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치유와 회복
시42:6-11,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모두 각자의 마음속에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불안함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현대를 일컬어 ꡒ불안의 시대(The Age of Anxiety)ꡓ라고 말합니다. 특히 롤로 메이(Rollo R. May)는 “불안은 이 시대의 가장 절박한 문제”라고 했습니다. 시대가 불안하니 사람들도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불안(不安, Anxiety)에 대한 정의를 알아봅시다.
불안이라는 용어는 신약성경에는 나오지 않으며 구약에만 동사로 시편 42편 5절과 예레미야 50장 34절 등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짧은 숨결”이라는 의미로서 구체적으로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어떤 일에 걱정이 되어서 늘 마음이 긴장되어 편치 못하고, 초조하여 감정이 압박 당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불안은 스트레스이며 또 스트레스가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불안이 심화될 경우, 개인과 가정의 파탄은 물론, 세계 인류까지 파멸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역사를 얼룩지게 한 수많은 폭군들, 특히 수백만 명의 유태인을 학살한 히틀러나 천여만 명의 러시아인을 학살․투옥한 스탈린, 모두 비정상적인 정신병 현상의 결과로 분석합니다.
그리고 매일같이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는 끔찍하고 잔혹한 사건들, 몇 일전에도 남편과 두 자녀를 버리고 연하의 남자와 동거하던 30대 주부가 결혼을 위해 심부름센터에 아이를 구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70여일 된 영아를 납치하는 과정에서 아기를 돌려달라고 애원하는 23세 어머니를 살해, 암매장하는 사건이 평택에서 발생했습니다. 이들의 패륜적이고 비인간적인 범행 작태의 정신적 심층 원인이 바로 불안의 비정상적 발산에서 기인된 것입니다.
불안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의 불안이 있습니다. 정상적인 불안과 비정상적인 불안입니다. 전자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어느 정도 불안을 지니고 살아가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하는 일이 잘 안되었을 때 느끼는 불안, 해야 할 큰 일을 앞두고 느끼는 약간의 불안은 정상적인 감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되었을 때는 당연히 불안을 느끼면서 긴장하게 되고 그 상황에 민감하게 대처하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본능과 같이 자연적인 감정입니다. 만일 아무런 불안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도리어 대단한 위험을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비정상적인 불안도 있습니다. 이것을 비현실적 불안이라고도 하고 신경증적 불안이라고 합니다. 이는 정신신경증의 한 종류로서 보는 불안입니다. 이것은 불안의 원인을 모르고 지속적이며 좀처럼 불안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힘든 상황을 말하는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이 불안의 상태에 오래 노출되다 보면 마귀가 불안한 우리의 심령에 틈을 타서 계속적으로 불안을 느끼도록 하며 ‘불안의 인격’이 형성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들이 계속된 불안으로 인해 ‘불안의 인격’이 형성되어 작은 일에도 쉽게 짜증을 내고 쉬 염려하며 망상과 공포와 죽음의 위기 등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큰 불행이며 고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불안에 떨면서 초조해하고, 긴장하여 하나님의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이 모든 평안을 앗아가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이것을 분석할 때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 살면서 전혀 불안을 없애면서 살수는 없을 것입니다. 불안할 상황이 생길 때마다 이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주님의 도움을 요청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불안의 감정을 하나님께 맡겨 버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도 “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시42:11)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다윗 왕이 61세가 되었을 때, 그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해 한밤중에 예루살렘을 떠나 도망치는 중에 그의 마음속에 자꾸만 엄습해오는 불안과 두려움을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여 불안하여 하는고”라고 물리치며 하나님을 바라고 믿음으로 찬양한 시입니다.
