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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디바인 |
(2007-05-12 16:39:14, 조회 :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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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퍼의 삶과 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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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월 / 318쪽 / 10,000원
▣ 저자 마크 디바인
미주리 주 캔자스시티에 위치한 미드웨스턴 침례신학교의 기독교 신학 교수이다. 클램슨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고 서든 침례신학교에서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쳤다. 태국 선교사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제자를 위한 연구용 성경' 제작에 크게 기여한 바 있다.
▣ 역자 정은영
서울여자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였고, 성균관대학교 번역대학원을 졸업하였다. 현재 sbs 번역대상 최종 심사기관으로 위촉된 (주)엔터스코리아의 기독교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 Short Summary
이 책은 본회퍼를 다룬 여러 책들 중에서 각별하다. 미국의 보수적인 신학자에 의해 보수적인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을 위해 저술되었기 때문이다. 어울리지 않지만 본회퍼는 그의 정치적 선택과 신학 방법론 때문에 정치적 진보주의, 신학적 자유주의 입장에서 두르러지게 거론되었다. 그러나 이 책에 따르면, 본회퍼는 원칙적이고 복음주의적 신앙을 가지고 있었고, 경건한 생활을 강조했다. 그의 진보적인 실천은 보수적 신앙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 차례
제1장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제2장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는 것
제3장 성도들의 공동체
제4장 증거와 적합성
제5장 자유, 고난 그리고 소망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리스도께서 한 사람을 부르시며 내게로 와 죽으라고 명하신다.” - 디트리히 본회퍼
1943년 2월, 슐라블렌도르프가 폭약실험을 시작했다. 아돌프 히틀러를 암살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폭발 전 지지직하는 치찰음 때문에 독일제 폭탄은 사용하지 못하겠다고 하자, 그 순간 목사이자 비폭력 저항운동가이고, 주일학교 교사이며 평화주의자인 디트리히 본회퍼, 그가 슐라브렌도르프의 암살 성공을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제자도의 대가(The Cost of Discipleship)』를 쓴 장본인이 어떻게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동시에 한 사람의 죽음을 기도할 수 있었을까?
본회퍼는 한가로이 생각할 여유도 없이 절체절명의 문제들에 맞닥뜨렸다. 일촉즉발의 거대한 용광로와 같았던 나치 정권 하의 독일, 바로 이 히틀러의 제3제국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여러 가지 사건들로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구체적인 결단들을 내려야 했다.
“우리의 임무는 국가가 법과 질서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남용할 때 바퀴 밑에 깔린 희생자들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을 넘어, 그 바퀴 자체가 지나가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우리는 순교자의 피를 요구하는 날이 온다고 해서 놀라거나 당황해서는 안 된다.”
본회퍼의 이런 담대함은 유전된 것이기도 하다. 본회퍼의 할머니인 91세의 줄리 본회퍼는 나치 정권에서 유대인이 운영하는 가게를 대상으로 불매운동을 시작하자 감시 중인 나치 돌격대의 대열을 헤치고 곧장 유대인 상점에 물건을 사러 들어가기도 했다.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자 모든 교회가 그 정권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결국 본회퍼의 지하 신학교는 문을 닫게 된다. 나치는 국민과 국가를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법령들을 쏟아냈는데, 이 법령은 강제수용소의 설립을 허가하면서 훗날 본회퍼가 처형당하게 될 수용소를 세우는 근거가 되었다. 1938년, 독일과 전세계는 ‘수정의 밤’의 공포를 온몸으로 느낀다. 유대인 회당과 상점, 집들이 불에 타 잿더미가 되었고, 많은 유대인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타오르는 화염을 피하려다가 총에 맞아 숨졌다. 이후로 나치 정권은 불에 기름을 붓듯 극악하게 타올랐다.
폭풍우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며 미국에서 또 다른 기회를 맞이한 본회퍼는 국제적이고 공식적으로 히틀러 반대 운동을 광범위하게 펼쳤다. 하지만 위기에 처한 조국 독일로 돌아가야 한다는 칼 바르트의 생각에 근본적으로 의견을 같이하고 귀국길에 오른다. 칼 바르트는 자신의 날카로운 충고가 젊은 동료를 죽음으로 인도한다는 사실에 괴로웠을 것이다. 이때 쓴 본회퍼의 저서 『제자도의 대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그리스도께서 한 사람을 부르시며 내게로 와 죽으라고 명하신다. 나 스스로 대단한 일을 이루려 함이 아니다. 다른 이들을 섬기고 돕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섬김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구주께 속한 모습이다.”
