 순간 그냥 실족하고 마는 겁니다.
성경은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씨를 뿌렸을
때 싹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야, 될성부른 나무”라고 감탄할지 모르나, 그래서 집사로, 장로로 세울지 모르겠지만 그 마음의 돌짝밭이 정리되지
않았다면 언제든지 실족할 수 밖에 없음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돌밭이라는 것은
우리 마음 가운데 풀리지 않고 남아 있는 응어리같은 마음, 분노의 성을 가르킵니다.
우리 말로 하자면 ‘한(恨)’같은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음속으로는 소리 크게 외치고 싶고, 내가 화났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러한 마음속의 말들을 아무에게도 할 수가 없는 사람들, 또 마음속에 뭐가 들끓어 오르는데도 어느 누구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을 때, 사방을 둘러봐도 나를 지지해주고 믿어주는 사람은 없고 정말 누구에게도, 또 어디에도 소망이 없어 보일 때, 또,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할 때, 너무나 억울한데도 내 심정을 누구에게 토로할 수 없을 때... 이럴 때 우리 마음속에는 폭탄처럼 응어리가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마다 순간순간 이런 것들을 누구에겐가 털어놓고 이야기 하게 되면
마음에 응어리가 생기지 않게 되는데, 이 분노의 앙금이 오랜 세월에 걸쳐서 터져 나오지 못하고 쌓여있게 되면 이 감정이 돌짝밭으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들이 우리 마음 가운데 자리잡고 있을 때 그것이 뇌관이 되어 우리의 마음을 옛사람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 돌밭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
그렇다면 이러한 돌밭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어떠한 특징을 나타내게 될까요?
(1) 그 마음에
비수가 있습니다.
돌밭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가끔 가끔 내뱉는 말이 비수가 되어 상대방의 가슴에 꽂히는 수가 많습니다.
별 생각없이 툭 던진 말 한마디가 상대방의 마음을 흔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내가 별일도 아닌 일로 살짝 감정을 흔들면 남편은 순간적으로 열을 받으면서 그 입에서 독을 내 뿜는 것입니다. ‘아차!’ 해보지만 이미 쏟아진 물입니다.
그 마음의 비수는 자신의 의식세계로는 통제가 되지 않습니다.
돌밭은 의식적으로 통제가 되지 않는 사단이 거주하는 성(城)이나 다름없습니다.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흥분하면서 독 묻은 화살을 내 뿜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럴 때 상대방의 마음 가운데는 아물 수 없는 상처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2) 그 마음
속을 알 수가 없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너무나도 믿음 좋은 사람입니다.
평상시에 보면 참으로 자상하고 인정이 많으며 어디 내어놓아도 좋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 가운데 돌짝밭이 있다는 것은 알지 못합니다.
가끔 한번씩 그 돌짝밭이 겉으로 드러날 때마다 당황하기도 하지만 어느 것이 그 사람의 진짜 마음인지 헷갈리게 됩니다.
해가 나자 뿌리가 타져서 말라버렸다는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환난날에 그 실체가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환난 날이 아니면 그 실체를 알 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햇빛이 나왔다는 것은 고난이나 환난, 핍박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고난이나 환난이 신앙 인격의 단련을 위해 하나님이 주실 수도 있지만 상당수는 스스로 만든 고난, 환난일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의 깊이가 얇다보니까,
신앙 인격이 경박하다 보니까 그 실체가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제자였지만 후에 세상으로 다시 돌아간 데마(골 4:14, 딤후 4:10, 몬 1:24)나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좇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근심하면서 돌아간 부자 청년(마 19:16-22)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결국 평상시에는 알
수 없지만 뭔가 그 사람에게 사건이 다가 왔을 때 그 마음 속 진실을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돌밭의 마음이 갖는 특징 중의 하나입니다.
(3) 옛사람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돌밭의 마음이 갖는 또 하나의 특징은 옛사람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단지 신앙이라는 가면으로 덮여져 있을 뿐입니다.
