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20:4-11
어느 날 한 목사님이 새벽 기도회를 인도하기 위해서 집을 나섰는데, 그 날은 조금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애써 잡은 택시의 기사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도 없는데 신호등에 걸리면 마냥 서서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속이 타서 자기도 모르게 택시 기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ꡒ선생님, 길 건너는 사람도 없는데 그냥 지나갑시다. 제가 너무 급해서요.ꡓ 그러자 택시 기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ꡒ손님, 사람은 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보고 계십니다.ꡓ 이 한 마디에 그 목사님은 몽둥이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택시 기사와 같은 자세야말로 예수 믿는 사람이 법을 지키는 자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회는 절대적인 가치를 찾아보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 ꡒ너, 그거 하면 안 돼ꡓ 하고 말하면 열 명중의 아홉은 “세상이 다 그렇게 하는데 내가 그렇게 한다고 뭐가 잘못이냐.”고 대답할 것입니다. 소련의 대문호 솔제니친은 ꡒ세상 돌아가는 대로 이것도 선이요 저것도 선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가는 상상할 수 없는 무서운 재앙이 닥쳐올 것ꡓ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직한 의인으로서 제 구실을 감당한다면 사회가 아무리 부패하고 소망이 없어 보여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거짓으로 물들었던 우리의 영이 정직한 영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이 사회를 치료하여 살맛 나는 사회로 만들 능력을 입게 될 것입니다. - 「우리가 바로 살면 세상은 바뀝니다」/ 옥한흠
오늘 저는 Q.T 서적 ‘생명의 삶’ 4월호에 소개되어 있는 사사기 19장부터 마지막 21장까지 묵상하면서 본문에 나오는 레위인과 택시기사에게 찔림을 받는 목회자의 모습이 내모습이 아닐까?를 점검해보면서 “무너진 영성의 회복”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Ⅰ. 첩을 얻는 레위인
1. 처가댁에 도착한 레위인
때는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후의 일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아직 왕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스라엘은 강력하고 조직적인 중앙 집권식 사회 구조가 아닌 각 지파별로 유기적 연합의식을 가진 지방분권 시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이런 때에 에브라임 산지에 한 레위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레위인은 하나님의 성막을 잘 관리하고 섬기도록 구별된 지파의 사람들입니다. 그런 레위인 중에 한 사람이 첩을 두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결혼원리가 일부일처제 (一夫一妻制)(레 21:7) 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을 담당하고 있는 사역자가 첩을 두고 있었다는 것은 그의 삶은 물론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얼마나 타락하고 무질서한 생활이었던가를 한눈에 짐작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런데 이 레위인의 첩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신의 남편을 배신하고 타인과 행음한 후 친정 집으로 돌아가서는 4개월씩이나 머물고 있었습니다. 시리아 역은 그녀가 "그에게 오만해져" 혹은 "그를 경멸하여 행음하였고", 이에 대해 그가 불쾌히 여기자 "그녀는 그를 떠났다" 고 했습니다.
어떻든 레위인은 율법에 엄격히 금하고 있는 첩을 두었고 또 그 첩이 음행을 하고 떠났으니 사명자로서 얼마나 창피하고 부끄럽겠습니까? 온 동네가 창피하여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었을 텐데 불구하고 이 레위인은 첩의 품이 그리워 첩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사위의 갑작스런 방문을 받은 장인은 레위인 사위를 며칠동안 집안에 붙들어 두며 후하게 대접을 하였습니다. 당시의 관습으로 볼 때 처갓집을 방문한 사위는 대개 처갓집 식구들로부터 후하게 대접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더욱이 딸은 행음한 뒤 남편을 피해 도망하다시피 피신한 몸인지라 아마 사위에 대한 장인의 대우는 매우 극진하였을 것입니다. 따라서 장인은 가능하면 사위를 하루다도 더 붙들어 두며 딸과 화해시키기 위해 애썼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4일간을 장인 집에 머물며 계속하여 첩과 소일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섯째 날 드디어 귀향 길에 오릅니다.(8-10).
