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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황민효	(2008-11-20 오전 11:18:45, 조회 : 1746)

출판사

한국장로교출판사

제목

폴 틸리히의 신학 1

/ 2008년 3월 / 369쪽 / 15,000원

▣ 저자 황민효
전남대학교 졸업.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원(). 유니온 신학교(Ph. D., 조직신학). 로뎀교회 담임목사. 장로회신학대학교, 호남신학대학교 조직신학 외래교수. 남부대학교 외래교수.
전남대학교를 졸업하고,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원(M. Div.), 유니온 신학교(Ph. D., 조직신학)를 졸업했으며 로뎀교회 담임목사로 사역 중이다. 장로회신학대학교, 호남신학대학교, 남부대학교 외래 교수로도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폴 틸리히의 신학 1, 2』가 있고 다수의 논문을 썼다.

▣ Short Summary
제1차 세계대전 후 부르주아 사회의 붕괴의 전망 아래에서 틸리히는 종교와 문화의 창조적인 종합을 가져올 새로운 카이로스의 도래를 기대했다. 그러나 미국이라는 낯선 땅에서의 정치적인 소외와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적인 경험은 그로 하여금 초기에 가졌던 구체적이고 행동적이며 정치적인 열망들을 포기하게 했다. 그의 관심은 기독교적 현실주의와 기독교 신학의 영역으로 전환하게 되었고, 과거의 종교사회주의에 대한 그의 열정의 자리는 실존주의 철학과 심리학이 대신하게 되었다. 또한 1960년 타 종교인들과의 만남은 세계종교와의 만남 안에서 필요한 기독교의 역할과 종교사에 대한 그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틸리히의 삶의 경험에 비추어 그의 신학을 분석하고 있는 개론서로, 그의 신학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먼저 I권의 1부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전의 문화신학자로서 틸리히의 초기 신학을 분석하고, I권과 II권에 걸친 2부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조직신학자로서 틸리히의 사상을 그의 저서인 『조직신학』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II권의 3부에 수록된 장들에서는 틸리히의 윤리신학과 종교신학의 주요 저서들을 살펴봄으로써 윤리신학자로서 틸리히의 사상과 종교사학자로서 틸리히의 끝나지 않은 과업을 조명하고 있다.

▣ 차례
머리말
서론 : 폴 틸리히의 생애에 대한 소고

제1부 문화신학자로서의 틸리히

서문

1장. 종교와 문화 간의 창조적 종합을 찾아서
1. 종교의 문화 간의 상호내재에 관한 틸리히의 이해 : 신율
2. 틸리히 역사철학의 기본 개념들

2장. 종교사회주의의 꿈
1. 종교사회주의의 기본 지침 : 태도, 목적, 그리고 방법
2. 종교사회주의의 사상적 기초
3. 사회주의자의 결단

제2부 조직신학자로서의 틸리히

서문

3장. 신학의 본질, 방법, 그리고 언어
1. 신학의 본질
2. 신학의 방법론 : 상관관계의 방법
3. 신학의 언어 : 종교적 상징
4. 조직신학의 합리적 성격과 체계

4장. 질문으로서의 이성, 대답으로서의 계시
1. 질문으로서의 이성
2. 대답으로서의 계시

5장. 질문으로서의 존재, 대답으로서의 하나님
1. 존재의 문제
2. 존재의 문제에 대한 대답으로서의 하나님의 실재

6장. 질문으로서의 실존, 대답으로서의 그리스도
1. 인간의 실존 분석 : 본질에서부터 실존으로
2. 인간 상황에서 나타나는 질문 : 새로운 존재의 추구
3. 계시적인 대답 : 그리스도인 예수 안의 새로운 존재