성도들 가운데 평상시에는 그렇게 믿음 좋은 것 같은데,
집사이고 장로이기도 한데 어떤 모임이나 회의, 일을 할 때 보면 순간순간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모습들이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말하는 투나 행동이 너무너무 세상적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혈기를 부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에게 옛사람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저 주일마다 교회 나오고 기도하며 헌금하는 것으로 그 옛사람을
덮고 있을 뿐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었으면 믿는 순간부터 뭔가 달라지기 시작해야만 합니다.
옛사람을 하나씩 벗어버리고 조금씩 조금씩 새사람으로 변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돌밭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 옛사람을 버리지 못합니다.
너무나도 크게 마음속을 짓누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다가 신앙의 모습이라는 회칠을 덧입혀 놓으니까 가끔은 착각하고 살아갑니다.
나는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분명히 거듭난 사람이라고 말할지 모르나 그 속사람은 전혀 거듭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까지도 하나님 앞에서 버릴 것이 많으나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 앞에서 열매를 맺는 것처럼, 뿌리가 내리는 것처럼 보이나 깊이가 없을 수 밖에 없습니다.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되 겉모습만으로 믿으니 진정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어찌 기쁨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까?
내면으로부터 우러나는 진정한 평화가 어찌 그 마음 가운데 깃들 수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4) 신앙의
깊이가 없습니다.
돌밭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또 하나의 특징은 신앙의 깊이가 없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이미 옛사람이 남아 있다는 특징에서 잠깐 설명한 바도 있지만 신앙의
깊이가 엷다보니까 그 사람에게서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질 않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돌밭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언뜻보면 좋은 흙이 있는 옥토와 같이 보입니다.
분명히 복음을 듣다가 보면 반짝하는 신앙도 있습니다.
설교들을 때 고개를 끄떡이고 재빨리 받아들여서 은혜를 받는 것도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결심도 하고 생활에 적응하는 듯도 싶습니다.
그런데 그 깊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뿌리를 내리려고 해도 바위가 있어서 더 이상 뿌리가 내려지지 않으니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환난 날에 실족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 닥치면 주저앉게 되는 것입니다.
● 돌밭의 마음이 갖는 문제
(1) 순간적으로
실족하게 됩니다.
돌밭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 마음 가운데 풀리지 않는 응어리가 있습니다.
그 응어리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과 같습니다.
평상시에는 그렇지 않다가도 어느 한순간에 상처가 있던 부분이나 응어리진 그 부분을 콕 찌르면 순간적으로 분노가 폭발하고야 맙니다.
그 분노의 폭발은 자기 자신도 자제하지 못합니다.
결국은 그러한 순간적인 감정 폭발로 자신도 후회하게 됩니다.
그럴 때 또 동굴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학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돌밭의 마음을 가진 사람을 가리켜 ‘예측 불가능의
사람’이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2) 상대방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줍니다.
돌밭의 마음이 우리 마음에 자리 잡게 되면 그 때부터는 그 사람은 갑자기 물불 안가리고 화를 내기도 하고, 화만 나면 정신 못 차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점잖고 말이 없던 사람이 화내는 것을 보면 무섭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항상 굳어 있습니다.
상대방이 예측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갑자기 공격을 당할 때 그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특별히 이렇게 돌밭의 마음이 가득한 사람들이 주로 분노의 감정을 폭발하는 대상이 배우자나 자녀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만약에 어떤 남편이 만약 이런 돌밭의 마음을 가졌다고 칩시다.
아내나 자녀들이 볼 때 별로 그렇게 화 낼 일도 아닌데, 그전에는 똑같은 일 가지고도 별 말이 없었는데 오늘은 너무나 화를 크게 내니까 당황을 하게 되고 그 아내나 자녀들의 마음속에도 남편이나 아빠를 향한 분노의 마음이 또다시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아빠를 둔 가정의 자녀들이 어떻게 될까요? 이 가정의 아내,
그 마음 속이 어떠할까요?
당연히 그러한 속마음을 아무에게도 털어 놓지도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게 될 것입니다.
결코 하나가 되지 못한 부부의 모습,
항상 멀리 도망가려는 자녀의 모습을 이 가정에서 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부간에 무슨 의욕이 있겠습니까?
