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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캇 펙	(2005-12-02 오후 11:54:42, 조회 :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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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가야 할 길

/ 신승철 외 옮김
/ 2004년 4월 / 458쪽 / 12,000원

▣ 저자  스캇 펙
하버드 대학과 캐이스 웨스턴 리저브에서 수학했다. 심리상담자로서 미 행정부의 요직을 맡기도 했던 그는 현재 미 코네티컷 주 뉴 밀퍼트에서 정신과 의사로 개업해 있으면서 밀퍼트 종합병원 정신건강 치료센터의 책임자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사람, 전통적 가치, 그리고 영적 성장에 관한 새로운 심리학을 전개하여 현대인들의 영적 방황에 길잡이를 제시한 『아직도 가야 할 길』, 추리소설적 기법으로 사랑과 구원의 문제를 깊이 탐색한 장편소설 『창가의 침대』, 인간에게 근원적으로 존재하는 악과의 투쟁을 다룬 『거짓의 사람들』, 공동체와 평화의 문제를 다룬 『The Different Drum』등이 있다.

▣ Short Summary
<뉴욕타임즈 북 리뷰> 선정 최장수 베스트셀러인 이 책은 하루에 600여 권의 신간이 쏟아져 나오는 미국에서 10년 이상 베스트셀러 자리를 단 한번도 놓친 적이 없는 경이로운 책으로, 저자인 스캇 펙 박사는 자신의 임상경험을 토대로 인격적인 완성에 이르는 길을 제시해주고 있다.

우리 인생에 남아 있는 아직도 가야 할 길, 그 길은 어쩌면 정신적 성숙과 영혼의 완성을 위한 머나먼 여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은 그 길이 이룰 수 없는 꿈이 아님을, 우리가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임을 분명하게 한다.

▣ 차례
1. 훈련
2. 사랑
3. 성장과 종교
4. 은총

제1장  훈련

삶은 고해(苦海)다. 이것은 삶의 진리 가운데 가장 위대한 진리다. 그러나 이러한 평범한 진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삶은 더 이상 고해가 아니다. 다시 말해, 삶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래서 이를 이해하고 수용하게 될 때, 삶은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다. 왜냐하면 비로소 삶의 문제에 대해 그 해답을 스스로 내릴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이 어렵다는 이 쉬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살아간다. 삶이란 대수롭지 않으며 쉬운 것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살아가면서 부딪치게 되는 문제와 어려움이 가혹하다고 불평을 하게 된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문제만 가장 특별하다고 믿으며, 왜 다른 사람들은 당하지 않는데 자신과 자신의 가족,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만 이같이 고통스런 문제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지 분개한다.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삶은 문제의 연속이다. 삶의 승패는 그 문제들을 얼마나 해결해 나가는가에 달려 있다. 문제들은 우리에게 용기와 슬기를 요구할 뿐만 아니라, 없던 용기와 슬기를 만들어 내게까지 한다. 우리는 문제를 통해서만 지적으로나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그렇게 현명하지 못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고통을 두려워하고, 가능한 한 문제들을 피하려고 한다. 문제를 질질 끌면서 저절로 없어지기를 바라거나 문제를 무시하고 잊어버리려 하며 문제가 없는 것처럼 여기려 한다. 심지어 고통을 잊어버리기 위해 약물을 먹고 자신을 마비시키기도 한다.

칼 융은 이것을 “노이로제(신경증)란 항상 마땅히 겪어야 할 고통을 회피한 결과다.”라고 표현했다. 고통을 회피한 대가는 회피하고자 했던 고통보다 결국에는 더 고통스러운 것이 되고 만다. 어떤 경우든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어야 하며, 그때 생기는 고통을 회피한다는 것은 문제에 직면함으로써 성취할 수 있는 정신적 성장도 회피하는 것이 되고 만다. 그렇게 되면 만성 정신질환 상태에서 정신적 성장은 정지하게 되며, 이것을 치료하지 않으면 인간의 영혼은 시들어가기 시작한다.

우리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본적 방법은 자기 훈련이다. 이것은 한 마디로, 문제를 직시하고 더 나아가 문제가 야기하는 고통을 건설적으로 경험하는 훈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을 이루어 내는 데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기술이 있는데, 그것은 ‘즐거움을 나중에 갖도록 자제하는 것’과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 ‘진실에 충실하는 것’, 그리고 ‘균형을 맞추는 일’이다.

첫째로, 즐거운 일을 뒤로 미룬다는 것은 삶의 즐거움과 고통의 시간적 우선순위를 조절하는 간단한 일이다. 하루하루의 생활 가운데서 괴로운 일과 즐거운 일을 계획적으로 짜되, 고통을 먼저 겪은 뒤 즐거움을 갖게 되면 그 즐거움을 더 잘 즐길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삶을 풍요롭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둘째로, 스스로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정신과 의사가 어느 환자에 대해 성격장애로 진단하는 것은, 그 환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회피하는 양상이 일반인보다 더욱 심한 경우이다. 흔히들 “신경증 환자들은 자기 자신을 못살게 굴고, 성격장애자들은 자기 이외의 사람들을 모두 못살게 군다.”고 말하지만, 정상적인 사람들도 아주 미묘한 방식으로 자신의 문제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는 고통을 회피하려고 한다.