참고문헌

제1부 문화신학자로서의 틸리히

틸리히에게 있어서 종교란 ‘좁은 의미의 종교’와 ‘넓은 의미의 종교’로 구분될 수 있다. 넓은 의미의 종교는 궁극적으로 관심된(ultimately concerned) 존재의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마음의 종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좁은 의미의 종교는 신의 상징들이나 교리나 종교의식 등으로 나타나는 궁극적 관심들의 표현들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종교라고 부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넓은 의미의 종교는 바로 좁은 의미의 종교 -흔히 우리가 제도적 교회라고 부르는-의 개념을 포함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종교개념을 넘어서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넓은 의미에서의 종교를 ‘무한정자를 향한 지향성’(the directedness toward the Unconditional)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것은 종교를 넘어서는 종교의 개념이며, 또한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찾기 위해 유한한 실재를 항상 초월하고자 노력하는 시도이다. 따라서 틸리히는 이러한 넓은 의미의 종교를 ‘인간의 정신적 차원에서의 초월성’(the self-transcendence of life in the dimension of the spirit)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그의 종교개념과 같이 문화의 개념도 ‘좁은 의미의 문화’와 ‘넓은 의미의 문화’라는 두 가지 정의로 구분될 수 있다. 좁은 의미의 문화는 흔히 우리가 세속 사회라고 부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독일어의 ‘문화’라는 단어가 모든 인간 정신 혹은 영의 창조물들을 포함하는 것처럼, 틸리히는 문화의 개념을 보다 넓은 의미로 사용한다. 이 ‘넓은 의미의 문화’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문화라는 것은 순수 미술, 문학, 철학, 과학, 정치, 경제, 심지어 좁은 의미의 종교까지 포함하는 인간 정신의 총체적인 창조물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문화는 모든 인간의 삶의 영역과 제도들에서 나타나는 인간 정신의 창조성을 의미한다. 즉 넓은 의미의 문화란 ‘문화를 넘어서는 문화’를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무한정자(the Unconditional)의 개념
틸리히가 말하는 문화신학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틸리히가 말하는 종교와 문화의 상호내재에 대한 그의 논의를 이해해야 한다. 틸리히는 종교와 문화의 상호내재의 논리적 근거를 ‘보다 넓은 의미의 종교’ 개념에서 찾는다. 틸리히는 종교를 “무한정자를 향한 지향성”이라고 정의하면서, 무한정적인 실재의 의미가 현존하는 실재를 통하여, 가치들을 통하여, 또한 인격적인 삶을 통하여 드러나게 된다고 말한다. 신비주의적인 언어로 말하자면, 무한정자는 “절대적인 존재이자 동시에 절대적인 비존재로서 모든 존재들을 초월하는 실재”이다. 그러나 틸리히는 ‘존재한다(exist)’는 술어는 실재를 왜곡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며, 자신이 논의하는 대상은 ‘존재의 실재(a reality of existence)’가 아니라 ‘의미의 실재(a reality of meaning)’라고 말한다.

틸리히에 따르면, 무한정자는 종교라고 부르는 형식의 틀 안에 사로잡힐 수 없기에, 종교는 -비록 그것이 무한정자와 그 궁극적인 의미를 다루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을 다른 영역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영역이라고 주장할 수도 없다. 그리고 신학 역시 초월적 실재를 다른 일반 대상들처럼 자신의 특정한 객체로 가질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문화 안에 특별한 종교적인 영역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된다.

종교의 역설적 본질
틸리히에 따르면, 종교는 바로 자신의 이름인 ‘종교’라는 개념에 의해 파괴되는 실체이다. 무한정자에 의거한 종교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 모든 한정적인 개념들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신학적인 담론을 하기 위해, 개념화(conceptualization)의 요청을 묵살할 수 없다. 따라서 틸리히는 비록 특정한 개념들을 사용하되 더 이상 파괴되거나 종속될 수 없는 최상의 개념에 종속시킴으로써 개념화의 오류들을 극복하고자 한다. 바로 이 최상의 개념이 틸리히가 말하는 ‘무한정자’라는 개념인 것이다. 이 무한정자는 원칙적으로 주체와 객체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를 한 객체로 다루는 것은 ‘근본적인 역설(the primal paradox)’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언어는 무한정자를 대상으로 다룰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무한정자에 대한 모든 명제는 필연적으로 역설적일 수밖에 없고, 그 역설은 어떠한 경우에도 극복될 수 없다.

틸리히는 일반적인 종교개념이 ‘무한정자’로 하여금 ‘한정자’에게 근거를 갖게 하여, 무한정자를 한정자로 만들고, 결국 그 자신을 파괴시킨다는 것의 예시로서, 제일 먼저 무한정자의 확실성과 자아의 확실성을 서로 비교한다. 무한정자의 확실성은 무조건적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종교개념에 의해 사고할 때는 무한정자의 확실성보다 자아의 확실성에 더욱 의존하게 된다. 인식주체가 가진 확실성이 하나님의 확실성보다 더 선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자아의 확실성은 무조건적인 확실성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아의 확실성과 관련된 객관적인 세계가 단순한 현상으로 분해될 때 -즉, 데카르트의 인식론적 합리성에서와 같이 모든 객관적 사물과 세계의 확실성이 부정될 때- 자아의 확실성은 꿈속에 나오는 천막과 같이 희미하게 된다.

따라서 자아가 무한정자의 자기 인식을 위한 매개체로 이해될 때에만, 어거스틴의 경우와 같이 절대적인 삶의 형태로 나타난 무조건적인 확실성이나, 데카르트의 경우와 같이 절대적인 형식으로 나타난 -그가 ‘의심의 방법’을 통해 자아가 의심할 수 없는 확실성에 도달하여 내린 “Cogito ergo sum(나는 생각하기에 존재한다)”라는 명제처럼- 무조건적인 확실성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무조건적인 확실성을 제공하는 근거는 무한정자이며, 자아는 단지 매개체인 것이다. 만일 자아가 매개체로 간주되지 않으면 종교는 독립된 인간의 종교가 되고, 하나님을 상실함으로써 자아 역시도 상실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무한정자의 확실성이 종교개념에서 확립되면, 종교는 한정적인 세계에서 무한정자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대상을 찾기 위해 자신의 세계를 구성하며, 하나님은 이 세계를 보조하는 역할로서 세계와 관련되고, 결국 이 세상의 일부가 되고 만다. 여기서 하나님은 자연신론에서 이야기하는 ‘하나님 아래의 하나님’이 되거나, 또는 모든 ‘유한한 형식의 총체 또는 종합’으로써 ‘세계’와 동일시되는 범신론(pantheism)의 하나님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하나님은 공허한 하나의 대상이 되고 만다.