성욕도 제대로 발동할 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풍성한 부부의 삶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저 교회 나오고 바람피우지 않고 살아가주는 것만 해도 감사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평생 가슴에 한을 안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적치유 사례 중에 이러한 것이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장학생이고 교회에서도 오르간 반주를 하는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토요일 오후 청년집회가 끝났는데도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고
교회에서 계속 어슬렁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매는 왜 집에 가지 않냐고 물었더니 이 여학생이 자기는 집에 들어가기가 싫다고 그러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안 사실은 이 자매가 아버지만 보면 몸에서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은 증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에 들어가기 싫다는 것입니다.
언제부터 그런 것이 있었는지 물어 봤더니 중3때부터
그랬다는 것입니다.
중3때 아버지가 바람을 피셨는데 그때 이 자매가 맹장 수술을 해서
병원에 입원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입원해 있는 병원에 아버지가 젊은 애인을 데리고 병문안을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와
그 여자가 병실을 딱 들어오는 그 순간에 자기 가슴에서 뭐가 확 무너지더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 아버지만 보면
더럽고 막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은 그런 증상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중3때 그랬으니까 대학 1학년까지 4년 동안 그런 증세를 가지고 살아 온 것입니다.
그런데 겉으로 보면 멀쩡하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그런 얼굴을 가지고
있는데도 속으로는 응어리진 마음, 아버지로 인해 엄청나게 파괴된 돌밭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온 것입니다.
이 자매를 치유해 주었다고
마음먹은 이 상담자는 자매에게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아버지라고 생각해라!”하면서 “용서해 줄래?” 그랬더니 그 자매가 막 발악을 하면서 “안돼! 안돼!”하면서 떼굴떼굴 구르는 것이었습니다.
평소에 말이 별로 없던 그 자매가 30분 정도를 악을 쓰면서 비명을 지르는데, 어느 순간에 뱃속에서 뭐가 막 딸려 나오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퍼 부어대는 것이었습니다.
30분 쯤 후에 이 상담자가 다시 진지하게 “얘야! 내가 너무 외롭고 쓸쓸해서 외도를 했는데 정말 너무 미안하다. 용서좀 해 주지
않겠니?” 그랬더니 “한번 노력해 보겠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지 일주일후에 다시 만났는데
이 자매의 얼굴이 완전히 달라졌고 옷도 새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한눈에 봐도 분명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이유를 알고 보니, 치유를 받고 난 그날 집에 들어갔는데 아버지를 봐도 더럽다는 생각이 안 들고, 벌레 기어가는 느낌도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대화도 않던 이 자매가 아버지와 많은 이야기를 했더니 아버지가 기분이 좋아서 옷도 사주고 용돈도 듬뿍 주더라는 것입니다.
또 200만원이 넘는 오르간도 사주기로 약속 했다는 것입니다.
이 자매에게는 바로 아버지에 대한 좋지 않았던 감정이 응어리로
변하여 엄청난 바윗덩어리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3) 여러 가지
병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미국의 신경정신의학자 중에 ‘엘마 케이츠’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사람들이 분노할 때 호흡 중에서 내쉬는 숨을 유리관에 받아서 영하 250도로 급속냉각 시켜서 액체공기로 변화가 된 침전물을 받았습니다.
이 침전물은 일종의 코르티솔이라는 독소라고 그럽니다.
그런데 그 침전물의 결과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1)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사람의 숨을 받아서 냉각했더니 그
침전물의 색깔은 갈색이었습니다.
2) 고통과 비애와 탄식과 원통함으로 가슴을 치는 사람의 숨을 받아서 냉각했더니 그 침전물은
회색이었습니다.