나도 서른 살 때 맥 배지리 씨 덕분에 내 속에 숨겨져 있던 성격 장애를 치유한 적이 있다. 그 당시 맥 배지리 씨는 내가 수련의 과정을 이수하고 있던 정신과 외래담당 과장이었다. 이 외래에서 동료 수련의들과 나는 교대로 새 환자를 보도록 할당받았다. 그런데 너무 지나치게 열심이다 보니 내가 동료 수련의들에 비해 더 오랜 시간 동안 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료들이 오후 4시 반이면 집으로 가는 데 반해 나는 밤 8시, 9시까지 스케줄이 꽉 짜여 있었다. 내 가슴은 점차 분노로 끓어오르면서 점점 더 화가 나고 기운이 빠지게 되었다. 나는 무슨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나는 배지리 씨에게 찾아가서 상황을 설명하고, 밀린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몇 주 동안 새 환자를 받는 윤번제에서 면제해 달라고 했다. 그러자 배지리 씨는 내 이야기를 매우 주의 깊게 받아들이는 태도로 경청하고는 공감했다는 듯이 말하는 것이었다. “예, 나는 당신이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특히 당신은 시간 때문에 생긴 문제가 있군요. 그러나 당신의 시간이지 내 시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이 시간 때문에 생긴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뿐입니다.”

나는 몹시 화가 나서 배지리 씨의 사무실에서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화가 풀리지 않았다. 급기야 나는 맥 배지리 씨를 미워하게 되었다. 석 달 동안이나 나는 그를 미워했다. 나는 그를 심각한 성격 장애자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그렇게 냉담할 수 있는가? 나는 겸손히 그에게 단지 약간의 도움과 조언을 구하러 갔을 뿐인데. 외래 책임자로서 그런 문제를 파악하고 지도해 주지 않는다면 도대체 그는 그 자리에서 무슨 일을 한단 말인가?”

하지만 석 달 뒤 나는 그가 옳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성격 장애를 가진 사람은 그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내 시간은 내 책임이었다. 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정돈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내 자신에게만 달려 있었던 것이다. 동료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에 투자하기를 원했다면 그것은 나의 선택이며, 그 선택의 결과 또한 내 책임이었다. 동료들이 일찍 퇴근하는 것이 내게 괴로움을 주고, 가정에 충실하지 않는다는 아내의 불평을 듣는 것도 고통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고통은 내가 내린 선택의 결과이다. 내 삶의 방식이나 내 일의 우선순위는 나 스스로 결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신의 선택이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그 결과에 따르는 고통을 회피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내 생활 방식을 바꾸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하지만 태도의 변화로, 동료에 대한 나의 분노는 사라졌다. 내가 원하기만 하면 자유롭게 남들과 같이 선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나와 다른 생활 방식을 선택했다고 해서 그들에 대해 분개하는 것은 전혀 이치에 닿지 않는 일이다. 이후로 나는 즐겁게 일에 충실할 수 있었다.

내가 배지리 씨에게 내 시간에 대한 책임을 떠맡으라고 함으로써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에게 내 권리와 내 자유를 양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에리히 프롬이 나치즘과 권위주의에 관한 자신의 연구를 적절하게도 ‘자유로부터의 도피’라고 이름 붙인 이유이다. 책임이 따르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수백만, 심지어는 수십억 사람이 매일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힐데 브르흐 박사는 그녀의 책 『정신 요법 입문 Learning Psychotherapy』의 서문에서 말했다. “근본적으로 모든 환자들이 ‘하나의 공통된 문제’를 지니고 정신과 의사에게 찾아오는데 그것은 사물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무력감과 공포와 내적 확신이다.” 대다수의 환자들에게 나타나는 이런 ‘무력감’의 뿌리는 자유에 따르는 고통에서 도망가려는 어떤 욕구, 그리고 이 욕구로 인해 자신의 삶과 문제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있다. 그들은 자신의 권리와 힘을 내던졌기 때문에 무력감을 느낀다. 이것이 치유되기 위해서는, 성인의 삶은 전반적으로 개인적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큼 그들은 영원히 자신을 희생자라고 느끼며 살게 된다.

셋째는, 진실에 충실하는 훈련으로서, 진실이란 현실 그대로이기 때문에 우리가 현실을 보다 명확히  볼수록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보다 나은 준비를 갖추게 된다. 세상의 현실을 보는 눈이 불투명하여 허위, 착각, 환상에 의해 혼란스러워질수록, 우리가 올바른 행동을 하기 위한 현명한 결정을 하게 될 가능성은 점점 작아진다. 현실에 대한 우리의 견해란 지도와 같아서 그걸 지표로 삶의 모든 영역을 판단하게 된다. 만일 지도가 참되고 정확하다면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고, 어떻게 목적지에 도달할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지도가 거짓되고 부정확하다면, 길을 잃게 될 것이 자명하다.

우리는 지도를 갖고 태어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만들어야 하며, 이 일에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지도를 만드는 데 따르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리의 지도가 정확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그것을 수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매일 현실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정보들을 종합, 흡수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도를 수정해야 하며 어떤 경우에는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할 때도 있다. 이 과정은 마치 고문을 당하는 것처럼 괴롭다. 인간의 정신 질환의 주된 원인이 여기에 있다.

오랜 동안 노력해 만들었는데 그 관점이 틀렸다는 것이 확인되고 대폭 수정해야 한다면 마음이 어떻겠는가? 그런 작업은 대단한 고통이 요구되므로 공포와 두려움에 질려 버릴 것이다. 이런 일에 부딪혔을 때 우리는 대개 무의식적으로 새로운 정보를 무시해 버리려 한다. 이러한 행위는 아무 것도 안하려는 수동적인 행위보다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우리는 새로운 정보들을 거짓되고 위험하고 이단적인 악이라고 거부해 버릴 지도 모른다. 사실상 그것을 십자가에 매달고, 심지어 세상으로 하여금 우리의 기존 견해에 따르게 하기 위해 세상을 조작하기조차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지도를 고치기보다 새로운 현실을 말살하려 한다.