틸리히에 따르면 많은 신학자들이나 종교사상가들은 한정자를 무한정자와 동일시하거나, 혹은 무한정자를 한정적 개념들에 결부시킴으로써 커다란 오류를 범해 왔다. 예를 들어, 슐라이에르마허는 종교의 자리를 ‘영적인 삶 안에서의 섭리’에서 찾고, 트뢸치는 종교의 본질을 ‘종교적인 선험성’에서 찾으며, 쉘러는 종교를 인간행위의 최상의 범주, 즉 ‘종교적인 행위’에서 찾는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한 개인이 윤리적이고, 과학적이며, 미학적이고, 사회적이며, 또한 정치적일 수 있는 것처럼, 개인은 또한 종교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종교를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기능으로 간주함으로써 무한정자를 한정자와 병행하는 것으로 나타내게 된다. 그러나 종교는 결코 개인이 종교적이어야만 한다는 것을 확언하지 않는다. “종교는 여러 가지 기능 중의 하나가 아니다. 가장 높은 기능이라도 그것은 종교가 될 수 없다.” 따라서 틸리히는 종교를 “인간 정신의 모든 자율적 기능들에 반하여 소멸시키는 불”이라고 정의한다.

마지막으로 종교는 신앙의 무조건성을 여러 가지 정신적 기능의 하나로 상대화시킬 뿐만 아니라, 계시의 무조건성을 종교사와 문화 속에 나타난 한정적인 진보나 전환으로 상대화시킨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교가 어느 특정한 종교가 되는 순간 -즉, 그리스도교 계시가 상대화되는 순간 -그리스도교는 그 절대성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종교는 그 자체를 초월할 수 없는 종교가 되기에 -결국 무한정자가 그 안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에 -‘하나님 없는 하나님을 향한 지향’이라는 오명을 갖게 된다. 여기서 계시는 자율적 정신이 발견한 지식의 전달이 되어 초자연적인 것의 도움을 가끔 필요로 하는 단순한 합리론으로 타락하거나, 혹은 문화사가 되어 ‘문화적 과정의 가능성’으로 매도된다.

그러므로 무한정자의 본질에 충실하고자 하는 종교철학은 무한정자 자신과 한정자의 근거가 되는 무한정자를 한정자 속에서 파악해야만 한다. 즉, 한정자는 무한정자가 파악되는 매개체라는 것이다. 매개체는 어떠한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정자가 현시하는 장소’의 개념이다. 그러므로 무한정자에 대한 진술의 의미와 한정자에 대한 진술의 의미는 서로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한정자에 대한 진술은 주체와 객체의 형식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기에, 무한정자에 대한 명제는 역설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 역설적인 진술은 앞서 말한 종교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개념화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준다.

일반적인 개념화의 과정에서 무한정자의 확실성과 자아의 확실성은 갈등상황으로 전개되나, 무한정자에 대한 역설적인 진술에서 이 둘은 상호배타적이거나 대립적이지 않다. 여기서 무한정자의 확실성은 형식적으로는 이론적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이론적일 수 없는 역설로 나타난다. 즉, “하나님의 확실성은 자아의 확실성에 포함되면서도 자아의 확실성의 근거가 되는 무한정자의 확실성”이다. 따라서 자아의 확실성과 자아의 종교는 오직 무한정자의 확실성에 근거할 때에만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 “하나님의 확실성이 은연중에 내재하지 않은 확실성이란 절대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자아의 확실성에서 하나님의 확실성으로 나아갈 수 없기에, 자아로부터 하나님으로 나아가는 길은 없다는 것이다. 본질적인 측면이 아니라 지향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하나님으로부터 자아로 오는 길만이 존재한다. 즉, 하나님의 확실성에서 자아의 확실성이 도출되는 것이다.

