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랄프 왈도 에머슨  (2010-01-28 오후 2:14:03, 조회 : 2120)
출판사  
  끌레마 

제목  

  스스로 행복한 사람



스스로 행복한 사람
랄프 왈도 에머슨 지음
끌레마 / 2009년 12월 / 200쪽 / 11,000원

▣ 저자 랄프 왈도 에머슨 
1803년 미국 보스턴의 신앙심 깊은 목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버드대 신학부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었으나, 1932년 사임하고 미국과 유럽 등지를 떠돌며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너새니얼 호손, 토마스 카라일 등 당대의 문인들과 친분을 맺었다. 이후 동양철학의 영향을 받아 내부의 정신적 자아가 외부의 물질적 존재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초절주의 운동의 선구자가 되었다. 에머슨이 없었다면 진정한 의미의 미국 문학은 탄생할 수 없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미국 문학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그가 제시한 ‘자기믿음’과 ‘민권’의 개념은 지금도 미국 시민들의 의식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저서로 『자연론』을 비롯해 『제1수필집』, 『제2수필집』, 『대표적 위인론』, 『사회와 고독』 등이 있다. 

▣ 역자 박윤정 
한림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사람은 왜 사랑 없이 살 수 없을까』, 『그렇다고 생각하면 진짜 그렇게 된다』, 『디오니소스』, 『달라이 라마의 자비명상법』, 『틱낫한 스님이 읽어주는 법화경』, 『식물의 잃어버린 언어』, 『생활의 기술』, 『생각의 오류』, 『플라이트』, 『유모차를 사랑한 남자』, 『만약에 말이지』 등이 있다. 

▣ Short Summary
문명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심리적인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린다. 미국 문화의 정신적 기둥을 세운 사상가 시인 랄프 왈도 에머슨은 삶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과 답변으로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고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를 전한다. 랄프 왈도 에머슨의 저서들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 전 세계의 사랑을 받은 뮤지션 마이클 잭슨 등의 애독서로 꼽히며 사랑받아왔다. 이 책은 이백 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아온 랄프 왈도 에머슨의 잠언을 소개하는 책으로 깊이 있는 통찰과 감동이 전해지는 가르침을 전한다. ‘나를 구원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인생을 미루지 말고 오늘을 살아라.’, ‘자연은 인간의 거울이다,’ 등 시대를 넘어 지혜를 전하는 에머슨의 가르침은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힘을 발견하고 발휘할 수 있는 힘을 전한다. 

▣ 차례
추천글
1장 마음이 주인이다
2장 비워야 채워진다
3장 행복이라는 선물은 받을 줄 아는 자의 몫이다
4장 자신의 삶을 주 교재로, 책은 주석으로
5장 그저 아는 것이 진리이다
6장 자연은 영혼을 치유하는 병원
옮긴이의 글



1장 마음이 주인이다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은
나의 재능이 아무리 하찮고 보잘것없어도, 나는 지금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확신을 얻기 위해서 혹은 동료들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서 나에 대해 어떤 부차적인 증명도 할 필요가 없다. 내가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이것은 일상생활에서나 영적인 삶에서나 똑같이 어렵지만, 중요한 것과 하찮은 것을 구분하는 훌륭한 기준이 되어준다. 세상의 견해를 좇아 사는 것은 쉬운 일이다. 홀로 자신의 생각만을 좇아 사는 것도 쉽다. 그러나 위대한 사람은 군중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더 없이 온화하게 독립적이고 우아한 삶을 유지한다. 

위대한 영혼은 모두 오해를 받았다
어리석은 일관성은 좁은 정신에서 나오는 허깨비 같은 것이다. 소심한 정치가와 철학자, 신학자들이나 이런 허깨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위대한 영혼에게 어리석은 일관성은 아무 의미도 없다. 그것에 얽매이느니 벽에 어른거리는 자신의 그림자에 신경 쓰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오늘 생각한 것을 오늘 분명하게 말하라. 그리고 내일은 내일 생각한 것을 분명하게 말하라. 오늘 한 말과 모순될지라도 그렇게 하라. 그러면 오해를 받을 게 분명하다고? 그런데 오해를 받는 게 그렇게 안 좋은 일인가? 피타고라스, 소크라테스, 예수, 루터,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뉴턴은 모두 오해를 받았다. 지금까지 존재했던 사람들 중에서 순수하고 지혜로운 영혼들은 모두 오해를 받았다. 

