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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래비 재커라이어스

(2007-03-03 16:34:21, 조회 : 1624)

출판사

프리셉트

제목

진리를 갈망하다

/ 최예자 옮김
/ 2007년 1월 19일 / 399쪽 / 13,000원

▣ 저자 : 래비 재커라이어스
인도에서 출생한 그는 힌두교 최고의 특권 계층인 브라만(승려, 제사장) 출신이다. 1966년, 캐나다로 이민한 후 온테리오 성경대학과 트리니티 복음신학교를 졸업했다. 휴스턴 대학에서 신학 박사 학위, 애즈베리 대학에서 법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특별 과정으로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영국 낭만파 시인들을 연구했다. 50여 개국 이상을 순회하며 강연했고, 래비 재커라이어스 국제 선교 단체의 총재로서 왕성한 강의와 저술 활동에 열정을 쏟고 있다.

▣ Short Summary
이 책은 기독교의 진리가 주는 의미와 소망에 대한 강력한 통찰을 제공한다. 저자는 C. S. 루이스 이래로 우리가 만나보지 못했던 탁월한 방식으로 기독교를 변증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그의 탁월한 논리 앞에 수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강력한 논리, 통찰력 있는 예증, 열정적인 확신을 가지고, 그는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확증하는 것이 얼마나 긴급한 문제인가를 보여준다.

이 책의 중심 내용은 총 3부로 나누어져 있으며, 서로 논리적인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구성했다. 제1부는 반유신론적인 세계관을 분석하고, 그것이 논리적인 모순 속에서 세워졌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으며, 제2부에서는 인간이 갖는 진리에 대한 갈망이 확실하다는 것을 변론하고 그것을 탐구해 나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제3부에서는 기독교의 메시지가 갖는 진리성을 파악하고 아울러 '인간은 하나님 없이 살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성경적인 답을 제시한다.

▣ 차례
1부: 반유신론이 운동하고 있다 - 그것은 치명적이다
1. 풍요 속에 담긴 고뇌
2. 무한한 무(無) 한가운데서 떠돌고 있는 무신론
3. 광인의 시기가 도래하다
4. 지성, 집을 잃다
5. 인간이 고통 당할 때 반유신론은 어디에 있는가?
6. 저급한 의미를 추구하는 무신론

2부: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무엇인가?
7. 지식이라는 과학과 삶이라는 기술
8. 로망스의 마력
9. 진실_멸종 위기에 있는 품종
10. 사랑의 수고가 이겼다
11. 죽음에 직면하여

3부: 예수님은 누구신가? _ 그리고 왜 그것이 중요한 문제가 되는가?
12. 진리에 관한 논쟁
13. 인간의 딜레마
14. 철학자의 탐구
15. 역사의 중심인물
16. 성도의 보배

부록 1. 무신론과 유신론에 관한 질의응답
부록 2. 회의론의 스승들

1부 반유신론이 운동하고 있다 - 그것은 치명적이다
풍요 속에 담긴 고뇌

인도의 뉴델리에 살던 시절, 나는 한창 사춘기를 겪고 있었다. 그날도 무릎 위에 펼쳐 놓은 물리학 교재와 라디오를 통해 들려오는 멜로디 사이에서 멍하게 앉아만 있었다. 이 ‘두 세계에 끼어’ 오락가락 하는데, 무심코 듣던 노래 가사가 내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나를 고통스럽게 짓누르던 무수한 질문들을 하나씩 명확하게 들추어내던 그 가사는 누구나 갖고 있는 보편적인 고뇌를 담고 있었다.

우리는 마음 속 깊은 심연에서
보이지 않아 방황하고 넘어집니다.
종종, 별 하나 없는 밤과 태양 없는 한낮의
함정 같은 미로를 힘겹게 지날 때마다
그 어떤 것을 소망합니다.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는 길....

그러나 누가 이 문제를 풀어줄 수 있나요?

우리의 소망은 호두나무 껍질 속에 들어가 있나요?
온몸을 두건으로 가린 채 기도하는 사람들이 모인
은밀한 장소, 그 어디에 깊숙이 파묻혀 있나요?
아니면 수북이 먼지 쌓인 높은 선반 위에 있을까요?
어쩌면 저 별 속에
아니, 우리들의 자아 속에 있을지도 모르죠.

누가 이 문제를 풀어줄 수 있나요?

그 노래는 알 수 없는 고민에 휩싸여 있던 내 마음을 두드렸다. 각 절마다 후렴구로 반복되는 “누가 이 문제를 풀어 줄 수 있나요?”라는 질문은 인생의 내밀한 고통 즉, 사랑을 상실했을 때의 절망, 자녀의 죽음을 통해 알게 되는 고통의 절정, 자살 충동을 느끼는 또 한 사람의 몸부림,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나이트클럽에서 기를 쓰고 흔들어대는 사람들의 온갖 소음, 핵전쟁의 위협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의 두려움을 대변하며 제각각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노래의 마지막 부분은 합창이었는데, 마치 인간 의식 안에 있는 깊은 갈등들이 천둥치듯 격렬하게 쏟아졌다.

만약,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두려움 때문에
절망에 빠진다면,
게임과 맞지 않는 규칙들 때문에 혼란스럽다면,
누가 이 문제를 풀어줄 수 있나요?
누가 이 문제를 풀어줄 수 있나요?
누가 이 문제를 풀어줄 수 있나요?

당시 겨우 사춘기를 지나고 있던 내게도, 전 세계의 새로운 에덴을 상징하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런 공허감을 솔직히 인정하고 드러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성공의 전형이자 영원한 마법의 요새라고 불리는 헐리우드에서 어떻게 그런 노랫말이 흘러나올 수 있을까? 빈곤을 경험해보지도 않았고 인생의 물질적 결핍을 정복한 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상처로 얼굴진’ 인생들이나 할 소리를 똑같이 외쳐대는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그 후로 젊은 지성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이 문제와 씨름했지만 수년이 흐르도록 그것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그러던 중 내게도 고민의 방향이 완전히 역전되는 시간이 찾아왔다.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지금 나는 서방에 살고 있다. 그리고 진보적인 20세기가 스러져 가는 순간들을 직접 목도했다. 그러면서 나는 열방들의 노래가 예나 지금이나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삶의 문제들을 규명하기 위해 음악가들은 이렇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데 비해, 정작 이 시대의 문화의 엘리트라고 불리는 자들은 그 질문의 이면에 숨어 있는 원인조차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킹 크림슨이 작곡한 가사 속에는 혼돈, 그 자체가 비명을 토해내고 있다.

예언자의 말이 새겨진 벽에 금이 가고 있다.
죽음의 도구들이 번쩍거린다.
모든 사람이 악몽으로 갈기갈기 찢길 때는
아무도 월계관을 씌워주지 못하리.
적막이 비명을 삼켜버리고 나면
내 묘비엔 혼란이란 말이 새겨질 것이다.
갈라지고 깨진 길을 기어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편히 앉아 웃을 수 있겠지.
하지만 두려워, 내일 난 울게 되지 않을까.
정말 두려워, 내일 난 울게 되지 않을까.
운명이라는 철문 사이로
시간의 씨앗이 심겨지고, 그 위에 지식이라는 물이 뿌려졌다.
그러나 규칙을 정하지 않는다면, 지식은 오직 죽음을 불러올 뿐.
내가 아는 인간의 운명은 바보들의 손아귀에 있다네.