3) 지난 날의 잘못을 후회하고 탄식하며 자신을 저주하는 사람의 숨을 냉각했더니 그 침전물은 분홍색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침전물들, 다시말하면 코르티솔 독소들을 다시
물에 녹여서 그 물을 쥐에게 주사했더니 그 쥐들이 30초 정도가 지나자 모두 힘이 빠져 바닥에 축 늘어 졌구요, 1분 정도가 지나자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5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모두 죽더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시기할 때, 탄식하고, 분노하고 질투할 때, 자신을 저주할 때, 악을 행할 때 무서운 독소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 독소는 남을 죽이기 전에 먼저 자신을 죽이고 마침내 다른
사람들도 죽인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이 연구를 했던 ‘엘마 케이츠’ 박사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한 사람이 조그마한 방속에서 한 시간 동안 혼자 계속해서 분노를 터뜨리고,
사람을 미워하고, 화를 내면 적어도 80명 정도는 해칠 수 있는
독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보면 잠언 14장 30절에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잠언 17장 22절에도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고 강조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우리 마음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돌밭의 마음은 분노를
일으키고 급기야는 육신의 병을 몰고 오는 주된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욕심을 품게되면 남하고 비교하게 되고, 그 결과 스트레스의 심리적
반응으로 생길 수 있는 것들, 다시말해서 시기, 미움, 질투, 원망, 분노 같은 마음이 싹트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스트레스는 코르티솔이라는 독소를 만들고 그 독소는 우리의
몸을 해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까 여러 가지 질병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어떤 이들은 불안신경증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괜히 불안해집니다.
아무런 뭐가 없는데 마음속이 괜히 불안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동반되는 것이 바로 우울증입니다. 괜히 기분이 안
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유도 없는 죄책감으로 시달리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상한 공포증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러한 증상들은 가끔 세균 공포증이라든가 무엇을 무서워해서 손을 유별나게 닦는다든가하는 증상으로 발전될 수도 있습니다.
정신적인 이유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마음속에 한을 가진 사람들에게서도 이런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손을 괜히 닦는다든지 하는 행동을 보이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상담을 했던 한 형제는 하루에도 70-80번 이상 손을 씻는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물건을 만진다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의 손만 잡아도 바로 손을
씻지 아니하면 불안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거식증이나 대식증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만 하면 아무 음식도 먹지 못하고 다 토해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거식증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화만 나면 솥단지 채 놓고 막 퍼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식증입니다. 마음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가끔은 ‘쇼핑중독증’으로 나타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저 어떠한 물건이라도 사야 마음의 안정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쓸모없는 물건들을 주체할 수 없이 막 사댄다는 점입니다.
장롱 속에 물건들을 막 집어 놓으면서 또 물건을 사러 갑니다.
카드 값이 엄청나게 나오는데도,
그래서 부부간에 불화가 있음에도 또 절제하지 못하고 쇼핑하러 나갑니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쇼핑이 마음속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분노나 스트레스의
탈출구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불면증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잡을 자지 못하는 것입니다.
수면제를 아무리 먹어도 그 분노나 가슴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응어리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하는 것입니다.
가끔은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수도 있지만 만성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또 관절염같은 직접적인 육체의 질병으로 진전될 수도 있습니다.
상담사례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안양에 사는 최 집사님 이야기입니다.
최집사는 시아버지가 계시지 않은 집에 맏며느리로 시집을 갔습니다.
결혼할 때 이 집안의 상황은 너무나도 어려웠습니다.
조그마한 가게를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남편이 하고 있었는데, 결혼을 하면서는 이 아내가 도맡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전까지만 해도 힘든 일이라고는 해 본적이 없던 이 아내는 그저 남편을 위해, 가족을 위해 새벽6시부터 밤12시, 1시까지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일만 했습니다.
그러면서 밑에 있는 동생들도 둘이나 결혼을 시켰습니다.
그게 얼마나 힘들고 아픈 삶이었겠습니까?
그런데 남편과 시어머니는 그것을 몰라주는 것이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이 며느리의 고생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을 했고,
더 가관인 것은 며느리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날 정도였습니다.
이 며느리를 며느리로 인정을 안 해주는 것입니다.
꼭 집안에 일꾼 한 사람, 아니 몸종 한 사람 들인 것 같은 대우를 한겁니다.
그러니 이 며느리가 응어리가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어머니한테 맺혀진 이 응어리는 남편이 풀어 주어야 하는데 남편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이 남편은 말도 못하게 하고 입을 막아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효자라고 소문난 이 남편은 아내보다는 무조건 어머니 위주의 삶을 살아간 것입니다.