그대 자신으로 살아라
나는 부모를 봉양하고,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고, 한 사람의 충실한 남편이 되고자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전에 없던 새로운 방식으로 이런 관계들에 충실할 것이다. 나는 당신들의 관습에 따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이 될 것이다. 나는 당신들을 위해서 더 이상 나 자신을 길들일 수 없고 당신들도 그렇게 할 수 없다. 당신들이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면 우리는 더욱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들이 그럴 수 없다 해도 나는 당신들이 마땅히 그렇게 하도록 변함없이 노력할 것이다. 나는 내가 싫어하는 것이나 좋아하는 것도 숨기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마음 깊은 곳에 성스러움이 숨어 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내 안에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있을 때마다, 가슴이 시키는 일이 있을 때마다 그것이 무엇이든 맹세코 열심히 할 것이다. 당신이 고귀하다면 난 당신을 사랑할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위선적인 애정으로 그대와 나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이 진실하기는 해도 나와 같은 진리를 품고 있지 않다면 당신 자신의 친구를 찾아가라. 나는 내 자신의 친구를 찾을 것이다. 이것은 이기심이 아니라 겸허하고 진실한 마음에서 하는 말이다. 아무리 오랫동안 거짓 속에서 살았더라도 당신과 나 그리고 모든 인간이 궁극적으로 관심을 갖는 것은 진실 속에서 사는 것이다. 

우리는 홀로 설 수 있고 홀로 서야 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의지하는 버드나무가 아니다. 우리는 홀로 설 수 있고 홀로 서야만 한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면 그 속에서 새로운 힘이 생겨난다. 우리는 신의 말씀을 대변하는 존재이며 세상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태어났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것에 의존하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법률과 책과 우상과 관습들을 창밖으로 내던지고 자기 생각에 따라 당당하게 행동하라. 그러면 사람들은 더 이상 우리를 동정하지 않고 오히려 고마워하고 존경할 것이다. 이런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야말로 인간의 삶에 빛을 되찾아주고, 인간의 이름을 모든 역사에 길이 남길 것이다. 

그대 안의 작은 거장을 존중하라
우리는 시인이나 현자가 보여주는 천상의 광휘를 찾는 대신 우리 내면으로 시선을 돌려, 우리 안에 있는 반짝이는 불빛들을 알아보고 관찰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의 생각이 자신의 것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무시해버린다. 그러다가 자신이 무시한 자신의 생각을 천재들의 작품에서 발견하게 된다. 자신의 생각이 가까이 할 수 없는 위엄을 안고 우리에게 되돌아온 것이다. 위험한 예술 작품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가장 감동적인 교훈은 이런 것이다. 사람들이 온통 반대편에서 소리칠 때일수록, 자신의 자연스러운 느낌을 흔들림 없이 고수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일 어느 낯선 사람이 나타나 우리가 항상 생각하고 느껴왔던 것을 제법 아는 척하며 그럴 듯하게 말하고, 우리는 결국 부끄러운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통해 우리 자신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대의 마음이 모두의 마음이다
오, 믿어라. 그대가 들어야 할 말이 있다면 반드시 그대의 귓가에 울릴 것이다! 모든 속담, 모든 책, 모든 격언 중에서 그대에게 위안이 되고 도움이 되는 말은 직접적으로든 우회적으로든 그대에게 다가올 것이다. 그대가 담대하고 부드러운 가슴으로 좋아하는 모든 친구들이 그대를 품에 안을 것이다. 그대의 마음이 모두의 마음과 같기 때문이다. 자연 어디에도 문이나 담장, 경계선은 없다. 마치 지구의 물이 전부 하나의 바다를 이루고, 자세히 보면 썰물과 밀물이 하나인 것과 같은 이치이다. 