나는 인생의 난해한 문제들을 우리 시대 대중철학가인 음악가들의 시각을 빌어 시작하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이유는 지성인들은 인간 내부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이 지성의 고뇌를 숨긴 채, 확신에 찬 모습만을 보여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악가들은 가면을 쓰지 않고 정직하게 있는 모습 그대로를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지금 모든 것이 한 세기 전에는 상상도 못했을 정도의 수준으로 발전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대중가요의 메시지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오히려 어찌된 연유인지 그 골은 점점 더 깊어만 가고 있다.
역사가이자 철학자로 잘 알려져 있는 월 듀란트는 “인간이 과연 하나님 없이 살 수 있을까?”라는 문제를 제시하면서, 이것을 우리 시대의 가장 절실하고도 위대한 질문이라고 강조했다. 이 문제를 다룰 때 우리는 지적이면서도 솔직한 모습으로 정직하게 논증에 임해야만 한다. 삶의 목적을 연구하는 모든 철학은 궁극적으로 다음의 두 가지 기본적인 가정 혹은 결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첫째, 하나님은 존재하는가?
둘째,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그분의 특성이나 본질은 무엇인가?

이 질문들은 절대 간과할 수 없는 것들이며, 비록 공식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해도, 늘 우리의 삶 속에 스며들어 있는 문제이다. 우리의 모든 다른 신념들은 하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근거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대한 지성들도 논쟁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 문제에 정면으로 맞대결 해왔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반유신론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종종 하나님의 존재와는 별도로 사회윤리에 대한 이성적인 근거를 제공했던 사람이 임마누엘 칸트라고 단언한다. 그러나 무척 흥미로운 사실은 그들 중 누구도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이끌어 낸 결론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또 다른 세계에 대한 믿음은 우리의 도덕성 속에 너무나 밀접하게 얽혀 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 때문에 후자인 다른 세계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릴 위험은 전혀 없다. 더구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빼앗길까 두려워할 이유 또한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단, 이런 주제를 말하는 데 있어서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논증이 너무 난해하게 흘러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언젠가 C. S. 루이스는 이렇게 말했다. “복잡한 논쟁거리를 평범한 사람들도 납득할 수 있도록 간단명료하게 풀어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설명을 하고 있는 당사자 역시 문제의 요지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까지 제기한 문제를 논리적으로 반박하면서 정확한 결론에 도달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규칙을 지켜야만 한다.

1단계에서는 변론을 하고, 2단계에서는 예증을 들어야 하며, 3단계에서는 적용을 해야 한다. 논리적인 변론의 과정을 통해 바탕이 준비되면, 예술은 하부조직을 구축하여 다양한 예로 설명을 가능하게 한다. 그런 후에 식탁에서 오가는 대화를 통해 철학의 상위 구조가 만들어지고 적용이 이루어진다. 나는 하나님이 존재하시는가에 대한 질문을 다루어 나갈 때 2단계에서 시작하려고 한다. 이 단계는 우리 모두가 느끼고 살아가고 행동하는 터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끝마무리를 하기 전에 다시 1단계로 돌아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왜 건전하고도 논리적인 변론을 근거로 작동하고 있는지, 왜 그분의 메시지가 우리 시대의 질문과 번민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하는지 그 이유를 확증할 것이다. 이처럼 인생의 궁극적인 차원들을 다루게 될 때에야 비로소 철학의 3단계인 우리의 식탁토론은 권위를 가지게 된다.

무한한 무 한가운데서 떠돌고 있는 무신론

무신론의 주제를 다루고 있는 많은 책을 보면 동일하게 강조하는 중요한 논점이 있다. 무신론은 단순히 하나님을 수동적으로 불신하는 것이 아니라 유신론이 주장하는 다양하고도 중요한 주장들을 모두 다 단호하게 부인한다. 무신론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반박하며 물질만이 궁극적인 실재라고 역설한다. 온건한 태도를 취하는 무신론자도 있지만 그들이 지지하는 실제적인 견해는 극단적인 무신론자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으로 끝을 내려는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궁극적인 실재를 신이 아닌 물질에 두게 되면,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선택과 그 선택을 결정짓도록 지지해주는 철학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쪽으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흔히 무신론자들을 반유신론자들로 설명하면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그들은 하나님은 아예 존재하지 않으며 초자연적인 실체는 전혀 없다는 신념 안에서 인생을 설계한다. 그들은 모든 종교적인 형태를 비합리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그들은 인생길에 점점이 박혀 있는 피할 수 없는 돌부리를 걷어 차내려다가, 지적인 면이나 사회적인 면에서 스스로 피를 흘리게 될 뿐이다. 이성의 한계나 상식의 수준에 갇혀 있는, 하나님 없는 삶으로는 결코 인생을 살아갈 수 없다.

20세기의 가장 어두운 순간은 독일이 니체 철학을 정치적으로 이용했을 때였다. 당시에 인간을 슈퍼맨으로 치켜세워 신성시하는 개념이 다시 부상했다는 사실은 상당히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러한 역사를 통해서 볼 때 하나님을 배제하고 무모하게 우쭐대는 인간의 자만심은 반드시 경고 받아야 할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하나님 없는 삶이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첫 번째 딜레마는 바로,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무한한 도덕률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종교라는 이름 하에 자행된 수천 명의 살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하는 공격적인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 그 질문자가 먼저 하나님이 없이 살아간 사람들―히틀러, 스탈린, 무솔리니, 마오쩌뚱 등―에 의해 자행된 모든 살인들을 설명할 수 있다면 답변이 곤란할 것도 없는 문제이다.

성경을 통해 보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인한 자들에 의해 양산된 폭력은 결코 그리스도에 의해 인정을 받지 못했다. 이런 자들은 분명히 종교를 가지고 자기 잇속만 챙기려는 정계의 주역들로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생애와 가르침을 거부해 온, 혼합된 그리스도인들이었다. 그들의 수단과 메시지는 복음과 어긋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반유신론자들은 독립적이고 오만한 의지를 조장하며 도덕을 추방해야 한다는 논리적인 근거를 제공면서도, 대규모의 학살이 자신들의 철학 논리가 만들어낸 산물이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다. 만약 진화론을 삶의 철학으로 해석한다면 이런 폭력의 위험한 비탈길이 나타날 것이라고 다윈은 직접 예고한 바 있으며, 지금 우리는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무법세계로 향하고 있는 우리 문화를 목도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 없는 자율이 초래하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고통 당할 때 반유신론은 어디에 있는가?

인간의 고통을 바라볼 때, 우리는 우주만큼이나 광대한 딜레마를 보게 된다. 여기서 수많은 의문이 생겨나는데 이상한 것은 똑같은 질문인데도 과학적인 세계관으로 적용하느냐, 아니면 창조론적인 세계관으로 적용하느냐에 따라 고통에 대한 정반대의 해석이 나온다는 것이다. 모든 철학적인 논쟁들은 바로 이 부분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반유신론자들 앞에는 두 가지 난공불락의 딜레마가 있다. 첫째는 악의 존재 문제를 변호할 때 직면하게 되는 철학적인 도전이며, 둘째는 죽음의 문제이다. 하나님 없는 삶을 살려고 시도할 때 다시금 삶의 부조리가 여지없이 드러나는 것이다. 악을 다루는 논증은 지극히 중요하며 각 부분이 서로 꼬리를 물고 연결되어 있으므로 총괄적인 주제로 다루어져야 한다.