귀국한 지 얼마 안 되어 그는 유대인 친구와 이웃이 새로운 곳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또한 칼 바르트 등과 함께 유대인들을 서방국가로 몰래 탈출시키는 일에 가담했다. 반란을 계획한 이들은 이 반란에 히틀러 암살이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야 하며, 실제로 암살을 시작으로 반란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일단 이러한 상황이 분명한 현실로 드러나자 권총이나 폭발물을 전혀 다룰 줄 몰랐던 본회퍼도 자신에게 암살 명령이 떨어지면 언제라도 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함을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그러나 결국 히틀러 암살기도는 수포로 돌아갔고, 본회퍼는 체포되었다. “용기란 두려움 없는 마음이 아니라 두려움에 맞서 행동하려는 의지다.” 이것이 바로 본회퍼가 형무소 독방에 갇혀 보여준 용기였다. 그가 남긴 종이쪽지에는 ‘수배중인 다른 이들을 배신할 수 있다는 위험 속에서 자살이 어떤 의무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강인했던 그도 심문과 고문 앞에서 이처럼 움츠러들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잘 견뎌냈다. ‘옥중서간’인 『저항과 복종』에는 제3제국의 흥망성쇠 앞에서 그리스도의 헌신적인 한 제자가 선한 양심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쳤던 모습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본회퍼는 탈옥을 계획했다가 이내 포기했다. 탈옥에 성공했을 때 게슈타포가 가족과 친구들을 괴롭히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마침내 1945년 4월 5일, 히틀러는 본회퍼를 포함한 일명 ‘조센 모임’의 회원들을 사형에 처하기로 결정했고, 4월 9일 아침 일찍 그는 동료들과 함께 처형되었다. 강제수용소의 담당 의사는 그날 보았던 본회퍼의 모습을 이렇게 회상한다.
“문이 반쯤 열린 독방 사이로 죄수복을 벗기 전 바닥에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는 본회퍼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전 이 사랑스러운 형제가 정말 신실하게 주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듣고 계신다는 확신으로 기도하는 모습에 아주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사형장에서 다시 짧게 기도한 후 담대하고도 편안한 모습으로 단두대 계단을 올랐습니다. 그리고 몇 초 후 처형당했습니다. 근 50년 가까이 의사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은 결코 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형집행 후 며칠 동안 수용소 밖으로는 연합군의 폭탄소리가 빗발쳤다. 그리고 2주 후, 미군이 수용소에 남아 있던 사람들을 모두 방면했다. 그리고 다시 1주 후, 56세의 히틀러는 입속에 권총을 연발로 쏘아 자살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순교한 그리스도인일까? 그는 우리 세대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본회퍼는 현대 세계의 한복판에서 벌어졌던 복잡한 사건들과 공포를 마주했던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기록했던 설교자이자 목사였다. 본회퍼는 성경을 믿는 21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전했다. 이제 우리는 다음 장에서 본회퍼가 추구했던 희생적인 제자도의 모습을 살펴볼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는 것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말씀을 해석하는 습관에 젖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지 말라. 말씀이 우리의 말과 삶을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 디트리히 본회퍼
인간적인 마음을 따르지 않으려면
칼 바르트의 영향을 받았던 본회퍼는 인간이 죄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 직관을 동일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을 해석할 수도 없다고 믿었다. 역설적으로 디트리히가 깊은 묵상과 깨달음, 심지어 기도를 통해 이처럼 확신하게 되었다고 해서 그 생각이 사실임을 보장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인이 말씀으로 나아가는 목적은 자신의 확신이 성경에서 되풀이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이다. 말씀을 통해 듣는 주님의 음성은 이전에 들었던 어떤 확신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다. 이것은 무척 놀랍고도 어리둥절한 경험이다. 주님의 제자로서 말씀에 나아가는 것은 칼 바르트의 말처럼 ‘성경이라는 새롭고 오묘한 세계’로 들어가는 일이다.
성경운동으로의 회귀
1932년부터 본회퍼의 제자였던 한 사람은 그가 학생들에게 “모든 성경말씀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메시지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충고하며 예수님을 사랑하느냐고 물었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본회퍼는 이 같은 중대한 사실을 깨닫게 된 계기가 있었음을 자신의 글에서 밝히고 있다. “그 후 중대한 일이 발생했다. 오늘날까지 내 인생을 변화시키고 완전히 바꾸어놓은 엄청난 일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성경을 깨달은 것이다. … 나는 종종 말씀을 전했고 수많은 교회에서 성경을 주제로 이야기하고 설교했다. 하지만 아직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아니었다.”