무한정자에 대한 이러한 역설적인 진술은 첫째, 하나님과 세계간의 대립적이거나 동일시되는 갈등을 극복한다. 종교개념이 지배적인 곳에서는 하나님의 실제성이 세계의 실제성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자연신론에서처럼 하나님은 하나의 한정자로서 객체화되거나, 범신론에서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와 동일시된다. 그러나 역설적인 진술은 “무한정자는 무한정자이다”라는 명제를 재확인한다. 즉, ‘모든 유한한 현실성 속에 있는 무한한 실제의 힘’이 하나님이다. 이 힘은 모든 존재의 근원이며, 절대적인 심각성이며, 끝도 없는 깊이이며, 또한 거룩함이다. 즉, 역설적인 진술은 무한정자를 “존재한다,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실존적 판단의 대상으로부터 자유롭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실제성을 인정하고, 유한성으로부터 하나님을 해방한다.
둘째, 역설적인 진술은 종교와 문화의 대립 역시 극복하게 한다. 흔히 종교가 문화 위에서 설립될 때, 종교는 분리된 하나의 기능으로 설립되거나 혹은 모든 문화적 기능들의 종합으로 설립되기도 한다. 그러나 종교는 다른 인간 기능 중의 하나도 될 수 없으며, 그들의 연합도 될 수 없다. 종교는 한정자나 유한한 실재를 향한 것이 아니라 무한정자를 향한 관계성이자 또한 궁극적인 의미를 다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종교는 다른 기능들과 병행하는 기능이거나 혹은 다른 기능들을 일치시키는 인간정신의 기능이 아니라, 단지 그것들을 통해 무한정자를 표현하는 ‘무한정성의 기능’인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 논리를 종교와 문화의 변증법에서 살펴본다면 -매개체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세상 속의 사물들이 세상 가운데 존재하는 무한정자의 매개체이듯, 문화는 정신의 삶 가운데 있는 무한정자의 매개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처럼 한정자 안에서 무한정자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표현은 ‘역설’(paradox)이라는 용어이며, 또한 무한정자는 항상 상징적으로 언급되어야 함을 기억해야 한다. 즉, 종교와 문화의 관계에서 살펴보자면, 만일 종교가 무한정자를 개념화하기 위해 무한정자를 한정적인 개념으로 환원시킬 때, 종교는 무한정자와의 관계를 상실한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 된다. 또한 만일 종교가 역설의 방법을 객관화시키고 한정자를 무한정자로 대체시킨다면, 이를 위한 초자연적인 법칙을 만들게 되고, 인간정신과 문화는 종교개념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될 것이다. 따라서 틸리히는 종교개념의 극복을 이렇게 정의한다. “종교개념을 극복하는 것의 의미는 종교를 객관화의 운명으로부터 구속하는 것이고, 무한정자로 하여금 모든 형태의 상대화를 극복하게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무한정자에 대한 역설적인 진술은 종교개념과 계시간의 갈등을 해소한다. 종교개념이 지배하는 곳에서 계시는 ‘이성의 계시된 종교’나 ‘종교사’로 간주됨으로써 계시를 인간 정신의 자율적인 삶에 의존하게 만든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행위가 인간의 종교적 정신이 만드는 상대적인 진보로 여겨지는 것이다. 여기서 종교개념은 무한정자와 한정자, 하나님의 차원과 인간의 차원을 동일선상에 놓아 버린다. 그러나 역설적인 측면에서 종교를 살펴보자면, 물론 모든 종교는 무한정자를 객관화시키기에 상대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반면 또한 모든 종교는 절대적일 수 있다. 왜냐하면 계시란 무한정자가 그 무한정성 안에서 한정적인 것들을 돌파해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종교는 그 종교가 가진 계시의 정도에 따라서 절대적이다.

“보편적으로 진정한 종교의 존재는 숨겨져 있다. 그것은 때때로 단순한 종교에 대항하는 ‘위대한 신비적 또는 예언자적 반항’으로 나타난다. 종교가 이러한 저항에 얼마나 개방적일 수 있는가에 따라 그 종교의 상대적인 가치가 드러난다. 절대적인 종교는 결코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 무한정자의 순간적이면서 생동적인 돌파이다. 하나님은 회의주의나 종교의 역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모든 종교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신의 절대성을 계시함을 통해, 종교의 절대성의 주장을 파괴함으로써 자신의 절대성을 증명한다.

문화신학의 정의와 임무
틸리히에게 있어서, 종교와 문화의 관계를 규명하는 해석학적 열쇠는 바로 ‘형식’(form)과 ‘실체 또는 의미’(substance or import) 간의 변증법적 관계이다. 모든 문화의 창조물들은 형식과 실체(의미 또는 본질)를 가지고 있다. 이 형식과 의미는 의미 없는 형식이나 형식 없는 의미가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서로 분리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틸리히는 이러한 형식과 의미와의 관계를 하나의 직선으로 형상화한다. 이 직선은 한쪽은 순수한 형식을 의미하고 다른 한쪽은 순수한 의미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들은 한 직선 위에 놓여져 있기에 항상 그 둘의 일치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직선의 비유를 통해, 틸리히는 종교는 문화의 실체(의미)를 제공하고, 문화는 종교의 형식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만일 의식이 의미의 개별 형식들과 그 일치를 지향하면 문화가 생겨나게 되고, 만일 의식이 무조건적인 의미, 다시 말해 의미의 의미(the import of meaning)를 지향한다면 종교가 생겨나는 것이다. 종교는 무한정자를 향한 지향성이요 문화는 한정된 형식들과 그들의 동일을 향한 지향성이다.”