현실에 대한 낡은 견해에 이렇게 고집스럽게 집착하는 것은 많은 정신 질환의 원인이 되며, 정신과 의사들은 이것을 일컬어 전이(轉移)라고 한다. 전이란 어린 시절에 형성된 세계관이 대체로 어린 시절의 환경에는 매우 적합하나 어른이 된 상황에서는 더 이상 적절하지 못한데도 어린 시절의 것을 그대로 옮겨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대개의 경우에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정도가 심하면 그 증세는 반드시 겉으로 드러난다.

진실에 충실한 삶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첫째로 계속적이고 끊임없는 엄중한 자기 성찰을 하는 삶을 의미하며, 둘째로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삶을 뜻한다. 우리의 지도가 정확함을 확신하는 유일한 길은 다른 지도 제작자들로 하여금 그것에 대해 비판하고 도전하도록 개방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꽉 막힌 세계 안에서 살게 되어 점점 더 깊은 자아도취 상태에 빠지게 된다. 개인과 조직이 개방적 태도를 취하기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그들의 지도가 공개적으로 조사 받도록 그것을 진정으로 개방해야 한다. 따라서 진실에 충실한 삶의 세 번째 의미는 정직한 삶이다. 다시 말해서 진실과 현실을 우리가 아는 그대로, 가능한 한 정확하게 우리의 대화에 반영하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성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자기 분석 훈련을 해야 한다. 이러한 훈련을 거친 사람은 마음이 활짝 열려 있으므로 친근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다. 이들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으므로 자신은 세상을 밝고 깨끗하고 정연하게 하는 데 일조를 했다는 만족감과 자부심을 가질 수도 있다. 솔직성으로 인해 아무 것도 감추지 않고 살며, 감추지 않는 용기가 있으므로 아무런 두려움 없이 살게 된다. 결국 이들은 완전히 자유롭게 살아간다.

용기 있는 사람은 끊임없이 자기를 솔직히 드러내야 하지만, 또한 필요할 때는 적절히 자신을 감추는 능력도 가져야 한다. 자유로운 사람이 되려면 자신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만 하지만, 동시에 진실로 자신의 책임이 아닌 것은 거절할 줄 아는 능력도 가져야 한다. 매일 즐거운 일을 뒤로 미루고 미래를 내다보아야 하지만,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파괴적이지 않는 한도 내에서 현실적으로 살아갈  능력도 소유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훈련 자체가 또한 훈련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이 훈련을 ‘균형잡기’라고 부른다.

넷째, ‘균형을 잡는 것’은 우리에게 융통성을 주는 훈련이다. 성공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모든 활동 분야에서 비상한 융통성이 요구된다.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대응체계가 불균형하고 유연하지 못해서 고생을 한다. 우리의 대응체계는 고뇌와 죄의식과 불안감으로 손상을 받으면 받을수록 균형을 잃는다. 성숙한 정신 건강에 필요한 것은 서로 모순되는 욕구와 의무와 책임과 방향 등을 융통성있게 균형잡는 능력이다. 이러한 균형잡기 훈련에서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포기’인데, 이것은 삶을 통해 거듭 배워야 하는 교훈이다.

나는 아홉 살 적의 어느 여름날 처음 이것을 배웠다. 자전거 타는 법을 처음으로 배우고 있던 때였는데 나는 가파른 언덕을 따라 내려가면서 속도를 내는 것이 몹시 즐거웠다. 그 언덕을 끝까지 내려오면 바로 커브 길이 이어져 있었는데, 나는 브레이크로 속도를 줄여 이 환희를 포기한다는 것이 어리석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급커브를 돌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몇 초 뒤 환희는 끝나고, 나는 길에서 12피트나 튀어 올랐다가 숲 속에 내동댕이쳐졌다. 여기저기 긁혀 상처가 나고 피도 많이 흘렸다. 또 내 새 자전거는 나무에 정면으로 부딪쳐 전혀 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나는 균형을 잃었던 것이다.

균형이란 바로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이며, 그것은 고통스럽기 때문에 일종의 훈련이다. 우리는 이 훈련 과정을 통해, 포기함으로써 포기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기 훈련은 자기를 확대하는 과정이다. 포기에 따르는 고통은 죽음과도 같은 고통이지만, 낡은 것의 죽음은 새 것의 탄생이다. 우리가 새롭고 좀더 좋은 생각, 관념, 이론 또는 이해 방식을 개발한다는 것은 곧 낡은 옛 것을 죽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T. S. Eliot는 <매기의 여행>이라는 시의 결구에서 자신이 기독교를 받아들였을 때 이전의 세계관을 포기하는 고통을 겪었음을 말하고 있다. “이 탄생은 ‘죽음’, 우리에게는 어렵고 쓰라린 고뇌라네…. 나는 또 하나의 죽음을 기뻐해야 한다.” 그러므로 한 인간의 위대함을 측정할 수 있는 척도는 바로 그가 얼마나 고통을 감수할 수 있는가에 있다.