오늘날, 20세기 초반에 성급하게 제기되었던 고등비평에 따라 성경에 접근하는 학자들은 점점 줄고 있다. 그러나 본회퍼가 고등비평의 이런저런 방법론들을 결코 완전히 거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성경을 해석할 때 반역사적이거나 신비적인 접근방식을 채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경을 독단적으로 비평하며 읽는 데는 분명한 한계와 위험이 있으며, 그렇게 읽어서는 성경의 진정한 특징을 인식할 수 없고 결국 성경 특유의 보물, 다시 말해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접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디트리히가 슐라이허에게 쓴 편지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다. “아주 간단한 고백이지만 난 성경만이 인간의 모든 의문에 대한 해답이며, 우리가 말씀을 통해 응답받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겸손히 묻기만 하면 된다고 믿는다네.”
‘성경의 재발견’이라는 그의 ‘회심’의 여파로 디트리히의 목회 정체성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본회퍼는 자신의 소명을 발견했다. 그는 형 칼 프리드리히에게 이렇게 편지했다. “형님이 보시기에 제가 여러 가지 면에서 좀 광적이고 미친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이따금 제 자신도 이런 모습이 두렵습니다. … 하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제가 처음으로 드디어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1936년 4월 본회퍼가 매형 슐라이허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글도 있다. “제가 어느 순간, 성경을 하나님의 요상한 말씀으로 치부해 버릴 마음이 없고, 이와 반대로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온힘을 다해 묻는다고 이야기한다면 이해하시기가 쉽겠습니까? 저에게 성경 이외의 모든 것은 점점 너무 불확실해 보입니다. 전 자신의 거룩한 부분으로만 뛰어드는 게 두렵습니다. … 또한 매형께 아주 개인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바는 제가 이런 식의 성경 읽기법을 깨닫고 매일같이 성경을 보면서 더 놀란다는 사실입니다. 수없이 신학적으로 벗어나 헤매다가 이렇게 기본으로 되돌아오는 법을 깨달았을 때 얼마나 기쁜지 믿지 못하실 겁니다.”
신실한 성경 읽기의 회복을 위해 이처럼 진정으로 참회하며 회심했던 본회퍼는 결코 신학적으로 다른 이들의 사상에 종속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신학자로 성장하는 중대한 사건들 속에는 칼 바르트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전에 ‘성경이라는 새롭고 오묘한 세계’와 부딪히면서 개인적으로 정신적인 충격을 경험했던 바르트는 신학을 결코 개인의 큰 희망이나 꿈, 환상을 예측하는 도구로 축소시킬 수 없음을 깨달았다. 특히 초반에 바르트는 하나님의 ‘완전히 다른 면’을 강조했다. 이때까지 바르트의 의도는 인간의 방법과 생각이 하나님의 그것과 다르다는 자각을 회복하려는 데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다른 출처를 통해 확인하고 확증하는 일이 아니라 계시나 심판을 통해 나타난다.
말씀이 계시를 통해 오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자신을 드러내신다.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찾으려면 그것을 그분이 기뻐하시는 때와 장소에서 발견해야 한다. 또 말씀이 심판을 통해 오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심판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십자가 사건은 인간의 모든 부분에 의문을 품고 이의를 제기하여 결국 오직 참되신 하나님께 저항하고 자기 멋대로 살아온 모든 인류에게 죄가 있다고 심판했다.
본회퍼는 신앙고백이 진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조금도 잊지 않았다. 그의 저항운동이 고백교회를 통해 알려졌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신앙고백과 성경해석 역사를 중시하는 개신교의 신조주의에 관한 든든한 지식 덕분에 성경의 내용을 통달하게 되었지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인정받는 성경해석에 절대적으로 집착하는 모습에 화가 치밀었다. ‘성경을 깨닫게 된’ 본회퍼는 오랫동안 확립되어진 성경해석에 얽매이지 않고 새롭게 전해지는 말씀을 다시 듣고자 했다. 이 점에 관해서 본회퍼는 개신교교인들에게 자유롭게 말씀을 받을 수 있는 상속권이 있음을 주장하며, 자기 스스로 알맞은 때에 성경을 해석하고, 믿음의 각 세대가 말씀을 통해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전통과 이 땅의 모든 것을 시험할 수 있는 특권과 책임이 있다고 계속해서 주장했다.