공부가 주는 몇 가지 깨달음
공부를 해나가다 보면 누구나 한 번은 이런 확신이 들 때가 있다. 질투는 무지의 결과이고, 모방은 자살행위이며, 좋든 싫든 자신에게 주어진 몫은 자기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광활한 우주가 좋은 것들로 가득 차 있어도, 자신에게 맡겨진 땅 한 뙈기를 스스로 애써 경작하지 않으면 곡식 한 알도 얻을 수 없다. 우리 안에 깃들어 있는 힘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우리 자신 말고 아무도 알 수 없고, 우리도 시도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그대의 진짜 운명을 받아들여라
자기 자신을 믿어라. 그러면 그대 마음속의 단단한 현(絃)이 모든 사람의 가슴을 울릴 것이다. 신의 섭리가 그대를 위해 마련해둔 자리, 동시대인으로 구성된 사회와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연결고리를 받아들여라. 위대한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게 해왔고, 어린아이처럼 순순히 시대정신에 자신을 내맡겼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속에 절대적으로 신뢰할 만한 것이 있고, 그것에 따라 행동하며, 그것이 자신의 존재 자체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우리도 가장 고차원적인 정신으로 그와 같은 초월적인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병약자나 미성년자처럼 안전한 곳에 숨어 있거나, 혁명 직전에 도망치는 겁쟁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신의 의지에 따라 혼돈과 암흑을 무찌르러 진격하는 지도자이자, 구원자, 베푸는 자가 되어야 한다. 


먼저 그대 자신에게 정직하라
사회는 일종의 주식회사와 같다. 사회 구성원들은 자신의 빵을 좀더 확실히 보장받는 대가로 자신의 자유와 문화를 포기하는 것에 동의한다. 이런 사회가 가장 많이 요구하는 덕목은 영합이고, 자기 믿음은 혐오의 대상이 된다. 이런 사회는 본질과 창조성이 아니라, 명목과 관습을 좋아한다. 참다운 인간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영합을 거부해야 한다. 영원한 승리를 구하는 자는 이름뿐인 선(善)에 흔들리지 말고 그것이 진정으로 선인지 따져보아야 한다. 궁극적으로 신성한 것은 자기 자신에게 정직한 것이다. 먼저 그대 자신에게 결백을 선언하라. 그러면 세상이 그대를 인정할 것이다. 

장미와 인간
내 방 창문 밑에 핀 장미는 이전에 피었던 장미에 대해서, 자기보다 아름다운 장미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 존재할 뿐이다. 신과 더불어 오늘을 산다. 그러므로 장미에게 시간이라는 것은 없다. 다만 장미가 있을 뿐이다. 존재하는 어느 순간에도 장미는 완전하다. 잎눈이 트기 전에 이미 장미의 온 생명이 활동한다. 꽃이 만개한다고 더 많은 생명이 활동하는 것도 아니고, 잎이 다 떨어지고 뿌리만 남았다고 그 활동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어느 순간에나 한결같이 장미의 본성은 만족을 느끼고 자연을 만족시킨다. 그러나 인간은 행복을 미래로 미루거나 과거의 추억 속에서 산다. 현재에 사는 법을 모른다. 과거를 돌아보며 슬퍼하고, 지금 자신을 에워싼 풍요에서 눈을 돌리고, 발꿈치를 치켜세운 채 미래를 내다본다. 장미처럼 시간을 초월해서 자연과 더불어 현재에 살지 않는다면 인간은 행복할 수도, 강해질 수도 없다. 

2장 비워야 채워진다

배타심은 소외를, 무시는 무시를 낳는다
버크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작은 자만심이라도, 자만심을 가진 자는 그로 인해 반드시 피해를 입는다.” 사람들과 친분을 나누는 데 배타적인 사람은 저 혼자만 즐거움을 누리려다가 도리어 자신을 더욱 소외시키게 된다. 종교적인 배타주의자는 다른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방해한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자신이 들어갈 천국의 문도 닫아버린다. 다른 사람을 장기의 졸이나 구주희(공을 굴려 아홉 개의 핀을 쓰러뜨리는 경기)의 핀처럼 취급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도 같은 꼴을 당한다. 상대의 마음을 무시하면, 우리 자신의 마음도 무시당한다. 