C. S. 루이스는 우리 인간들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고통을 특유의 방식으로 해석한다고 말했다. 즉 우리는 고통 자체보다 왜 이런 고통이 나에게 닥치게 되었는지, 도덕적인 맥락에서 고통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것이다. 루이스는 “도덕에 귀먹은 세상을 불러 깨우시는 하나님의 메가폰이 바로 고통이다”라는 설득력 있는 주장을 했다. 그러나 반유신론자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면서도 고통과 죽음의 문제를 제기함에 있어 도덕적인 상황으로 현실을 이해하려 하는 모순을 드러낸다. 이 세상이 도덕적인 세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그들이 왜 그 문제만은 도덕적인 입장에서 제기하는가?

도덕률에 반대하는 싸움에서처럼, 반유신론적인 사상가들은 다시금 순환논법으로 변론을 하며 터무니없는 답변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인생 그 자체가 죽음에 묶여 있다면 제아무리 유능한 사상가라 할지라도 어떻게 궁극적인 소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소망을 가지고 있다 한들 그들에게는 죽음 너머의 세계가 없기 때문에 현실을 벗어날 때는 그것은 유령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다.

니체는 “죽음은 궁극적으로 완전한 해방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는데, 이상하게도 이것은 도덕이나 정신적인 측면에서 불교의 영향을 받지 않았는데도 불교적인 색채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노화, 질병, 죽음을 목도하고 나서 인생에 대한 해답을 추구하기 위해 모든 전력을 쏟았다. 이것을 탐구하기 위해 그는 아내와 가정, 모든 세속적인 안일을 포기했다. 인간의 모든 고통의 원인에는 갈애(욕망에 대한 과도한 집착)가 있는데 이 갈애만 소멸시킬 수 있다면, 열반(해탈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고전 불교는 영계의 신비를 이해하려는 무신론으로서, 고통에 대한 해결책은 욕망을 근절시키는 데 있다고 가르쳤으며 불자들은 명상, 자기 부인, 영혼의 환생을 통해 이런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고 믿는다. 반면, 반유신론자에게 있어서 이런 욕망을 근절시키는 해결책은 오로지 죽음으로만 가능하므로 사실상 죽음은 우리를 욕망에서 벗어나게 하는 구원자가 된다.

그렇다면 자살이 인간의 모든 고통을 완전히 해결할 텐데 왜 사르트르는 자살하지 않았을까? 본인이 직접 자문자답을 한 것으로 보아, 이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만약 하나님과 전혀 관계없는 인생이라면 이것은 매우 정당한 질문이다. 여기에 대한 사르트르의 변명은 어처구니가 없다. 즉, 자살이란 행동은 자유를 빼앗는 일에 그의 자유를 사용하는 것이 되므로 자신은 자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반유신론적인 답변과 마찬가지로 이것 역시 공허하며 속이 들여다보이는 궤변이다.

만약에 자유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 그것이 목적을 빼앗아가고 고통과 절망을 초래한다면 그 자유를 제거하는 일을 왜 머뭇거리는가? 반유신론의 논리대로 나간다면 죽음은 절망의 상태에서 인간을 구원해주기 때문에 사실상 죽음은 만병통치약이 된다. 만약 죽음이 만병통치약이라면 살아있는 것이 더 큰 불행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답변들은 고통과 죽음이라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한결 더 궁색하게 만든다.

개인적인 고민에서부터 국제적인 투쟁에 이르기까지, 사리에 맞는 정당하고도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그것은 삶을 위한 소망인 동시에 죽음을 초월하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해답이 없는 곳에는 절망만 있을 뿐이다. 파스칼은 인생을 거꾸로 계산해서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의 의미는 먼저 죽음을 정의하고 거기에 따라서 자신의 삶을 규명해 나갔다는 뜻이다.
모든 여행은 행선지를 목표로 삼아 계획을 짜게 된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 능력을 체험하며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고, 그분과 같이 죽는 것이다”(빌 3:10)라고 말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고난의 의미를 새롭게 한다.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소망의 확실성이 서로 조화를 이루게 된다. 이제는 인생이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보여주시는 부활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나타난다. 하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승리를 주신다.

버트런드 러셀은 오로지 절망 가운데서 자신의 인생을 일구어 왔다고 단정했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의 임종 이틀 전에 함께 공동성명을 발표하면서 “가장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우리 두 사람은 미래에 대해서는 가장 암담한 자들이군요”라고 고백한 것이 아닐까. 물질을 궁극적인 현실로 생각하여 거기에 치중하다보면 ‘비관론적인’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결국 합리적으로 변호할 수 있는 도덕률과 실존의 소망에서 분리되어 딜레마에 빠지게 된 인간은 실존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2부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무엇인가?
지식이라는 과학과 삶이라는 기술

나는 무엇인가?
남들은 가끔 나에게 말하기를
감방에서 나오는 나의 모습이
어찌 그리 침착하고 활기찬지,
마치 자기 성에서 나오는
영주 같다는데…
나는 무엇인가?
남들은 가끔 나에게 말하기를
감시원과 말하는 나의 모습이
어찌 그리 자유롭고 친절한지
마치 내가 그들의 상전 같다는데…
나는 무엇인가?
남들은 또 나에게 말하기를
불행한 하루를 지내는 나의 모습이
어찌 그리 평온하게 웃으며 당당한지
마치 승리를 아는 투사 같다는데,
남들이 말하는 내가 정말 나일까?
나 스스로 알고 있는 내가 정말 나일까?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고
그리움을 묻고 사는 연약한 나,
목이 졸린 사람처럼
살고 싶어 몸부림치는 나,
색과 꽃과 새소리에 주리고
좋은 말, 따스한 벗들을 목말라하고
방종과 사소한 굴욕에도 떨며 참지 못하고
석방의 날을 안타깝게 기다리다 지친 나,
친구의 신변을 염려하다 지쳤다.
이제는 기도에도, 생각과 일에도 지쳐 공허하다.
이별에도 지쳤다.
이것이 내가 아닌가?
나는 무엇인가?
이 둘 중 어느 것이 나일까?
오늘은 이 사람이고
내일은 저 사람인가?
두 가지 모습이 모두 나일까?
남 앞에선 허세,
스스로에겐 한없는 연민을 느끼는
나약한 사람인가?
이미 결정된 승리 앞에서 무질서에 떠는
패잔병에 비교할 것인가?
나는 무엇인가?
이 적막한 물음은 나를 끝없이 희롱한다.

내가 누구인지 나를 아는 이는
오직 당신 뿐,
나는 당신의 것,
오, 하나님!

