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성령님과의 만남


말 씀 : 고린도후서 13장 13절

 

성령님과 십자가 이후의 성령님과 우리와의 관계에 관해서 말씀을 해드리겠습니다.

1. 구약 시대에는 성령께서는 제사장, 왕, 선지자, 사사 등 특별한 사람에게만 임하심

 

구약시대에는 성령께서는 제사장, 왕, 선지자, 사사 등 특별한 사람에게만 임하셨습니다.


구약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이 언약을 맺은 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만이 하나님의 선민이었습니다. 성령의 역사도 유대인들에게만 임한 것입니다. 유대인들 중에도 보통 사람은 엄감생심 성령을 받으려고 꿈도 꿀 수가 없었습니다. 오직 제사장, 왕, 선지자, 사사 등 특별한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셔서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하나님의 기사와 이적을 가지고 나타나셔서 주의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출애굽기 40장 13절에 보면 “아론에게 거룩한 옷을 입히고 그에게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여 그로 내게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하라”고 하셨고 또한 사무엘상 15장 16절에 보면 하나님이 사무엘을 보내 사울에게 또 다윗에게 기름 부어 왕을 삼았도다. 열왕기상 19장 16절에 보면 하나님은 엘리사에게 기름 부어 선지자 엘리야를 대신하게 하신 것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와 불의, 추악, 저주, 절망, 죽음을 다 대속하시고 부활하신 이후로는 이 복음이 유대인에게만 전파된 것이 아니라 온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은 유대인의 하나님이 아니요, 온 천하 만민의 하나님이요,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의 구주만 되는 것이 아니라 온 천하 만민의 구주가 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온 세계 만민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족속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령도 이제는 유대민족 중에만 임하는 것이 아니라 온 세계 만민에게 임하신 것입니다. 또 만민에게 임하시되 하나님은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을 택하셔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기 때문에 왕에게 임하는 성령, 제사장에게 임하는 성령이 모든 평신도 만민에게 임하게 된 것입니다.


2. 신약 오순절 이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임하심


이러므로 신약 오순절 이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성령이 임하시게 된 것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이 모두다 하나님 앞에서는 왕이요, 제사장이요, 선지자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왕에게만 주던 성령을 우리에게도 주시고 제사장에게 주시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고 선지자에게 주시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의 위치가 이제는 평신도지만 보통 위치가 아닙니다.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보니까 “아~ 진짜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하는 왕이구나! 마귀와 세상과 죄악을 다스리는 왕이구나!” 왕이 아니면 성령이 절대로 안 임해요. 성령이 임하신 것 보니까 내가 왕이구나. 또 성령이 내게 임하신 것 보니까 제사장이구나. 제사장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고 말씀을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말씀을 축복하는 역할을 하는데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나도 제사장이구나.


그 다음 성령이 내게 임한 것 보니까 나도 선지자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다 선지자입니다. 왜냐하면 장차 될 일을 알고 있습니다. 장차 예수님이 강림하실 것 알고 있고 장차 세상이 심판받을 것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선지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왕이요, 제사장이요, 선지자인 것을 알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예수믿고 난 다음 우리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다. 구약에서 유대인들은 꿈도 꾸지 못 할일이 우리 모든 예수 믿는 만민에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만민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이 임하셔서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이요, 선지자로 만들어준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성령이 우리에게 와서 하는 역할을 보면 먼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보혈로 씻음 받으면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확인해 주는 인을 쳐주시는 것입니다. 중생의 영으로 오신 것입니다. 거듭남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5절에 㰡’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㰡“


