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0:30-37,
금세기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 노르만 빈센트 필 목사님의 얘기입니다. 어느 날 한 청년이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ꡒ제가 다니는 직장에는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덜 받는 직장을 소개 시켜 주시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ꡓ 그 때 목사님은 그 말을 듣고 흔쾌히 말했습니다. ꡒ좋습니다. 제가 그 곳을 소개시켜 드리지요. 저를 따라오십시오ꡓ 그래서 두 명은 차를 타고 뉴욕을 지나서 공동묘지 앞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ꡒ여기가 문제가 없는 곳입니다.ꡓ
사람은 살아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고, 상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일생 소원 중 하나가 건강입니다. 이 땅에서 많은 소유를 가지고, 영화를 누린다 해도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건강하게 살아야 행복하고 일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아픔이 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떤 사람도 성한 사람이 없습니다.
거의 다 병이 있고 괴로움이 있습니다. 특별히 마음의 상처가 큽니다.
병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육체의 병이 있는가 하면 마음의 병이 있고 영혼의 병이 있습니다.
병의 시작은 최초로 하나님을 반역하는 데서부터 시작됐습니다.
ꡒ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ꡓ (창3:17)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했기 때문에 영혼이 병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정신적인 병이 걸립니다. 감정이 상하고 갈등하고 괴로워하게 됩니다. 이 같은 갈등은 끝내 동생을 죽이기까지 합니다.
ꡒ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ꡓ (창4:8)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가인의 육체도 성하지 못했습니다.
ꡒ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 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ꡓ (창4:14)
예수님의 눈에는 이 세상 사람이 다 죄인이고 병든 사람입니다.
죄인은 구원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죄에서 구원받아야 합니다. 병든 사람은 고침 받는 것이 소중합니다. 병에서 구원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ꡒ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 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ꡓ (마9:12)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ꡒ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ꡓ (마4:23)
첫째, 천국 복음(preching)을 전파하셨습니다. 둘째,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teaching) 마지막으로 병든 자를 고치셨습니다.(healing)
여기서 고치셨다는 것은 영혼을 고치시고 정신을 고치시고 육체를 고치신 것입니다.
주님은 이 땅을 고치러 오신 것입니다.
현대의학에서 치료는 전인 치료를 말합니다. 영도, 마음도, 육체도 동시에 치유되어야 완전한 치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ꡒ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ꡓ(마11:28)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그 강도는 옷을 벗기고, 때리고 거반 죽게 하고 버려 두고 갔습니다. 이 때 마침 한 제사장이 지나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합니다. 또한 레위인도 보고 피합니다. 그런데 그 때 한 사마리아인이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 싸맵니다. 그리고 자기 짐승에 태워서 주막으로 가서 돌봐줍니다. 다음 날 주막집 주인에게 두 데나리온을 주고 이 사람을 잘 돌봐달라며 부비, 즉 비용이 더 들면 다시 돌아올 때 갖다 주겠다고 말합니다.
이 이야기는 상처난 인간을 치료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강도 만난 사람처럼 상처받고 신음하며 고통가운데 있습니다.
누가 이런 우리를 치료해 주십니까?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예수님은 오늘도 말씀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상처를 치료해 주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신적인 상처로 인해 고통하는 우리들은 매주 주님 앞에 나와 기도함으로 말씀을 듣고 예배를 드림으로 주님의 치유하심을 덧입어야 합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사마리아 사람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떠나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그리고는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기고 매를 맞아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가 참으로 재수 없고 억울하게 화를 당한 사람처럼 보여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그 스스로가 자원하여 위험한 길을 간 것입니다. 그 스스로가 구원의 장소인 예루살렘을 떠나 세속적인 장소인 여리고로 내려간 것입니다. 실제로 그 길은 험해서 강도들이 활동하는 곳이기에 ꡐ피의 도로ꡑ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예수님의 방향과 거꾸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고 있는 것을 다 빼앗기고 거반 다 죽게 될 정도로 몰매를 맞았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예수님을 떠나 세상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에게는 언제 어느 때 이런 어려움을 당할지 모른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는 메시지입니다.