이것은 나치 당원들에게 투옥되어 있을 때 디트리히 본회퍼가 쓴 글이다. 사형을 앞두고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는 자의 비애감과 애통을 느낄 수 있는가?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어려운 고난이 와도 그 ‘이유’를 알 수 있다면 인생이 그다지 힘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스티븐 호킹은 자신의 가장 유명한 저서인 『시간의 역사』에서 우주의 생성 기원을 밝히면서 이런 말로 끝을 맺었다. “이제 우주의 존재 이유만 알아낸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목적으로 살아가야 하며, 무엇보다도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 광범위한 해석을 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이 “왜”라는 단어인 것이다.

인생에서 부딪치게 되는 많은 곤란한 문제 속에는 인생의 ‘의미’와 ‘이유’라는 두 가지 요소가 똑같은 무게를 가지고 우리에게 온갖 의문을 일으킨다. 이 두 가지 요소는 해결책이 서로 동일한데, 우리 사회는 이것들을 완전히 분리함으로써 잘못된 방식으로 이분법을 강요하고 있다. 지식의 본질과 근거를 다루는 철학의 한 분과인 ‘인식론’에서 독보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는 미셸 폴라니는 그의 저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생을 오로지 원자 요소들과 맹목적인 힘으로 환원시킴으로써 사실상 과학은 인생의 의미를 무가치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인생의 목적을 부여하는 것은 과학의 몫이 아니다. 물질적인 충동에 쫓기고, 과학이라는 단일 비전을 가지고 한 치 앞만을 보고 살아가는 치료불능의 우리 사회는, 오로지 과학만이 우리를 질병에서 구해주는 더할 나위 없는 신처럼 여긴다. 그러나 학문 분야를 두루 올바르게 이해한 사람이라면 아무도 합리적으로 변호할 수 없는 그런 결론을 내리지는 못할 것이다.

예전부터 나에게는 여러 가지 궁금증이 있었다. 역사의 수많은 사건들과 인생사는 왜 하나의 극단에서 또 다른 극단으로 생생하고도 극적인 이동을 되풀이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찾으려 철학가의 엄밀한 적용으로 눈길을 돌리기 전에, 예술가와 시인, 낭만주의자들에게로 시선을 맞춰본 적이 있다. 연극 ‘마음 내키는 대로(As You Like It)'에서 셰익스피어는 인생에서 연출할 수 있는 대본을 유아기, 학창시절, 연애시절, 군인, 중년, 만년, 노년이라는 일곱 단계로 제시한다. 우리는 각 단계에서 인생의 의미를 추구하고 보유하며, 때로는 상실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 사실상 연극은 우리의 현실 세계를 무대에 올려놓은 것이므로, 인생이나 드라마가 연출하는 장면은 별다른 차이가 없다.

죽음에 직면하여

인생에 의미를 가져다주는 요소로서 유년기의 ‘경이감’과 사춘기의 ‘진리 추구’, 성년기의 ‘사랑의 성취’를 거쳐, 노년의 마지막에 이르게 되면 ‘안정감’을 갈망한다. ‘안정감’은 셰익스피어의 인생 7단계 중 인생의 마지막 시점에서 추구하게 되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이유는 경이감은 육체가 쇠약해짐에 따라서 흐릿해지고, 진리는 이 세상에서의 삶이 다 끝나간다는 것을 생각나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죽음이 모든 의식을 제거해 버린다면 사랑은 곧 과거의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경이감을 다시 소생시키고, 진리를 깨닫게 하며, 사랑의 즐거움을 누리게 하는 안정감은 어디서 발견하게 되는가?

그것은 죽음 너머에 내세가 있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영향력 있는 많은 종교들이 각기 나름대로의 특징을 가지고 사후의 세계를 믿는다. 그러나 기독교를 제외하고 어느 종교도 그 사후세계에 대한 역사적인 증거를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다. 기독교는 또한 예수가 죽고 다시 부활했다는 사실을 확실히 증명할 수 없다면, 그 체계는 원칙적으로 완전히 붕괴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부활을 부인하기 위해 무수한 시도를 했으며, 그런 과정에서 그리스도를 직접 만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시도하다 포기해버린 경우도 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 11:25)는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은 무수한 인생들을 소망으로 타오르게 했다.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 자신의 심정을 표현했다. “아무도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나는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갈 6:17). 누군가가 인생의 의미를 발견했다고 주장한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네 가지 요소 즉 ‘경이감’과 ‘진리’, ‘사랑’, ‘안정감’이 들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요소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성을 통하여 발견된다. 그분만이 인생의 모든 단계에 있는 시험을 만족시킴으로써 인생에 온전한 의미를 가져다준다.

수년 전, 나는 베트남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연설한 적이 있는데, 그 때의 경험은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 수많은 병사들과 함께 나눴던 대화를 지금도 기억한다. 우리의 대화의 주제는 죽음의 문제로 돌아가 결국, 하나님으로 귀결되었다. 그때 한 병사가 자신이 직접 쓴 시라며 그것을 내게 선물로 주었는데, 그는 인생에 대한 고뇌로 가득 찼던 어느 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포탄이 마구 쏟아지는 사면초가의 상황이었다.
나는 또 하나의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그것은 도저히 진정시킬 수 없는 마음의 갈등이었다.
외부의 싸움은 이데올로기의 갈등으로 인해
폭탄이 번개같이 쏟아지는 전투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영혼의 싸움으로
마음과 정신 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이 와중에서 나는 죽음의 공포와 싸우는
내 마음의 전투 현장으로 매몰되어 갔다.

고막을 울리는 폭발음과 전투 신호를 하는 고함소리로 보아
이것이 마지막 전투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부의 싸움은 잠재울 수가 없었다.
다시 한 번 마음 속에서는 학창시절,
우주는 무작위로 생겨난 우연한 세계일뿐이라고 주장했던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빗발치는 폭탄의 파편 사이로
별이 총총 빛나는 밤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무신론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그분의 사랑을 더 이상 거부할 수 없어,
침묵 속에서 평안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를 내어맡겼다.
그러자 내 영혼을 괴롭히던 모든 싸움은 한순간에 끝이 나고,
승리의 찬양이 흘러나왔다.
“이제 나는 당신을 만났습니다. 지금은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그 일이 있은 지 몇 년이 지난 후 나는 시리아에 간 일이 있는데, 그곳에서도 전투에 대해 간증하는 젊은 장교 둘을 만났다. 두 사람은 수많은 생명들이 목숨을 잃었던 골란고원 전투의 현장에 있었다. 그런데 참으로 묘한 것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에서 모두들 겁에 질려 있을 때, 하나님을 창조주로 받아들이는 순간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는 모든 전투를 올바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같다.

3부 예수님은 누구신가? - 그리고 왜 그것이 중요한 문제가 되는가?
진리에 관한 논증

이제 우리 앞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배타성과 유일성이라는 이 예외적인 주장을 정당화하는 일이 남아 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이 세상에 오신 지 2,00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그것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우리 시대의 심각한 재난은 이해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진리가 살아남지를 못한다. 절대적인 것들을 부인하고 진리를 검증하는 모든 참고 사항들을 말소함으로써 우리의 문명은 가장 중요한 구원의 문제에 대해 발을 들여놓지 않으려고 한다.
기독교의 실상을 비판할 때 현대 비평가들이 공격용으로 휘두르는 놀라운 착각 한 가지는 기독교만 배타적인 믿음 체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가설은 오늘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유력한 세계관들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는 무지를 그대로 폭로하는 것이다. 표현하지 않지만 사실상 모든 체계는 배타적인 성향을 지닌다. 불교는 힌두교의 두 가지 중요한 교리를 거부한 데서 생겨났다. 붓다는 궁극적인 진리로서의 베다를 거절했으며 철저하게 카스트 제도를 비판했다. 물론 카스트 제도는 환생의 교리와 교묘하게 얽혀 있는데, 거기에는 불교의 윤회설과 미묘한 차이가 있다.

