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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구 |
(2007-09-29 14:45:50, 조회 :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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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빵을 들고 땅 끝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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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7월 / 240쪽 / 9,500원
▣ 저자 이윤구
기독교세계봉사회 총무/중동기독연합회 아랍피난민 구호사업부총무
세계기독협의회 중동파견특별대표/유엔 아동기금 이집트, 인도, 방글라데시 대표
유엔 아동영양특별위원회 사무국장/한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정교수/학과장
한국청소년연구원 초대원장/월드비전 한국 회장/한국사회복지사협회 회장
범종단 북한수재민돕기운동 추진위원장/한국시민단체협의회 공동대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월드비전 인터내셔널 총재 특별대표
한국자원봉사포럼회장/인제대학교 제2대 총장/세계자원봉사자대회 공동조직위원장
한국대학사회봉사협의회 회장/제 23대 대한적십자사 총재/한국자원봉사협의회 공동대표
제 1회 ‘회상!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정대장정순례대표단 단장
흥사단민족통일운동 공동대표/결핵제로운동 총재/
다일복지재단 명예이사장/그린닥터스 공동대표
한동대학교 석좌교수/저서: 『평화를 배팅하라』
▣ Short Summary
전 월드비전 회장, 적십자사 총재였던 이윤구 박사가 세계 곳곳에서 구호 사업을 해오면서 경험한 여러 기적 같은 일들과 아름다운 추억들을 담아낸 책. 저자가 1991년부터 6년간 나눔을 실천한 세계 곳곳의 모습들과 그곳의 간략한 역사들 그리고 그 나라를 도울 수밖에 없는 구체적 통계자료까지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나눔의 역사가 어떻게 발전하고 성장했는지 그 자세한 역사를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듯 한눈에 들여다 볼 수 있다.
▣ 차례
1. 방가족의 나라 방글라데시 - 사랑의 쌀을 가지고 온 나라 사람입니까?
2. '킬링필드'와 대자연의 캄보디아 - 못하겠다고 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3. 월드비전의 시작과 도약 - 사랑의 빚, 이제는 돕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4. 사랑의 빵 운동 -나누는 마음만 있다면 백원도 기적이 됩니다.
5. 7년 반이 늦은 나라, 에티오피아 - 코리언 빌리지를 지키는 사람들
6. 소말리아 종족분쟁 - 애들이 왜 울지를 않죠?
7. 우크라이나 핵폭발 - 머나먼 이 곳에도 우리 핏줄이 있습니다.
8. 기아 체험 24시간 운동 - 기꺼이 굶는 사람들이 여기 있습니다.
9. 월드비전 어린이 합창단 - 절망을 넘어 서는 희망의 노래
10. 금광의 나라 짐바브웨, 씨앗 뿌리는 모잠비크 - 사막에 띄운 생명의 무지개
11. 르완다의 SOS - 쓰고 남은 것을 나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12. 보스니아 종교전쟁 - 전쟁이 끝난 자리, 희망을 심는 사람들
13. 북한 돕기- 사랑은 그저 주는 것입니다.
14. 한국 월드비전 6년을 돌아보며 -착한 백성, 마음 밭의 농사는 풍작입니다.
“내 생명은 나 아닌 주변의 삶, 가난하고 헐벗고 병든 이웃들을 섬기기 위해 하늘이 주신 선물입니다.”
어려서부터 저는 책읽기를 참 좋아했습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책을 읽고 눈물로 감동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청소년기를 잘 보낼 수 있었고, 밝게 살아 왔다고 생각합니다. 철이 든 다음에는 6․25 전쟁의 비극이 제 인생을 송두리째 뒤집어엎었습니다. 죽고 죽이는 살벌한 싸움터에서 저 자신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생명의 존엄성과 삶의 참 의미를 죽음의 체험을 하고서야 알기 시작했습니다. 생명은 내 것, 네 것이 따로 없고 존중해야 하는 지엄한 것임을 그때서야 알았습니다. 내 생명은 나 아닌 주변의 삶, 가난하고 헐벗고 병든 이웃들을 섬기기 위해 하늘이 주신 선물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야전 병원에서 며칠 치료를 받은 후 곧 유엔 군복을 벗고 부산으로 가서 신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새로 찾은 나의 혼을 바로 키우고 싶어서였습니다. 서울로 수복한 다음 빈민굴로, 고아원으로 뛰어 다니면서 봉사하는 공부를 하다가 사회 복지로 전공을 바꾼 것도 제 삶을 이웃 사랑의 현장으로 몰아넣기 위함이었습니다. 전쟁 직후, 기독교 세계 봉사회라는 미국 기관의 구제 사업에 몸을 담기도 하고 경제 원조처 같은 거대한 미국 해외 협력 기구에서도 일을 하면서, 우리 나라, 우리 겨레는 언제 남의 나라, 가난한 이웃을 돕는 자리에 서게 될까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1965년, 저와 제 가족에게 해외 봉사의 길을 떠나는 행운이 왔습니다. 2년 계약으로 성지 예루살렘에서 아랍 피난민을 돕는 중동 기독교 연합회의 피난민 사업부 책임을 맡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발길에 채여서 가는 길”이라고 함석헌 님은 환송 모임에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1967년, 요르단 땅에서 전쟁을 다시 경험했습니다. 요란한 총포 소리와 함께 거룩한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는 생지옥을 보았습니다. 전쟁 후에는 세계 기독교 협의회(WCC)의 특별 대표로 구호와 복구 사업을 했습니다. 5년 동안 젊은 혼신을 다 쏟아 부으며 팔레스타인 실향민들의 벗 노릇을 잘 해보려 노력했지만 끝도 한도 없었습니다. 상처가 깊은 백성이었습니다.
곤비한 몸과 마음을 영국에서 쉬면서 박사 과정을 이수했습니다. 귀국하여 대학 강단에 서기로 되어 있었는데 운명은 다른 길로 저를 몰아 붙였습니다. 이번에는 유엔아동기금의 간부 직원으로 이집트로 사령을 받고 국제공무원이 되었습니다. 그 후 인도에서 5년, 방글라데시와 유엔 본부에서 5년을 보내면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습니다. 국제 협력이라는 이름 아래 이웃 사랑이 얼마나 숭고한지도 느꼈지만 또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뼈아프게 느꼈습니다. 세상은 좁아져, 지구촌이 이제는 인류를 한 가족으로 뭉치게 하는 작은 곳임을 실감하게 했습니다.