아무리 떨치려하여도, 벗어나려 하여도 죽음에 대한 낙망, 불안과 공포는 쉽게 떨쳐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만 바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하기로 작정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마음의 평강을 되찾았고, 하나님의 섭리하심으로 반란군이 진압되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윗이 불안을 극복하고 평강을 되찾고 승리할 수 있었던 3가지 비결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첫째 비결은 낙망될 때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ꡒ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망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ꡓ(시 42:6)
다윗 왕은 아들 압살롬의 반역과 죽임을 피하여 예루살렘을 떠나 요단 땅으로 피신하였으며, 상황이 더 악해져서 결국에는 팔레스타인 가장 북쪽에 있는 헤르몬 산과 미살 산이 있는 곳까지 도망을 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언제 압살롬의 군사들이 쳐들어올지 모르는 불안감속에 갇혀있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식에게 반역을 당하여 도망치는 아비의 심정이 어떠하였겠습니까? 죽을 맛일 것입니다. 영혼 속에, 마음속에 낙심이 들어오고 실망이 되어 절망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한 동안 입맛도 잃은 채 넋을 잃고 하늘을 쳐다보며 하나님을 원망도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한 동안을 낙심과 좌절과 불안감속에서 지내다가 ……
자신이 젊은 시절 사울 왕에게 쫓기던 때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이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며 다윗을 더욱 칭찬했을 때 사울은 군사를 풀어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도망을 쳐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때에 다윗의 생명을 보존하여 주셔서 10년 동안이나 도망을 다녔지만 붙잡히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한 굴에서도 서로 마주치게 되었지만 하나님이 사울 왕의 손에서 다윗을 안전하게 지켜주셨습니다. 그때에 다윗을 살려주셨던 하나님 즉 “눈동자 같이 지키시며 보호하시는 만군의 하나님”(시17:8)을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명기 7장 19절 말씀을 통해 ꡒ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내실 때에 네가 목도한 큰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편 팔을 기억하라ꡓ고 하였습니다. 다시말해 하나님께서 출애굽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주신 이적과 기사를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 홍해를 가르신 일과 반석에서 생수가 나오게 하신 일과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신 일과 불뱀에 물렸지만 살아나게 하신 일을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지내오는 동안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은 시련과 곤난과 아픔이 있었습니까? 그때마다 피할 길을 여시사 능히 감당케 하시는 하나님, 합력 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뜻하지 않은 피난길에서 다시금 사울 왕의 손에서 자신을 살려주셨던 하나님의 따스한 손길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지켜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과거에 역사 하셨던 하나님께서 오늘도 역사 하시고 미래에도 역사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속에 믿음과 평강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쓰러지고 낙심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인생의 짐 때문에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하고, 의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쓰러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다면 결코 넘어지거나 쓰러지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불안을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써 모든 문제를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를 불안으로부터 진정으로 도와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는 없습니다.
그분에게 자신의 모든 불안을 아룀으로써 이 불안에서 헤어나올 수가 있을 것입니다.
내가 내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면 불안은 더욱 가중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되나? 저렇게 하면 될까? 그러다 잘못되는 것을 아닐까? 부도가 나는 것은 ... 죽는 것은 아닐까? …” 점점 더 불안의 늪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내면에서 들리는 불안에 귀를 기울이게 되면 점점 더 깊은 불안에 빠지게 됩니다. 불안하게 하는 내면의 음성을 대응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스탠딩(standing) 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에 4:16)는 자세 이것이 바로 영성훈련입니다.
ꡒ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ꡓ (사41:10)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5:8-9)
우리는 말씀을 능력을 사용하여 불안을 가져다 주는 마귀를 예수의 이름으로 대적해야 합니다. 그리할때 나를 불안하게 하는 악한 영들이 물러가고 평안의 영이 임하게 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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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을유년 새해를 시작하는 여러분의 삶 속에서도 ‘우리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며 보호해주시며 푸른들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해주시는 사랑의 하나님, 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잊지 않고 날마다 주님을 예배하며 찬양하는 삶,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평안의 영, 회복의 영, 승리의 영이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둘째 비결은 고난의 때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ꡒ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파도와 물결이 나를 엄몰하도소이다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 인자함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ꡓ(시 42:7~9)
어떻게 불안과 두려움, 공포를 극복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다윗은 근심으로 인하여 큰 폭포 소리가 들리고 파도와 물결이 그를 침몰케 할 것 같이 느껴졌지만, 그래도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 밖에 없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할지라도 쉬지 말고 깨어서 기도한다면, 기도하는 사람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ꡐ내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내가 어떤 어려움 가운데 처했는가, 나에게 또다시 새로운 기회가 올 것인가.ꡑ를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요나서 2장 2~3절, 6절 말씀에 ꡒ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ꡓ라고 하였습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무엇을 했겠습니까? 어둡고 냄새나는 그 곳에서 3일 동안 주야로 부르짖고 기도하였습니다.
여러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하여도 기도는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간구할 수 있습니다. 기도까지 할 수 없다면 그것은 정말로 끝이지만 기도하는 순간부터 인생의 새로운 역사가 전개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빌립보서 4장 6~7절 말씀에 ꡒ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ꡓ고 하였습니다.
염려할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에 기도하십시오. 염려한다고 무엇이 해결되겠습니까? 밤새도록 잠도 자지 못하고 염려하고 근심하여도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기도하면 철야기도가 되고, 새벽기도가 됩니다. 근심으로 인하여 음식이 내키지 않을 때는 금식기도를 하면 됩니다. 기도는 여러분의 삶을 새롭게 변화시켜 줍니다.
누가 우리를 절망에서 구할 수 있습니까? 우리를 구할 수 있는 것은 기도 밖에 없습니다.
고난의 어두운 터널에 들어갔을 때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고 합니다. 먼저 부정적인 반응(Negative stroke)을 보이는 사람들은 분노하고 비관하고 원망함으로 좌절하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반응(Positive stroke)을 보이는 사람들은 겸손히 낮아지고 기도함으로 고난을 기회로 삼아 더 크게 성공하고 자신의 삶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립니다.