아마도 추측컨대 안식일 전에 도착하려고 한 모양입니다. 그래도 안식일은 지키고 싶었던 전형적인 종교인의 모습입니다. 아마 이번 주에는 꼭 가야 할 무슨 중요한 순서라도 맡았는가 봅니다. 이처럼 안식일은 '거룩한 척‘ 살고 평일은 '죄인의 모습’으로 사는 레위인, 그는 우리시대 그리스도인들의 예표입니다. 다시 말해 주일날 적당히 예배드려주고 헌금 내주고는 “나는 주일을 지켰다. 나는 크리스천이다.”하며 가증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 말입니다.
다섯 째날 저녁 뒤늦게 부랴부랴 출발한 레위인의 형식적인 신앙은 또 하나 더 발견됩니다.
첩과 종을 데리고 밤길을 떠난 레위인은 여부스 땅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아직 이방인의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레위인은 여기서 하룻밤 묵어가자는 종의 말에, "우리가 돌이켜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하지 아니한 외인의 성읍(11절)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니 기브아로 나아가리라."(12절)고 말합니다. 참으로 가증한 이중성의 모습입니다. 감히 이방인의 성에 들어가서 쉴 수 없다는 레위인의 말, 만약 그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그의 언행(言行)을 듣고 보았다면 감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 이스라엘 사람의 모습을 완전히 내팽개친 그가 족보와 가문을 붙들고 이방인과 선민을 구별하는 것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 외에는 달리 아무것도 없습니다.
2. 기브아 땅에 도착한 레위인과 첩
결국 이들은 베냐민 지파의 땅인 기브아에 이르지만 그들을 따뜻하게 반겨주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당시 호텔이나 여관 같은 것이 없었기에 나그네들이 이렇게 밖에 물건을 가지고 서 있으면 자신들의 처소로 불러들여 따뜻하게 쉬고 가도록 했으며 나그네들은 이에 감사의 성의 표시를 조금씩 하면서 사랑을 나누는 아름다운 미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타락과 외식, 겉치레로 일관된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미덕조차 보이지 않고 너무나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베냐민 지파 기브아 땅에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던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고 돌아오다가 이들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에브라임 산지 출신으로 자신도 타국에서 나그네의 설움을 겪었던 적이 있었기에 아무런 사심 없이 자신의 집으로 인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극진히 환대해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노인은 가축에게도 필요한 음식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3. 첩을 욕보이는 베냐민 사람들
그러나 타락한 베냐민 지파 기브아 땅의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노인의 집을 두드리며 “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를 상관하리라.”(22절)며 협박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지금 남색 즉 동성연애를 하자는 것입니다. 이렇듯 영적으로 타락한 시대입니다. 노인은 “자기에게 시집가지 아니한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 즉 이들을 욕보이라 하지만 이 사람에게는 망령된 일을 행치 말라.“(22절)며 타협을 요구하였습니다. 마치 창세기 19장에서 롯이 천사를 보호해주는 장면과 유사합니다. 만일 이 노인의 도움이 없었다면 제사장이 남색을 당하는 첫 사례가 되었을 것입니다.
결국 기브아 베냐민 사람들은 레위인의 첩을 윤간하고 죽임으로써 욕정을 채웁니다.
이들의 만행은 마치 소돔과 고모라의 타락사건(창19:1-11)과 똑같습니다. 악을 행하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나 인간에 대한 박애(博愛)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이른 아침 처절하게 윤간 당한 채 버려진 첩의 시신이 노인의 집 문 앞에 놓여있는 것을 본 레위인은 첩의 시신을 열두 토막을 내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보내었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기브아 사람들의 만행을 널리 알리면서, 자신의 보복에 합당함을 얻고자 함이요, 더 나아가 자신의 보복에 모든 지파가 참여하게 하기 위함입니다.(19:29)
하나님이 없는 사회, 영적 지도자가 타락한 시대의 극렬한 타락상을 봅니다.