로마서 8장 16절에 㰡’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㰡“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인 것으로 확증을 해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축이나 노예를 사면 맨 먼저 인두를 달궈 가지고서 치~익하고 인을 칩니다. 사람도 등에 인을 치든지 팔에 인을 치고 짐승은 엉덩이에 인을 칩니다. 그것은 내 소유물이라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집을 사거나 토지를 살 때 등기문서에 인감도장을 찍는 것입니다. 인감도장을 쳐놓으면 이 토지나 집은 내 것이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산 당신의 자녀들에게 성령으로 인을 탁! 치시는 것입니다. 뭐라고 해도 이제는 내 소유물이다. 내 소유물이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중생의 영, 성령이 오셔서 우리 마음속에 인을 쳐서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을 친 증거가 뭡니까? 성령이 인을 쳤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 아버지의 자식이 되었으므로 기도할 때 하나님을 향해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안믿는 사람보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해보십시오. 입 딱 다물고 아무말도 안하지요.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인치심을 받아서 아버지의 소유물이 되었으므로 쉽게 하나님을 향해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된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중생의 영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고 우리에게 인을 치셔서 하나님의 소유물로 확인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인이 쳐지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에게 큰 변화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힘과 능으로 도저히 안 되는 인격적인 변화가 성령이 와서 인을 치면 순식간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 새것이 된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 사랑의 아들 나라로 옮기셨어요. 그 안에서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성령의 역사로 새사람이 되고 마귀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어떤 죄수 한 사람이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40년간이나 교도소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워낙 성격이 포악해서 툭하면 말썽을 일으켜 가죽채찍으로 맞기가 일쑤였습니다. 교도관들은 그를 독방에 넣기도 하고 교육도 시켜 보았지만 전혀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경찰과 교도소도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그런 그가 출소하여 교회에서 하는 어느 숙박시설에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한 그리스도인을 만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듣게 되었는데 그 사람의 말을 따라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지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성령의 역사입니다. 채찍을 때려도 협박을 해도 안되나 성령이 오시니까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쏟아졌어요. 성령이 임하자 지난날의 모든 죄가 떠오르고 하나님 앞에 통회 자복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순간 그는 성령으로 거듭나 완전히 새사람이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후 그는 교회에서 봉사하며 아주 성실하게 살았고 18년 뒤 사람들에게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나는 400번의 가축채찍을 맞아고 40년간의 교도생활을 해도 변화되지 않았지만 성령이 내게 임하자 불과 1분만에 새사람이 되었다.” 성령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는 영인 것입니다. 새사람이 되게 하는 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유물이 되게 하는 영이신 것입니다. 성령을 만나면 그 사람의 인격적인 변화와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고소할드 챔버스는 말하기를 “성령께서 사람을 점령하시고 또 통치하시면 육체에 속한 더러운 속성을 가을 잎사귀처럼 떨어진다.” 가을이 되어서 여러분 나무들이 다 단풍이 들지 않았습니까? 정원에 감나무나 단풍나무에 다 잎사귀에 물이 들면 잎사귀가 자꾸 정원에 떨어지고 아침에 쓸어도 또 잎사귀 떨어지니까 어떤 사람들은 잎사귀를 한꺼번에 떨어뜨리려고 장대를 들고 나무를 때립니다. 잎사귀 떨어지라고 때리면 나무에 가죽만 벗겨지고 가지만 부러지고 때려서 잎사귀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한번 때려 보세요. 떨어지는가. 단풍이 들어도 안 떨어집니다. 그런데 언제 잎사귀 떨어지느냐 밤새 가을비가 오고 난 다음 아침에 일어나 보면 소복히 떨어져 있습니다. 밤에 가을비가 오면 나무에 붙었던 잎사귀가 그냥 안 때려도 소복히 떨어져 있어요. 우리가 우리의 악한 습관, 술먹고 담배피고 음란하고 방탕하고 세속적인 습관을 아무리 떼어 보려고 몸부림을 치고 발버둥을 치고 고행하라고 해도 안되는데 성령의 단비가 임하면 소복히 떨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성령의 단비를 맞으면 세상은 다 떠나가고 죄악의 나뭇잎은 다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회개한 사람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를 새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중생의 영으로 성령이 오시는 것입니다. 이 중생의 영은 오셔서 우리에게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로 23절처럼㰡’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㰡“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 인격적인 열매를 맺게 합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에게 사랑을 가질 수 있도록 기쁨이 없는 사람에게 기쁨이 있도록 화평이 없는 사람에게는 화평을 주고 성격이 급한 사람에게는 오래 참을 수 있도록 자비가 없는 사람은 자비를 주고 선하지 않는 사람은 선한 마음, 충성스럽지 않은 사람에게 충성을, 부드러운 마음 없는 사람 온유한 마음, 절제 못하는 사람 절제하게 성령께서 이러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열매가 아닙니다. 힘쓰고 애쓴다고 이런 열매가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오시면 성령께서 이런 인격적인 변화의 열매를 맺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고 성령 받으면 변화 받는다. 그런 것을 우리가 확신하여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형식적으로 예수를 믿으면 변화가 안와요. 형식적, 의식적으로 그저 주일날 교회 한번 왔다 갔다 하고 난 우리 가정이 다 예수 믿으니 전통적으로 왔다 갔다 한다. 그러면서 종교는 가졌어도 인격적인 변화는 오지 않습니다. 성령이 오지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별 도리없이 인격적인 변화가 다가오게 되고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성령의 열매를 맺을 뿐 아니라 성령 충만한 세례를 받으면 권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에 올라가시기 전에 제자들을 모아 놓으시고 부탁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먼 훗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느니라. 성령이 내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얻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성령이 임하여야 권능을 얻고 증인이 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도저히 내 스스로는 아무런 권능이 없는데 성령이 임하시면 성령이 나에게 권능을 주어서 그래서 증인으로 삼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인으로 구주라는 것을 증거 하는 증인으로 삼아주는 것입니다.