이슬람에 대한 지식이 조금만 있어도 이슬람이 극단적인 배타성의 성향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슬람은 신학적으로 배타적일 뿐 아니라 언어학적으로도 배타적이다. 이슬람 교리에 의하면 이슬람에서 유일하고, 충분하며, 극치에 이르는 기적이 코란인데, 그것은 오직 아랍어로만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을 번역하면 본래의 뜻이 죽어버리고 용어의 신성이 더럽혀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슬람을 공부하려면 단순히 아랍어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아랍어를 학문적으로 알아야만 한다.

반유신론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은 모든 유신론적인 관점을 거부하고 유신론자들의 믿음을 사유와는 동떨어진 것으로 취급한다. 따라서 우리는 진실해야 한다. 반유신론자들이 기독교에 끼친 이 오점을 벗겨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종교세계나 세속적인 세계의 덕목인 관용의 아름다운 모습을 훼손하는 것이 될 것이다.

결국 유일신, 무신론, 범신론, 혹은 그 밖의 다른 여러 것을 신봉하든지 간에 모든 가치관이 다 배타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진리의 배타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다양한 세계관들이 각자 처한 상황 속에서 기원, 의미, 도덕, 운명에 관한 인생의 네 가지 기초적인 의문에 대해 제시하는 답변들이 진리 테스트들을 만족시키는가 하는 점이 관건이 된다. 또한 답변을 모두 종합했을 때 그것은 하나의 체계를 구성하는 일관성이 있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남아 있는 진짜 문제는 진리에 대한 예수님의 주장들이 진리 판정테스트를 거칠 수 있는지, 즉 그분의 인성을 통해 그런 테스트들이 충족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인간의 딜레마

지금부터 기독교의 전체 체계를 떠받치고 있는 그리스도의 중요한 가르침 몇 가지를 검토하려고 한다. 첫 번째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성에 관해 그리스도가 설명해 주신 세심하고 구체적인 표현이다. 분명한 것은 기독교를 여러 다른 종교들이나 다양한 세계관들과 구분 짓는 가장 곤란하면서도 특징적인 부분이 바로 ‘인간성’에 관한 부분이다. 인간의 본성이 본질적으로 어떤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을까? 모든 인생은 절대적인 자율성을 추구하고 자신이 정해 놓은 수준 그 이상의 법칙에는 전혀 굴복하려고 하지 않는 완악함이 있으며, 이런 성향을 가지고 최상위의 질서에 반항하게 되면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무례와 외설이라는 가장 하등한 단계로 내려가게 되어 있다고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뜻이 잘못된 곳에서는 선한 것이 나올 리 없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이러한 가르침은 종종 공허한 이론으로 치부되거나, 인간 창조가 완벽하지 못했다는 식으로 간단히 지나쳐 버린다. 교육적으로 궤변을 늘어놓고 뻔뻔스럽게 철학을 무기로 휘두르는 자들은 인간의 타락을 믿는 우리의 믿음을 케케묵은 생각이라고 조롱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타락상은 모든 삶, 모든 문화에서 매일 같이 모습을 달리하면서 문명사회의 진보를 파괴하고 있다.

성경은 인간의 본성을 매우 분명하게 묘사하고 있다. 기독교 교리에서 말하는 ‘죄(sin)'라는 헬라어에는 단순히 범법이나 위반의 뜻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목표에서 벗어나서 궤도를 이탈했다”는 개념이 들어 있다. 그렇다면 그 궤도란 무엇인가? 성경 기자들은 이것을 하나님이 자신을 기준으로 정해 놓으신 표준이라고 말한다. 수년 동안 우리는 이 개념을 논쟁거리로 삼으며 의미를 깎아 내리고 정죄해왔으나, 이런 식으로 어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겠다는 감정이 우리의 양심을 파고들면,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과 궁극적으로는 같은 동료인 인간들로부터도 멀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인간의 고귀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것은 고안해낼 수도 없고 강요할 수도 없는 본질적인 것이 되어야만 한다. 여기서 독특한 기독교의 가르침이 드러난다. 성경에 의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의 본질적인 고귀함으로 종족들과 피부색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인간의 어떤 부분을 거부할 때, 우리는 본질상 스스로를 거부하는 것이 된다. 우리가 거부하는 상대방의 모습 속에는 우리에게 있는 것과 동일한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영적 빈곤을 인식하기 전까지 우리는 죄의 노예로 살아가야 한다. 이것은 육체적인 억압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편협과 편견의 지옥으로부터 구원을 받으려면 원인과 치유책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존재이나 우리를 억압과 증오로 몰고 가는 것이 바로 우리의 죄의 본성이다. 인간의 이런 상태는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교정될 수 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삶 속에서 겸손해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창세기 32장은 잘 알려진 내용이지만 묵상을 많이 하는 사람도 종종 놓치고 마는 중요한 부분이 있다. 그것은 오랜 세월 집을 떠나 있던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장면이다. 이제 형을 대면해야 할 순간이 다가왔다. 평생을 두려움으로 지낸 야곱이 이제 해야 할 일은 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었다. 야곱은 밤새도록 하나님과 씨름하면서 “저를 축복하기 전에는 제가 당신을 보내 드리지 않겠습니다”라고 부르짖는다. 그것은 다음 날 아침이면 어떤 불길한 운명이 덮칠지 모르기 때문에 터져 나오는 절망적인 한 인간의 외침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야곱에게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이셨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것은 전지전능하신 분의 입에서는 나오기 힘든 질문이다. 왜 하나님은 야곱에게 그의 이름을 물어보시는 것일까? 사실상 이 질문은 구약의 역사를 극적으로 바꾸어 놓은 질문이다. 하나님의 축복을 간구하는 중에 야곱은 하나님이 던지는 질문을 통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의 어느 한 순간을 어쩔 수 없이 다시 떠올려야만 했다. 그것은 오래 전 그가 육신의 아버지 이삭을 통해 형의 축복을 훔치던 마지막 순간이었다. “이름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그때 그의 아버지 이삭이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었다. 야곱은 그 당시 거짓말로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에서입니다.” 그리고는 축복을 가로챘다.

평생을 근심으로 세월을 보내면서 도망자로 수년을 허비한 후, 이제 그는 스스로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모든 것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야곱은 하나님의 질문에 숨겨진 이유와 책망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의 이름은 야곱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야곱에게 말씀하신다. “네가 바른 말을 하였고 이제 너는 네 이름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너는 일구이언을 하고 다녔고, 네가 가는 곳마다 모든 사람들을 속였다. 그러나 이제 내가 너를 변화시켜 줄 것이니 너의 참모습을 받아들여라. 그러면 네게서 수많은 민족이 나올 것이다.”

