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14: 30-32
‘신데렐라’와 ‘유리구두’는 ‘콩쥐팥쥐’와 함께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동화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동화의 공통점은 계모와 전처소생과의 갈등을 주제로 한 시기심의 내용으로 누더기 옷을 입고 끝없는 고통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보여준 추한 모습에 같은 추함과 증오로 반응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인격의 고결함을 잃지 않고 오히려 더 깊은 사랑과 섬김으로 인해 공주가 된 신데렐라의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그 어떤 자신의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비난하거나 원망하며 주저앉지 않고 담대하게 일어서서 역경을 헤쳐나가므로 승리할 수 있는 좋은 교훈을 던져주고 있기에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신데렐라를 사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다루려고 하는 주제는 시기심의 치유와 회복입니다.
시기심은 인간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되어 지금까지 인간을 괴롭혀온 매우 뿌리깊은 죄악입니다. 특별히 교회 공동체가 하나되지 못하게 하는 원인 중에 하나가 ‘시기심’입니다.
부정적인 시기심은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며 나아가 죽음을 야기(惹起)합니다.
가인은 그 동생 아벨의 제사가 하나님께 열납되고, 자신의 제물은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게 되자 가인은 분노하게 되었고 시기심과 질투가 발동하게 되어 끝내는 동생을 때려죽이는 살인자가 되어집니다.
이렇듯 시기와 질투란 참으로 무서운 인간심리입니다.
마귀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라도 접근해서 시기와 질투를 품도록 하고, 그럼으로써 스스로 멸망하도록 하고 공동체를 해체시키는 존재입니다. 시기를 꺾기 위해서 우리는 날마다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어떤 사람이든 시기와 유혹과 시험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시기심이란 무엇일까요?
Ⅰ. 시기심이란 무엇인가?
‘시기(猜忌)’라는 용어는 영어로 ‘Jealousy'라 하며 희랍어로는 ’프도노스(Πθόγος)‘라고 하는데 그 뜻은 ‘다른 사람의 이익과 번영함에 대한 강한 불쾌감’이라는 뜻입니다.(마27:18,막15:10,롬1:29,갈5:21,약4:5) 이것은 질투와도 같은 것이며 또 ‘시샘’이라는 말로도 사용되며 그 뜻은 ‘다른 사람이 하는 것에 대해서 기쁘게 생각하지 못하고 샘을 내는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시기와 질투가 전혀 없을 수 없으며 인간이 사는 곳에는 어디든지 시기와 질투가 자리잡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보다 상대방이 더 잘되는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하며 축하해주고, 축복해 줄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혹시 말로는 ‘축하한다’고 하더라도 마음속에서 매우 불쾌한 감정이 그를 사로잡게 되는 것이 인간 본연의 감정입니다. 그래서 옛말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했으며 서양 속담에는 “내가 실패할 때 나를 동정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면, 내가 성공할 때 나를 시기하는 사람은 백 사람쯤 된다.”고 했습니다.
시기하는 사람은, 거의 언제나 자신이 가진 것을 잃게 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이것은 그가 그 자신이 존재하는 그 곳에 있지 않고, 다른 사람이 존재하는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는 다른 사람들을 시기심의 대상이 되는 부분들로 환원시킴으로써 그들의 모습을 왜곡하고, 그 왜곡된 모습만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시기하는 사람은 다른 누군가의 자기를 가지고, 즉 그 스스로가 선한 것이라고 조작해 낸 거짓된 자기를 가지고 다른 사람 앞에 나아감으로써, 그 자신의 인격을 가지고 그들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가 흉내내고 싶어하는 사람으로써 그들을 만날 뿐입니다.
이렇듯 시기하는 사람은 자신을 거부함으로써 유일하고 진정한 인격으로서의 존재의 중심인, 자신의 영혼에 커다란 타격을 입습니다.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에도, 시기심은 존재의 근원을 박탈하는 요소로서 우리의 설자리를 잃게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를 스스로의 권리를 지닌 존재로 보지 못하게 합니다.
Ⅱ. 시기심의 긍정적 & 부정적 요소는?
그러나 시기심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여자 아이들은 남자 아이들이 힘이 세고 또 서서 쉬를 보고 벌거벗은 채 돌아다녀도 아무소리 하지 않는 반면 여자 아이들은 호되게 꾸지람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 남자아이에 대한 동경과 아울러 시기심을 갖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기심이 창조적인 능력으로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남자처럼 열심히 운동하여 여자 권투선수가 되기도 하고 여자 보디빌더와 여자 레스링 선수 그리고 여군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반면 남자들은 여자들의 풍요와 너그러움과 아름다움을 닮기 위해 부드러움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을 봅니다.