다시 말하면 종교는 무한정적인 의미를 향한 영의 지향성이며, 문화는 한정된 형식들을 지향하는 영의 지향성이다. 그러나 이 둘은 의미의 형식들의 완전한 통일을 지향함으로써 서로 만나게 된다. 형식과 의미는 항상 서로에게 속해 있기 때문에, 형식과 의미를 분리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단지 인위적인 것일 뿐이다. 형식이 자신의 의미나 본질과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문화 역시 종교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비록 문화와 종교가 과학적 방법의 구조에서는 서로 구분될 수 있을지 모르나, 본질적으로 다른 두 가지의 행위가 아니다. 이처럼 형식과 의미의 변증법을 통해 틸리히는 문화와 종교의 상호연관성을 증명한다.

이러한 개념적인 기초 위에서 틸리히는 문화신학의 의미를 밝힌다. 틸리히에 따르면, ‘문화철학’(a philosophy of culture)이 모든 문화적 창조물들을 형식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이라면, ‘문화신학’(a theology of culture)은 실체(본질)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문화신학은 종교적인 본질의 관점으로부터 모든 창조된 대상을 분석하는 ‘문화과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틸리히는 문화신학의 과제는 종교의 구체성을 연구하는 ‘교회신학’(a theoloty of the Church)의 과제와는 다르게, 모든 문화적 대상들에 잠재되어 있는 종교적인 의미들에 합당한 표현방법을 제공하고, 또한 모든 위대한 문화유산에 잠재되어 있는 구체적인 종교경험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틸리히는 문화신학에 세 가지의 주요 임무를 부여한다. 이 임무들은 첫째, 모든 문화적 산물에 대한 일반적인 종교분석을 제공하는 것, 둘째, 모든 문화적 산물에 내재하는 종교적인 본질에 의거하여 종교적인 유형학과 문화사철학을 제공하는 것, 셋째, 구체적이고 종교적인 관점으로부터 문화에 대한 구체적이고 종교적인 체계화를 제공하는 것 등이다.

틸리히에 따르면, 문화신학의 첫 번째임무(혹은 단계라고 부를 수도 있다.)는 문화와 종교 간의 관계에 대한 일반분석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모든 문화적 표현들을 분석하기 위해 종교나 문화의 제 개념들과 그 상호관계를 분석하는 것을 의미한다. 틸리히에게 있어서 종교와 문화의 관계는 앞서 우리가 보았듯이, 실체(영적인 실체성)와 형식(표현)의 관계로 정의된다. 실체를 통해 형식을 파괴하는 것은 내용 없는 의미처럼, 또한 형식을 영적인 실체로부터 분리시키려는 시도는 의미 없는 내용처럼 불가능한 일이다.

두 번째 임무는 앞서 결정된 실체와 형식의 관점에서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구조를 (또는 종교적인 유형학과 문화사철학의 관점으로 모든 문화적 표현들을) 분석하는 것을 뜻한다. 틸리히는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구조들에 세 가지 주요 형식들이 있음을 밝힌다. 그것은 첫째, 전형적으로 세속적이고 형식적인 측면을 중시하는 문화구조(자율)와 둘째, 형식보다는 전형적으로 본질이나 의미를 중시하는 종교문화적 구조(타율), 그리고 셋째, 형식과 본질이 잘 어우러지는 균형 잡힌 문화구조(신율)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그러나 틸리히는 비록 그가 이처럼 3가지의 유형으로 단순화시키고 있으나, 의미와 형식을 통합하는 정도에 따라서 문화 유형들에는 수많은 단계들과 과정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 번째 임무는 종교적인 관점 -종교적 실체의 관점 -에서 문화에 대한 구체적인 종교적 체계화를 이루는 것이다. 물론 문화신학자는 그 스스로 문화체계를 창조할 수 없기에 - 예를 들어, 그가 과학, 윤리, 법률, 예술 등의 분야에서 생산적일 수 없듯이 - 일반적으로 ‘종교적 문화적 체계의 창조자’라 불릴 수는 없다. 그러나 문화신학자는 종교적인 의미를 생동감 있게 표현하지 못하는 현존하는 문화체계를 비판함으로써, 또 진정한 문화적, 종교적 체계화의 실현을 위한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문화에 대한 구체적이고 종교적인 체계화의 과업을 수행할 수 있다. 틸리히는 이처럼 문화의 다양한 기능들을 포용할 뿐 아니라 종교의 문화배타적인 면들을 극복하게 하는 새로운 문화의 종교적 체계를 구상하며 과학과 도그마의 갈등, 예술과 예전의 형식, 교회와 국가의 이원론 등의 극복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었다.