균형 잡는 훈련과 그것의 요체인 포기에 관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말은 포기하기 위해서는 포기할 것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갖고 있지 않은 것을 포기할 수는 없다. 아무 것도 얻지 않았는데 얻는 일을 포기한다면 당신은 출발점에 있을 따름이다. 당신은 자아를 버리려 하기 전에 먼저 그것을 만들어 가고 또 발전시켜야 한다. 발전하려는 의욕은 있으나 그렇게 하려는 의지력이 부족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훈련을 건너뛰고 성자가 되는 쉬운 지름길을 찾으려 하며, 또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흔히 그들은 단지 성자의 겉모습만 흉내내어 은둔함으로써 성자와 예언자가 되었다고 믿고, 자신이 여전히 어린아이에 불과하며 출발점에서 시작하여 중간 지점을 통과해 와야 한다는 고통스러운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명상, 요가, 정신요법 같은 과정도 훈련의 기술이 아닌가 하는 물음은 합당하다. 그러나 그것들은 기본적인 방법이라기보다는 기술적인 도움일 뿐이라고 답하겠다. 유용할 수는 있지만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반면 위에서 이야기한 기본적인 4가지 기술은 끊임없이 진지하게 실행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훈련을 바르게 실천하는 사람이 될 수 있고, 영적으로 더욱 높은 성자의 수준에까지 이르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제2장  사랑

훈련이 인간에게 정신적 발전의 수단이라면 그 훈련의 원동력, 즉 동기를 부여하고 격려하고 추진력을 주는 힘의 정체는 바로 ‘사랑’이라고 나는 믿는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신비롭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사랑에 대해 만족할 만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다소 부적절해 보일지는 모르나 사랑을 간단히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자 한다. “사랑은 자기 자신이나 혹은 타인의 정신적 성장을 도와줄 목적으로 자기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려는 의지이다.”

정신과 치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사랑의 본질에 대해 혼동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 어떤 신비한 개념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본질에 대한 혼동된 인식은 모든 사람들에게 괴로움을 준다. 나는 이러한 잘못된 인식들을 분명하게 밝혀내어 환자들뿐만 아니라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사랑의 의미를 찾아보려 하는 모든 일반인들에게까지 도움을 주고자 한다. 따라서 사랑이 아닌 것이란 무엇인가를 먼저 검토해 나가면서 사랑의 본질을 밝혀 보겠다.

사랑에 대한 모든 잘못된 인식 중에서 가장 강하고 많이 알려진 것은 ‘사랑에 빠지는 것’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에 빠지는 현상의 본질은 개인적인 자아 영역 부분을 과감하게 무너뜨리고 자신의 자아 영역과 다른 사람의 자아 영역이 하나가 되는 일체감을 느끼게끔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자아 영역을 폭포처럼 쏟아 붓고, 거기에 따라 고립된 자아 영역이 여지없이 허물어지는 것을 말한다. 사랑과 더불어 더 이상 고독하지 않게 되며, 사랑에 빠진 사람은 이 상황을 무아지경으로 경험하게 된다. 나와 사랑하는 그 사람은 하나다! 고독은 더 이상 없다!

그러나 어떤 점에서 사랑에 빠지는 행위는 일종의 퇴행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가 되는 경험은 우리가 유아기 때 어머니와 하나였던 때의 기억을 그 안에 갖고 있다.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 느끼는 이러한 비현실적인 느낌은 본질적으로 두 살배기 아기가 자신을 무한한 힘을 가진, 세계와 가족의 왕으로 느끼는 비현실성과 같다. 그러나 현실은 자신이 전능하다고 생각하는 두 살배기 아이의 환상을 깨뜨리듯이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의 환상적인 결합도 깨뜨린다. 그들은 점진적으로 또는 갑자기 사랑에서 빠져 나오며, 다시 별개의 두 개체가 된다. 이 시점에서 그들은 서로 헤어지거나 ‘진정한’ 의미의 사랑을 위한 작업을 시작한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의지에 따른 행위가 아니며, 의식적인 선택도 아니다. 그러나 ‘사랑에 빠지는’ 것은 사실상 진정한 사랑에 매우 가까운 것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진정한 사랑은 자기 경계의 확장을 포함하므로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에게 사랑스런 사랑의 대상을 찾아야 한다. 즉 우리는 자아의 영역을 넘어 자기 밖의 대상에 매력을 느끼고 몰두해야 한다. 정신과 의사들은 이렇게 매력을 느끼고 몰두하는 과정을 ‘정신 집중’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정신을 집중할 때 심리적으로도 그 대상과 하나가 된다. 요컨대 성교나 사랑에 빠지는 것에서 나타나는, 자기 영역의 일시적인 붕괴는 우리로 하여금 함께 진정한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사람과 밀접한 관계를 맺도록 이끌어 준다. 그뿐 아니라 사랑의 신비한 환희를 시험삼아 맛보아 그에 대한 욕구를 증대시키도록 해준다. 그러므로 사랑에 빠지는 것은 그 자체로는 사랑이 아니지만, 위대하고도 신비한 사랑의 계획의 일부이다.

사랑과 관련된 두 번째로 가장 흔한 오해는 의존을 사랑으로 생각하는 관념이다. 나는 의존증을, 상대방이 자기를 열정적으로 좋아한다는 확신 없이는 적절하게 살아가지 못하는 것, 또는 결코 충족감을 경험할 수 없는 상태라고 정의한다. 특히 수동성 의존증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사랑을 받으려고 하는 데만 신경을 너무 많이 쓴다. 이들은 언제나 ‘자신의 한 부분’을 잃어버린 것처럼 느낀다. 외로움을 좀처럼 참지 못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자기를 규정한다.

이러한 수동성 의존증은 사랑의 결여에서 비롯된다. 수동성 의존증의 사람들이 겪는 내적 공허감은 그들의 부모가 어렸을 적 그들에게 애정과 주의를 기울여 보살펴주지 않은 데에서 유래한다. 이들은 사랑과 보살핌과 주의를 베풀어줄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 달려들지만 남에게 줄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굶주린 사람과 같다. 필사적으로 거기에 집착하다가 실패하면 알코올과 마약에 의존하거나 교활하고 권모술수에 능한 사람이 되고 만다. 요컨대 의존성은 파괴적인 힘이므로 사랑에 반대되는 형태다. 이것은 성장보다는 유아적 태도를 양성한다. 이것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자유롭게 하기보다는 함정에 빠뜨리고 인간 관계를 건설하기보다는 파멸시킨다.