 

감리교의 창설자 요한 웨슬레는 1738년 5월 24일 저녁, 런던 얼더스케이트의 작은 교회에서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당시 그는 영국 국교회의 사제이자 신학교 교수였습니다. 그런데도 한평신도가 마르틴 루터의 로마서 주석서문을 더듬거리며 읽는 것을 듣다가 성령이 임하신 것입니다. 사실 웨슬레는 오랫동안 죄책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이 죄 때문에 구원에 대한 확신과 담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성령이 임하시고 성령충만을 받자 구원의 확신을 얻게 되고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이렇게 일기에 기록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의 모든 죄를 지고 가셨고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웨슬레는 마음속에 성령의 불길이 설레었습니다. 성령의 불길이 설레어서 성령불길에 잡혀서 온 영국 전국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고 감리교 창설자가 된 것입니다. 이 성령의 불이 임하면 우리 마음속에 큰 권능이 임합니다. 믿음의 권능, 기도의 권능, 전도의 권능 그런 확신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믿음에 권능이 없으면 아무 확신이 없습니다. 기도의 권능도 없고 전도의 권능도 없으면 안되잖아요. 그는 권능을 받고 담대하게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목숨을 바쳐서 죽기까지 증인이 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성령세례를 받고 나면 성령께서는 이 증인이 되게 하기 위한 무장을 시켜 주는데 성령에는 아홉 가지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계시의 은사를 주셔서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영분별의 은사가 오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발성의 은사로써 방언의 은사, 방언 통역의 은사, 예언의 은사가 오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권능의 은사로써 믿음의 은사, 병 고치는 은사, 능력행하는 은사가 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고린도전서 12장 8절로 10절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㰡’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㰡“