불편한 거래
세상일에 경험이 풍부한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땅한 부담을 지불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며, 하찮은 것을 아끼려다가 때로 더 큰 손해를 본다는 것을 잘 안다. 채무자란 결국 자기 자신에게 빚을 지는 사람이다. 백 가지 은혜를 입고 하나도 보답하지 않는 사람이 과연 어떤 이득을 볼 수 있겠는가? 게으름을 부리며 간교한 지혜로 이웃의 물건과 말, 돈 등을 빌려 쓰는 사람이 과연 어떤 이득을 보겠는가? 빌리는 즉시, 한쪽에서는 은혜를 베풀었다는 생각이 생겨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은혜를 받았다는 생각이 생겨난다. 다시 말해 우월한 자와 열등한 자가 생기는 것이다. 이런 거래는 두 사람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새로운 거래가 있을 때마다 그 거래의 성격에 따라 이들의 관계도 달라진다. 이로 인해 우리는 ‘공짜로 얻는 물건보다 더 비싼 것은 없다’라는 것을 깨닫는다. 

도둑과 사기꾼은 멀리 있지 않다
도둑질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서 훔치는 것이고, 사기는 결국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노력의 진정한 가치는 앎과 덕이고, 부나 명예는 그 표시에 불과하다. 이 표시는 지폐와 같아서 위조를 할 수도 없고, 도둑을 맞지도 않는다. 앎과 덕은 마음에서 우러난 진정한 노력과 순수한 동기가 있어야만 성취할 수 있다. 아무리 애써도 사기꾼이나 채무 불이행자, 도박꾼 같은 사람들은 정직한 사람들이 성실하게 노력해서 얻는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일하라, 그러면 힘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일하지 않는 자는 힘을 얻을 수 없다. 

비난이 칭찬보다 안전하다
비난이 칭찬보다 안전하다. 나는 언론의 지지를 받는 것을 싫어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나에게 불리한 말을 듣는 동안에는 성공할 것 같은 확신이 든다. 그러나 꿀처럼 달콤한 칭찬의 말을 들으면, 아무런 대책 없이 적 앞에 나선 사람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굴하지 않는 한 모든 해악은 은인과 같다. 샌드위치 섬의 토인들은 그들이 죽인 적의 힘과 용기가 자신들에게 옮겨온다고 믿었다. 마찬가지로 칭찬의 유혹에 저항하는 만큼 우리의 힘은 강해진다. 

자연은 독점과 예외를 싫어한다
하나의 지혜가 있으면 반드시 하나의 어리석음이 있다. 잃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얻는 것이 있고,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 부가 증가하면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도 증가해야 한다. 수확하는 사람이 지나치게 많이 거두어들이면, 자연은 그가 곳간에 쌓아둔 만큼 빼앗아간다. 인간이 지나치게 재산을 불리면, 자연은 그 소유주를 죽인다. 자연은 독점과 예외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영혼의 성장만이 진정한 이득이다
미덕으로 인한 이득에는 아무런 부담도 없다. 그러나 물질상의 이득에는 대가가 따른다. 아무런 공도 노력도 없이 얻은 이득이라면, 나에겐 이득을 볼 아무런 근거가 없다. 따라서 이런 이득은 어느 날 바람이 불면 날아가버리고 만다. 나는 노력하지 않은 이득이 저절로 굴러들어오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반드시 새로운 부담이 뒤따르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보상의 이치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것, 내 것이 아닌 보물은 바라면 안 된다는 것을 아는 데에는 아무런 대가도 따르지 않는다. 나는 이런 마음으로 고요히 영원의 평화를 즐긴다. 

3장 행복이라는 선물은 받을 줄 아는 자의 몫이다

무관심의 지혜
어떤 생활방식이나 행동양식에도 반대 의견은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곳곳에서 부딪히는 반대 의견 앞에서도 무심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가장 현실적인 지혜 가운데 하나이다. 쓸데없는 생각으로 자신을 망치지 말고, 어디에 있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삶은 철학적인 것도, 비평적인 것도 아니다. 오로지 강인한 것이다. 인생에서 최고의 행복은 자신이 찾아낸 것을 의심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사람, 세상과 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다. 