2년의 해외 봉사가 20년으로 마냥 길어졌습니다. 그 20여 년을 떠다니면서 한시도 잊지 않고 기도하며 희망했던 꿈이 하나 있었습니다. 고국 땅으로 돌아가서 우리 나라가 해외 원조기금에서 받았던 사랑의 빚을 갚고 싶은 간절한 소원 말입니다. 해방과 6.25 전쟁 이후 너무도 많은 도움을 받아서 참담한 고난을 이기고 잘사는 나라가 되었는데 그 고마움을 조금씩 갚아 나가는 백성이 되어야 하겠다는 지극히 소박하고 당연한 욕심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1984년에 유엔에서 조기 은퇴(55세)를 결심하고 귀국했습니다. 너무 늙기 전에 한국 사회와 교회에 세상의 가난한 나라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한국 사회가 이룩하고자 하는 물질적 풍요만큼이나 정신적인 풍요도 함께 일구어 낼 수 있도록 힘을 기울이고, 그것의 근간이 되는 해외 원조를 위한 NGO 운동을 개척할 때라고 믿었습니다.
그 꿈이 현실로 이어져 월드비전(한국 선명회) 회장으로 취임한 것이 1991년 1월 1일이었습니다. 마침 몹시 추웠던 정초였습니다. 취임과 시무 인사를 한 후 곧바로 사랑의 쌀을 방글라데시 월드비전으로 전해주기 위해 떠났습니다. 40년 수혜국의 굴레를 벗고 돕는 나라로 탈바꿈하는 날이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해외 원조의 사역을 이어가는 동안에 너무도 많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아름다운 추억들이 제 마음을 꽉 채우고, 퇴임 후 10년이 지나간 지금도 회고하면 무지개 동산 같은 일화들이 주마등처럼 기억의 호수를 밝혀줍니다. 이 기억이 살아있는 동안 이 보물섬 같은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남기고자 합니다.
방가족의 나라 방글라데시 - 사랑의 쌀을 가지고 온 나라 사람입니까?
‘방가’ 족의 나라 방글라데시는 벵갈 말로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주저함 없이 방글라데시로 날아갔습니다. 한민족 첫사랑의 선물을 가난한 이웃에게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몇 명 안 되지만 치타공의 우리 교포들이 흔들어 주던 태극기는 제 가슴을 한 번 더 뭉클하게 했습니다. 천 톤의 쌀은 해방 후 우리 민족이 받았던 구호양곡에 비하면 태산의 한 줌 흙에도 못 미치는 양이었습니다. 그러나 첫 걸음, 한 발짝이 천리 길의 소중한 시발이 되는 법이지요.
그 죽음의 땅에서 배고픈 어린아이들을 먹이고 돌보는 사역은 그 후로도 착실하게 계속되었습니다. 차츰 구호 사업이 확산되면서 구호만으로는 안 된다는 교훈도 얻었습니다. 그래서 지역 공동체를 총체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교육하고 조직하여 스스로 개발하는 힘을 길러 주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밖의 힘으로 구호를 받는 것은 백 년이 가도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지역 사회의 개발이 궁극적으로 빈곤으로부터 사람을 해방시키는 치료의 길입니다.
치타공에서 테이프를 끊은 월드비전 한국의 사역이 벌써 16년째를 맞아, 2006년 6월, 제게는 제2의 고향 같은 방글라데시에 다시 가서 정다운 땅, 반가운 사람들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첫날 공식 행사는 라자푸르 지방에서 있었습니다. 넓은 평야 끝이 안 보이는 옥토의 땅입니다. 땀을 흘려 벼농사와 감자를 심는 700에이커의 넓은 땅이 몬순 계절만 오면 논밭이 물에 잠기고 헛농사를 짓는 일을 반복해 왔습니다. 그 땅에 약 2킬로미터의 튼튼한 수로가 준공되는 날이었으니 농민의 기쁨이 어떠했을까 상상도 힘듭니다. 그날 아침 제방 뚝 위에 기념 식목을 했습니다. 농민 가족들과 손을 잡고 춤을 추었습니다. 300여 농민이 이 수리 공사를 위해 농토를 헌납한 것도 제게는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홍수와 한발의 재해에서 해방되어 2만이 조금 안 되는 많은 빈곤 농민 가족들이 쌀과 감자를 풍성하게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쌀을 갖다 준 도움보다 훨씬 더 큰 도움이고 지속성이 있는 원조 사업이었습니다.
둘째 날은 보그라의 말로티나고르 학교를 방문했습니다. 보그라 지역에서 4,000명의 어린이들이 2001년부터 한국인들이 보내는 도움으로 씩씩하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전국적으로는 9,500명의 어린이들이 한국의 양부모(후원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 숫자는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날 것입니다. 우리가 보내는 아주 작은 후원금이 모여 조금씩 그러나 분명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호랑이들의 고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선더반 쿨나에도 우리와 결연을 맺은 4,000명의 어린이들이 조그만 골방에 모여 깔끔한 모습으로 공부도 하고 활짝 핀 얼굴로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호랑이 같은 야생 맹수들의 정글도 우리의 작은 사랑이 있으면 아름다운 사람의 낙원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확인했습니다. 성매매와 마약으로 버려졌던 삶에서 새로운 삶의 길을 찾게 된 젊은 여인들의 빛나는 눈동자 속에서도 이 세상에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떠나던 날 찾아간 다카 외곽의 의료 봉사 센터는 인구에 비해 의료 시설이 부족해서 거리에 누워 있는 환자들이 너무 많은 그곳에서 일차 진료의 간병과 치료와 숙식을 제공하는 참 귀한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을 방문한 데는 좀 특별한 까닭이 있었습니다. 이곳의 앰뷸런스가 너무 낡아 못쓰게 되어 새 구급차가 꼭 필요했는데, 마침 한국 월드비전이 훌륭한 최신형 앰뷸런스를 기증하게 된 것입니다. 이 놀라운 사랑의 앰뷸런스에는 진귀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습니다. 방글라데시를 사랑하며 열심을 다하여 일하다가 30을 갓 넘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월드비전 직원 윤매영 님이 있었는데, 고인이 된 그녀의 가족이 적지 않은 헌금을 내 놓았습니다. 그 금보다 귀한 돈이 앰뷸런스 구입에 큰 몫을 했던 것입니다. 이 구급차가 굴러다니며 응급 환자들을 돌볼 때마다 윤매영 님의 사랑의 숨소리가 향기처럼 스며 나와 환자와 앰뷸런스를 따뜻하게 할 것입니다. 한 사람의 사랑이 이렇게 큰일을 합니다. 한국과 방글라데시를 강하게 묶어 주는 사랑의 줄이 된 것입니다. 매영 님은 하늘나라에서도 방글라데시를 잊지 않고 기도하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사랑은 말없이 바다를 건너고 하늘을 날아서 방글라데시로 16년 동안 밤낮으로 가고 또 갔습니다. 앞으로도 상당한 기간 그렇게 지속될 것입니다.