하나님께서는 성령 충만의 세례를 받으면 권능을 주시고 증거에 힘을 주시는데 거기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 이와같이 아홉가지 은사 중에 특별한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사를 받으면 그것은 내 능력이 아니라 초인적인 기적적인 은사로써 은사가 나타나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미국의 펜사콜라에 집회를 갔을 때 호텔에서 기도할 때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주님 나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바보입니다. 다른 사람처럼 공부도 많이 못하고 다른 사람처럼 학위도 많지 않고 다른 사람이 가진 지위와 명예도 없는 나는 바보입니다. 하나님 나는 그저 그저 바보입니다. 그저그저 바보입니다.” 그렇게 기도를 하는데 내가 너무나 놀란 것은 하나님의 음성이 마음속에 청명하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오냐 네가 바보인줄 나도 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박살이 났습니다. 나는 그래도 내가 겸손해서 바보라고 말을 했는데 하나님이 “오냐 네가 바보인줄 나도 안다”고 그러니까 야 이것 진짜 바보구나. 내가 어안이 벙벙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말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바보인 것을 하나님도 알고 계십니까?” “안다. 내가 바보인줄 안다. 그러나 네가 하나 알아야 될 것은 너를 사용하는 나는 바보가 아니다. 너는 바보지만 지금까지 내가 한국과 온 천하에 너를 사용했는데 그것을 사용하는 나는 바보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나를 바라보라” 나는 이 말씀에 말할 수 없는 용기와 힘을 얻었습니다. 나는 바보지만 나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은 바보가 아니다. 성령을 주셔서 권능으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서는 자신을 바보요, 무능력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세요. 여러분 속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은 지혜의 영, 총명의 영, 모략의 영, 재능의 영, 지식의 영, 하나님을 경외케 하는 영, 하나님의 영으로써 권세와 능력으로 여러분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바라보면 여러분은 바보지만 여러분을 사용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은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신과 모든 영광을 다가지고 여러분을 사용하시기 때문에 여러분 두려워 하거나 놀랄 필요가 없습니다. 아예! 나는 뭐 교육도 없고 자격도 없어서 구역장 못해요. 내가 무슨 지역장입니까? 말도 할 줄 몰라요. 나는 바보요. 그러면 하나님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오냐 안다 네가 바보인줄 내가 안다. 너는 진짜 바보다. 그러나 너를 사용하는 나는 바보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라” 야~ 안심입니다. 여러분이 잘나기를 원한다면 힘들고 애써도 안되니까 걱정이지만 여러분 못나도 하나님은 잘나셨으니까 여러분은 바보라도 하나님은 바보가 아니시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해도 피곤치 않고 걸어가도 고단치 않게 되는 것입니다.

 

3. 인격적인 하나님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우리에게 성령 충만한 세례를 주셔서 권세와 능력의 증인이 되게 하신 하나님은 성령이신데 성령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인 것입니다. 성부 아버지와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 제 삼위 하나님인 것입니다. 구약 4천년 동안 아버지가 역사하고 신약 초기에 예수님이 와서 아들이 역사하고 이제는 신약 2천년 시대는 성령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일체로 역사하는데 지금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기 때문에 성령은 인격적인 것이므로 인격적인 대우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인격이란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가지면 몸이 없어도 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짐승이 인격이 없는 것은 지성과 감정과 의지가 뚜렷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인격이 있는 것은 지성이 있고 감정이 있고 의지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인격자는 인격자로 대접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정생활을 하더라도 남편도 인격자고 아내도 인격자입니다. 그러면 아내가 남편을 인격자로 대접해야지 남편을 자꾸 무시하고 남편을 비난하고 짓밟으면 인격적인 모욕을 느끼면 분노를 느껴서 가정이 깨어집니다. 또한 남편이 아내를 자꾸 모욕합니다. 친정집 흉을 보고 아내의 흉을 자꾸 보면 모욕감을 느낍니다. 왜 모욕을 느끼느냐. 인격이 있기 때문에 모욕감을 느낍니다. 인격이 없으면 모욕감을 느끼지 않아요. 모욕감을 느끼게 되면 복수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인격자인 것입니다. 인격자이기 때문에 성령을 우리가 모욕되게 하면 훼방하면 성령이 떠나가 버리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화를 내시면 절단강산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거룩한 하나님이요, 인격적인 하나님이요 우리와 같이 계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우리에게 권세와 능력을 주시고 은혜로 역사하는 하나님이신 것인데 우리의 보혜사신데 보혜사는 하나님께로 보내심을 받아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항상 곁에 분이라는 말인 것입니다. 항상 곁에 계십니다. 지금도 여러분과 함께 계시고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님 인격적인 하나님이기 때문에 아주 고귀한 하나님을 고귀하게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고귀할수록 조심스럽게 모셔야 되지 않습니까? 이러므로 인격적인 하나님은 인격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하고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무시해 버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집안에 들어오는 손님도 무시하면 시험에 들어 집을 떠나가는 것인데 성령님을 무시해 버리면 안돼요.