우리는 생각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긍정적으로 하여 가정과 직장과 사업장을 통해서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 121:2)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도와주심을 믿고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고 더 나은 삶을 살게 되고 발전과 성장을 해 나갈 수 있습니다.
독일의 마틴 부처(Martin Bucer ; 1491 ~1551)는 ꡒ슬픔 속에 있느냐? 기도하라. 핍박을 받고 있느냐? 기도하라. 어려움이 생겼느냐? 기도하라. 기도 밖에 할 것이 없다.ꡓ라고 말했습니다. 기도까지 못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러분이 어떤 어려움과 절망 가운에 처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사면초가가 되어 사방이 캄캄하게 막혔다 할지라도 하늘을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비결은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소리 높여 찬양하는 것입니다.
ꡒ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ꡓ(시 42:10~11)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또는 의식적으로 낙망과 불안이 닥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외에는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 없습니다.
다윗은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 나와서 찬송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찬송한다는 것을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감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뻐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것입니다.
시편 56편 4절 말씀에 ꡒ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ꡓ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을 만드시고 천지를 창조하시고 생사화복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기도하는 사람은 사람들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바울과 실라가 점치는 귀신이 들린 여종에게로 가서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그러자 그 여종의 주인이 자신의 이익이 떨어짐으로 인해 바울과 실라를 모함하여 고소를 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죄도 없는데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하였고, 홀연히 큰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리고 모든 사람들의 매인 것이 풀리고 간수가 찾아와 회개하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찬송은 기적을 가져옵니다. 기도는 응답을 가져옵니다. 캄캄한 감옥 속에 들어갔다 할지라도 좌절하거나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찬송하고 기도하면 지진을 통해서 감옥 문이 열리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여러분도 힘들고 어려울 때 불안하여 답답하고 마음이 아플 때 찬송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는 늘 편하다.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 (470장)
이런 찬송을 부르면 귀신과 병마가 물러갑니다.(삼상 16:23) 우리의 영혼이 새롭게 소생되며(시 22:26), 병 고침을 받습니다.(렘 17:14) 그리고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납니다.(행 16:
25~26)
일이 잘못되어 갈 때 일이 자꾸 꼬여 갈 때 하나님께 찬송하십시오. 찬송은 패배를 승리로 바꾸어 줍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함으로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찬송을 부르십시오.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면 하나님께서 실패를 성공으로, 패배를 승리로 바꾸어 주십니다.
로마 말기의 라틴교부학자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 354~430)는 ꡒ고통은 동일하나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동일하지 않다. 똑같이 고통을 당해도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악한 사람은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을 원망하고 비판하지만 선한 사람은 고통을 당할 때 겸손함으로 낮아지고 하나님을 찾고 감사하고 기도한다. 똑같은 바람이 불지만 오물은 더러운 냄새를 풍기고 꽃들은 향기로운 냄새를 풍긴다.ꡓ라고 말했습니다.
바람이 부느냐, 불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고통 가운데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보다도 그 사람이 거기에 대해 어떻게 대응을 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선한 사람에게는 선한 결과가 나타나고 악한 사람에게는 악한 결과가 나타납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의심의 열매를 맺게 되고, 믿음을 가진 사람은 담대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됩니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어느 가난한 지역을 대상으로 무료 건강진단을 실시했습니다. 총 200명의 사람들 중에 교회를 다니는 교인 100명과 불신자 100명이 건강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은 100명 중 40%가 병이 있는 환자였고, 불신자는 100명 중 80%가 환자였습니다.
교인들은 불신자보다 갑절로 건강을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유가 무엇인지 분석해보니 교인들은 교회 나가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첫째, 박수치고 찬송을 부르기 때문에 그 마음에 기쁨과 평화가 넘쳐서 스트레스가 풀리고 전신의 근육과 신경 운동을 하게 되므로 혈액순환이 잘 되니 건강하다고 합니다.
둘째, 교회 나가서 기도함으로 근심과 걱정, 속상함, 불안 등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에 울화병이 안 생기고 마음에 평강을 누릴 수 있어 건강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 믿는 사람들은 속상하다고 술 마시고 싸움을 하는 등 오히려 병을 더 크게 만듭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축복하심으로 건강하다고 합니다. 이 세상을 혼자서 고아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도움을 받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하고 믿음을 가지니 그 사람의 생활이 더 행복하고 성공하더라는 것입니다.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음에 불안이 있는 분들이 계십니까?
현실의 생활에서 낙심되는 일을 맞이한 분들이 계십니까?
오늘의 말씀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라는 말씀을 기억하시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가운데서 기도의 힘과 예수의 능력을 사용하여 역경과 절망의 담을 뛰어 넘어 믿음의 승리를 맛보며 행복한 삶, 건강한 삶,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