킬링필드와 대자연의 캄보디아 - 못하겠다고 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세상에는 극빈하고 어려운 나라가 많고 동남아에도 미개발 국가가 여럿 있습니다. 그러나 캄보디아는 유난히 이목을 집중하게 됩니다. 캄보디아라는 이름의 유래부터 참 흥미롭습니다. 인도의 큰스님 ‘캄푸’의 이름에다가 그의 후손이라는 ‘디아’를 붙여서 이루어졌습니다. 이 약소민족이 겪어야 했던 모든 고난을 생각할 때, 우리 민족이 각별히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는 이런 공통된 역사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독립을 얻은 이후에도 정국이 안정되게 지나는 날이 없었습니다. 국민 233명 가운데 한 사람은 스님일 만큼 순수한 민족일 텐데, 힘을 기르기보다 평화를 기원했을 그들이 전쟁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1975년에 시작되어 1979년에 끝난 크미르 루즈의 집권 4년 동안은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최악의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인류 역사 속에 폴포트가 이끄는 혁명 정부보다 더한 집단 살인의 예는 없었습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농민 혁명이라는 미명 아래 프놈펜의 정치, 경제, 교육, 문화계의 모든 지도자와 가족들을 무차별 학살했습니다. 예일 대학의 조사단은 희생자를 200만 내외로 발표했고, 자체적으로는 500만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이기를 포기하면 자기의 가족이나 동족에게도 극한의 참극을 연출할 수 있음을 크미르 루즈 폭군은 보여 주었습니다. 세계 100여 나라를 다니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이 많지만 캄보디아처럼 비참하고 눈물겨운 곳도 없었습니다.
캄보디아를 방문하여 닷새 동안 월드비전의 사업장을 두루 돌아본 후, 마지막 날 저는 부통령 겸 부총리를 예방했습니다. 인자하게 생긴 농업 전문가의 얼굴은 너무도 피곤해 있었습니다. 얼마나 힘든 자리기에 그렇게 기운이 없어 보일까 생각하니 정말 동정이 갔습니다. 이야기가 끝이 날 무렵 그는 제게 한 가지 힘든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캄보디아의 농민들은 오랜 전쟁 속에서도 꾸준히 농사를 해 왔습니다. 그런데 싸움이 계속되는 동안 모든 농기구를 잃었습니다. 기본적으로 꼭 필요한 호미, 괭이, 삽, 낫 같은 것이 전혀 없어서 맨손으로 땅을 파고 밭을 갈다 보니 손가락과 손바닥이 피투성이가 되어 너무도 보기 딱해 괭이를 좀 보내 달라는 것입니다. 몇 자루나 원하느냐 했더니 70만 자루만 속히 원조해 줄 수 있겠느냐고 호소했습니다. 너무도 진솔한 대화였습니다. 그 돈은 없었지만 못하겠다고 할 용기가 제게는 없었습니다. 무력한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지만, 숙제로 마음에 깊이 새기고 돌아왔습니다.
월드비전의 시작과 도약 - 사랑의 빚, 이제는 돕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월드비전이라는 세계적 구호 개발 기구는 한반도에서 6․25 전쟁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누가 계획이나 한 것처럼 월드비전의 창설자 로버트 윌라드 피어스는 그해 봄 부산과 대구, 서울 등에서 부흥회를 인도했는데, 미국으로 돌아가자마자 한국에 전쟁이 터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피어스 목사의 뜨거운 가슴은 그를 가만히 앉아 있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즈음 그의 설교 속에는 언제나 한국 전쟁 구호의 호소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몇 달을 크게 고민한 끝에 직접 구호 단체를 만들어서 앞장서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9월 22일 오레건 포틀랜드에서 월드비전 인터내셔널을 창설하게 됩니다. 그리고 곧바로 10월에 한국에 옵니다. 외국 사람들은 모두 피난 출국하던 때에 젊은 부흥 목사 피어스는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피어스의 첫 번째 한국 구호 사업은 한경직 목사의 영락 교회에서 시작됩니다. 다비다 모자원의 설립을 위해 소중한 지원금을 요청하면서 눈물로 호소하는 글을 써서 미국의 교회와 교인들에게 보냈습니다. 게다가 그는 거의 전문적인 사진 작가였습니다. 그 재주를 십분 발휘해 참혹한 전쟁 난민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서 미국인들이 보고 감동하여 헌금을 내게 했습니다. 피어스 목사에게 사랑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행동으로 직접 옮기는 삶의 기본이었습니다. 사랑은 명사이기보다 강렬한 동사였습니다.
피어스 목사는 잠을 설치며 피난민을 찾아 다녔습니다. 동양 선교회, 대구 동산 병원, 포로수용소 등 닥치는 대로 구호의 손길을 폈습니다. 육군 군단장 백선엽 장군이 설립한 광주 백선 고아원에도 도움을 보냈습니다. 지리산 토벌 작전으로 많은 고아들이 갈 곳이 없어 방황하는 것을 본 백 장군은 어려운 처지였지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맨주먹으로 황무지에 고아원을 세웠습니다. 그렇게 세워진 고아원을 피어스 목사가 좌시하지 못했습니다. 그곳뿐 아니라 전쟁 중에 생겨난 수백을 헤아리는 고아원과 모자원들 중 미국 기독교 봉사회나 기독교 아동 복리회, 그리고 월드비전의 도움 없이 운영되는 곳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한국의 사회사업은 6․25 전쟁 때문에 자리를 잡고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피어스는 위대한 사회 복지 전문가이기도 했습니다. 전쟁 중에 일시적으로 먹을 것과 입을 옷을 나누어주는 구제도 참 귀한데 피어스 목사는 새로운 사회 복지 사업을 개척하게 됩니다. 그것은 결연 후원입니다. 한 전쟁미망인과 네 딸을 월드비전이 첫 번째 정기 후원 대상으로 결정합니다. 생계 보증(Sponsorship)을 하겠다는 지속적 원조의 새 출발이었습니다. 사회 복지 사상과 기숙의 새로운 시도였습니다. 전쟁 직후에도 피어스 목사는 한국에 남아 지속적으로 애절하게 후원자들을 찾아 호소합니다.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보낸 피어스의 편지 한 통은 우리가 쉽게 갚을 수 없는 벅찬 사랑의 빚을 지고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우리는 이미 대지를 구해 놓았고, 이번 달부터 대전에서 한센병 환자의 영아들을 위한 집을 운영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돌보고 있는 여자 한센병 환자는 55명인데, 그들은 그 몸으로 이 영아들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어머니들이 우리에게 찾아와 아직도 감염되지 않은 어린 자식들을 격리시켜 남들처럼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해 달라는 간청을 해 왔습니다. 일을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지금은 번창하고 화려해진 대전의 어느 후미진 곳에서 반세기 전 문둥병이라는 무서운 전염병으로 신음하던 여성들을 상상하여 봅니다. 그리고 죄 없는 그들의 어린 자녀들을 한 젊은 미국 목사가 이렇게 지성으로 돌본 흔적을 피부로 느껴 봅니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한센병 환자들과 그 자녀들을 내 가족처럼 돌보아 준 피어스의 바다보다 넓고 깊은 사랑을 떠올려 봅니다. 이러한 사랑이 무르익어 1959년 5월 9일 ‘월드비전 특수 피부 진료소’가 세브란스 병원 앞에 세워졌으며, 10만이나 되는 한센병 환자가 그곳에서 치료를 받았고, 이들 가운데서 5만 명 내외는 완전히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피어스 목사의 작은 시작이 없었더라면 한국 국민은 적어도 10년에서 20년 정도는 그 무서운 병을 완전히 퇴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한센병뿐이 아닙니다. 맹아와 농아, 신체장애인을 위한 사업도 놀라웠습니다. 이들을 향한 피어스의 열정, 의수족 재활에 쏟아 부은 정성은 월드비전의 자료들에 너무도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가능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값없이 내려온 하늘의 사랑이었습니다.