가끔은 어머니 미안하다고 어머니하고 잠을 함께 잘 때도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집안에서 부부의 웃음소리는 전혀 내지도 못하고 살아 왔습니다.
결혼 25년 동안에 외식한번도 못하고 여행한번도 못하는 그렇게도
힘든 삶을 살아 온 것입니다. 어찌 가슴에 맺힌 것이 없겠습니까?
이렇게 가슴속에 무엇인가 맺히면, 속에 있는 말을 다하지 못하고
살아가면 반드시 몸으로 말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치유 사례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순둥이요, 순종만 하는 여자로 알았던 최집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몸이 말을 듣지 않게 되더니 결국은 관절염으로 인한 하반신불수로 나타나게 됩니다.
온 몸이 꼼짝도 못할 정도가 되었는데도 약으로 치료가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별 수단을 다 동원해도 치료가 안되고,
나중에는 똥․오줌까지도 받아내야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
최집사를 심방하러 갔습니다. 한마디로 얼굴이 백짓장이었습니다.
마치 2-3일안에 죽을 목숨같이 보였습니다.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했습니다.
험한 인상에다가 얼굴에 내 천(川)자가 가득했던 것입니다.
너무나도 어두운 얼굴을 보니 무서울 정도였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최집사님에게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집사님. 집사님 마음 가운데 있는 이 감정의 응어리가 풀리지 않고서는 이 병도 낫지 않을 뿐 아니라 생명도 위험하게 될 것입니다.
시어머니도 용서하시고 남편도 용서하세요.”
그랬더니 최집사님이 하는 말이 “목사님, 저한테 그런 이야기 하지 마세요. 나요, 지옥 가는
한이 있더라도 저 웬수들 절대 용서못해요.
차라리 내가 지옥 가는게 편해요. 목사님. 죄송한데요, 나 죽더라도 저 두 사람 반드시 복수할 거예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최집사에게 다시 “그래도 용서해야죠, 집사님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용서하세요”라고 말했더니 “목사님, 나 그냥 내버려 두세요. 더 이상 제 마음을 돌릴려고 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냥 기도만 해주고 돌아 왔습니다.
그 다음 날 이 최집사의 남편인 이집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집사님.
병원에서도 치료하지 못한다면서요..... 그런데 내 경험으로는 최집사님의 경우, 병으로만 치료가 되는 것이 아니구요, 우선 마음이 치유되어야
약도 효과가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자, 어떻게 하시겠어요? 최집사 병을 고쳐 볼까요? 아니면 그만둘까요?”
“무슨 수단이든지 동원해서
병을 고쳐야죠.”
“이 집사님. 아내가 왜 저런 병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하세요?”
“글쎄요. 아이들이 속 썩여서 그렇겠지요.”
“아이들 문제만 있을까요? 다른 문제는 없을까요?”
자신의 문제를 바라보지 못하는 남편에게 결국은 남편 자신과
시어머니의 문제로 인해 아내가 이런 병이 생겨나게 되었노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최 집사를 살리고 싶으세요?”
“네. 어떻게 하면
될까요?”
“당신 아내 생명은 당신 손에 달려 있습니다. 가슴에 한이 맺혀서 응어리가 져 있는데 이 바윗덩어리를 당신이 깨 주질 못하면
저 생명은 오래 못 갑니다.”
여러분! 바로 이 남편은 아내의 말을 못하게 막아 버림으로써 이 아내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전혀 이해해주지 않았던 그 마음이 아내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런 말을 하니까 그때서야 이 남편이 자신의 문제를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결자해지의 자세로 아내의 마음 가운데 응어리져 있는 그 마음을 남편이 다 들어주면서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즉, “한 마디도 트집잡지 말고 변명도 하지 말고 해명하려고
그러지도 말고 당신이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그러면서 아내의 말을 끝까지 다 들어주라”고 권하였던 것입니다.
그 날부터 남편은
아내를 위한 치유 작업에 들어 갔습니다.