하나님 앞에 존귀한 사람이 되려면 먼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져야 한다. 당신이나, 나, 혹은 다른 누구라 해도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오기 전까지는 고상한 인격에 도달할 수 없다. 죄는 하나님 앞에서 내 모습을 헤아려 볼 때 확실하게 드러난다. 자신의 부족을 인식하는 것이 인격을 다듬어 가는 시발점이 된다. 체스터톤은, “기독교는 시도를 해봤더니 부족한 것이 발견되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가 어렵다고 생각해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라는 지당한 발언을 했다. 또한 그는 런던 타임즈의 논설에, “세상의 어디가 잘못되었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하면서 이렇게 끝맺음을 했다.

“바로 접니다. 이 체스터톤이 죽일 놈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예수님이 짚어주신 가장 정확한 답변이다. 우리가 세상에 잘못을 범하고 있다.

철학자의 탐구

두 번째로 변론하고 싶은 것은, 현실 세계에서 철학이 다양성 가운데서 통일성을 추구해 나갈 때 주님만이 확실한 답변을 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의 어느 한 시점에서 신학이 학문의 여왕으로 간주되었을 때가 있었다. 그 때는 다양한 정신세계를 추구해 나가는 과정에서 세계관을 하나로 통일시켰다. 그러나 그런 시대는 얼마 지속되지 않았다. 모든 가치관에서 하나님을 제외시키자 통일성도 해체되고 모든 것에 체계가 없어졌다. 교육의 일관성도 사라졌다. ‘university(대학)’라는 글자는 다양성에서 통일성을 발견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나 현대의 대학생들은 수많은 분야에서 진리의 다양성을 추구하되 거기에는 통일성이 전혀 없다.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도 마찬가지로 여기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해 줄 수가 없으며 반유신론 역시 마찬가지다. 오직 기독교의 신앙을 통해서만 설명이 가능한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가 존재하게 된 첫 번째 원인, 즉 궁극적인 실재인 삼위일체 속에 통일성과 다양성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삼위일체의 연합 속에는 본질적으로 세 위격이 동등하다는 것을 위배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신성 안에서 각기 다른 역할 분담이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인성, 개성, 다양성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사랑과 본질의 고귀함이라는 통일성을 드러낸다. 삼위일체는 모든 공동체의 모델이 되며, 온 인류와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랑과 교제를 위한 청사진을 제공한다.

한편 삶의 다양한 상황들 속에서 단 한가지, 통일성을 가져야 할 것은 인간의 당연한 도리인 ‘경배의 자세’, 즉 예배이다. 우리가 흔들리는 대로 외부의 흐름에 따라, 각자의 열망에 따라 떠다닌다면 우리는 이치에 합당한 인생을 살아갈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예배는 삶 전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분명히 지적하셨다. 참된 영적 예배는 양심, 마음, 상상, 지성, 의지를 한 가지 방향으로 연합하여 궁극적으로 선과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 나가게 한다. 이런 내적인 통일성은 삶 속에서 추구하는 모든 일을 통해 드러나게 되고, 인생 그 자체에 의미를 안겨준다. 그렇지 않으면 다양성은 모순된 행위를 변호해주는 핑계거리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역사의 중심인물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인간의 본질과 현실 세계의 본질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살펴보았다. 이제 우리는 세 번째 요소 즉, 역사의 본질로 들어가 보자. 이 문제에 얽혀 있는 엄청난 차이점들은 반드시 변론을 필요로 한다. 주님은 모든 역사를 유의미하게 융합시키셨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에는 시간을 초월하는 중요한 의미가 들어있다. 사실 이것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타종교들 및 세속적인 세계관들과 분명히 구분되는 특징이다. 실존주의는 현재, 유토피아는 미래, 전통주의는 과거지향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복음의 메시지는 종교를 정치화하거나 혹은 검으로 미래의 유토피아 속으로 인간들을 억지로 쑤셔 넣으려는 유혹에 정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또한 복음의 메시지는 과거의 일을 가지고 부당한 보복을 하지 않는다. 복음의 메시지는 지금 현재 억압당하고 있는 자들을 구원해낸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성경에 스며 있는 모든 역사를 다뤄야 하는 결정적인 의무가 있다. 예언서들을 연구할 때 시대적인 해석이 대단히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스도가 탄생하기 수백 년 전에 그들은 그리스도가 어떻게, 어느 곳에서 탄생할 것인가를 예언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은 인접한 역사만 이야기할 뿐 아니라 앞으로 나타날 먼 미래에 대해서도 예언을 했다. 그리스도가 오시기 500년 전에 기록된 가장 위대한 예언이 다니엘서에 나타나 있다. 다니엘은 앞으로 온 세상을 지배하려는 야망을 품은 한 권력가가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질 것인데, 그의 통치가 끝난 후에 네 왕국이 분열될 것이며, 이 네 나라가 나중에 둘로 통합되어 결국에는 하나로 합병될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 너무나 구체적인 이 예언이 다니엘이 죽은 후 2세기 만에 알렉산더 대제를 통해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수년 동안 자유 비평가들은 상당한 곤욕을 치렀다.

이런 구체적인 예언은 단순히 우연의 일치라고 제쳐 두기에는 상당히 곤란한 점이 많다. 물론 이런 사건들을 하나하나 떼어놓으면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니엘의 예언에다 성경에 나오는 수백 가지의 다른 예언들을 합하여 이 현상을 따라서 일어나는 기독교 신앙의 철학적, 역사적인 면들을 연구해 보라. 그러면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독교를 옹호하는 강력한 실마리를 얻게 될 것이며, 궁극적으로 이 모든 예언들이 역사의 중심인물인 그리스도에게로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보고 놀랄 것이다. 그리스도가 태어나기 8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다”(사 9:6).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심으로써 예언은 정확히 이루어졌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의하면 역사는 그저 순서를 따라서 일어나는 사건의 나열이 아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시간을 초월하여 그분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그래서 참된 그리스도인은 검을 사용하여 이 세상 나라를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지 않는다. 이것 때문에 참된 그리스도인은 현재의 고난이나 현재의 성공을 초월하게 된다. 우리가 바라볼 때 역사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계획을 펼쳐 나가시는 무대이며, 각 개인은 하나님이 그 속에서 역사하시는 소우주가 된다. 하나님이 모든 인생, 즉 당신과 나의 삶에 직접 관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얼마나 마음 든든한 일인가!

또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주님을 우리 개인의 열망에 대한 해답으로 갖게 되었다. 사도 바울은 단호히 말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라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 15:17, 19). 그런 면에서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주장하신 것은 가벼운 것이 아니다. 죽음은 삶과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그분의 응답, 즉 부활은 인생 그 자체에 대한 답변을 제공한다.

그리스도, 그분은 광대하신 하나님이든지 아니면, 비참하게 버림받은 자 둘 중 하나에 속한다. 그분이 “단순히 선하신 분”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이치에 합당하지 않다. 정직하게 그분의 생을 연구해 보라. 그러면 답변은 분명하다. 각 개인, 공동체, 세계를 위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소망은 주님이 허락하시는 소망이다. 죽음 너머에 이 소망이 없다면 사랑에서부터 정의에 이르는 모든 질문은 지성을 조롱하는 것이 된다. 개인의 열망을 설명할 수도 없고 만족을 줄 수도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이 열망에 대한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고 또한 이 열망을 이루어 주심으로 우리를 흡족케 하신다.