해외 월드비전으로부터의 지원은 80년대 후반에 들어 해마다 줄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반면에 우리 국내 모금, 정부 보조금과 재단 수입이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늘어갔습니다. 1991년은 참으로 약진의 해였습니다. 남의 도움을 받아 온 40년의 역사에 막을 내리고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도약해 세계의 새 무대에 등장하는 새아침을 맞게 되었습니다. 우선 해외로 나가는 후원 사업 제1호는 2,050명의 극빈층 어린이와 우리 나라 후원자를 연결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새롭게 후원을 결심하고 약정서와 후원금을 보내는 분들의 우편물을 받을 때마다 우리 직원들은 머리 숙여 눈물을 적셨습니다. 첫 해에 우리가 정성스레 모아서 해외로 보낸 후원이 백만 불을 넘겼습니다. 월드비전 한국이라는 구호 단체 안에서 일어난 큰 변화는 ‘한강의 기적’만큼 값지고 심오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가까운 아시아의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아프리카의 전쟁으로 시달리는 소말리아, 수단, 모잠비크와 에티오피아,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등지로 후원의 손길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랑의 빵’ 운동 - 나누려는 마음만 있다면 백 원도 기적이 됩니다
이 모든 놀라운 기적을 가능하게 한 첫 번째 운동은 ‘사랑의 빵’이라는 모금 방법이었습니다. 이야기는 197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한 독실한 미국의 기독교인 레더러 씨 가정에서 조용하게 시작됩니다. 이 가정은 조그마한 깡통 하나를 식탁 가운데 놓고 식구들이 둘러앉아 식사기도를 하기 전에 동전을 통 속에 넣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받는 감격을 감사하는 마음의 표현이었습니다. 통에 동전이 꽉 차면 예수가 배고픈 우리에게 떡을 떼어 나누어주신 것을 생각하며 이웃을 돕기 위해 월드비전으로 송금했습니다. 미국 월드비전은 이 작지만 소중한 사랑을 ‘사랑의 빵’이라는 이름으로 저금통을 만들어서 교회로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유럽과 호주와 뉴질랜드로 번져 갔습니다. 나누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작은 동전마저도 얼마나 큰 힘을 가지는지 이 운동은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1990년 월드비전 한국에서 모금을 위해 만들어진 사랑의 빵은 아쉽게도 크게 호응을 받지 못한 채 창고에 쌓여있는 형편이었습니다. 몇 날 며칠을 새벽까지 기도하며 고민했습니다. 다음 해 3월이 오고, 제가 취임한 후 처음으로 확대 간부회의를 가졌습니다. 나는 개회 기도회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주제로 설교하면서 1991년 국내 모금을 외국에서 지원받는 백만 불과 같은 액수로 잡고 해외 사업을 돕는 비약을 하자고 호소했습니다. 그리고 이 획기적인 모금은 ‘사랑의 빵’을 주축으로 가능할 것이라고 역설했습니다. 모두들 공감은 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일이었기에 그만큼 결단과 용기 뿐 아니라 어쩌면 무모할 만큼의 열정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함께 시작하기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9월말까지 백만 불을 모금하겠다는 의욕은 누가 보아도 무리수였습니다. 도저히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이상스러울 정도로 불안과 두려움의 깊은 늪 저편에 상상하기 어려운 혼의 동력이 꿈틀거렸습니다. 그런 신비스러운 힘이 공포와 떨리는 가슴에 점차 안정과 평화를 주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만 사람이 더 먹고도 열두 광주리에 철철 넘치는 음식이 남았다는데 6천불의 개인 소득을 달성한 한국인 만 명이 동참하지 않을까 하는 믿음 하나로 발동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사랑의 빵 만 통은 한 달도 못되어 다 나갔습니다. 다시 3만 통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사랑의 빵 요청이 전국에서 몰려왔습니다. 직원들이 신바람이 났습니다.
크고 작은 교회들이 일제히 경쟁하듯 사랑의 빵 운동에 동참했습니다. 직장 신우회를 통해 공장과 회사에서, 그리고 군부대에서도 빵을 나누었습니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에서도 사랑의 빵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담임선생님도 어린이들도 감격의 눈물을 머금었습니다. 적게는 2천 원에서 많게는 1만 원의 동전이 하나의 빵 통에서 나왔습니다. 사랑의 빵은 이웃 사랑 정신을 기르는 큰 교재가 되었습니다. 이 사랑의 빵 이름으로 한국의 기부 문화에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이 엄청난 기적이 가능했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감격스럽기만 합니다. 잠자는 사람에게는 아침해가 큰 뜻이 없습니다. 깜깜한 밤중에 새벽을 꿈에 그리며 할 일을 찾는 사람에게만 여명의 새아침이 옵니다.
운동 초창기에 이렇듯 강렬한 열풍이 일어난 데는 아주 특별한 동력이 있었습니다. 있는 것 가진 것을 내놓지 않고는 못 견디게 하는 동기 유발이 참 중요했습니다. 남을 돕고 사랑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는 막연한 교과서적 인식만으로는 안 되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이야기가 없이는 모금은 불가능합니다. 나는 방글라데시로 사랑의 쌀을 싣고 가서 느꼈던 아픔과 감동들을 온 마음을 다해 생생하게 전했습니다. 우리 돈 천 원, 1달러로 30명의 어린이가 맹인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말을 피를 토하듯 힘주어 역설했습니다. 캄보디아의 참혹한 전후 정황들 또한 세상에 들려 줄 슬프고 기막힌 이야기 중 하나였습니다. 나는 다시 세계 곳곳을 발로 뛰면서, 보고 듣고 울면서 제 혼을 뜨겁게 만드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한국에서 모금 문화의 혁명을 일으키려면 제 속사람이 먼저 뜨거워져야 했고 그 뜨겁고 진실한 기운을 느낀 사람들이라야 마음을 움직일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당시 제 마음속 영화에 담아 온 이야기는 하루 종일 보아도 끝이 없을 만큼 긴 사연이었습니다. 이 거창하고 심각한 비극을 어떻게 몇 십 분짜리 설교나 강연으로 압축할 수 있을까도 고민이었습니다.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도대체 이 복잡하고 얽히고섥킨 눈물의 땅 이야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습니다. 그래서 잠깐 눈을 붙였는데 꿈속에서 해답을 얻었습니다. 그 꿈은 캄보디아의 굶주리고 나약한 농부의 한 가정을 찾아가서 붙들고 함께 우는 꿈이었습니다. 오열하면서 꿈에서 깨어난 나는 그것이 제가 할 이야기의 소재임을 깨달았습니다. 캄보디아 부통령의 70만 자루의 괭이 요청이 너무도 큰 십자가여서 피하고 싶던 생각이 싹 가시고 새로운 힘이 솟아오르는 충동을 가슴속에서 절감했습니다. 무거웠던 가슴이 순간 가뿐하게 상쾌해지고 항공기 창 밖의 하늘이 너무도 푸르고 높게 보였습니다.