초기의 틸리히가 가졌던 이러한 문화신학에 대한 개념과 그 임무들에 관한 이해들이 그의 전 생애에 걸쳐서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의 모든 신학적 저술들은 초기이든 후기이든 간에, 종교적인 본질의 관점에서 모든 인간의 문화적 창조물들을 분석하고, 또 그에 합당한 표현방법들을 제시해 주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초기와 후기의 신학적인 강조점은 사뭇 다르다. 예를 들어, 그의 초기 저작들은 문화와 종교 간의 창조적인 종합, 다시 말하면, 형식과 실체의 조화로운 종합을 추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종합을 추구하는 가운데 틸리히는 현존하는 문화에 관한 종교적 비판뿐 아니라 모든 인간의 문화적 형식들에 존재하는 신율의 현존 역시 강조했다. 틸리히는 이러한 신율적인 경험들이 기독교 교회들이나 기독교 교회사, 또는 기독교 문화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문화적 형식에서도 찾을 수 있고, 또 발견되어야 함을 분명히 밝혔다. 기독교적인 상징이나 기준의 도움 없이도, 구체적인 종교적 경험들 안에 내재하는 무한정자의 의미의 표현들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러나 틸리히는 그의 후기 저작들에서 인간의 문화적 형식에 내재하는 신율적인 성격들을 평가절하했다. 캅(Kelton Cobb)이 지적하듯이, 틸리히가 비록 그의 후기 저작들에서도 여전히 모든 인간의 문화적 삶 속에 내재한 무한정자를 표현하기 위한 표현방법들을 찾고 있지만, 그는 더 이상 세속적인 문화가 자신이 근거하는 종교적인 본질을 충분히 투영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다시 말해, 종교적인 본질은 여전히 모든 인간의 문화 안에 내재하고 있지만, 그 본질은 그리스도인 예수(Jesus as the Christ)의 규범적인 기준과 기독교 상징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분별될 수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틸리히의 후기 신학은 초기 문화신학과는 달리 짙은 신학적 성격을 보이며, 또한 무한정자를 매개하는 매개체로서의 문화의 역할보다 인간 정신과 그 창조성이 가지는 한계를 더욱 강조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사고는 그로 하여금 초기에 가졌던 잘 조화된 문화와 종교 간의 종합의 추구라는 비전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틸리히는 초기와는 다르게, 후기의 문화신학에서는 문화와 종교의 관계를 문제와 대답이라는 도식 안에서 파악하고 있는데, 여기서 문화신학의 임무는 실존적인 문제들이 제기되는 인간의 실존적 상황에 대한 분석과 이러한 문제들에게 신학적인 대답을 제공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제2부 조직신학자로서의 틸리히

틸리히의 후기 신학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하나의 특징은 초기 문화신학에 비해 기독교적인 전통에 더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후기의 신학적인 저작들에 와서야 비로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초기의 철학적인 개념들을 기독교적인 범주 안에 적용함으로써 종교철학으로부터 기독교신학으로 옮겨 온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틸리히로 하여금 이러한 학문적인 변화들을 가져오게 했을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가 경험한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적이고 파괴적인 경험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적 회상’(Autobiographical Reflection)에서 이렇게 말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나는 우리의 역사적인 실존에서 역동적인 요소들보다 비극적인 요소들을 더욱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행동하는 정치학에 대한 접촉점과 영감을 상실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났을 때 오천만 명의 사람들의 목숨이 사라졌다. 유럽세계는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도덕적으로, 또한 영적으로 황폐해져 버렸다. 그리고 틸리히가 그렇게 갈망했던 새로운 사회의 출발, 카이로스는 그의 기대와는 달리 도래하지 않았다. 따라서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적인 경험은 틸리히로 하여금 종교와 문화와의 창조적인 결합은 단순히 신율적인 용어로써 대답될 수 없음을 비판적으로 깨닫게 했다. 이러한 틸리히의 인식은 1946년 1월에 있었던 “종교와 세속문화”(Religion and Secular Culture)라는 그의 강연에서 잘 드러나 있다. 이 강연에서 틸리히는 새로운 신율의 도래를 위해서 인간은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또한 자신의 초기 신율적 전망에는 ‘엷은 낭만주의적 색채’가 있었다고 고백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우리는 오래된 것들의 종말보다 새로운 것의 시작을 갈망했다. 그러나 우리는 다가올 비극적인 재난들을 생각하지 못한 채 이러한 전환들을 꿈꾸었을 뿐, 새로운 신율의 도래를 위해 인간이 지불해야 할 대가에 대해 인식하지 못했다. 우리는 진정한 예언자요, 운명의 예언자로서 다가올 최후의 재난의 가능성을 보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신율적 역사해석은 비록 그것이 어떠한 유토피아적인 것을 피하려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엷은 낭만주의적 색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비판적인 인식과 더불어, 틸리히는 처음으로 ‘문화종말의 신학’(a theology of the end of culture)에 대해 말하면서, 그의 시대의 문화적인 표현들의 내적인 공허와 거룩성의 공허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을 통해 강하게 강조했다. 그는 이제껏 자신이 추구했던 ‘종교와 세속문화 간의 균형 잡힌 종합’(a well-balanced synthesis between religion and secular culture)을 자신 있게 제시하는 대신, 종교와 세속문화 각각의 분리된 영역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그 근원에 자리 잡은 신율적 근원에 관해 말하고, 그들이 그 근원으로부터 분리될 때 따라오는 비극적인 결과를 강조한다.