성경과 기도
본회퍼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마음에서 성경을 공부하고 기도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는 예레미야의 말씀에 자신을 맡기면서 윤리적인 문제의 해답을 찾는 일을 넘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 개념을 생각하는 일로 확장되었다. 우선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우리의 질문에 응답하실 뿐만 아니라 문제 자체도 해결해주신다. 이제 그에게는 주님의 관심, 가치, 목적, 요구, 약속이 주요 관심사로 부상한다. 그것이 진실하고 타당한가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전하시는 말씀과 세상을 어떻게 판단하시느냐와 일치된다. 본회퍼나 그에 앞선 칼 바르트는 현실이란 놀라울 정도로 성령과 궁극적으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나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정의한 것이며, 심지어 동일시된다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와 떨어진 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만물이 함께 섰다는 말씀이 있다. 성령의 증거를 통해 본회퍼는 스스로 온전한 세상, 진짜 세상, 칼 바르트가 말하는 ‘성경이라는 새롭고 오묘한 세계’에 이끌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자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들은 역사를 통해 아주 광범위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역사에 빠져든다. 속죄함의 은혜를 입은 주인공이자 당사자로서 그리스도인은 과거에 자신을 구원하신 주님의 거룩한 역사 가운데 자신도 존재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 거룩한 역사를 기억하고, 이를 살아계신 주님의 성품과 목적을 알 수 있는 창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게 된다.
현실의 실현화
본회퍼에게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현실의 실현화를 의미했다. 현실이란 무엇일까? 하나님의 말씀이 현실이다. 하나님의 역사가 현실이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와 약속들을 마주하게 된다. 주님께서 하신 일, 또 그분의 말씀과 약속이 현실에 대해 필적할 만한 다른 해석들을 몰아내고 승리를 거둔다. 하나님께서 모든 의미를 결정하시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끝이다. 그렇다면 현실을 실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는 진리에 복종함을 의미한다. 또 인간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드러남을 의미한다. 믿음으로 걷는 것은 이와 반대되는 예상들과 모든 증거들에 맞서 현실 가운데 하나님께서 드러나심을 믿는 것이다.
본회퍼는 상황윤리를 거부했으며, 그리스도인들이 담대하게, 또 심지어 소망이 낳은 낙천적인 마음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책임감을 가지고 미래를 만들어가는 데 참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담대함, 낙관주의, 소망 이 세 가지를 본회퍼의 윤리적 사고의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
본회퍼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대로 행하려는 마음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현대인의 실생활에서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는 그리스도인의 행복한 의무를 부담스럽지만 감격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직접적인 요구나 부름 없이도 일반적으로 순종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최종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특별한 하나님의 임재나 응답을 기대하고, 심지어 기대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거부했다. 하나님께 어떤 확신이나 특별한 계시를 달라고 요구하기보다는 평소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최선을 다할 때 자유할 수 있다. 그는 “하나님께서 저를 이렇게 인도하고 계세요” 혹은 “하나님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라고 말하는 신비주의파인 광명회와 같은 모습은 옳다고 생각지 않았다. 그가 교회에 기대하며 확신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나시는 하나님과 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을 바라보는 성도의 마음가짐, 또 이를 기록한 성경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이 전하는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마음을 품어야 한다.
베르게는 본회퍼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정확하게 따져보고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일단 결정을 내리면 당당하고 자유했었다고 회상한다. “일단 내린 결정에 대해서는 후회하거나 의심하는 일이 전혀 없었습니다.” 본회퍼는 성급한 결정을 내리지 말라고 경고하면서도, 하지만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무기력한 상태로 있는 것이 무엇보다도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끝도 없이 결정을 미루는 것은 특별한 계시가 있었다고 거짓말을 했거나 다른 명확한 지침을 원한다는 의미일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생각 속에 항상 무기력하게 상황을 잘못 분별할 위험이 있다는 고정관념이 박혀 있다는 것을 본회퍼는 인식했다.
본회퍼는 주님의 거룩한 인도하심을 구하며 응답받는 일이 매일의 삶 속에 필요하며,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한 결과로 나타난다고 믿었다. 또한 제임스 패커가 말하는 ‘재촉하며 살짝 자극하는 내면의 세계’, 하지만 성경을 비추어볼 때 시작되고 형성되며 해석되는 세계가 어디에 자리잡고 있는지 깨달았다.
결의론을 거부
본회퍼는 상황윤리와 함께 윤리적인 논쟁의 주요한 태도이자 방식이었던 ‘결의론’을 거부했다. 결의론은 보편적인 도덕법칙을 개개의 행위와 양심 문제에 적용하는 것이다. 전형적으로 결의론자들은 성경, 자연법칙, 전통, 이렇게 세 가지를 통해 얻은 일반적인 원칙들을 사용한다. 결의론을 전개하는 윤리주의자나 상담자는 일반적인 원리를 사용해 지나간 과거나 의도된 행동의 선악 여부를 가르치려고 하며, 양심의 가책 때문에 죄를 고백하는 사람들이 죄의식에 사로잡히거나 문제를 다시 생각하지 않도록 해방시켜 주려고 한다. 또한 결의론은 어떤 확신의 회복을 약속한다. 명확한 지시 앞에서는 적어도 이 일을 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은 사라진다. 옳고 그름과 선악 여부를 묻는 것은 무색하다.