인생을 미루지 말고, 오늘을 살아라
요즘 젊은이들은 처음 일을 시작해서 실패하면 완전히 낙담한다. 만약, 젊은 상인이 사업을 하다 실패하면 주위 사람들은 그의 인생이 끝났다고 말한다. 아주 뛰어난 젊은이가 졸업 후 일 년 안에 보스턴이나 뉴욕 같은 대도시에서 직장을 얻지 못하면, 그는 물론이고 그의 친구들도 크게 낙심하여 그가 나머지 인생을 불평 속에서 보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뉴햄프셔나 버몬트 같은 시골 출신의 강인한 젊은이는 인생의 온갖 일에 도전한다. 짐을 나르고, 농사를 짓고, 행상을 하고, 학교를 운영하고, 설교를 하고, 신문을 편집하고, 의회에도 진출하고, 대지주가 된다. 여러 가지 일을 하는 동안 역경이 닥쳐와 벼랑으로 굴러 떨어져도, 그는 언제나 고양이처럼 사뿐히 착지한다. 이런 젊은이는 도시의 연약한 젊은이 수백 명보다 더 가치 있다. 그는 시대와 나란히 보조를 맞추어 걷고, 하나의 특별한 능력을 갖지 못한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미루지 않고 오늘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단 한 번의 기회가 아니라 수백 번의 기회가 있다. 

위선은 모든 관계를 망친다
개개인의 본성은 그와 동시대인들의 성격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나의 옳고 그름은 그들의 옳고 그름도 된다. 나는 내게 맞는 일을 하며, 내게 맞지 않은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웃과 생각을 맞추며 시대가 나에게 요구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내게 주어진 일도 제대로 못 하면서 이웃들에게 지시하려 든다면, 나는 진리에서 벗어나 그들과 거짓된 관계를 맺게 된다. 이웃이 나보다 수완이 없고, 능력도 모자라며,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거짓이며, 그 거짓은 나와 내 이웃의 관계를 망친다. 자연과 사랑은 이런 뻔뻔한 태도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런 방법으로 타인을 지배하려는 것은 여러 통치방식 중에서도 가장 사악하고 가장 잘못된 것이다. 

자연스러운 것이 아름답다
고전 비극, 아니 모든 고전 문학의 중요한 매력은 등장인물들이 소박하게 말한다는 것이다. 심사숙고하는 것이 마음의 지배적인 습관으로 자리 잡기 전에, 훌륭한 지각을 가졌으면서도 그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대의 양식을 찬미하는 것은 그 예스러움이 아니라 자연스러움 때문이다. 그리스인은 사색적인 사람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완벽한 지각과 건강,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신체구조를 갖고 있었다. 어른들도 아이처럼 꾸밈없고 아름답게 행동했다. 그들은 꽃병을 만들고, 비극을 만들고, 조각상을 만들었다. 모두 건강한 감각으로 만든, 멋이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부자의 참된 의미
부자란 수입과 지출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지출이 수입보다 적고, 이런 상태를 꾸준히 유지하는 사람을 말한다. 