결과적으로, 틸리히의 초기 문화신학이 문화와 종교 간의, 유한과 무한 간의, 형식과 본질 간의 창조적인 종합으로써 신율을 추구했던 반면, 후기 문화신학은 모든 문화적 창조물들의 소외에 대해 강조하는 것이다. 여기서 문화는 종교(특히 기독교적인 상징들)에 의해 극복되어야 하는 타락한 상태로 제시된다. 따라서 틸리히의 후기 문화신학은 문화의 자율적 형식, 다시 말하면, 자율적 문화에 내재하는 긍정적인 힘보다는 인간의 모든 문화적 창조물들의 무능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낭만주의와는 다르게 개신교주의는 새로운 신율이 의도적으로 자율적 이성에 의해 도달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있다. 자율적 이성은 자율과 타율 사이의 분쟁의 한 측면이기에 이 분쟁은 자율적 이성에 의해 극복될 수 없다. 따라서 신율에 대한 낭만주의적인 추구는 궁극적 계시를 통하지 않고서는, 그리고 교회와 일치되지 않고서는 결코 성취될 수 없다. 새로운 신율은 선한 의지와 의도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인 운명과 은총의 문제이다. 신율은 어떠한 자율로써도 창조될 수 없고, 어떠한 타율도 방해할 수 없는 궁극적 계시의 결과이다. 오늘 이 시대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감정은 카이로스(실현을 위한 적당한 때)가 보이지 않는, 즉 카이로스와 너무나 멀기만 한 그러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공허하고, 성취되지 못한 공간에, 진공상태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극적인 전쟁의 결과와 삶의 모호성의 충격에도 불구하고, 틸리히는 다시금 새로운 신율을 꿈꾸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이제 어떠한 낭만주의적인 흔적도 배제한, 비록 우리가 지금은 단편적으로 경험하고 있으나, 분명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을 소망하는, 종교와 문화의 진정한 일치를 가져올 새로운 신율을 소망하는 것이다. 틸리히는 종교와 문화 간의 상호관계를 그의 후기 저작들에서 - 특별히 그의 <조직신학>에서 - 세 가지 신학적인 강조점들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첫째, 상관관계방법, 둘째, 종교적(또는 기독교적) 상징, 그리고 셋째, 존재론적 구조이다. 여기에서 문화와 종교의 관계는 질문과 대답이라는 세 개의 관계도식, 즉 ‘질문으로서의 이성, 대답으로서의 계시’, ‘질문으로서의 존재, 대답으로서의 하나님’, 그리고 마지막으로 ‘질문으로서의 실존, 대답으로서의 그리스도’라는 도식으로 설명된다.

그 중 이 요약본에서는 ‘질문으로서의 실존, 대답으로서의 그리스도’ 부분만을 골라 다루기로 한다.

질문으로서의 실존, 대답으로서의 그리스도

틸리히는 인간의 실존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 세 가지 존재론적 개념들을 사용한다. 바로 본질(essence), 실존(existence), 그리고 새로운 존재(the New Being)가 그것이다. 범죄하기 전의 아담의 상태(본질), 타락한 상태 안에 있는 아담(실존), 그리고 마지막 아담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새로운 존재)이라는 세 가지 시간적 상태로도 말할 수 있다.

이 중 ‘본질(essence)’은 존재의 근원 또는 존재의 힘인 하나님과의 일치의 상태에 있는 본질적인 인간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본질은 그 잠재성이 실현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 다음으로 ‘실존(existence)’은 본질이 그 잠재성을 실현하게 된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현실적 세계 안에서의 존재의 상태, 즉 ‘본질로부터 실존으로의’ 전이된 상태를 의미한다. 틸리히는 이 상태를 ‘자신의 본질적 존재와 존재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상태’라고 표현한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존재(the New Being)’는 실존의 상황 아래에 서 있다는 점에서 본질적 존재와는 다르고, 또한 그것이 본질적 존재를 왜곡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실존적 존재와는 다르다. ‘본질과 실존 사이의 간격과 분열을 극복하는, 실존적 상황 내의 본질적인 존재’라고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틸리히에 따르면, 새로운 존재는 인간을 창조 이전으로 되돌리는 해답이 아니라, 왜곡되고 타락한 옛 존재를 새롭게 하는 새로운 창조이다. 인간의 상황을 분석할 때, 틸리히는 본질과 실존의 구분을 경감시키는 ‘헤겔주의적 해답’을 배격한다. 헤겔은 인간의 소외는 극복되었으며, 인간은 자신의 진정한 존재와 화해되었다고 믿었다. 따라서 실존은 본질의 하나의 표현일 뿐 본질의 타락이라고 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절대적 역사해석은 틸리히에게 있어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틸리히는 역사는 분열, 절망, 그리고 파괴로 가득 찬 비극적인 실체이기 때문에 인간은 실존의 위기 가운데 놓여 있다고 진단한다.

틸리히는 이러한 비극적 전이를 가능하게 한 원동력은 ‘인간의 유한한 자유’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무한한 자유임에 반해 인간은 유한한 자유이므로 제약과 운명으로 다가오는 유한성 안에서만 그 잠재성이 실현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신의 세계와 자신에 관해 질문을 던질 수 있을 만큼, 도덕적인 명령을 수용하고 응답할 수 있을 만큼, 상상과 이상적인 세계를 창조할 수 있을 만큼, 심지어 자신에게 반대할 수 있을 만큼 자유로운 존재이다.