그러면 강도 만난 사람은 누구입니까? 성경에서는 어떤 사람(A man)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 모두 강도 만난 사람과 같습니다.
에덴동산에서부터 마귀라는 강도가 우리에게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우리 영혼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양심을 잃어버리게 하고 부끄러운 존재가 되게 했습니다. 그래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ꡒ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ꡓ (30)
우리는 마귀의 유혹과 술수에 빠져 거반 죽게 되어 극도의 신음을 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행동에 대해 ꡒ신앙생활 한다는 사람이 왜 저렇게 행동하는가? 참으로 나쁜 사람들이다.ꡓ 이렇게 분개할 수 있지만 그들은 종교인인지라 고칠 능력도 영력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치료 재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름과 포도주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름은 당시 치료약으로 쓰였고, 포도주는 소독약으로 쓰였습니다. 그는 치료해 주고 싸매 주고 주막집에 보호의 부탁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상처 난 인간, 죽게된 인간을 십자가에 죽으시고 보혈의 피를 흘리심으로 치유하시고 구원하시고 성령으로 심령의 상처를 고쳐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구약성경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ꡒ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ꡓ (사53:5)
여기서 ꡒ나음을 입었다ꡓ는 말은 우리 상처가 치유 받았다는 뜻입니다. 상처에는 외적인 상처도 있지만 내적인 상처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가 있습니다. 또는 형제들이나, 친구들로부터 받은 상처가 있는가 하면 남편이나 아내로부터 받은 상처도 있습니다.
자식으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에 평생 눈물로 보내는 부모도 있습니다. 어느 며느리는 시어머니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에 일생을 활짝 펴보지 못하는 불행한 경우도 있습니다. 또는 어렸을 때 어떤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로 평생을 기 한번 펴보지 못한 채 그늘진 인생을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상처로 인해 정상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의 말씀은 상처 입은 우리 인간들의 신비한 복음의 비밀입니다. 그렇다면 사마리아 사람이 어떠한 방법으로 강도 만난 이웃을 건졌습니까?
1. 먹어야 합니다.
ꡒ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ꡓ (34절)
사마리아 사람은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붕대로 싸매어 주는 1차 응급치료를 마친 후 주막에 데리고 가서 돌봐주었다고 했는데 여기서 주막집은 교회와 같습니다. 그리고 주막집 주인은 그 교회와 목사와 같습니다. 교인들은 상처받은 환자들입니다. 그리고 선한 사마리아인은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환자를 잘 돌보아 주었다는 것은 우선 잘 먹도록 하는 일입니다. 건강하려면 잘 먹어야 합니다. ꡒ최고의 보약은 밥이다ꡓ입니다. 동의보감에 ꡒ밥으로 고치지 못하는 것은 약으로도 안된다ꡓ고 하였습니다.
아픈 환자는 영양섭취를 잘해야 빨리 회복됩니다. 병은 미리 예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병들어 울지 말고 평상시에 관리해야 합니다.
건강에는 세 가지 측면에서 관리가 필요합니다.
첫째 몸을 위해서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몸에 나쁜 것을 먹으면 안됩니다. 둘째 정신건강을 위해서 사랑을 먹어야 합니다. 가족사랑을 나누고 이웃과의 만남을 통해서 사랑을 먹어야 합니다. 부모의 사랑을 먹는 아이는 눈동자가 밝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얼굴이 환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영적인 건강을 위해서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영이 건강해야 정신과 육체가 건강합니다. 이로 인해서 전인 치료가 이뤄집니다.
건강한 사람은 하루 세끼를 잘 먹습니다. 그러나 환자는 잘 먹지 못합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을 줘도 입맛이 없어서 못 먹습니다. 영적 환자는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들어도 입맛이 안 납니다. 반대로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그저 하나님 말씀이 좋아서 새벽, 낮, 밤에도 매일 먹습니다. 주막집은 교회이고 먹을 것이 있는 곳입니다. 영의 양식이 있는 곳입니다. 먹을 것을 열심히 먹어야 건강합니다. 영적인 양식은 신비한 음식입니다. 예배시간에 참석하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말씀을 읽을 때 얻어집니다.