좋은 의미에 남성다운 여성, 여성다운 남성을 만들어 가는 것을 봅니다.
그런 반면 부정적인 시기심은 중심적 자기를 거절하고 우리를 나태함으로 인도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부족함이 없는 인간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시기심을 가지고 하와에게 다가가서 “이것을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창3:5)함으로 시기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 이후 시기심은 인간의 중심자리로 옮겨오면서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하여는 전적으로 거부하면서 다른 누군가가 가진 것을 추구합니다. 이때 우리는 기쁨을 상실하게 되고, 기뻐하는 것을 반대하는 영적인 나태함의 상태에 빠져 우리의 심정을 나태함의 연기로 자욱하게 채우게 되는데, 이것은 단테가 묘사하는 다섯 번째 지옥의 나태한 불평꾼에게서 보여지는 모습과 동일합니다.
Ⅲ. 성경에 나오는 시기심의 사례들
그렇다면 이번에는 성경에 나오는 시기심의 사례들에 대하여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창세기 25장 24절로부터 26절에 보면 야곱의 출생이야기가 있습니다. “ 그 해산기한이 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뱃속의 두 아들이 서로 먼저 나가려고 싸움을 합니다. 두 사람의 경쟁에서 ‘에서’가 먼저 나오게 되고 ‘야곱’은 형 ‘에서’의 발뒤꿈치를 붙잡고 세상으로 나오게 됩니다. 발뒤꿈치를 붙잡은 야곱! ... 시기심의 대표 상징처럼 보입니다. 장자권에 대한 야곱의 시기심은 결국 배고픈 형의 모습을 악용하여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삽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눈이 어두운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여호와의 축복을 가로채기까지 합니다.(창27:27-29) 이로 인해 야곱은 형 에서에게 미움과 시기심을 받아 외사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하는 비극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창세기 37장 3-4절에 보면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보다 그를 깊이 사랑하여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그 형들이 아비가 형제들보다 그를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언사가 불평하였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 야곱이 요셉만 편애(偏愛)하는 것을 보고 시기심과 미움이 생겨 결국 동생 요셉을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종으로 팔아버리는 부끄러운 일을 저질렀습니다.
사무엘상 18장 7-8절에 “여인들이 뛰놀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사울이 이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가로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밖에 무엇이냐 하고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하였는데 여기서 말하는 주목이 무엇이며 심히 불쾌하며 노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시기심과 질투 때문입니다.
그 이후 다윗은 사울 왕의 죽임을 피하여 도망 다니는 힘들고 어려운 고난의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선한 다윗을 들어 써 주셔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주셨습니다. 그런 반면 사울은 비참한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마태복음 20장 20-28절에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찾아와서 절하며 구하기를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21절) 할 때에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24절)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12제자들도 동일한 사람들이었기에 그들 속에 서로 높음에 대한 문제로 시기심과 질투와 원망이 생겨 다투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마음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 20:27-28)고 충고해 주었습니다.
Ⅳ. 시기심의 원인은?
시기심의 원인은 첫째: 사울 왕과 다윗 그리고 요한과 야고보의 모습 속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듯이 높아지려는 헛된 욕망과 교만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
예수님은 유월전 전에 저녁 만찬 후 자리에서 일어나 제자들의 발을 직접 씻겨주시는 모델링의 교육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서로 섬김의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갈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둘째: 열등(소외)감 때문입니다.
심리학자 에릭슨은 말하기를 시기의 근본원인은 열등의식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 분리, 소외, 공포, 분노, 적의, 상심, 시기, 질투, 원망, 허망한 지배욕, 자기학대, 좌절, 망상 - 이렇게 좋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이 열등감에서 옵니다. 열등감이 저변에 깔려 있습니다. 시기하는 것은 자기가 그만큼 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더 잘 할 수 있으면 시기하지 않습니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은 질투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거기에 미치지 못할 때 질투합니다. 결국 열등의식이 문제입니다.
셋째: 건전치 못한 비교의식 때문입니다.
시기와 질투의 원인은 바르지 못한 자아개념을 가지고 건전치 못한 비교의식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자신에게 조금 나은 것이 발견되면 금방 교만해져서 자랑하고 싶어 견딜 수 없어 괴로워하며 또 다른 사람보다 자신에게 조금 모자라는 것이 발견되면 열등의식에 빠지고 그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험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가만히 있지 않고 우리의 마음속에 죄로 나타나게 되는데 질투로 인해서 상대방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험담을 하고, 깎아 내리는 죄를 짓게 됩니다. 이로 인해 갖가지 정서적인 긴장 상태가 나타나는데 이를 스트레스라고 하는 것입니다.
Ⅴ. 시기심의 치유와 회복
1. 선함을 상실한 곳에 도착하라.