인간이 이 유한한 자유를 선택한다는 것은 본질적 존재로부터 또 ‘존재 그 자체’인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를 가져오기에 비극적인 것이나, 이것이 단순히 악마적인 것으로만 해석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전이가 ‘아직 존재가 아닌(not-yet-being)’ 단순한 잠재성의 상태를 극복하게 하는 창조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틸리히는 이를 두고 “‘꿈꾸는 무죄성’의 보존과 ‘야기된 자유’의 실현가능성 가운데서 본질적 존재는 자신의 자유를 실현하기로 선택했다.”라고 표현하며, 이것은 바로 선악과를 따먹은 것으로 상징된다.

본질적인 창조는 선한 것이나 인간이 선택한, 소외된 실존과 동일시되는 현실화된 창조까지 선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틸리히는 모든 죄의 뿌리가 되는 세 가지 소외의 상태를 언급하는데, ‘불신앙(unbelief)’, ‘휴브리스(hubris)’, 그리고 ‘정욕(concupiscence)’이 그것이다. 불신앙이란 ‘인간이 자신의 전 존재로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행동 또는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휴브리스는 ‘인간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 되는 인간의 자기높임’을 말하고, 정욕이란 ‘불신앙과 휴브리스를 일으키는, 욕망이 무제한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성적 리비도나 권력에의 의지 등 인간에게 있어서 이러한 욕망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인간의 상태는 창조적인 선함과 모순되는 자기파괴를 향해 달려간다.

‘파괴적 구조’ 속에 있는 인간은 죽음에 대한 불안과 시간, 공간, 인과성, 실체에 내재한 불안에서 자신의 힘으로 구원을 얻고자 끊임없이 노력한다. ‘종교’를 통해 자아구원을 찾는 방법에서 시작해 종교적 율법주의, 금욕주의까지 모든 방법을 시도해 본다. 그리고 마침내 신비주의라는 육체적, 정신적 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현존을 자각함으로써 하나님과의 합일을 도모하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유한한 존재의 영역을 초월하려는 신비주의적인 시도는 실존적인 상황에서는 결코 달성될 수 없다. 또한 설사 이러한 하나님과의 일치를, 황홀성을, 단편적으로 달성한다고 하더라도 실존적인 소외나 실존적인 비극들을 극복할 수 없다.

또 다른 방법들은 성례전적, 교리적, 감정적인 방법들을 통한 자기구원의 시도들이다. 성례전적 형식이 로마 가톨릭주의의 특징이라면, 교리적인 유형은 개신교주의의 특징이다. 전자는 종교의식의 행위를 통해 구원을 얻고자 하고, 후자는 교리를 자기구원의 도구로 삼는다. 하지만 성례전적 방법은 하나님의 성례전적인 현존을 왜곡하여 단순한 의식의 수행으로 축소시키고, 교리적인 방법은 존재의 상태로서의 신앙을 또한 교리에 대한 믿음으로 축소시킨다. 이 중 그 어떠한 형태도 하나님과의 진정한 일치를 가져올 수 없다.

위의 두 가지 방법과 대조되는 것이 감정적인 형태의 자기구원의 시도인데, 이것은 결국 회심과 일상생활에서의 경건한 헌신을 요구하는 경건주의를 뜻한다. 그러나 모든 형태의 경건주의와 신앙부흥운동에는 자기구원의 유혹이 현존한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과 그와의 재결합은 모든 종교의 핵심이지만, 의식적으로 부과되는 모든 형태의 강요된 경건은 불안과 광신주의를 산출할 뿐이다.

따라서 인간은 그들의 본질적 존재와 존재의 근원으로부터 상실한 일치를 회복시킬 수 있는 새로운 존재를 요청하는 것 외에는 의지할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오직 은총만이 우리의 상실한 일치를 회복할 수 있기에 인간은 새로운 존재의 출현을 갈망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자기구원의 시도들은 계시적인 측면들을 전제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구원의 물음이 생기는 곳에는 비록 단편적이지만 이미 구원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틸리히는 말한다. “새로운 존재의 추구는 새로운 존재의 현존을 전제로 한다.”

기독교 메시지에 따르면, 그리스도(구원자)인 예수는 새로운 존재의 담지자이다. 복음을 쓴 저자들은 그리스도인 예수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자신의 옛 존재를 물리쳤다고 증언한다. 물론 이러한 주장이 역설적인 주장임은 사실이다. 하지만, 틸리히에게 있어서 역설이란 단순히 변증법적인 것, 무의미적인 것들과는 다른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 메시지의 설명 불가능성이나 그 신비적인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하지도 않는다. 틸리히가 말하는 역설이란, 인간의 자기 이해나 예견, 기대들에 역행하는 새로운 실재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신학자라면 누구나 그리스도인 예수 안에 나타난 새로운 존재가 가지는 그 역설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에게 그 의미를 설명하고자 노력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순전한 사랑

저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