ꡒ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ꡓ(히4:12)
성도는 그리스도의 군사입니다. 십자가 군병은 무기를 가져야 합니다. 무기로 첫 번째는 칼입니다. 이 당시는 칼이 중요한 무기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검입니다. 검은 자신을 방어하고 적을 찌릅니다. 즉 자신을 방어하는 무기를 지녀야 이깁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고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귀가 달려들 때 찔러야 합니다.
탐욕, 교만, 우상숭배, 쾌락의 정욕 등을 다 잘라 버리는 것입니다. 썩는 것은 도려내야 합니다. 이 시간 주막인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칼로 수술해서 고침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처방전을 가지고 약국에 가서 약을 사먹듯이 여러분들은 매일 매일 집에서 큐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먹어야 건강합니다. 자꾸 먹고, 자주 먹고, 열심히 먹어야 건강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영적 군사로서 힘을 낼 수가 있습니다. 담대할 수가 있습니다.
2. 편해야 합니다.
ꡒ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 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ꡓ (35절)
주막집은 나그네가 쉬어 가는 곳입니다. 배고프면 요기하고, 피곤하면 잠을 자다 가고, 비바람이 불면 비를 피해 들어갑니다. 그리고 인생길에 쉼을 얻는 곳이 주막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ꡒ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ꡓ(마11:28)
교회는 인생길, 나그네길에 상처난 사람들이 쉬는 곳입니다. 그 교회 목사님은 예수님께서 맡겨주신 환자를 돌보는 주막집 주인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늘찬양교회의 주막주인입니다. 우리 사람들 마음의 뚜껑을 열어보면 신음소리를 안내는 사람이 없습니다. 소리의 크기, 소리의 종류와 소리의 자세가 다를 뿐이지 전부 다 신음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죄인이 예수님을 믿으면 완전한 의인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하늘나라 가는 의를 얻은 것이고, 죄 없다 간주해주는 것이지 완전한 의인이 아닙니다. 우리 속에 죄의 상처로 신음하며 그때 그때마다 주님의 긍휼을 받아야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는 의인들의 집합체가 아닙니다. 환자들의 집합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서로 위로해 주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서로 붙들어 주고 싶어집니다. 그러므로 서로 비난하고, 손가락질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모두 주치의 되신 예수님 앞에 의롭다 인정받은 환자들입니다. 그리고 그 환자들이 모인 모임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목사님이나 성도들, 전부 다 완전한 의인들이 아닙니다. 찬송을 잘하고, 기도를 유창하게 한다고 해서 건강한 것이 아닙니다. 찬송 중에도 아파하고, 기도 중에도 신음하며, 설교 중에도 신음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눈물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상처있는 우리의 몸과, 마음, 영을 하나님 앞에서 자유함을 얻고, 이 나그네 인생길에 끊임없이 주님의 돌보심 속에 살아야 합니다.
ꡒ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ꡓ(요14:1)
ꡒ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ꡓ(요14:27)
집에 같이 사는 부부가 싸움을 하는 것은 사람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한 사람 속에 상처가 있으므로 싸우는 것입니다. 자기가 아프니까 남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이 행복한 사람은 남을 괴롭히지 않습니다. 자기 마음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남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의 은혜,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어느 성도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시집가서 너무 살림도 어렵고 사랑도 받지 못해 눈물로 지낼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친정 가기 전날 밤은 잠을 자지 못합니다. 친정 집에 가면 어머니에게 밤새도록 시댁 흉을 볼 수 있고 시집살이의 고통을 얘기하면 어머니가 말없이 다 들어줍니다. 친정 어머니가 듣다가 주르륵 눈물을 흘리고 괴로운 얘기를 다 들어줍니다. 그리고 나를 위로해 줍니다. 그래서 친정 가는 날만 기다려집니다. ꡒ
그때 나는 깨달았습니다. 우리 인생살이가 시집살이와 동일합니다.