당장 그날, 퇴근을 한 뒤에 아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당신, 그동안 너무 힘들었지? 당신 가슴에 맺힌 게 뭐야? 다 이야기 해봐! 내가 다 들어줄께!” 아내 최집사는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면서 남편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남편의 거듭되는 간곡한 말에 마음 문이 열렸는지 그 25년 동안 맺혔던 이야기를 전부 다 쏟아 놓기
시작을 했습니다.
새벽까지 해도 부족해서 그 다음날 또 이야기를 시작하면 3시간,
4시간 끊임없이 억울하고 분한 이야기를 쏟아 놓는데, 이 이야기를 무려 3주 동안이나 계속 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내의 말을 남편이
들어주기 시작한 지 한달쯤 후의 일입니다.
며느리가 병이 든 이후로 시어머니도 풀이 죽어 있었습니다. 구박할 며느리, 데리고 놀 며느리가 없어지니까 시어머니도 함께 풀이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
마루에 퍼져 앉아 멍하니 앉아있던 시어머니 모습이 보이자,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 어머니, 나 지금까지 어머니 미워했는데요, 나 용서하시고요, 나 아파 죽겠으니까 기도좀 해 주세요.”
처음에는 시어머니도 머뭇머뭇했다고 합니다.
상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앞에까지 이 며느리가 기어가서 시어머니 붙들고 이야기를 다시
했답니다.
“어머니, 제가 잘못했어요. 어머니, 제가 잘못했어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사랑도 못했던 저를 용서해 주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시어머니가 한참 며느리를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을 하더랍니다.
“아가야, 무슨 소리냐? 내가 너를 미워했지.. 어떻게
네가 나를 미워했단 말이냐......”하면서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끌어안고 기도를 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거의 한 시간이 넘도록 눈물 콧물 흘려가며 마음을 다해, 정성을 다해 시어머니인 권사님이 기도를 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고부간에 놀라운 화합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대 변화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일이 있고나서 채 보름도 못 가서 최집사의
건강이 회복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돌밭같은 바윗덩어리를 그냥 마음에 두어 가지고는 무엇이든지 제대로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바윗덩어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정상적인 부부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건강에도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사회 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있겠습니까? 대인관계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일대일의 건강한 관계가 아니라 병적인 관계로 맺어지기가 쉬울
것입니다.
● 돌밭의 마음을 치유하려면
혹시 여러분에게 돌밭의 마음이 있습니까?
이런 돌밭의 마음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나에게 어떤 바윗덩어리가 주저앉아 있는지 그 정체를 밝혀낼 필요가 있습니다.
왜 이러한 응어리가 지게 되었는지, 이렇게 한스러운 마음이 얽혀 있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말아내야 합니다. 만약 이유를 알 수 있다면 간단하지만 알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자리잡고 있다면 그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이 마음 가운데 자리잡은 돌밭의 정체를 알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향한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그 마음을 밝히 보여 드릴 것입니다.
그럴 때 나에게 상처 준 사람, 아픔을 준 사람을 용서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나를 묶었던 결박에서 해방될 수가 있습니다.
용서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그저 그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용서를 거부하지 마십시오.
그저 순전하게 마음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면서 내 마음 가운데 어떠한 악한 마음도 자리 잡지 못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의지적으로 결단하십시오.
나에게 상처와 아픔, 그리고 한을 주었던 그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용서한다고 선포하십시오. 오히려 그 사람을 축복한다고 선포하십시오.
진정으로 마음을 다해 그 사람에게 긍휼한 마음으로 다가서서 축복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 사람을 마음으로 풀어 주십시오.
“당신은 나에게 더 이상 빚진 것이 없습니다. 나는 더 이상 당신에게서 받을 것도 없습니다.
편안히 가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평안을
누리십시오.”
마음 가운데 자리잡았던 그 돌밭이 다 사라지고, 그 자리에 옥토가 자리잡기 시작할 때 비로소 우리는 천국의 문으로 들어 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열매맺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웰빙의 가족들의 마음 가운데서 돌밭들이 다 사라짐으로 인해,
그야말로 응어리졌던 바위 덩어리들이 다 사라져 버림으로 인해 참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는 하나님의 자녀들 다 될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추부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