4장 자신의 삶을 주 교재로, 책은 주석으로

자신의 삶을 주 교재로, 책은 주석으로
배우는 자는 역사를 능동적으로 읽어야지 수동적으로 읽으면 안 된다. 자기 자신의 삶을 주요 교재로 삼고, 책은 주석처럼 이용해야 한다. 그러면 역사의 여신이,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결코 내리지 않는 신탁을 그에게 줄 것이다. 먼 옛날 널리 이름을 떨친 사람들이 한 일이 오늘날 자신이 하고 있는 일보다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역사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다. 배우는 자는 자기 자신의 몸속에 온 역사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당당히 집에 앉아, 자신이 세계의 어떤 나라 어떤 정부보다도 위대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배우는 자의 조건
배우는 자는 자유로워야 한다. 자유롭고 용감해야 한다. ‘자신의 본성에서 우러나지 않는 한 어떤 속박도 받지 않는다’라는 자유의 정의에 따라야 한다. 또한 용감해야 한다. 배우는 자라면 마땅히 공포를 버려야 한다. 공포는 언제나 무지에서 솟아난다. 위험한 시기에 자신은 보호받는 계층이라고 생각하고 두려움을 회피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또한 타조처럼 꽃이 만발한 숲에 머리를 숨기거나, 두려움을 잊고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 휘파람을 부는 아이처럼 시를 읊조리면서 일시적으로 평화를 구하고자 하는 것 역시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위험은 여전하고, 두려움은 우리에게 더욱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배우는 자는 당당하게 돌아서서 두려움을 직면해야 한다. 두려움의 눈을 들여다보고, 본성을 탐색하며, 근원을 살펴야 한다. 바로 앞에서 두려움이라는 사자가 새끼를 낳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한다. 그러면 두려움의 본성과 영역을 완전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창조적인 독서와 창조적인 가르침
마음이 배우고자 하는 열정과 창의력으로 긴장해 있으면, 어떤 책을 읽든 모든 페이지에서 다양한 암시를 받고 정신이 명료해진다. 모든 문장은 두 배의 의미로 다가오고, 저자의 식견도 세계만큼이나 광대하게 느껴진다. 눈이 밝은 사람은 플라톤이나 셰익스피어의 책에서 아주 적은 부분만 읽는다. 신의 참된 말씀이 적혀 있는 부분만 읽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현명한 사람도 꼭 읽어야 할 독서의 영역이 있다. 역사와 정밀과학은 애써 읽고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마찬가지로 학교도 필수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 읽기, 쓰기 같은 기초적인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학교가 숙달이 아닌 창조를 목적으로 가르칠 때에만 도움이 된다. 사상과 지식은 본질적인 것이라서, 그것을 얻는 데 제도나 형식 같은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오히려 그 속에 빠져서 창조성을 잃어버린다면, 화려한 교수복이나 황금의 도시를 쌓을 만한 기부금으로도 지혜 넘치는 말 한 마디, 문장 하나 만들어낼 수 없다. 이러한 점을 잊으면, 대학은 해마다 재산을 늘려도 사회적인 중요성은 점차 잃어갈 것이다. 

모든 길은 마음으로 통한다
고대 로마에서는 제국의 군대가 쉽게 진입할 수 있도록 광장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도로를 놓았다. 그리고 그 도로가 제국 내 모든 지방의 중심을 지나 페르시아와 스페인, 브리튼의 각 소도시까지 연결되게 하였다. 마찬가지로 외부의 대상을 인간의 영향력 아래 놓기 위해, 인간의 마음에서 모든 자연물의 중심에까지 큰 길이 뻗어 있다. 인간은 모든 관계들의 다발이자 모든 뿌리들의 덩이이며, 이 다발과 덩이에서 꽃이 피어나 결실을 맺은 것이 세계이다. 인간의 모든 능력은 외부의 자연과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가 살고자 하는 세계를 예견한다. 

사람이 부패하면 언어도 부패한다
사람이 부패하면 그와 더불어 언어도 부패한다. 사람들은 새로운 표현을 창조하지 않고, 낡은 언어를 악용해서 실재하지도 않은 사물들을 표현한다. 금고 안에 금덩어리가 없으니 지폐를 통용시키는 것과 같다. 머지않아 이런 기만은 드러나고, 언어는 우리의 지성이나 감성을 자극하는 힘을 완전히 상실한다. 하지만 현명한 사람은 부패한 말씨를 간파하고, 언어를 다시 눈에 보이는 사물과 연결시킨다. 그러므로 생생한 언어는 그것을 쓰는 사람이 진리는 물론이고 신과도 하나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이다. 