본회퍼가 결의론을 거부한다고 해서 이러한 접근법을 통해 추정할 수 있는 근본적인 진리까지 거부했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결의론적인 윤리가 가져올 수 있는 함정은 양심에 해이해진 부적절한 모습만큼이나 위험하다. 어쩌면 본회퍼에게 결의론에서 나타나는 가장 치명적인 위험은 자기만족과 거짓된 확신을 위하여 싸구려처럼 세워진 신조를 지지하고, 은혜와 죄사함을 통해 살아가는 인생과 스스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존재임을 거부하는 모습이다. 본회퍼는 성도들에게 “당당하게 죄를 짓고 은혜 안에 거하라. 당당하게 죄를 짓되 더 당당하게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 안에서 기뻐하라”라고 지시한, 이해할 수 없고 논쟁의 대상까지 되고 있는 마틴 루터의 말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본회퍼는 인간이 죄 한 번 짓지 않고 행동하며 결정하거나, 또 그러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함을 깨달았던 것이다.
말씀만으로 충분하고 분명하다
본회퍼는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며 그 한 권만으로도 분명하고 충분하다고 확신했다. 이와 함께 죄와 죄를 이성적으로 이해할 때 생기는 결과에 대해 종교개혁을 통해 형성된 관점을 공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본회퍼는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기독교의 애매한 영역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본회퍼의 요지는 경험 자체를 비난하거나 성경과 상반된 경험에 맞서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식론적인 측면에서 말씀과 체험의 차이점을 인식하려는 데 있었다. 체험은 의미와 진리가 당연히 공존할 수 있는 곳이며 원한다면 두 가지 모두 누릴 수 있다. 성경은 체험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 의미를 알리며 형성하고 판단하는 역할을 계속해나간다.
『제자도의 대가』에서 본회퍼는 말한다. “성경의 어느 부분에서 선포된 말씀이든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전부이다. 예수님께서 명령하시는 목적은 항상 동일하다. 즉, 인간이 전심으로 주님을 믿으며 하나님과 이웃을 온몸과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명령의 절대적 특징이다. 다른 의미에서 예수님의 명령을 따르려는 것은 그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하며 말씀에 불순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표시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구체적인 상황에서 무슨 일을 시키셨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선포된 주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듣는다. 그러나 말씀이 성취될 수 있는 길은 오직 믿음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주님의 새로운 인도하심을 강조한 제자도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다음의 두 말씀을 높게 평가한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 16:13). 특히 가톨릭교회나 카리스마파 신자들은 끊임없이 성령께서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사역을 지지하며 위의 구절들을 인용했다.
그러나 두 교파의 주도적인 성경해석학자들은 하나같이 이런 말씀들을 그런 식으로 읽는 것이 불가능함을 인식하고 있다. 로마 가톨릭의 성경해석학자인 래이몬드 브라운은 이 구절들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경고했다. “13절의 말씀이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새로운 하나님의 계시가 있을 것임을 암시하는 말일까? 13절과 더 이상의 계시는 없는 듯 이야기하는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라는 요한복음 15장 15절 말씀을 비교해보면 이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야 그분의 공생애 사역 동안 벌어졌던 일들과 들은 이야기들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리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요한복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주제이다.” 그래서 브라운은 13절의 ‘보혜사’를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이 담고 있는 온전한 진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분’으로 이해한다.
단순한 순종
누구나 일단 하나님의 뜻임을 깨달으면 주님의 뜻을 분별하느냐의 문제는 사라지고 순종과 불순종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는 점에 분명히 동의할 것이다. 제자도는 죽은 영혼의 상태에서 벗어나 순종이라는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라는 주님의 은혜의 부르심에 응답할 때 나타난다. 본회퍼는 값싼 은혜를 거부하면서 믿음 없이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순종하지 않을 때는 믿을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개신교인들은 믿음이 있어야 순종할 수 있다는 순서에 익숙해져 있다. 훌륭한 개신교도처럼 본회퍼는 순종이 아닌 믿음이 옳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어떤 시간적인 순서나 믿음과 순종이 서로 일시적으로 분리될 때, 예수 그리스도의 구체적인 부르심과 명령에 대한 응답이라는 믿음의 실제적인 특성을 덮어버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래서 믿음과 순종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행위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며, 믿음을 지키는 것 또한 전혀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전하는 것
본회퍼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이 성경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성도들의 입술을 통해, 즉 서로 이야기하며 말씀을 전하고 권고하는 사이에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인이 함께 살아가는 곳에서는 어떤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 누군가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다른 이에게 선포해야 할 상황이 불가피하게 올 수밖에 없다.” 그런 모습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도전받고 확고해지며, 그리스도의 형제자매들과의 유대관계가 더 깊어지고 돈독해진다. 우리는 형제자매들로부터, 특히 말씀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다른 글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음을 기대하고 생각해야 한다. 그들을 통해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들을 때 진정한 유익이 나타난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이런 식으로 주님과 또 다른 성도들과 서로 화합할 때 기뻐하셨다.