사랑의 빵 운동이 교회와 각 학교로 열화처럼 전개되어 나가는 동안 언론 단체와 기업들도 팔을 걷고 나섰습니다. 가히 국민운동이라 불릴 만 했습니다. 큰 기업도 사랑의 빵 운동에 동참했습니다. 선경그룹에서 캄보디아 ‘사랑의 괭이 보내기’에 쓸 놀라운 도움을 받던 날 회사를 나오는 제 얼굴은 화끈화끈 타는 듯했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쌍용, LG, 삼성전자도 활발하게 나서 주었습니다. 국군 기독교회도 빠질 수가 없습니다. 사랑의 빵 신용카드도 등장했습니다. 시중은행의 카드 사업으로 1%의 수입이 사랑의 빵 계좌로 들어왔으며 본점과 지점에 사랑의 빵이 배치되었습니다.
사랑의 빵 운동이 선풍적인 성공을 이룩하는 데 누구보다 크게 공헌한 사람들은 연예인들이었습니다. 김혜자 님, 임동진 님을 포함한 20명에 가까운 인기 탤런트들이 참석해 몇 시간씩 열정을 쏟아 모금 활동에 임했습니다. 특별히 한 사람을 거명해야 한다면 김혜자 님이 바로 그 분입니다. 열흘 동안 김혜자 님을 포함한 9명 일행은 TV 카메라 팀과 같이 에티오피아에 다녀왔습니다. 김혜자 님이 얼마나 많이 우는지 저는 잘못 오자고 했나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밥 먹는 시간에 음식을 못 삼키며 저를 쳐다보고 “인젤라(그곳의 주식 빈대떡)가 목으로 잘 넘어갑니까? 저는 못 먹겠어요!”라고 했습니다. “안 넘어가도 억지로라도 먹어야 합니다. 먹고 저 어린것들을 살릴 기운을 차려야 합니다.” 나는 매정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혜자 님은 그 한 주간을 죽음의 계곡을 보는 체험을 하고 오늘 이 시간까지 먹는 일보다는 먹이는 사업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다. 하늘이 제게 보낸 천사였고 사랑의 빵 운동의 큰 기둥이었습니다. 2천 년 전 ‘보리떡 다섯 개’의 기적은 한 가난한 소년의 빵이 사랑으로 나누어졌기에 일어난 기적입니다. 2천 년 후, 그 기적이 한반도 남쪽 한강 기슭에서 오병이어의 기적보다 몇 천 배 크게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소말리아 종족 분쟁 - 애들이 왜 울지를 않죠?
아프리카 여러 나라 중 우리와 닮은 점이 많은 나라는 소말리아입니다. 식민지 시대의 희생양이었다는 점도 그렇고 냉전 시대에 미, 소 양대 세력의 충돌로 많은 피를 흘린 역사도 그렇습니다. 1969년 군사 쿠데타로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섰지만 국가를 이루기에는 부족간의 불신과 불화가 너무도 많았습니다. 게다가 씨족간의 내분만으로도 힘이 드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서쪽 국경 너머 소말리아 족이 사는 오가덴 지역에서도 치열한 전쟁 분규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소말리아는 그 땅이 자기들의 땅이라고 주장하고 국경이 인접한 에티오피아는 절대로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에티오피아로부터 분리 독립하려는 운동이 일어나자 대규모 군사 충돌이 불가피해져 소위 오간다 전쟁이 일어납니다. 구소련과 쿠바와 북한은 에티오피아를 돕고 미국이나 구라파 나라들은 소말리아 편에 서서 가히 세계 전쟁이 연출되었습니다. 소말리아는 패전하고 150만의 피난민이 오가덴에서 소말리아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더욱이 1991년에는 소말리아 안의 부족들이 따로따로 정치 세력을 규합하고 충돌하게 됩니다. 오가덴 지역에서는 애국운동이라는 명목으로 에티오피아 안에서 반정부 운동을 전개하다가 4만 명의 전사자를 냈고, 한발로 인한 흉년으로 국민의 반인 300만 명이 아사의 위기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1992년 여름, 날마다 우리 서울 사무소에는 소말리아의 전쟁 상황에 대한 보고와 함께 150만이 넘는 구호 대상자를 긴급하게 도와야 한다는 요청이 쇄도했습니다. 이러한 긴급 상황이 한국 월드비전이 외면하고 방관할 수 없는 비상 구호 사업이었습니다. 9월에 우선 20만 불의 긴급 지원을 월드비전 인터내셔널에 약속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20만 불은 그리 큰돈도 아닙니다. 그런데 월드비전 세계 총회에서 이 금액이 제 손에서 국제 총재에게 전해질 때, 세계에서 모인 지도자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보내 주었습니다. 몇 억 불, 몇 천만 불씩 분담금을 내는 부자 나라의 월드비전 대표들이 어째서 우리의 20만 불을 그렇게 귀하게 여겨 주었을까요?
그것은 나눔은 또 다른 나눔을 낳는다는 믿음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40년 동안 사랑과 믿음을 가지고 전쟁과 빈곤과 질병의 참혹한 한국을 도와준 나라들이 느꼈을 큰 보람은 40년의 세월, 그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사랑을 돈으로 계산하기는 불가능합니다. 미국 월드비전의 도움은 1950년부터 40년 동안 현금만 통산해 8천만 불, 지금으로 따져 족히 10억 불이 넘습니다.
우리가 도움을 제공한 시기는 적절했습니다. 그 당시 세계 언론들이 전해 준 끔찍한 보도 사진들을 저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바로 소말리아였습니다. 요란한 총포가 터지는 피로 물든 땅, 한발과 기근, 전염병과 무정부, 무질서의 생지옥과 같은 땅에 세계 도처에서 양곡과 생필품이 답지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작은 몫을 감당하여 사랑의 쌀 500톤이 한민족의 사랑을 싣고 떠났습니다. 30만 불의 긴급 구호금도 더 보낼 수 있었습니다. 물건과 돈만 보내고 앉아 있을 수 없어 김혜자, 정영숙 님과 함께 그 전쟁터로 가 보았습니다. 헬리콥터에서 내려 시내로 들어가서 폐허로 변한 흉물 가옥과 점포들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의 걷는 모습에는 영양실조와 병색이 짙었습니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없고 공포만 쌓여 있었습니다. 전쟁의 제일 큰 죄악은 사람을 짐승보다 천하고 추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황무지 광야에 피난민을 수 천 명 수용하고 있는 천막촌 데누네이로 갔습니다. 우리가 보낸 사랑의 쌀로 죽을 만들어서 급식하는 곳이었습니다. 진료소도 몇 개의 천막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죽을 떠서 굶주린 난민들의 찌그러진 그릇에 담아 주는 일을 돕는 김혜자, 정영숙 님의 젖은 눈을 보고 저는 적지 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유엔의 구호와 평화 유지 작전이 상당 기간 지속되는 동안, 현장에서도 많은 희생이 뒤따랐습니다. 그러나 긴급 구호는 세상 끝날 때까지 싸움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계속될 것입니다.