5장 그저 아는 것이 진리이다

그저 아는 것이 진리이다
아이들을 다룰 때 나의 라틴어나 그리스어 실력, 나의 업적, 나의 돈 같은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나의 영혼만이 도움이 될 뿐이다. 내가 고집이 세면, 아이도 똑같이 나에게 고집을 부린다. 그러면 난 부끄럽게도 완력을 이용해서 아이를 때리게 된다. 하지만 내가 고집을 버리고, 영혼의 소리에 따라 움직이고 영혼을 우리 둘 사이의 심판관으로 삼으면, 아이의 눈에서도 똑같은 영혼이 빛을 발한다. 나와 더불어 존경과 사랑으로 충만해진다. 우리는 진리와 마주하면, 즉시 그것이 진리임을 알아차린다. 회의적인 사람이나 냉소적인 사람들이 뭐라 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듣기 싫은 소리를 들으면 이렇게 묻는다. “그것이 진리라는 것을, 당신 말이 맞다는 것을 어떻게 알죠?” 그러나 진리를 보았을 때, 우리는 그것이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진리임을 안다. 우리가 눈을 떴을 때 자신이 눈을 뜨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가장 황홀한 순간
신의 뜻이 우리의 마음속으로 흘러드는 것. 이것이 바로 영적인 소통이다. 이것은 생명이라는 바다의 출렁이는 파도 앞에서 개인의 작은 흐름들이 썰물처럼 물러나는 것과 같다. 우리가 새로운 진리를 받아들일 때, 위대한 행동을 할 때, 자연의 심장에서 비롯된 전율이 우리의 가슴을 관통한다. 이런 영적인 소통 속에서 나오는 힘은 행동하는 의지와 분리되지 않는다. 이 힘에 순종할 때 통찰이 생기고, 순종은 환희에 찬 인식에서 비롯된다. 이런 영적인 소통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야말로 가장 황홀한 순간이다. 

스스로 행복한 사람
겸양과 정의, 사랑, 열망을 가진 사람은 이미 과학과 예술, 말과 시, 활동성과 우아함 같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단상에 서 있는 것이다. 정서적으로 더 없이 행복한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높이 평가하는 특별한 능력이나 재주를 이미 갖고 있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 처녀에게는 연인이 능력도, 기술도 없다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과 같다. 더 없이 높은 정신에 스스로를 내맡긴 사람은 절대자의 모든 일에 자신이 관련되어 있음을 깨닫고, 아무런 두려움 없이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특별한 앎과 힘에 도달하게 된다. 

사물을 자신의 생각에 맞추는 사람, 자신의 생각을 사물에 맞추는 사람
감각적인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사물에 맞춘다. 반면에 시인은 사물을 자신의 생각에 맞춘다. 전자는 자연이 뿌리 박혀 고정된 것이라고 보는 반면, 후자는 자연을 유동적인 것으로 보고 자연 위에 자기의 존재를 새긴다. 그래서 감당하기 힘든 세계도 시인에게는 부드럽고 다루기 쉬운 곳이 된다. 시인은 먼지나 돌에도 인간성을 부여해서, 그것을 이성의 언어로 만든다. 그러므로 상상력은 이성이 물질계를 이용하는 수단이라고 할 수도 있다. 셰익스피어는 자연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능력이 어느 시인보다도 탁월했다. 그는 제왕 같은 시혼(詩魂)으로 삼라만상을 마치 장난감처럼 이 손에서 저 손으로 던지며, 그의 마음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상상들을 표현하는 데 이 장난감을 이용했다. 

영혼은 능력이 아니라 능력의 주인이다
몽상의 순간에, 후회의 순간에, 열정의 순간에, 경악의 순간에 일어나는 일을 깊이 생각해보면, 이따금 우리가 가면을 쓴 모습으로 나타나는 꿈의 교훈을 잘 생각해보면, 자연의 비밀을 분명하고 폭넓게 깨닫게 해주는 여러 가지 암시들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모든 것은 인간 내면의 영혼이 하나의 기관이 아니라 다른 모든 기관들에 생기를 불어넣고 작동시켜주는 것임을 보여준다. 영혼이 기억력이나 계산력, 비교력 같은 능력이 아니라는 것을, 그 모든 능력들을 손이나 발처럼 이용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영혼이 하나의 능력이 아니라 빛이라는 것을, 지능이나 의지가 아니라 지능이나 의지를 부리는 존재라는 것을, 모든 것들을 포옹하는 존재의 기반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소유되어지지 않고 소유되어질 수도 없는 무한이 영혼임을 보여준다. 