증거와 적합성
“적합성의 문제가 신학의 주제라면,
우리는 그 원인이 이미 만천하에 드러났음을 확신할 수 있다……
현 세대에게 기독교의 정당함을 증명하기 위함이 아니라
말씀을 듣는 한 세대를 정당화하려는 의도임에 틀림없다.” - 디트리히 본회퍼
본회퍼는 원리주의자였을까?
신학이 실제 과학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던 바르트의 주장은 젊은 본회퍼에게 설득력이 있었다. 신학이 독립적이라고 해서 더 넓은 과학의 세계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 연구 대상의 독특한 특성을 무시하고 신학을 시험하며 비난하려는 다른 학문의 특권적인 모습을 그는 거부했다. 기독교 신학의 대상은 성경을 통해 증거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이시다. 기독교 신학의 대상은 독특하며, 그래서 하나님을 연구할 때 반드시 이런 독특한 모습에 적응해야 한다. 그러나 연구 분야가 일반적이고 ‘세속적인’ 연구 분야와 겹칠 수 있는데, 가령 고고학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이때 우리는 함께 문제를 파헤칠 수 있다.
바르트에 대한 본회퍼의 관심은 지적인 영역을 훌쩍 넘어섰다. 바르트의 신학은 말씀을 전하며 실제 목회를 해야 한다는 요구에서 폭발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신학 자체가 매일같이 긴급한 필요가 있는 교회사역의 학문이라고 보았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부분에 치중했던 본회퍼는 이런 살아 있는 신학을 환영했다. 하지만 바르트처럼 무엇보다 말씀을 듣는 성도들이 느끼는 적합성에 실질적인 주의를 기울이기보다는, 성경의 진리와 궁극적으로 진리탐구를 통해 진정한 적합성에 이를 수 있다는 자신감에 관심을 두었다. 그는 아주 구체적으로 문화와 세계에 깊은 관심을 쏟았음에도 진리만이 적합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전하신 특별한 말씀이 없었다면 진정한 기독교는 이 땅에 아무것도 전할 수 없음을 확신했다.
증인의 특징
본회퍼는 증인이 교회가 세상에서 갖는 임무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규명한다. 증인은 말과 행동 모두로 증거해야 한다. 본회퍼는 교회가 정부에 관여해야 할 세 가지를 규정했다. 첫째, 교회는 성경에 나타난 국가의 책임을 선포해야만 한다. 둘째, 교회는 정부가 선한 사람들에게는 보상하고 잘못된 행실은 처벌하는지 살핀다. 셋째, 국가의 불의를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경고하고 권고하는 하나님의 사자로서의 예언자적인 역할을 한다.
교회는 가능한 범위에서 정부의 잘못된 행동과 잔혹행위의 희생자들을 도와야 한다. 본회퍼는 유대인들이 스위스로 몰래 탈출하도록 도와준 ‘작전 7호’에 가담해 그리스도의 증인된 의무를 다하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된 삶에는 희생자들을 돕고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것 이상이 요구된다. 즉, 정부가 저지른 범죄행위에 저항하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본회퍼가 원칙적인 태도로 판단했음을 주목하길 바란다. 교회는 정부의 잘못된 행동과 불의를 형성하는 것이 무엇인지 규명하기 위해 역사나 자연법칙 혹은 정부 자체가 아닌 성경을 본다.
본회퍼가 그의 말처럼 히틀러 암살공모에 관해 전혀 양심에 거리낌이 없었던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아마도 자신의 상황을 좀더 정확히 파악했더라면, 국가에 저항하다가 결국에는 기회가 생기자 암살을 공모했으며, 양심에 거리낌이 있었다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우리는 본회퍼가 당당하면서도 겸손했으며, ‘혹독한 삶’ 속으로 뛰어들길 기뻐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잘못된 문제나 고통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추상적인 순수함을 지키는 데 더 큰 관심을 보이는 거만한 도덕적 결벽증으로 자신을 정당화하지 않았다.