성도의 보배

죽음 저 너머의 삶을 부인하고 하나님 없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무신론자에게는 가장 힘든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그것은 바로 ‘인생의 고통’이라는 문제다. 더욱 광범위한 상황에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서는 이제 고통의 본질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성경기자들은 고통의 문제를 피하려들지 않는다. 그들은 고통, 기근, 죽음, 약탈, 범죄, 착취, 편견, 무기력 등등 인생의 가장 깊은 상처들을 대단히 심오하게 다루고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고통이라는 문제는 모든 철학이 반드시 다루어야 하는 주제다.

최근 ‘포비스’란 잡지에서 세계각국의 학자들에게 “우리는 왜 불행한가?”라는 주제에 대한 의견 게재를 부탁했다. 소설가, 역사가, 철학자, 그밖에 각계 명사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배경과 관점을 가지고 이 주제에 접근했다. 마침내 이들이 보내온 글은 한 가지 면에서 모두 의견일치를 보이고 있었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사회는 도덕적, 영적 구심점의 상실로 인해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이었다.

몇 년 전, 나는 케임브리지 대학이 주최한 스티븐 호킹의 강연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인간은 시간, 질료, 기회라는 과정에 의해 무작위로 우연히 결정된 존재인가? 아니면 숙명론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조건을 탈피할 수 있는 초월성이 있는가?”라는 주제가 미리 공개되었기 때문에 나는 그날을 학수고대했다. 이전부터 최고의 지성들이 고심해 온 이 주제는 대단히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지금도 결정론은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없이 살아가도록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다. 과학자로서 호킹은 결정론이 내포하는 의미를 밝혀야 할 입장이었다.

스티븐 호킹이 강의를 하고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은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루 게릭 병에 시달려 심하게 신체가 망가졌기 때문에, 호킹은 자기 목소리가 아닌 음성 변조기를 통해 강의를 했다. 그는 철학이 고민하는 문제인 결정론과 자유의지를 신중하게 서로 대비시켰다. 시종일관 질서정연하게 논증을 펼쳐나가던 그는 마침내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인간의 운명은 결정되어 있는가? 그렇다! 그러나 무엇이 결정되어 있는지를 우리가 모르기 때문에 어쩌면 인간의 운명은 결정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순간적으로 침묵이 감돌았다. 강당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어느 누구도 호킹이 말할 것보다 더 지혜로운 말을 남긴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호킹은 자신이 고민하는 문제를 추가로 덧붙였다. “진화의 과정은 ‘결정론’과 ‘공격’이라는 상극을 통해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우리가 장기간 살아남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인간이라는 우리 종족에게 무슨 소망이 있을지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향후 100년 간 서로를 파괴시키는 일을 막을 수만 있다면, 과학 기술을 충분히 발달시켜 인간을 여러 다른 행성으로 분산시킬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한꺼번에 인간의 씨를 말리는 비극이나 살상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호킹은 딜레마에 빠져서 꼼짝 못하고 있었다. 만약 하나님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단순히 변화만 계속하는 진화론의 무한 변화로부터 빠져나갈 수 없는 결정론의 냉혹한 지배를 받게 될 것이다. 또한 더욱 골치 아픈 문제는, 진화과정에서 인간이 드러내는 공격과 폭력을 도저히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테니슨의 시구를 빌리자면, 자연은 “맹렬히 싸우다가 피로 흥건히 물들었다”가 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호킹은, 폭력적인 진화과정을 거치는 동안 인간끼리 서로를 살상하는 일을 모면할 수 있도록 하는 유일한 대안은 인간이 발명할 수 있는 기계 속에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과학기술이라는 구세주가 과학의 날개들을 타고 와서 결정론의 공격에서 우리를 구출하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통에 대한 반유신론자의 해결책은 과학기술이었다.

나는 인간이 만들어낸 공허한 해결책에 치를 떨었다. 그리고 마술과 현대의 과학기술은 서로 공통점이 있는 반면, 두 가지가 똑같이 고대인들의 지혜와는 거리가 멀다고 평을 한 C. S. 루이스의 말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대인의 질문은 “어떻게 하면 내가 영혼을 현실에 적용시킬 수 있을까?”라는 것으로 “선행과 훈련을 통하여”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현대인들은 “어떻게 하면 내가 현실의 부품을 바꾸어서 나의 열정에 맞게 조절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현대인들의 해결책은 “전문기술이나 과학기술을 통해서”이다. 이것들이 지금도 우리의 멈출 줄 모르는 소망인 것이다. 그러나 이 둘은 고통과 불행의 문제에 해답을 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것이든 새것이든 신화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을 모양이다.

이러한 자기중심적인 성격을 지닌 세속적인 나라에서, 급진적이기는 하나 예수님은 고통과 아픔에 대한 서로 다른 극적인 반응을 보여주셨다. 그 당시 주님의 답변은 거치는 반석이 되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걸려 넘어지는 돌부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주님의 답변을 진지하고도 적절하게 이해할 수만 있다면, 명백한 고통과 증오의 한 가운데서 그분의 아름다운 섭리를 보게 될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언급하고 있다. 십자가는 우리가 기뻐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비참한 것으로 여긴다. 십자가는 자신을 앞세우기보다는 원칙을 드러낸다. 권력이 아니라 온유한 태도, 순간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괴로운 여정, 은폐하는 것이 아니라 고백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직면하는 것, 위로가 아닌 희생을, 감정 대신에 헌신을, 법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육신이 아니라 영혼을, 분노가 아니라 용서를,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을 앞세우고 있는 것이 ‘십자가’이다.

고통의 문제에 대해 십자가가 제시하는 위대한 세 가지 해결책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첫째, 나는 내 자신의 마음이 십자가 안에서 표현되는 것을 보게 된다. 십자가상에서 표현된 내 마음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완악한 마음이었으며, 과거에도 복음이셨고 현재에도 복음이신 그분에게 분노를 쏟아 부었던 나의 기질이었다. 십자가는 선에 대하여, 심지어는 하나님에 대하여까지 발산시키는 인간의 분노를 상징한다.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 누구든지 이 완악한 마음을 제어하지 않고 멋대로 두게 되면 한정없이 날뛸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용서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보게 되는데, 여기에 인간이 자신의 인생을 재건할 수 있는 출발점이 있다. 이것은 간단한 진리이긴 하나 유일하게 기독교에만 있는 특징이다. 만약 당신이 용서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갖고 싶다면 용서하지 못하는 논리를 관찰해보라. 보스니아를 보면 생생하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보스니아와 르완다에서 일어나는 보복과 유혈극은 십자가를 모르는 인생들이 펼치는 하극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십자가가 악을 감소시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십자가는 악의 가장 추한 상태를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십자가의 가장 심오한 면이라고 할 수 있는 새로운 출발이 바로 거기에서 시작되고 있다. 하나님이 친히 지불하신 구속의 대가로 얻게 되는 용서의 은혜가 기독교의 특징이며, 이것은 증오로 가득 찬 무정한 세계와는 대조적으로 더욱 찬연히 빛나고 있다. 하나님의 용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출발을 허락하신다.