‘기아 체험 24시간’ 운동 - 기꺼이 굶는 사람들이 여기 있습니다
‘40 Hours Famine’(기아 체험 40시간)이라는 운동은 1970년대 중반에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이미 시작되어 선진국에서는 상당한 호응을 얻은 사업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는 제3세계의 어린이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고통에 함께 동참하고 굶는 동안 그 음식값을 가족과 이웃에게 받아 월드비전의 긴급 구호 사업에 쓰도록 하는 교육과 모금 사업입니다. 40시간을 택한 까닭은, 정말 배고픈 것을 체험하려면 하루는 부족하고 이틀쯤은 굶어 봐야 한다는 생각에서입니다. 이 운동은 주로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여러 가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빈곤한 나라들의 사정을 영상물을 통해 들으며 금식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기아 체험을 시작해야 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제게 있었습니다. 일단 12시간 기아 체험 운동으로 나름대로 성공을 달성한 우리는 그 열기와 에너지를 타고 제2차 고지를 향해 오를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때맞춰 92-93 회계연도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기도하며 새해 사업과 예산을 만드는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간부 직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지난해 수준만 유지해도 대 성공이라고 생각했으나 제 중심에는 93년도에는 해외 원조를 200만 불 선으로 끌어올려야 하겠다는 충동이 용솟음쳤습니다. 이사회에 예산을 제출했을 때 이사님들께서 퍽 걱정하시는 얼굴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제 깊은 마음에는 믿는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기아 체험 24시간 운동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행사를 몇 달을 두고 계획했습니다.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 하루를 정해 금식하는 운동을 유격대 전투 방식으로 전개했습니다. 교회에서, 학교에서, 여름방학 캠프에서, 해수욕장에서 “이제 당신은 한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친구와 함께, 친구를 위해!”라는 구호가 가장 호소력이 있었습니다. 하루만 안 먹고 적은 고통을 이기면 그 값으로 수십 명 아니 수백 명의 생명이 제3세계에서 하루를 배고프지 않게 지낼 수 있다는 데 감동하지 않을 청소년이나 어린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 자녀들의 아름답고 거룩한 행동을 보고 방관할 부모는 없다고 우리는 확신했습니다.
1993년 10월 30일 오후 6시, 서울 올림픽 체조 경기장에는 너무도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집니다. 그냥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장엄하고 찬란한 사람들의 공동체 제전이었습니다. 체조 경기장에 돈을 내고 운동 시합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24시간을 굶으면서 가난한 이웃의 고통을 체험하기 위해 내 평안과 풍요를 잠시 멈추고 수 천 명의 청소년들이 전국에서 몰려들었습니다. 과일 주스 한 잔씩을 나누어 마시고 금식이 시작되었습니다. 경기장을 꽉 메운 젊은이들의 열기가 달아올랐습니다. 개최 공연과 영화 “Power of One”이 상영되었습니다. 그리고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담요를 깔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경기장 밖 넓은 마당에 야영 천막을 치고 마치 전투를 앞둔 병사들처럼 눈을 감고 쉬는 청소년들은 흡사 하늘에서 온 천군천사들이었습니다. 만일을 위해 응급 의료진이 24시간 기다렸지만 아픈 사람은 없었습니다. 병이 어디라고 침입하겠습니까? 31일 오후 늦게 폐회한 후 자리를 떠날 줄 모르고 앉아 있던 청소년들의 얼굴은 하루 전날 모이기 시작했을 때와는 너무도 달랐습니다.
금식을 통해 얻은 스폰서들의 후원금이 가난한 나라로 가서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이게 될 것이라는 기쁨과 만족감은 너무도 밝고 맑게 빛났습니다. 이 아름다운 불씨는 그 후 몇 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으로 열화처럼 번져 나갔습니다. 94년 7월에 서울에서 열린 캠프는 “94 패민 24, 사랑의 빵 콘서트”였습니다. 기아체험과 사랑의 빵을 묶어서 벌인 잔치였습니다. 이문세, 박상원, 김건모, 노영심, 박정운 님 이외에도 많은 연예인과 체육인이 불쏘시개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95년 한해에 기아 체험 참여자의 수는 40만 명이 넘었습니다. 기아 체험 운동은 본격적으로 국민 의식 개혁 운동으로 승화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월드비전 한국의 기본 사업이며 주요 모금의 샘터가 되어 활기차게 계속되어 오고 있습니다.
르완다의 SOS - 쓰고 남은 것을 나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1994년 4월초에 또 하나의 참극이 검은 대륙에서 일어났습니다. SOS의 긴급 구조 전파가 세상으로 뜨겁게 퍼져 나갔습니다. 르완다의 문제는 후투족과 투치족의 갈등입니다. 대통령이 타고 있던 비행기가 반정부 유격 부대에 의해 추락되는 사태가 벌어지자 후투족 중심의 정부군이 투치족을 무차별 학살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 동안 220만 명이 주변 국가로 망명과 피난을 떠나고, 20만 명이 참혹하게 살해됩니다. 국민 37명 중 1명이 죽음을 당한 것입니다. 카제라 강에서 한 시간마다 40여 구의 시체가 떠내려가 빅토리아 호수에 가득 찬 것이 목격되고, 콜레라와 이질 같은 무서운 전염병이 창궐하기 시작합니다.
유엔도 많은 국제 구호 기구들도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월드비전은 위험을 무릅쓰고 뛰어들었습니다. 콜레라 방역 작업과 함께 1만 가족에게 20리터 짜리 큰 물통을 나누어주었습니다. 깨끗한 물을 마시게 하여 콜레라에 감염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폐쇄된 국경을 뚫고 들어가서 담요 5천 장, 식수 1900통, 그 외 여러 구호 식품 등을 수송하고 배급했습니다. 1천만 불의 긴급 구호 모금이 시작되었고, 여러 나라들이 송금을 했습니다. 많은 기도 끝에 우리 한국 월드비전은 해외 후원을 시작한 지 몇 년도 안 되는 처지에서 믿음 하나로 1백만 불을 약속하고 모금을 시작했습니다.