Ⅱ. 위선과 거짓으로 시작된 총회
1. 흥분하는 이스라엘
레위인이 보낸 열두 조각 여인의 시체를 보고서 이 일에 대한 진상과 대책을 논의하고자 이스라엘 각지에서 미스바로 대표들이 모여들었습니다.(1,2절). 그들은 어느 한 집권자에 의해서 모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고자 하는 거룩한 열심으로 인하여 서로 동의하고 한 마음으로 뭉쳐 모이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사장 조차 돈에 팔려 다니며 우상을 숭배하고 축첩 하는 타락한 시대 속에서 무엇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그토록 많이, 그리고 한마음이 되어 모이게 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우상숭배와 적 가나안 사람들을 완전히 몰아내는 일에는 등한시하며 타락한 레위인의 자극적인 읍소에는 팔을 걷어붙이고 분노하며 달려드는 이스라엘 총회는, 생명력을 잃고 지엽적인 문제로 힘을 낭비하는 현대교회들의 그림자와 똑같습니다.
2. 망령된 일을 꾸짖는 레위인
이스라엘 12지파중 베냐민 지파는 배제된 가운데 미스바 총회에 모인 대표들이 레위인에게 “이 악한 일의 정형(情形)을 자세히 우리에게 고하라”(20:3)하자 레위인은 자기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돌아오지 않도록 교묘하게 자위적인 이야기를 하며 군중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7절)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레위인이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첩을 얻은 것에 대해서는 어찌 그렇게 관대한지 4절과 5절 그리고 6절에 계속해서 “내 첩을” 이야기하고 있는데도 이스라엘 어른들과 40만 군중 중 그 누구도 그것을 부끄러워하거나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 이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첩을 두고 있거나 사회상이 이런 잘못된 축첩제도를 관행으로 여기고 있던 것이 아니었는가? 생각됩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정작 타락한 레위인 자신이 기브아 사람들의 “음행과 망령된 일”을 성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행동이 우리의 현실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레위인 제사장의 고소(告訴)를 들은 이스라엘 총회의 대표들은 베냐민 지파를 찾아가서 기브아에 있는 비류들 즉 동성연애자들을 넘겨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자신들을 총회에서 임의로 빼버린 사실과 또 자신의 지파속에 동성연애자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민족적 자존심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스라엘 총회에서 보낸 대표들의 말을 순종하지 않고 거부하였습니다.
3. 이스라엘과 베냐민의 전쟁
베냐민 사람들의 거부사실을 들은 이스라엘 총회는 결국 베냐민 지파와 전쟁을 하기로 결의합니다. 첩을 가진 타락한 레위 제사장 한 사람으로 인해 촉발된 일이 이스라엘 연합군과 베냐민 지파의 싸움으로 치닫게 됩니다. 그리하여 40만이 넘는 이스라엘 연합군과 2만 6천명에 불과한 베냐민 지파와의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지만 악을 응징하기 위한 연합군과 지파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베냐민 지파의 싸움은 첫 번째 두 번째 싸움까지 놀랍게도 베냐민 지파의 승리로 끝납니다. 이스라엘 연합군은 첫 번째 싸움에서 22,000명의 사상자를 내었으며(21절), 두 번째 싸움에서는 18,000명이나 되는 사상자를 남긴 채 퇴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5절)
이렇게 두 번의 싸움에 대패한 이후 이스라엘 연합군들은 전쟁의 승패가 여호와 하나님께 있음을 알지 못하고(삼상17:47) 자기들의 숫자만을 믿었던 잘못된 확신과 교만에서 나온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교훈하기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한 것입니다.(잠16:18)
이스라엘 연합군들은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고백하며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자신들의 교만과 무지의 죄를 회개합니다. 나아가 그들은 베냐민 지파와 정말 싸워야 되는 것인지를 올바른 제사장 비느하스를 통해 겸손히 하나님께 물었습니다.(28절)
이렇듯 전쟁에서 두 번의 연속된 패배는 이스라엘을 겸손케 했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세 번째 전쟁에서 매복과 유인의 방법으로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더욱이 삿 20장 35절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베냐민을 쳐서 파하게 하시매 당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사람 25,100(이만오천일백)명을 죽였으니 다 칼을 빼는 자이었더라.”는 고백을 통해 베냐민과 싸운 것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그들 앞에 서신 “여호와 하나님”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성도는 내 힘을 의지하고 그 힘으로 승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임을 잊지 말고 겸손히 주를 의지하며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Ⅲ. 왕이 없는 사람들의 혼돈 된 삶
1. 더럽혀진 결혼제도
전쟁을 마친 후 재차 소집된 미스바 총회에서 이스라엘 지파 연합은 “ 우리 중에 누구든지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21:1)고 맹세하였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전쟁에 대하여 후회를 합니다. 그 이유는 베냐민 지파를 징벌할 때에 광야로 도망한 용사 600명 외에는 여자와 아이까지 모두 진멸하다보니 이스라엘 열두 지파중 한 지파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입니다. 가나안 족속을 완전 멸망시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서는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종족을 멸망시키는 일에 대해서는 너무나 과격했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의 선민 정체성에 다가오는 위기를 느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앉아서 대성통곡하였습니다.