힘은 변화의 순간 속에 있다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이 의미 있을 뿐, 과거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활동을 멈추고 휴식하는 순간 힘은 사라진다. 힘은 우리가 과거로부터 새로운 상태로 옮겨가는 순간에 소용돌이 속으로 뛰어들고 목적을 향해 돌진하는 순간에 존재한다. 세상은 영혼이 변화 과정에 있다는 사실을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과거의 가치를 영원히 훼손시키고, 모든 부를 빈곤으로 바꾸고, 모든 명성을 치욕으로 만들고, 성자와 악한을 혼동하며, 예수와 유다를 똑같이 내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자기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일까? 영혼이 존재하는 이상, 거기에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른 것에 의존하는 힘이 아니라 ‘스스로 활동하는 힘’이다. 

6장 자연은 영혼을 치유하는 병원

소리 없는 시계
주의 깊은 사람의 눈으로 보면, 일 년의 모든 순간이 특유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평범한 들판에서도 어떤 사람은 매시간 지금까지 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풍경을 본다. 하늘이 매 순간 변화하며, 그 빛과 그림자를 들판에 비추기 때문이다. 주위의 논밭에서 자라는 곡식들의 상태도 매주 들판의 표정을 변화시킨다. 여름 날 목초지나 길가에 줄지어 있는 토종식물들은 시간을 알려주는 소리 없는 시계가 된다. 예리한 관찰자는 이들을 보며 하루 중 어느 때인지를 알아낸다. 이렇게 시간을 잘 지키는 식물들처럼 새나 곤충들도 그들의 시간을 엄중히 지키고, 일 년은 이들 모두를 기꺼이 품어 안는다. 

아름다움과 예술
신성한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모든 선은 영원히 재생된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삭막한 관조가 아니라 새로운 창조를 통해 우리의 마음속에서 재현된다. 모든 사람은 세계의 아름다움에 어느 정도 감명을 받는다. 그중에는 희열을 느낄 만큼 강하게 감명을 받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이 바로 취향이다. 또한 아름다움을 유달리 사랑해서 그것을 찬탄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형식으로 그 아름다움을 담아내려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이 바로 예술이다. 

세상에 홀로 아름다운 것은 없다
자연은 근본적으로 모두 닮았으면서도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형상들의 바다이다. 나뭇잎 하나, 햇빛 한 줄기, 풍경 한 폭, 대양 등은 모두 우리의 마음에 비슷한 감동을 준다. 이 모든 형상의 공통점, 즉 완전함과 조화가 바로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의 표준은 모든 자연 형상, 자연의 총체이다. 이탈리아인은 아름다움을 ‘하나 속에 들어 있는 다수’라고 정의한다. 어떤 것이든 홀로 아름다운 것은 없다. 전체 속에 있을 때에만 비로소 아름다울 수 있다. 

자연이 위대한 이유
대기가 투명한 것은 수많은 별들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에게 숭고미를 느끼게 하기 위함이다. 도시의 거리에서 바라볼 때, 이 별들은 얼마나 위대해 보이는가! 별이 천 년에 하룻밤밖에 보이지 않는다면, 인간은 별을 얼마나 열렬히 찬미하고 의지할까? 얼마나 많은 세대를 거치며 신의 찬란한 도시에 대한 기억을
본 도서요약본은 원본 도서의 주요 내용을 5% 정도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원본 도서에는 나머지 95%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와 내용은 원본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본 도서요약본이 좋은 책을 고르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전할까? 하지만 이 아름다움의 시들은 저녁마다 나타나 우리를 타이르듯 미소 지으며 우주를 비춰준다. 별은 우리에게 경건함을 불러일으킨다. 언제나 존재하지만 다다를 수는 없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을 열고 자연의 감화력을 받아들이면, 모든 자연물이 우리에게 다가와 이와 유사한 감흥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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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밤, 나는 당신 안에 머물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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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은사가 아닙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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