나는 우선 텔레비전 매체에 제일 크게 낯이 익은 김혜자 님과 박상원 님, 그리고 MBC TV 촬영 팀과 함께 르완다로 떠났습니다. 인간 사회에서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생명 천대, 떼죽음, 전염병의 만연, 미움과 불신 때문에 피로 물든 곳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진노한 하늘이 눈물처럼 쏟아 놓는 집중 폭우도 몇 차례 겪었습니다. 그런데 그 죽음과 공포의 땅에서 우리 일행은 한줄기 희망을 보았습니다. 유엔을 통해 여러 나라가 보낸 양곡을 우리 월드비전이 30만 명에게 먹이고 있었습니다. 다른 국제 민간단체들도 땀을 흘리며 구호와 의료, 교육 사업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실향민에게 귀향 차량을 제공하는 일도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긴급 구호의 총체적 오케스트라가 있어서 전쟁과 질병, 기근의 상황 속에서도 무지개 같은 기적이 가능했습니다.
귀국 후 MBC TV가 생생한 르완다의 참상을 방영했습니다. 그리고 긴급 후원금이 답지했습니다. 연말까지 모금의 기적이 계속되어 이듬해 봄, SOS 사업이 시작한 지 9개월 여 만에 100만 불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보스니아 종교 전쟁 - 전쟁이 끝난 자리, 희망을 심는 사람들
보스니아 헤르제고비나라는 나라는 1992년에 독립한 신생 국가지만 극빈한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나라들과는 다른 나라입니다. 전쟁만 아니었으면 그런 고통 속에 머물 이유가 없는 나라였습니다. 국민투표에 의해 독립은 선언되었지만, 인구의 30%나 되는 세르비아 족이 보이콧하여 시작부터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문제는 모슬렘 교인들이 49%나 되어 그들의 주도하에 독립은 했지만 세르비아 정교회와 카톡릭 교인이 48.6%나 돼 팽팽하게 맞서서 충돌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 요인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분쟁 위에 모슬렘 정부를 반대하는 세르비아 사람들과는 또 다른 소수 족인 17.3%의 크로아티아 사람들이 있어 3파전의 양상을 띤 것입니다. 한 국토에서 3계파가 뒤엉켜 피를 흘리며 영토를 장악하려는 전쟁을 3년 반이나 하는 동안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일 큰 전쟁터로 바뀌었습니다.
1995년 12월, 유엔과 미국의 주선으로 정전이 되어 보스니아 연방(모슬렘과 크로아티아인 집단)과 세르비아 공화국이라는 준 국가로, 한 나라 두 정부의 불안한 평화가 왔습니다. 우리의 남북 분단과 흡사한 모습이었습니다. 1996년 나는 다른 후원국 대표들과 함께 전쟁 직후의 혼란스러운 그 땅을 찾아갔습니다. 그곳에서 서울로 급히 보낸 편지를 소개하는 것으로 보스니아 전쟁 이야기를 마치려 합니다.
“… 산도들도 숲도 다 하얗게 덮인 한 폭의 동양화처럼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이 설경 밑에는 만 가지 불행한 문제들이 깔려 있습니다. …제 숨을 막히게 한 사실은 3백만 가까운 피난민과 수복민이 6백만 개로 추산되는 지뢰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도 모르며 전전긍긍하고 있는 애절한 모습이었습니다. 적어도 20만 명의 젊은이들을 포함한 생사람들이 살해를 당하고 그보다 몇 배나 되는 남녀노소가 집단 수용소에서 입에 담기도 힘든 유린과 고초를 당했다고 합니다. 폐허가 되어 버린 보스니아에 유엔을 비롯한 80여 개의 민간 구호 단체들이 맹활동을 하고 있는 푸근한 모습이 그나마 제게 크나큰 위로와 희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따끈한 콩국에 빵 한 조각을 받아 열심히 먹고 있는 어린이와 노인들, 장작과 연탄을 나누어주고 있는 우리 월드비전 직원들, 지뢰를 찾아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조심스럽게 파내고 있는 나토군의 젊은 병사들, 평화를 위해 푸른 유엔의 기를 휘날리며 일하고 있는 각종 유엔 기구 요원들의 움직임은 얼어붙은 제 마음을 녹여 주었습니다.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보스니아를 위한 특별 긴급 사업 지원 요청을 받고 무거운 가슴으로 내일 떠납니다. 우리 월드비전 가족들의 너그러운 도움의 손길을 보스니아는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글이 ‘월드비전’ 잡지에 실려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후 몇 달 동안 얼마나 많은 전화나 편지가 왔는지 모릅니다. 문의에 응답하고 바쁘게 들어오는 헌금을 정성스레 모아서 보스니아로 보냈습니다.
북한 돕기 - 사랑은 그저 주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반드시 시작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에게 새로운 과제가 생겨났습니다. 북녘 우리 동포의 양곡 부족과 기근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날마다 한 끼니 반 만 먹고 남은 한 끼니 반의 식량은 우리의 한 몸, 한 마음, 한 가족의 반인 북한의 굶주리는 동족에게 보내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는 민족적 양심의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차례 다방면으로 방법을 모색하다가 1993년 홍콩을 경유해서 사랑의 쌀이 북한 땅으로 전해졌습니다.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어려운 북한 동포를 돕는 것은 좋은데 혹시라도 군량미로 전용해 쓰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지만 함께 살아야 하고 잘못되면 함께 죽어야 할 우리의 살붙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뜻이 있으면 길은 있다고 했던가요? 1994년 마침내 분단의 높은 벽을 넘어 길이 뚫렸습니다. 신의주 압록강 북쪽 강변의 단둥을 양곡 수송의 전진기지로 삼았습니다. 우선 조선족 집단 거주지역에 유치원을 건축했는데, 이 사업으로 요령성과 단둥시의 고위직 간부들과 친분이 두터워져 북한 당국과 서로 신뢰를 쌓을 수 있었고, 나중에는 지원 요청까지 받았습니다. 그들이 요청한 것 중 하나는 평양 제3병원에 500여 개의 병상을 급히 보내 달라는 것이었고, 둘째는 황해도 불타산 사랑 목장에 한우 황소 60두와 사료를 보내는 일이었습니다.
목포에서 밤낮 쉬지 않고 침대를 만들어 침대 500대가 배에 실리던 날, 저는 부도에서 쇳덩어리 침대를 붙들고 기도하며 울었습니다. 이 병상 위에 누울 환자들에게 우리 남쪽 동포의 사랑을 전해 달라고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또한 요령성, 흑룡강성에서 순종 한우 황소를 골라 매입하여 보내고, 배합사료를 실은 화물기차가 천천히 단둥 역을 떠날 때도 저는 하늘을 우러러 빌었습니다. 이 60두의 황소가 무사히 도착해 황해도 농토를 갈기도 하고 배고픈 우리 농민들을 위해 영양을 공급하게 되기를. 농업학교 축산과 출신인 제가 그것들과 함께 사랑 목장까지 왜 못 가는지 속이 타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봄은 한 겨울에도 봄을 사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저는 우리 월드비전의 기관지 1995년 2월 호에 다음과 같은 회장 서신을 실었습니다:
“우리 민족을 포함한 20세기의 인류는 실로 열전의 전국 시대와 냉전의 이념 갈등과 대치와 반목으로 피와 파괴의 100년을 보냈습니다. 냉전의 희생양처럼 분단의 슬픔을 경험해 왔던 독일이나 월남, 예멘은 모두다 해방과 통일의 기쁜 해를 이미 맞았습니다. 그런데 우리와 한 핏줄을 나누어 한계레를 자랑하는 백의민족, 배달의 후예들만은 유독 피비린내 나고 잔인무도한 전쟁의 악몽과 현실적 적대 관계를 청산하지 못한 채 철조망과 지뢰와 총포를 마주 대고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밝아오는 이 새 아침에 이 땅 남북의 6천 7백만여 민족 공동체의 정신적 지도자들은 어디서 무슨 생각들을 하고 계시며 정치와 경제와 통일을 책임지신 어른들은 무슨 정책들을 구상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국 교회와 온 민족이 이 은혜의 해, 해방 반세기의 전환점의 해에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어야 한다고 꼭 믿습니다.