고백교회와 바르멘 선언
결국 본회퍼는 스스로 히틀러 암살공모에 휘말렸음을 깨달았다. 고백교회는 히틀러 정권과의 비극적인 충돌 때문에 추락한 입지와 위상을 명확히 거론하고자 1934년 5월 신앙고백적인 성명서를 만들었다. 이 성명서의 초안은 목회자 모임과 본회퍼의 스승이자 멘토였던 칼 바르트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졌다. 본회퍼는 히틀러 정권의 위협이 심각하다고 확신하는 사람들과 함께했다. 부상하는 정치적 상황이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교회까지 위협하고 있었고, 정부가 교회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특권을 빼앗으려는 상황에 맞서 복음 자체를 지켜야만 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은 분명하고 공식적이며 대중적으로 이루어져야 했다. 따라서 본회퍼는 자신이 최전방에서 ‘신앙고백’의 필요성을 주장했으며 바르멘 고백문을 작성하고 채택하여 배포했다.
이러한 ‘거부’에 대해 히틀러는 즉각적으로 제3제국 내에서 나치 정권의 지지를 받고 있는 국가 사회주의 이념을 하나님의 새로운 거룩한 계시로 인식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는 국가 사회주의의 새로운 ‘통찰력’을 성경에 나타난 계시와 동일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내세웠다. 결국 히틀러는 십자가와 만자형 십자가로 교회와 나치주의를 화합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나치주의로 교회를 대체하려는 계획이었다. 나치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계시가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바르멘 선언의 고백문 5조는 교회가 이해했던 국가의 특권과 책임의 한계점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성경은 거룩한 약속을 통해 여전히 구원받지 못한 세상인 국가 안에서 인간의 분별과 능력이 무력을 사용하고 위협하는 수단으로서 사용되는 한, 교회가 책임지고 정의와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교회는 주님께 감사하고 그분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약속이 가져오는 유익을 인식한다. 또한 하나님의 왕국과 명령, 정의와 함께 통치자들과 피통치자들의 책임에 관심을 보인다. 교회는 말씀으로 만물을 지키시는 하나님, 그 말씀의 능력을 신뢰하고 순종한다. 우리는 국가가 특별한 위임을 넘어서 인간생활의 유일하며 완전한 질서가 될 수 있으며, 또 그래야 한다는, 그래서 결국 교회의 임무까지도 수행할 수 있다는 거짓 교리를 부정하는 바이다. 우리는 교회가 특별한 위임 없이도 국가의 모습이나 임무와 존엄성을 가질 수 있으며, 또 그래야 하므로, 교회 자체가 국가의 한 기관일 수 있다는 거짓 원칙을 부정하는 바이다.”
본회퍼와 바르멘 선언의 입안자들은 독일의 복음주의 교회 안에 존재하는 이른바 ‘독일 그리스도인’이 이 조항을 포함하고 있는 신앙고백을 명백히 배신했다고 믿었다. 이런 식의 배신은 독일 복음주의 내부에서 고백교회의 고백적인 기반이 확립되는 계기가 되었고, 고백교회는 히틀러의 제3제국과 스스로 충돌하는 상황에 처했다. 주님의 증인으로서 교회에 약속된 영역을 국가가 인정하기를 거부하자 본회퍼 스스로 히틀러와 충돌한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과 사담 후세인
히틀러 암살공모에 참여하면서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고 말한 것은 그 문제를 놓고 자신을 정당화하지 않겠다는 말과 비슷했다. 자신의 행동을 하나님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뜻이다. 또한 ‘세상적인’ 사람들이 히틀러를 죽이기 위해 군부대를 동원하는 일에 ‘성공’하기를 기도하면서 자신은 계속 ‘결백’하기 위해 선한 양심을 지키는 짓을 더는 할 수 없음을 의미했다. 우리는 본회퍼의 독재정권과의 무력투쟁을 어떻게 평가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 우리는 지금 이와 비슷하게 인간의 잔혹성이라는 극악무도하고 긴급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본회퍼의 삶과 업적이 남긴 흔적이 무고한 사람들을 목표로 삼고 강간실과 고문실이나 집단 매장지가 존재하는 상황을 바라보며 무슨 말을 할까?
나는 이러한 환경에 대한 책임감을 인식할 때, 이 같은 범죄를 저지른 자들에게 저항하며 적극적으로 반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명 본회퍼가 나치 정권을 악으로 규정한 것은 인간 본성에 대한 낙천적이며 자유적인 평가와는 다른 모습이다. 또한 수천 명이 목숨을 잃고, 수백만 명이 자신 혹은 사랑하는 이들이 고문이나 처형을 당할까봐 두려워 떨며 노예처럼 생활하는 동안, 겉으로는 무안한 인내심을 보이며 토론을 통해 서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뒤로 물러나 있는 모습과는 다르다.