시기와 질투가 한 개인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한, 우리는 마음의 평안을 얻기가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시기와 질투가 마음의 평안을 앗아가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시기와 질투가 있으면 이것을 숨기지 말고, 그대로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고백해야 합니다.
언제 어떻게 이런 시기심이 발생했는가? 그 첫 출발점에 도착하여 발생하게된 원인과 이유를 솔직하게 고백하는 데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마귀는 드러나는 것을 싫어하고 자꾸 위장하고 숨기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시기와 질투를 어쩔 수 없는 일로 합리화시킨다든지, 누구나 다 범하는 죄라고 일반화시킴으로써 이 죄가 마음속 깊은 곳으로 숨어 들어가서 회개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시기와 질투심을 해결하는 방법은 솔직하게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이 해결의 첩경입니다.
2. 나보다 남을 더 높게 여김- 축복하기
시기심을 해결할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으로는 시기의 대상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시기와 질투를 잘 분석해보면 대체로 이것은 자기와 관계없는 사람에게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요즈음 텔레비전에 뜨는 침례교 목사님이 부흥회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나에 대하여 칭찬하고 격려해주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반대로 나에 대해서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어떤 사람은 나를 칭찬하며 격려해주고 또 어떤 사람은 나를 시기하는가?를 가만히 살펴보니까? 나하고 경쟁 상대가 안 되는 어르신 목사님이나 성도님들은 무척이나 내 설교를 좋아하며 칭찬하는 반면 나와 경쟁상태에 놓여있는 목회자들은 꼭 설교가 웃겨야만 하나 설교가 무슨 코메디인가?하면 쓉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옆집에 복돌이 아빠가 로또 복권 1등에 당첨되었다고 해서 시기하거나 질투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비슷한 동료 또래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자기와 비슷한 동료가 직장에서 자기보다 먼저 진급하거나 승진할 때 열불이 난다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빌립보서 2장 3-8절에 기록된 말씀처럼 “ 예수님께서 근본 하나님과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제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이 땅에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듯이 너희도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 하였듯이 시기와 질투의 대상을 축복해주는 것입니다. 이를 실행한자가 다윗입니다.
3. 마귀(시기심)과의 대적
시기심을 해결할 수 있는 세 번째 방법으로는 마귀를 대적하는 일입니다.
내 마음속에 시기와 질투를 가져다 주는 마귀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적하는 일입니다. “내 속에 원망과 불평과 시기심을 가져오게 한 악한 사탄아! 너는 나를 망하게 하는 자로다. 나는 하나님의 평안을 누릴 권세와 축복이 있다. 너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묶임을 받고 쫓겨날지어다.”하며 시기와 질투가 생길 때마다 마귀를 저주하고 명령하여 내 속에서 좇아내야 합니다.
4. 하나님의 은총을 받으라
시기심을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은 하나님의 은총(恩寵)을 받는 것입니다.
내가 시기심과 질투를 드러내어 부끄러움을 보였다 할지라도 절대로 낙심하거나 절망해서는 안됩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모든 것을 받으시는 하나님 앞에 솔직히 나아가 엎드려 자신의 부끄러움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치유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어느 부분도, 또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 할지라도, 인정받고 수용 받지 못할 정도로 보잘 것 없는 부분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연약한 부분들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은총으로 다가오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응답하는 길입니다. 선함은 우리의 노력을 통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노력들을 연결시켜 주고, 확인해주며, 성공하도록 도와주는 힘입니다.
은총이 지닌 역설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현실화 시켜 주고, 동시에 우리가 원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어떤 결과를 가져다 주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우리가 항상 기대했던 것 그 이상의 결과로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그러므로 내 속에 나도 모르게 일어나는 시기심과 질투를 분노의 화신에게 맡기지 말고 전능자 아버지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므로 신데렐라에게 임한 영광의 축복처럼 우리에게 영광의 면류관과 아울러 하나님의 보좌 앞에 기쁨과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믿음의 자녀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오늘 본문 잠언 14장 30절에서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시기는 가시와 같아서 뻗치는 곳마다, 손이 닿는 곳마다 남을 상하게 하고 자기도 상하게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이 사회를 해롭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유익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함을 유지하며 발전시켜 나갑시다.
다윗이 자식을 죽이려는 사울을 끝없이 인정하며 선함을 유지함으로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듯이 형제의 발을 씻기는 자세로, 나보다 남을 더 높게 여김으로, 끝없는 용서와 자비의 정신으로, 무엇보다 성령님의 능력을 통하여 악한 마귀를 예수의 이름으로 대적하므로 하나님의 은총이 늘 우리 안에 임하여 하나님의 형통케 하심을 축복을 받는 늘찬양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