사랑은 정신적인 성숙과는 무관한 정신 집중이나 양육이 아니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제한하지 않고 너무 멋대로 사용하면 ‘진정한’ 사랑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계속해서 현명한 것과 어리석은 것, 좋은 것과 나쁜 것, 고귀한 것과 비천한 것 사이의 차이를 분간하는 데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예를 들어 좀더 올바른 정의를 사용한다면, 우리는 인간만을 사랑할 수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본질적으로 성장이 가능한 영혼을 갖는 존재는 인간뿐이기 때문이다.

애완동물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애완동물과의 의사 소통의 정도는 우리가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정도에 비해 매우 제한되어 있다. 또한 애완동물이 우리에게 대항하고 달려들 때 우리는 오랫동안 그것을 주변에 두지 못한다.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을 복종을 훈련시키는 학교에 보내는 것뿐이다. 그러나 사람에 대해서는 그들이 ‘자신의 의지’를 발전시키는 것을 바랄 수 있다. 우리가 애완동물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독립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의존적으로 붙어 있기 때문이다. 애완동물만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많으므로 이 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많은 미국인 병사가 일본인 현지처와 목가적인 결혼생활을 한다. 그러나 그들의 신부가 영어를 배우면 결혼 생활은 그때부터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들은 더 이상 아내에게 애완동물과 같은 친밀함을 느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생길 때 어떤 경우에는 사랑이 자라나기 시작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랑이 깨진다. 이런 현상 가운데 가장 슬픈 것은 아마도 자기 자녀를 단지 아기로서만 ‘사랑’할 수 있는 수많은 여자들의 경우일 것이다. 유아나 애완동물, 심지어 의존적이고 복종적인 배우자에 대한 ‘사랑’은 ‘사랑에 빠지는’ 본능적 행동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전적인 의지 또는 선택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라는 점에서 진정한 형태의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단순히 주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사려 깊게’ 주고, 마찬가지로 사려 깊게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사랑은 사려 깊게 칭찬하고 사려 깊게 비판한다. 사랑은 안락과 더불어 사려 깊은 주장과 투쟁과 대립과 격려와 밀고 당김이다. 그것이 바로 관계이다. ‘사려 깊다’는 말은 판단을 필요로 함을 의미한다. 판단은 본능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신중하며 대개의 경우 고통스러운 의사 결정을 요구한다. 분별없이 마구 주며 파괴적으로 양육하는 것 뒤에는 숨은 동기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언제나 공통적인 근본적 원인이 있다. 사랑이라는 가면 아래 ‘주는 자’는 받는 사람의 정신적 욕구와는 관계없이 자기 자신의 욕구에 맞춰 이를 충족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조히즘은 사랑에 관한 또 하나의 오해, 즉 사랑은 자기 희생이라는 오해에 기초한다. 비전문가들은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순전히 성적인 행위와만 연관시켜 생각하지만 보편적이고 궁극적으로 더 심각한 것은 사회적인 사디즘과 마조히즘 현상이다. 사람들은 성적 관계가 아닌 인간 관계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거나 받고 싶어 한다. 특히 전형적인 마조히스트는 부당한 취급에 대해 자기가 참는 것을 자기 희생이라고 생각하며, 따라서 그것을 사랑이라고 여긴다. 그러므로 자신이 증오를 갖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은 자기 희생이 아니라 자아의 확대이다. 진정한 사랑은 자기를 채우는 활동이다. 자아를 비우는 것이 아니라 충만하게 하는 것이다. 사랑과 사랑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것은 그 행위의 목표에 있다. 진정한 사랑의 경우 목표는 언제나 쌍방의 정신적 성장이다.

사랑에 대한 마지막 오해는 사랑이 느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오해는 우리가 정신 집중과 사랑을 혼동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낯선 두 남녀가 술집에서 우연히 만나 그날 함께 잠자리에 드는 순간만큼은, 세상에 더 소중한 것이 없는 것처럼 상대방에게 집중할 수 있다. 그러나 서로의 성적 매력에 의해 즉시 맺어진 한 쌍은 곧 상대방이 매력이 없고 바람직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것에서 정신을 분산시킬 수 있다. 또한 사랑과 사랑의 느낌을 혼동하는 이런 경향에는 자기 만족적인 특질이 있음이 분명하다. 흔히 자기 자녀를 소홀히 하는 사람들도 자신이 가장 사랑이 많은 부모라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이란 책임과 지혜의 훈련을 의미한다. 건설적인 결혼 생활에서 부부는, 자신의 감정이 어쨌든 규칙적이고 일상적이며 예측 가능한 관계가 지속될 수 있도록 유의해야 한다. 사랑은 정신 집중이 있든 없든 존재하며 사랑한다는 느낌이 있든 없든 존재한다. 진지하고 초월적인 사랑이 단순한 정신 집중과 구별되는 것은 이런 가능성에 도달하는 데 있다. 단순한 정신 집중과 사랑을 구별하는 중요한 요체는 ‘의지’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랑은 감정적이라기보다는 의지적이다. 의지적 행동이므로 “사랑은 행하는 만큼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 사랑과 사랑이 아닌 것은 선과 악처럼 객관적인 것이지 순수히 주관적인 현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사랑이란?
첫째, 사랑은 다른 사람의 정신적 성장이나 우리 자신의 발전을 향한 ‘노력’ 또는 ‘용기’이다. 그러므로 어떤 행동에 노력이나 용기가 없다면 그것은 사랑의 행동이 아니며 예외는 있을 수 없다.