휴전선 저 북쪽에는 우리의 형제들이 십 년 가깝게 흉년이 거듭되어 식량이 몹시 부족합니다. 도움이 퍽 필요합니다. 고통 당하는 형제들을 그냥 방치하고 아프리카로 우리의 도움을 보내기엔 가슴이 아픕니다. 엄동설한 꽁꽁 얼어붙은 한강과 대동강, 백두산 천지와 한라산 백록담에 기쁜 봄바람이 불고 동백과 개나리와 철쭉이 피는 날을 위해 우리는 이 한 달을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합니다. 그의 명을 좇아 일을 합니다. 겨울이 정말 깊었으면 봄이 어찌 멀리 있으리까? 봄은 이 겨울에도 봄을 사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죽은 혼에게는 봄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통일벼 한 가마니는 불과 3만 원이면 살 수 있습니다. 한 말 값, 한 가마니 값, 백 가마니, 천 가마니 값을 모으고 보내 주십시오.”
그리고 나서 저는 모든 언론 매체를 통해 북한의 식량 위기를 돕기 위해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민족애를 발휘하자고 호소했습니다. 1995년이니까, 가히 특종 뉴스였습니다. 찬성과 반대 의견이 극을 이룬 가운데 놀랍게도 많은 호응이 있었습니다. 다행한 일로, 기독교만이 아니라 천주교회와 불교, 유교, 원불교, 천도교를 포함한 6대 종단이 협력해서 이 일을 추진하고 북쪽에서도 종교 단체들이 양곡 분배에 참여하도록 이야기가 모아져서 좋은 결과가 기대되었습니다. 국내뿐이 아니고 미국과 캐나다, 호주와 뉴질랜드, 일본과 대만 등이 큰 관심을 보이고 현금과 양곡을 약속해 왔습니다. 놀라웠습니다. 이제는 구체적으로 행동을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하여 3.1절 구국 기도회에서 설교하고 다음날 중국 셴양으로 날아갔습니다.
역사를 뒤집는 기적, 한 사람의 뜨거운 심장에서 시작됩니다
3월초의 셴양은 아직 추웠습니다. 기다리고 있는 북한 당국의 대화 상대는 몇 달 전 베이징에서 만났던 김봉익 조선 대외 경제 협력 추진 위원회 대표였습니다.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동족이라는 것이 이런 것 아닐까요? 한 번밖에 만난 일이 없었지만 한 집안 식구 같은 정을 느꼈습니다. 최단 빠른 시일 내에 20-30만 톤의 양곡을 무상으로 기증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으며, 북한 당국은 양곡의 분배 계획과 분배 정형을 빠른 시일 안에 통보한다는 협정서에 서명하고 서울로 급히 돌아와서 모금 작업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7월 말 엎친 데 덮친 참극이 일어났습니다. 대규모 홍수로 인해 10만 가구와 50만 명의 수재민이 발생한 것입니다. 북한 유엔 대표부는 수해 긴급 구호를 월드비전에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9월부터 유엔의 관련 기관들이 긴급 구호를 시작했습니다. 45주년을 맞는 6․25를 전후하여 우선 1천 톤의 통일벼가 정미소에서 도정되어 나진항으로 보내졌습니다. 통일벼라는 이름은 누가 만들었는지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정말 통일과 화해를 위해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의 작품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이때까지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해 오던 한국 정부도 7월에 놀라운 결정을 했습니다. 15만 톤의 쌀을 지원하겠다고 북한에 통보하고 곧바로 행동에 옮겼습니다. 늦은 대로 참 옳은 길을 택했습니다. 얼마나 고맙고 기뻤는지 모릅니다.
쌀 10만 가마니를 보내야겠다는 우리의 아주 조그만 꿈은 20-30만 톤으로 계획되고, 온 세상이 힘을 모아 100만 톤 이상의 양곡이 북한으로 들어갔습니다. 소설 같은 이야기이고 한 편의 장편 시를 창작한 것 같은 느낌입니다. 먼 후일 한민족의 비통한 20세기의 역사가 재조명 받게 될 날이 올 것으로 저는 믿습니다. 역사를 뒤집고 바꾸는 일은 아무리 크고 많은 사람들의 동참을 필요로 한다 해도 그 시작은 한사람의 소박한 기도와 생명을 내어놓는 결단과 행동에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무모하고 무지하고 우둔한 일로 보이더라도 인간애, 겨레 사랑, 생명 경의의 작은 겨자씨가 한 사람의 뜨거운 심장에서 뿌리를 내리고 싹이 트면 됩니다. 그 다음에는 우직하게 일어서서 아무리 무섭고 세찬 반대의 풍파가 와도 포기하지 않는 지구력이 있어야 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심만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는 것이, 이 사랑의 씨알은 전염성이 강하여 생각하는 다른 가슴으로 열화처럼 옮겨 붙고 자라기 때문입니다. 막을 힘이 없습니다.
월드비전 한국 임기 6년을 돌아보며 - 착한 백성, 마음 밭의 농사는 풍작이었습니다
사랑의 쌀을 싣고 방글라데시로 간 날부터 6년의 세월은 넘칠 만큼 풍년의 연속이었습니다. 착한 백성, 백의민족, 동방예의지국… 4천만의 착한 마음 밭에서 풍성한 오곡백과가 아름답게 열매를 맺어 한반도와 세계를 잇는 사랑의 다리를 놓았습니다. 제가 월드비전 한국의 맏머슴을 한 기간이 2190일의 낮과 밤이었습니다. 8760시간의 긴 광야의 행진이었습니다. 더러는 추워서 떨고 가다가 지쳐서 쓰러지곤 했지만 민족혼과 생명 경의의 정신이 저를 다시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우직하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오늘 하루를 인생으로 여기며 온몸과 마음을 다해 앞만 보고 걸었습니다.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 받아 온 너무도 많은 사랑의 빚을 갚아 보려는 몸부림이었습니다.
본 도서요약본은 원본 도서의 주요 내용을 5% 정도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원본 도서에는 나머지 95%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와 내용은 원본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본 도서요약본이 좋은 책을 고르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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