마지막으로, 십자가는 하나님이 고통과 아픔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계시는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들려주고 있다. 하나님이 고통과 아픔에 대해 간섭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악의 문제에 대해서도 간섭하셨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 안에서 그 악을 선으로 되돌려 주셨으며, 악에 대한 해결책을 분명히 밝히셨다.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스튜어트는 시편 68편 18절의 “주께서 사로잡은 자를 취하셨다”라는 성경구절을 근거로 이것을 간결하게 표현해 놓았다.

“주께서 사로잡은 자를 취하셨다”라는 말씀은 영광스러운 구절이다. 주께서는 원수들이 성취한 어둠의 일을 도구로 사용하여 그들의 목적이 아니라, 그분의 목적을 이루는 데 기여하도록 하셨다. 원수들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도 그들이 하고 있는 바로 그 행위로 인해 온 세상 사람들이 주님의 발아래 무릎 꿇게 된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들은 주님을 영문 밖으로 끌고 나가 죽였지만, 바로 그 순간이 그들이 온 우주의 문을 활짝 열어서 만왕의 왕이 들어오시도록 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원수들은 주님의 가르침을 뿌리 뽑았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이 없애기로 작정한 바로 그 이름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새겨 넣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궁지에 몰아넣어 못을 박고, 무기력한 패배자의 모습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두움에 속한 악한 세력의 모든 술책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정복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악을 완전히 극복하셨다.

최근 나는 벨기에에서 몇 차례 말씀을 전했는데, 그때 만난 나의 통역자인 윌프레드와 마음을 털어놓는 과정에서 친형제보다 더 가까운 친밀함을 느낀 적이 있다. 사실 나는 그에 대해서 아는 바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서로 인사치레 정도의 대화만 나눴다. 하지만 그의 행동과 기품은 남다른 데가 있었으며, 인생의 고통과 무거운 짐으로 인해 상처를 받아본 사람에게서나 나올 수 있는 영성을 느끼게 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맡기게 된 경위와 그 동안 겪었던 많은 고난을 이야기했다. 중간 중간 말을 잇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는데, 그것은 그만큼 마음의 상처가 깊었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그는 몇 년 전 스위스 어느 마을에서 열렸던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 체험했던 운명의 사건을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그곳에서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되었고, 앞으로 우리에게 약속되어 있는 내세를 생각하면서 행복에 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내 이름이 호명되면서 급한 전화가 왔으니 사무실로 급히 오라는 것이었어요. 수화기를 집어들자 아내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생후 9개월 된 아이가 전혀 아픈 기척도 없었고 잘 자고 있는 줄만 알았는데, 그만 요람 속에서 죽어 있더라는 거예요.”

그는 뼈에 사무치는 고통을 되새기면서 울먹이고 있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하늘이 노래지고 마음 속에서는 고통과 분노가 화산처럼 끓어올랐다. 왜 하나님이 인간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시는지 따지고 싶었고, 온갖 생각이 교차했으나 황당하다는 생각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당장 가방을 챙겨서 기차표를 끊었다. 혼자 앉아 차창 밖을 바라보아도 고통을 달랠 길은 막막했다. 그런데 그가 앉아 있는 통로 반대편에 한 사람이 성경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두 청년이 그에게 이렇게 따지고 들었다. “만일 당신의 하나님이 그렇게 사랑이 많고 친절한 분이라면 왜 무고한 자들이 고통을 당하게 그냥 내버려두는지 그 이유를 말해 보세요. 하나님이 있다면 왜 수많은 전쟁이 일어나도록 가만히 내버려두는 걸까요? 왜 하나님은 어린아이들이 죽어가도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겁니까? 도대체 그 사랑은 어떤 사랑이란 말입니까?”

특별히 마지막의 두 질문은 이전에는 윌프레드가 결코 느껴보지 못한 것으로, 지금은 너무나 절실하게 그의 가슴을 꿰뚫는 것이었다. 그의 마음 속에는 이런 생각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래요, 이 두 청년에게 그리고 나에게 그 답변을 해봐요. 왜 어린아이들이 죽어가야 하는지 이유를 들어봅시다. 그 사랑이란 도대체 어떤 겁니까?”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윌프레드의 마음에 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당신들의 대화에 제가 끼어 들어도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당신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제가 알려드리지요. 하나님은 당신을 위하여 그분의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을 주셨습니다.” 당장에 그의 말을 가로막으려 하는 그들을 진정시키고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실은 이 기차를 타고 집으로 가면 9개월 된 내 아들의 장례식을 치러야 한답니다. 내 아들이 몇 시간 전에 죽었어요. 내 아들의 죽음을 통해 나는 십자가의 의미를 완전히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답니다. 이제 나는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어요. 하나님은 나를 위해 자신의 아들까지 주어야 했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만 드러나는 하나님은 인간의 현장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침묵하시는 분이 아니라, 친히 우리의 갈등과 고뇌의 한 가운데 함께 계시는 분이다. 이것은 금욕적인 자기부인을 통해 속세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불교의 관념이나 혹은 영원히 존재하는 악을 떼놓기 위해 선을 가지고 되받아치는 개념이 아니다. 이것은 이 속세와는 너무나 초월적인 영역에서 불가사의한 신화와 융합되어 있는 판테온 신전에 모셔 놓은 힌두의 범신교의 개념이 아니다. 이것은 또한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심지어는 칼을 휘둘러서까지 세속적인 왕국을 건설하려고 기를 쓰는 이슬람의 개념도 아니다.

“이것이 바로 영원하신 분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성육신이다.” 그리스도는 완악한 인간들을 향하여 두 팔을 활짝 벌리고 계신다. 하지만 성경은 말하기를 어떤 이들에게는 십자가가 웃음거리요,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이라고 한다. 십자가의 진실과 거기에 담긴 메시지가 인생의 힘든 싸움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된다는 것을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상 십자가처럼 인간의 마음을 생생하고도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역사할 수 있도록 자신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 여기라”고 권면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이다. 십자가 없이는 인간에게는 아무런 영광이 없다. 인간이 만든 유토피아와 하나님이 만드신 천국의 차이점이 바로 ‘십자가’이다. 인간이 만든 유토피아가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십자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십자가에서 인간의 의지는 꺾이게 되고, 사랑과 정의의 한 가운데서 진리가 승리를 외치게 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인간이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는가?’라는 주제에 관해서는 할 말도 많고 써야 할 내용도 더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당신이 정직한 마음을 가지고 이 주제에 관련된 증거자료들을 평가해 보도록 간절히 권면한다. 이제 나는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체스터톤의 글을 인용함으로써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문명사회가 원하는 것이 잘 분류해 놓은 자료실, 혹은 발견된 태양계, 아니면 그와 비슷한 종류의 어떤 사소한 것이라면 그것은 전문가들로부터 모두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정말로 진지한 일을 처리하고자 할 때 문명사회는 주변에 둘러선 12명의 평범한 인간들을 배심원으로 소집한다. 만일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기독교의 창시자도 ‘인간이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올바르게 판단하도록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인간들을 지목하셨다.”

당신의 판단에 맡기겠다. 성경에 재판의 결론이 이미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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