‘사랑의 노력’이 갖는 주된 형식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람의 성장에 주목하게 된다. 또한 자신을 사랑할 때 자신의 성장에 주목한다. 관심을 기울이는 행동은 우리에게 선입견을 제거하며 능동적으로 우리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노력을 하도록 요구한다.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의지적인 행동이며 우리 마음속에 있는 관성에 대항하는 일이다.

우리가 관심과 주의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이고 중요한 방식은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우리는 남의 말을 듣는 데 아주 많은 시간을 쓰지만, 대체로 남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으므로 듣는 시간은 대부분 낭비이다. 진지한 경청, 즉 다른 사람에게 완전히 집중하는 것은 언제나 사랑의 표시이다. 진지한 경청의 본질적인 부분은 말하는 사람의 세계를 가능한 한 많이 마음속으로부터 받아들여, 그를 이해하기 위해 자기 자신의 욕구와 연관 구조 및 편견을 일시적으로 제거 또는 포기하는 것, 즉 괄호로 묶는 훈련이다.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더욱 자신감을 갖고 듣는 사람에게 자기 마음속의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게 된다. 이런 일이 일어남에 따라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상대방을 더욱 더 이해하기 시작하고, 두 사람은 사랑의 춤을 시작한다. 결국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은 실제적으로 자아의 확장이며 확대이다. 새로운 지식은 언제나 이러한 과정에서 획득된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흔히 지루하고 불편하며 언제나 힘이 너무 많이 드는 일이다. 이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게으른 편이라면 전혀 이런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부지런한 편이라면 좀더 자주, 혹은 더 잘 이런 일을 할 것이다. 사랑의 본질은 부지런함이며 사랑하지 않음의 본질은 게으름이다. 게으르다는 주제는 아주 중요하다. 이것은 훈련에 관해 논한 첫째 장과 사랑에 관해 논한 이번 장을 꿰뚫고 있는 숨은 주제이다.

이제 사랑의 노력에서 ‘사랑의 용기’로 이야기를 돌려보자. 우리가 자아를 확장할 때 우리의 자아는 새롭고 낯선 영역으로 들어가 새롭고 다른 자아가 된다. 정말로 변화하고자 한다면 두려움을 피할 수 없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다. ‘상실에 대한 두려움’, ‘독립에 대한 두려움’, ‘행위에 대한 두려움’, ‘남에게 사실을 직시하게 해주는 데 따르는 두려움’이 있다. 그러나 용기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행동하며, 두려움에서 나오는 주저함을 극복하고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사랑은 출발점으로써 정신집중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정신집중의 경우 거부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언제나 있다. 또한 사랑의 대상은 결국 언젠가는 죽는다. 삶의 본질은 변화, 즉 성장과 쇠퇴의 과정이다. 삶과 성장을 선택했다면 당신은 변화와 죽음의 가능성까지 선택한 것이다. 죽음이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으며 우리 ‘왼쪽 어깨’에 짊어져야 함을 알고 살아간다면, 죽음은 돈 후안의 말처럼 우리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 이것은 두렵기는 하지만 언제나 지혜로운 교훈의 원천이 된다.

위대한 도약은 보통 청소년기에 이루어지지만 인생의 어느 시기에도 우리는 도약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거대한 도약을 결코 취하지 않는다. 겉모습으로는 어른이지만 심리적으로는 여전히 어린애 같은 방식을 갖고 있으며, 원초적으로 부모의 동의와 반대에 의해 결정된, 부모의 가치에 따라 살고 독립적으로 운명을 개척하려고 하지 않는다. ‘독립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자신의 부모 혹은 사회 일반을 포함하여 다른 누구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결혼을 하고 사회 경력을 쌓거나 자녀를 갖는 한, 그런 성격 때문에 행동은 천박하게 된다.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고유한 개성과 심리적 독립성 및 완전한 자기 욕구라는 미지의 세계로 도약이 있을 때 가능하다. 사랑의 최고의 형태는 완전히 자유로운 선택이지 다른 사람에게 이끌리는 행동은 결코 아니다.

부모에게 확고한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성인 관계에서 공통적으로 갖는 문제 가운데 하나는 경직된 태도이다. 이들에게는 이전에 행동했던 방식과 다르게 행동하는 것은 특별한 모험을 의미한다. 전쟁터로 나가는 군인보다 더 두렵고 겁나는 모험이다. 군인은 달아날 수 없지만 이들은 언제나 과거의 틀에 박힌 쉽고 친숙한 양식으로 달아난다. 자아를 확장하고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노력만이 이러한 ‘행위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남에게 사실을 직시하게 해주는 데 따르는 두려움’도 무시할 수 없다. 내가 누구이기에 남의 사건 과정에 영향력을 미치려고 하는가? 누가 내 판단을 믿겠는가? 내가 누구이기에 신의 역할을 하려 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바로 이것이 위험한 것이다. 진정한 사랑을 베풀며 남에게 어떤 사실을 일깨워줄 때 우리는 그것이 바로 신의 역할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게 된다. 우리는 조심성 있게 신의 역할을 하고 실수 없이 신의 의지를 완수하는 책임을 떠맡는다.

둘째, 사랑은 훈련이다. 자기 훈련은 행동으로 전환된 사랑일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사랑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훈련으로서 행동하며, 진정으로 사랑하는 관계는 어느 것이나 훈련된 관계이다. 내가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나는 분명히 그 사람의 정신적 성장에 가장 잘 기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내 행동을 조절할 것이다. 우리는 감정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자기 훈련이 감정의 말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흔히 내 환자들에게 그들의 감정은 그들의 노예이며, 자기 훈련의 기술은 노예를 소유하는 기술과 같다고 말한다. 사랑의 감정도 이와 같이 훈련되어야 한다.