2. 여인의 보쌈사건
이튿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베냐민 지파를 회복하자는 데에 동의(同意)를 합니다. 하지만 베냐민 지파의 대를 이어갈 여자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또다시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을 죽이고 포획한 처녀 4백명을 베냐민 사람들에게 줍니다. 그러나 광야로 도망하여 살아남은 베냐민의 숫자는 6백명인지라 2백명이 더 모자랐습니다. 이에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이스라엘 장로들은 여호와의 절기에 춤추러 나오는 실로(에브라임)의 딸들을 베냐민 사람들이 직접 납치하라고 제안을 합니다. 그들은 베냐민 지파에 딸을 주지 않겠다는 맹세로 인해 마음의 부담을 가진 사람들과 딸을 유괴 당한 부모에게는 그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이루어진 일이니 부담 갖지 말라고 권면 하겠다며 여인의 보쌈(납치)을 적극 권장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법궤가 보관된 성막이 있는 실로에서 일년에 세 차례(유월절, 칠칠절, 장막절) 절기를 지킬 때에 짝을 찾지 못한 200명의 베냐민 생존자들은 이스라엘 처녀 200명을 납치하기에 이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세우신 신성한 결혼 제도가 강제성과 납치, 강간 등으로 더럽혀진 것은 악하고 혼란스럽던 사사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성경은 이러한 패역한 일이 일어난 이유를 사사기 마지막 25절에 “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의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는 말로 정의합니다
왕이 없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을 왕으로 섬길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을 갖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려하고 하나님의 말씀보다 육신의 쾌락과 안일 유익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려는 제사장과 성도들의 모습이 사사시대의 심판과 멸망을 교훈 삼아 하나님의 말씀 안에 바르게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정신나간 레위인과 사사기가 던져주는 최대의 교훈입니다.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잘못된 레위 제사장 한 사람으로 인해 기브아에 있는 수많은 베냐민 사람들이 죽고 또 사라질 뻔한 베냐민 지파를 다시 살리기 위해 죄 없는 길르앗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뒤이어 하나님의 성전 실로에서 절기에 여인들이 보쌈을 당하는 그런 흉측한 모습들이 전개된 모든 일련의 일들이 하나님이 그 마음에 없이 자기의 소위 즉 생각과 정욕을 따라 행동하던 시대의 특징이었던 것처럼 지금 우리들의 마음속에 예수님의 성령이 없다면 그리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말씀을 적용하려는 순수하고 진솔한 삶이 없다면 아무리 능력이 많은 목회자와 오랫동안 예수를 믿은 성도라 할지라도 쉽게 죄악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생활 예배 생활을 등한시함으로 내게 일어난 위선적이고 이율배반적인 행동들에 대하여 점검해보며 그것을 극복하고 올바른 성도의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회개하며 금식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통해 믿음으로 다시금 우리의 무너진 영성을 회복하며 늘 찬양의 성도로서 하나님의 용사로서 다시금 힘있게 일어설 수 있는 역사가 있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