우리는 시집살이로 인해 피곤하고, 지치고 상처입고 병듭니다. 우리는 친정 어머니를 만나야 합니다. 성령님이 우리 친정 어머니십니다. 그리고 친정 아버지는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교회는 친정 집입니다. 우리는 이곳, 즉 교회에 와서 한 맺힌 기도를 합니다. 너무 힘들고 너무 고통스러운 것을 기도합니다. 그 때 성령님이 감동을 주십니다. ꡒ내가 있다 조금만 참아라. 좋은날이 올 것이다. 내가 꼭 도와 줄 테니 용기를 잃지 말아라......ꡓ
친정 집과 같은 교회에 들어와서 기도할 때 수많은 상처들이 다 빠져나갑니다. 교회에 다니는 것은 큰 복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ꡒ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ꡓ (시122:6)
ꡒ네 성 안에는 평강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이 있을찌어다ꡓ (시122:7) 할렐루야!
3. 은혜 받아야 합니다.
ꡒ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ꡓ
평안을 얻으려면 반드시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보면 은혜 다음에 평강이란 단어가 가장 많이 나옵니다.
ꡒ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ꡓ (골1:2)
ꡒ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ꡓ (살전1:1)
ꡒ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벧전1:2)ꡓ
ꡒ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ꡓ
ꡒ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ꡓ (계1:5)
강도 만난 사람은 그 후에 의식이 회복됩니다. 그는 눈을 떴을 때 상당히 분노하고, 억울해 했을 것입니다. 평생 모은 재산을 강도가 다 빼앗아 가고, 몸은 상처로 평생을 장애자로 살아야할지도 모릅니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재물을 다 빼앗기고 자기 자신을 장애인으로 만들고 사업을 망치게 한 사람이 강도입니다.
그런데 더 큰 일은 자신은 강도에게 돈을 다 빼앗겨서 빈털털인데 지금까지 주막에 들어 누워 치료를 받는 동안 들어간 치료비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걱정하며 일어서려는 사람에게 주막집 주인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ꡒ걱정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치료비는 당신을 이곳으로 데리고 온 사마리아 사람이 책임진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먼저도 치료비를 주었지만 돌아오면서 또 들러서 더 들어간 치료비를 낸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당신은 충분히 치료받고 건강하게 회복되기만 하면 됩니다. 당신은 회복될 것입니다 당신은 그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거저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당신의 앞날을 책임질 것입니다. ꡓ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뜻하지 않은 가정 형편과 경제한파, 갖가지 질병과 교통사고 등 험악한 강도를 만나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여러분들은 남편의 도움을 통해서든 아니면 아내의 도움을 통해서든 친구의 도움을 통해서든 주막인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사마리아인인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셔서 부비도 책임져주시고 여러분의 앞날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잃어버린 보따리 짐과 잃어버린 시간과 상처를 주님이 대신 보상해 주실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직접 십자가에서 창에 찔리시고 가시에 찔리시고 못 박히셔서 상처 입으시고 채찍에 맞으셔서 피를 흘리셨기 때문에 우리의 고통과 아픔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순전히 저와 여러분을 죄와 질병과 죽음에서 절망과 좌절에서 건지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를 치유하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치유해 주심을 믿고 감사하며 은혜와 기쁨으로 살아가면 됩니다.
병이 도지지는 않을까? 상처가 덧나지는 않을까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성령님만 찾으면 그 분은 언제고 우리에게 달려오셔서 우리를 깨끗하게 치유하시고 은혜와 축복으로 채워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심으로 우리 병을 치유하시러 오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은혜 안에서 건강하길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길이 어렵고 힘겹습니까? 마음이 지치고 어렵습니까? 우리는 이 때 예수님의 품에 와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날 영광의 주님이 우리를 완전하게 구원하시려 이 땅에 강림할 것을 믿으며 은혜와 평강속에서 살아가는 늘찬양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