순수한 사랑은 자아의 확장을 포함하므로 상당한 에너지가 요구된다. 우리는 시간적 제한 때문에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할 수는 없다. 진정으로 사랑을 베푸는 사람의 첫 번째 의무는 언제나 가족 관계에 있다. 자신의 가족을 사랑의 공동체로 만들지 못하고 끊임없이 가족 밖에서 사랑의 관계를 갈구하는 사람은 애처롭다. 그러나 자신을 지나치게 제한하게 만드는 배타성은 피해야 한다. 자신을 제대로 확장시켜 나가려면 엄청난 자기 훈련이 필요하다. 신학자인 조셉 플레처는 이런 말을 했다. “자유로운 사랑은 이상이며 불행하게도 우리들 가운데 극히 소수만이 이상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랑을 훈련하지 않으면 자유는 언제나 사랑이 결여되어 파괴적이 된다.

또한 사랑은 독립이다. 진정한 사랑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완전한 독립적 주체성을 가진 사람으로 생각한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독립성과 고유한 개성을 존중하며, 심지어는 그것을 촉진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분리를 존중하지 못하는 것이 보편적 현상이다. 이것은 많은 정신 질환과 불필요한 고통의 원인이 된다. 상대방의 독립성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가장 극단적인 형태를 띨 때 우리는 이것을 자애증, 즉 나르시시즘이라고 부른다. 자기 도취적인 사람들은 정서적인 차원에서 자기 자녀와 배우자나 친구가 자기와 다른 독립적 존재임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

얼마 전 부부들의 모임에서 나는 구성원 가운데 한 남자가 아내의 ‘목적과 기능’은 가정을 산뜻하게 유지하고 가족에게 좋은 음식을 해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야말로 주제넘은 그의 남성 우월주의에 깜짝 놀랐다. 그런데 놀랍게도 거기 모인 부부 대부분이 아주 비슷한 답변을 했다. 그들은 다소 호전적으로 내게 내 아내의 기능과 목적을 정의하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 아내 릴리의 목적과 기능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 자신, 그리고 그녀를 지으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자기가 가능한 최대한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개념은 그들에게는 낯설었다.

부부들에게 정신요법을 할 때 나와 내 아내는, 결혼은 등산을 위한 베이스 캠프와 같다고 말한다. 누군가가 정상에 오르고자 한다면 좋은 베이스 캠프를 가져야 한다. 이곳은 은신처이며 물자를 공급해 주고, 다시 다른 정상을 정복하려고 시도하기 전에 도움과 휴식을 제공해 준다. 그리고 성공적인 등반자는 적어도 실제로 산을 오르는 데 쓰는 시간만큼 베이스 캠프에 마음을 써야 한다는 것을 안다. 자신의 생존이 견고한 베이스 캠프를 유지하는 데 달려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상에 오르는 고독한 여행은 단지 혼자서밖에 할 수 없다. 결혼과 사회는 개인의 그러한 여행을 위해 존재한다. 또한 혼자 올라갔던 정상에서 사회 또는 가정으로 귀환하는 것은 다시 그 결혼과 사회를 새로운 단계로 높이는 데 기여한다.

사랑은 신비스러운 주제이다. 사랑이 자기 훈련이라는 토대 위에서 발전하는 것은 분명하나 이것은 사랑 자체가 어디서부터 오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이것을 물을 때 우리는 또한 사랑이 결여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을 수 있다. 아직 논의되지 않았고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차원의 사랑이 분명히 있다. 이런 문제들에 관한 통찰력을 어렴풋하게나마 얻고자 한다면 종교적 심성을 가진 사람이나 종교의 교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장은 종교의 특정한 양상들을 다루고, 마지막 장에서는 은총이라는 현상과 그 역할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은총이라는 현상에 대한 이해는 인간의 성장 과정을 완전히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제3장  성장과 종교

자기 훈련과 사랑과 생활 경험을 통해 성장함에 따라 우리는 자연히 인간의 세계와 그 속에서의 자신의 위치에 대한 이해가 성장한다. 그러나 반대로 성장이 멈추면 그러한 이해도 성장하지 못한다. 결국 인류에게는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의 폭과 사고에서 아주 다양한 편차가 존재한다. 이러한 이해가 바로 우리의 종교이다. 누구나 삶에 대한 어떤 이해, 즉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므로 모든 사람은 종교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하다. 내 책임 아래 있는 의사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환자들이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하더라도 그들의 종교를 찾도록 해 보세요.”

대체로 한 사람의 종교 또는 세계관은 불완전하게 의식되고 있을 따름이다. 환자들은 흔히 자신의 세계를 어떻게 보는지 스스로는 모르며, 때로는 실제로 전혀 다른 종교를 가졌으면서도 자기는 그와 다른 어떤 종교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우리의 종교 또는 세계관이 일차적으로 주로 우리의 고유한 어린 시절의 경험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종교와 사실과의 관계라는 중요한 문제를 검토하도록 한다. 그것은 소우주와 대우주의 문제이다.

각 사람의 견해는 개인적 경험의 소우주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세상이 이렇게 갈등으로 가득 차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우리들은 대부분 자신의 세계관을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하며, 그것의 유래가 되는 독특한 자기 경험에 대해서는 더 더욱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속담에 나오는 눈 먼 세 사람이 된다. 단지 코끼리의 일부분만을 만지고서도 전체의 본질을 알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소우주의 세계관에 대해 시끄럽게 왈가왈부하고, 이러한 전쟁은 다 거룩한 전쟁이 된다.