성령님을 인정합니다. 환영합니다. 모셔들입니다. 의지합니다. 감사합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성령님 인정합니다. 환영합니다. 모셔들입니다. 의지합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성령님과의 이와같은 인격적인 교제가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지성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지성을 가지고 있잖습니까? 성령은 지성을 가지고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10절에 㰡’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㰡“


모든 것을 깨달아 통달하시는 성령이 우리의 생각 속에 성령의 생각을 넣어 주신 것입니다. 저는 늘 이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하나님 말씀을 증거 할 때 내 머리 속에서 상상해서 증거하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고 성령님의 생각이 임하도록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여 무슨 말씀을 증거하오리까. 성령님의 생각을 주셔서 성령님의 대언자가 되게 해주시옵소서. 그리고 기다리면 하나님의 성령의 생각을 저의 생각에 넣어 주시는 것입니다. 내 생각에 성령님의 생각을 넣어 주심으로 아~ 이것이구나. 성령님의 생각을 받아서 합니다. 세상에 많은 일을 결정할 때도 하나님의 생각을 보여 주시옵소서. 성령님의 생각을 내게 보여 주셔서 Yes, No를 알려 주십시오. 성령님이 Yes를 하면 따라가고 No를 하면 안 따라 가겠습니다. 성령님의 생각을 넣어 주십시오. 이와같이 기도할 때 성령님은 지성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여러분의 지성에 하나님의 생각을 넣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서 산다는 것은 너무나 놀라운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쳐들어가기 전에 하나님의 생각을 먼저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여리고성과 그 왕을 너희 손에 붙였다. 그러므로 너는 백성들과 함께 하루에 한바퀴씩 돌고 이래저래 일곱바퀴 돌고 외치면 성이 무너진다.” 하나님의 생각을 받았습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이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서 갔기 때문에 이미 이겨놓은 전쟁을 싸운 것입니다. 구약에 하나님의 위대한 종들이 다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서 실천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기도하면 성령이 하나님의 생각을 우리에게 넣어 주어서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서 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7절에 㰡’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㰡“고 말한 것입니다. 성령은 또 감정을 가지고 계십니다. 성령은 희노애락을 가지고 있어요. 하나님의 성령은 뜨거운 열심, 사랑, 자비, 평안 등을 우리 마음속에 넣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겁쟁이였지 않습니까? 그러나 성령을 받고 난 다음 뜨거운 열심히 생겨서 목숨을 바치고 천하만국에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마음이 냉랭해도 성령이 임하시면 성령은 뜨거운 열정을 부어 주셔서 더 뜨겁게 기도하고 뜨겁게 봉사하고 전도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침 새벽기도회에 이렇게 일찍이 나와서 열심히 온 것도 마음속에 성령이 열심을 부어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령이 열정을 부어 주셔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여 저의 마음속에 열정을 주시옵소서. 저는 늘 설교하기 전에 그런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여 오늘 강단에 설 때 내가 흥분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은혜로 흥분되어 가지고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이 열정을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사랑과 자비를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손양원 목사 같은 분은 자기 아들 둘이 공산당의 총에 맞아 죽었지만 죽인 그 사람을 양자로 택해서 목사까지 만들었습니다. 바로 성령이 주는 사랑입니다. 테레사 수녀같이 평생을 캘커타의 빈민촌에서 보낸것도 사랑의 뜨거운 열정을 성령이 부어주신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기도할 때 편안한 마음도 주시고 기쁨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5장 5절에 㰡’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㰡“


에베소서 4장 30절에 㰡’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㰡“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면 마음에 성령이 근심하십니다. 마음에 죄책이 오고 심령이 고통스럽고 괴롭기가 말을 다 할 수 없습니다. 회개하지 아니하면 진액이 마른 나무와 같이 됩니다. 성령이 슬퍼하시고 우리 마음을 짓누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게 되지요.


또 성령은 우리에게 기도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친구들하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마음속에 목이 마르듯이 기도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나서 친구하고 이야기하다 말고 기도실에 들어가야 됩니다. 언제는 TV보고 있는데 TV보고 기도해라. 기도해라. 마음속에 갈급한 생각이 생깁니다. 그러면 TV 못보고 기도해야 돼요. 그것도 다 제켜 놓고 ‘그래~ TV 좀 보고요. 가만 계세요.’ 그러면 성령을 소멸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소멸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정을 가진 영입니다.