전통적인 전쟁이론에서 무력 사용을 허용하는 것은 아돌프 히틀러 암살공모에 참여한 본회퍼를 정당화시켜 준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국제적인 테러라는 횡포의 새로운 형태에 저항하며 무력을 사용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다시 한 번 직면해야 한다. 나는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동안 자제하고 인내하며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을 믿지 않는다. 계속해서 더 많은 사람을 신속히 살해하려는 계획이 본회퍼를 한 명의 선도자로 세웠다.
자유, 고난 그리고 소망
“행복이 아닌 하나님을 구하라.” - 디트리히 본회퍼의 <성도의 교제>
“행복은 천국의 약속이며… 거룩함은 이 땅에서 우선적으로 갖추어야 할 모습이다.” - 데이비드 도커리
“순교자들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 - 터툴리안
말년에 칼 바르트는 죄수 이외의 다른 이들에게 거의 말씀을 전하지 않았다. 그래서 바르트의 설교를 듣고 싶으면 우선 중죄를 져야 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바르트는 죄수들이 도움 없이도 스스로 얽매인 몸임을 이해하고 자유를 갈망하기 때문에 맘껏 말씀을 전할 수 있다며, 이것이 바로 복음의 주제라고 이야기했다. 본회퍼는 스승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자유를 허락하시고 참된 자유를 누리라는 부르심으로 받아들였다.
1944년 7월 20일, 히틀러 암살기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본회퍼는 감옥에서 풀려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고 머지않아 처형될 것이라 확신했다. 그리고 7월 21일, 죽음이라는 끔찍한 현실을 받아들이며 『자유의 도상에 있는 정거장 Stages on the Road to Freedom』이라는 시를 지었다. 그는 교도소에서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자유를 네 단계에 걸쳐 설명하고 그 특징을 그려냈다. 첫째 ‘훈련’의 단계, 둘째 ‘행동’의 단계, 셋째 ‘고난’의 단계, 넷째 ‘죽음’의 단계였다. 엄격히 말해, 자유는 자연스럽게 그 길을 따라가며 누리는 것이기에 누구라도 이 네 가지 단계를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자유의 특성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의 도상에 있는 정거장
훈련
그대가 자유를 찾아 나선다면
욕망과 갈망으로 마땅히 가야 할 길에 이르지 못한다며 두려워 말고
무엇보다 영혼과 감각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라.
인간은 오직 훈련을 통해서 자유의 비결을 깨달으리라.
행동
제멋대로 하기보다는 참된 것을 담대히 행하고
소심하게 의심하기보다는 현실을 과감히 붙잡으라.
자유는 도망치는 생각이 아닌 오직 행동에서 오나니
하나님의 명령을 성실히 따르며 신뢰하고
주저하거나 두려워 말며 폭풍우 속으로 들어가 행동하라.
자유가 승리의 기쁨으로 그대의 영혼을 맞이하리라.
고난
놀라운 변화, 그렇게 힘차고 활발하던 손이 묶여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무기력하게 깨닫는다.
하지만 더 강한 손을 의지할 수 있기에 안도의 숨을 쉬며
지금 편안히 만족하리라.
한순간이라도 자유에 이르는 행복을 맞이한다면
자유가 완성된 영광의 날을 기다리며 주님께 맡겨드리리.
죽음
이제 오라, 영원한 자유로의 여정에서 최고의 향연이여.
죽음이여, 모든 괴로움의 사슬을 던져버리고
덧없는 육신의 벽과 눈먼 영혼의 벽을 허물라.
마침내 벽 속에 숨어 있는 것을 보게 되리니.
자유여, 오랜 기간 훈련과 행동, 고난을 겪으며 그대를 찾아다녔노라.
죽음에 이르러서야 하나님을 통해 그대를 보게 되노라.
본회퍼가 짧은 생애의 마지막 끝자락에서 지었던 이 시는 적어도 『제자도의 대가』에서 보여줬던 확신을 계속해서 보여주는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구원하셨던 세상, 바로 이 땅이 수동적이고 체념하며 냉담한 데 대해 본회퍼가 가슴 졸이던 모습 말이다. 일단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 죄사함을 받은 사람들은 모든 이들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중압감이나 가능성이 차단되면서 매우 혹독하고 험난한 인생을 살게 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상급으로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얻고, 그리스도와 진정한 영적 교제를 누리게 된다. 이 책은 보수적 신학자인 저자가 보수적 기독교인을 위해 저술한 것으로, 본회퍼가 복음주의적 신앙을 가지고 경건한 생활을 했음을 강조하면서, 그의 진보적 행동은 보수적 신앙에서 나온 것임을 증명하고 있다. 또한 복음주의 신앙을 가진 기독교인의 삶의 모델을 본회퍼의 삶으로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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