성령은 또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결단력, 타협하지 않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의지를 가지고 결단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1절에도 㰡’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시느니라㰡“은사도 하나님 성령이 원하는데로 성령의 의지대로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 6절에 㰡’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㰡“해라. 하지 말라. 결단 고집을 성령은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성령이 임하시면 신앙에 단호한 결단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지 말라고 해서 안가지요. 십일조 내지 말라고 하면 안내지요. 전도하지 말라고 해도 안하지요. 그런 것은 성령의 충만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우리에게 단호한 결단을 주시는 것입니다. 타협하지 않는 용기와 결단을 주어서 죽으면 죽으리다. 그러한 담대함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지성을 가지고 감정을 가지고 의지를 가지고 우리의 지식과 교제하며 우리의 감정과 교통하며 우리의 의지와 교통을 하시는 것입니다.


4. 성령님과의 교제, 협력, 일체의 "코이노니아"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성령님과의 코이노니아를 계속해야 됩니다. 고린도후서 13장 13절에 㰡’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㰡“했는데 이 교통하심은 헬라원어로 ‘코이노니아’입니다.

 

코이노니아라는 것은 첫째로 교제를 하라.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하고 찬양하는 교제를 하라. 둘째는 성령님과 협동하라. 성령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시고 추수꾼의 주인이 되시고 우리의 선배 동업자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을 성령님과 함께 일을 하라. 그러므로 성령님께 부탁하고 의지하고 성령님의 인도와 지시를 받아서 일을 하라. 성령은 우리와 함께 일하는 자요. 우리의 짐을 짊어지시는 자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코이노니아는 일침이다. 성령과 함께 하라. 항상 너 혼자 인생을 살지 말고 성령이 함께 있다는 것을 늘 이해하라.

 

요한복음 14장 16절에 㰡’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㰡“우리는 성령과 하나가 되어 있다. 함께 있다. 성령과 떠나있지 않다. 우리 마음속에 늘 성령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의식하라. 지금도 성령이 함께 계십니다. 성령님과 함께 앉아 계시고 성령님과 함께 기도하고 찬송하고 집에 돌아갈 때도 성령님과 함께 집에 돌아가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떠나있지 않습니다. 이러므로 항상 성령님과의 코이노니아를 잊지 말아야 됩니다.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하고 찬양하며 모든 일에 성령님께 의지해서 부탁하고 성령이 선배, 동업자로써 여러분과 함께 일하게 하시고 언제나 성령님은 나와 일치하여 계신다. 나와 함께 계시고 내 속에 계시고 내 영혼 속에 성령님이 일치가 되어 계시므로 성령님 이외에 세상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인 것입니다.

 

십자가 이전에는 유대민족은 하나님이 선민이기 때문에 유대민족의 왕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나 사사에게만 특별히 성령이 임하시고 일반 사람에게는 성령이 임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이후로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모두다 주님께서 왕으로 만드시고 제사장으로 만드시고 선지자로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다 왕 같은 제사장이요, 선지자가 되었으므로 하나님은 왕에게 주는 성령, 제사장에게 주는 성령, 선지자에게 주는 성령을 우리에게 다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아서 인치심을 얻어 변화를 받았고 성령의 열매를 맺고 성령 세례를 받음으로 우리가 권능을 받아서 능력 있는 증인이 되고 우리는 바보라도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사용하시고 이 성령과 우리는 인격적인 교제를 해야 됩니다. 희생과 감정과 의지를 가지고 계시므로 두려워하고 떨면서 성령님을 모셔 들이고 성령님과의 코이노니아를 통해서 하늘나라가 우리를 통해서 항상 넘쳐나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회개하게 만들어야 됩니다. 여러분을 성전삼고 성령이 계십니다. 이제는 하늘나라가 여기있다 저기있다 못하리니 하늘나라는 너희 안에 계십니다.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신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성령님과 항상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동행하게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