정신적 성장은 소우주에서 대우주로 가는 여행이다. 아주 실제적 의미에서 우리는 이것을 과학으로부터 시작한다. 우리의 종교는 현실에 대한 자신의 경험이라는 시련 속에서 철저한 회의와 의심의 불길에 의해 달구어져서 완전히 개인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신학자 알란 존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우리들 중에 극소수만이 독특한 개인적인 삶을 발전시킨다는 점이다. …많은 경우 우리는 자기 역할을 하기 위해 간접적인 정보에 의존해야 한다. 그러나 삶의 의미, 목적 그리고 죽음의 문제에 부딪치게 되면 간접적인 정보는 아무 소용이 없다. 나는 간접적인 신에 관한 간접적인 믿음을 갖고는 생존할 수 없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내 자신의 개인적인 언어와 독특한 체험이 있어야 한다.”

과학자들은 어느 정도 자기 문명의 소우주를 극복하는 데 성공한 사람들이다. 그만큼 그들은 현명해진 것이다. 과학적 태도를 가진 사람이 갖는 회의적 세계관은 맹목적인 믿음과 지역적 미신, 그리고 의심받지 않는 전제들에 기초한 세계관보다 낫다.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과학적 태도를 갖는 사람은 단지 정신적 성장의 여행을 겨우 시작한 것에 불과하다. 특히 과학적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신의 실재에 대해 갖는 견해는 맹목적으로 자기 부모의 신앙을 따르는 단순한 농부의 견해만큼이나 편협하다. 과학자들은 신의 실재 문제를 다룰 때 큰 어려움을 겪는다.

신에 대한 믿음의 기록은 아주 초라하게 보인다. 신에 대한 믿음이 없었더라면 인간이 더 잘 되었을지 모르며, 신은 스쳐 지나가는 환상일 뿐 아니라 해로운 환상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신은 인간 마음속의 환각이라고 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 같다. 신에 대한 믿음은 인간의 치유되어야 할 보편적인 병리 현상일까? 우리가 어린 시절에 받은 잘못된 가르침의 수렁과 지역적 전통 그리고 미신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이것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물음이다. 그러나 신의 실재에 대해 빠르고 간단한 해결을 바라는 욕구에서 질문을 던질 때 우리는 두 가지 함정에 빠지기 쉽다. 첫째는 목욕물과 함께 아기를 던져버리는 것이며, 둘째는 동굴 속을 들여다보는 시야이다.

분명히 신의 실재성 주위에는 더러운 목욕물이 많이 있다. 종교 재판, 인간 제물, 미신, 파문, 무지, 위선, 독선, 마녀 사냥, 금지, 공포, 병적 죄의식 등 이러한 목록은 끝이 없이 길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신이 인간에게 한 것인가, 인간이 신에게 저지른 것인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흔히 파괴적이고 독단적임은 분명하나 사람들이 신을 믿는 경향이 있는 것이 문제인가, 독단적인 것이 문제인가? 극단적인 무신론자는 어떤 신앙인보다도 독단적이다. 우리가 제거해야 할 것은 독단론인가, 신에 대한 믿음인가?

과학자들이 아기를 목욕물과 함께 던져버리기 쉬운 또 다른 이유는 내 생각으로는 과학 자체도 종교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도 기독교 십자군 또는 알라 신의 군인과 똑같이 광신적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신에 대한 믿음이 무지, 미신, 지나친 엄격성, 위선 등과 밀접히 연관된 문명이나 그러한 가정 출신의 사람이 과학을 하게 되었을 때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들은 감정적인 동기를 가지고 처음에 믿었던 우상을 분쇄하고자 한다. 그러나 과학에서의 성숙성의 지표는 과학도 다른 어느 종교와 마찬가지로 독단적일 수 있음을 의식하는 것이다. 영적인 성장의 길은 미신을 벗어나 불가지론으로 가고, 불가지론을 벗어나 하느님에 대한 정확한 지식에 이르는 길이다.

결국 과학자들이 목욕물과 함께 아기를 던져버리기 쉬운 주된 이유는 그들이 아기를 보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그들은 영적인 영역에 자신의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게 하는, 심리적으로 스스로 부과한 일련의 정신병리적인 차광막, 즉 ‘동굴 속에서 보는 태도’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그러나 최근 과학은 역설의 실재성을 발견했다. 빛의 본질, 전자기, 양자 역학, 상대성 이론과 같은 현상을 탐색하면서 물리학은 지난 세기의 수준을 넘어 점차 어떤 차원에서 실재하는 것은 역설적임을 인식하는 데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인간은 필멸의 존재인 동시에 영생을 누릴 수 있으며” “빛은 파동인 동시에 입자”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종교와 과학의 통합 가능성의 시작은 오늘날 우리의 지적인 삶에서 일어나는 가장 의미 있고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나 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 간단한 대답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들은 통속적인 과학 개념과 종교 개념을 결합시킨다. 이것은 포부는 크지만 생각은 깊지 못한 일이다. 많은 경우 이런 결합이 실패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다만 동굴 속을 들여다보는 과학적 태도가 우리의 시야를 왜곡하지 말아야 하듯이, 회의를 위한 우리의 비판적 능력과 역량도 영적 영역의 찬란한 아름다움에 의해 눈이 멀어서는 안 된다.

제4장  은총

“놀라운 은총! 얼마나 달콤한가. 나같이 난파한 사람 구해주는 소리는!” 초기 미국의 찬송가에서 은총과 연결되어 있는 첫 단어는 ‘놀라운’이다. 무언가가 일상적인 것이 아닐 때, 우리가 아는 ‘자연 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을 때, 그것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그런데 이어지는 노랫말에서는 은총이 일상적인 현상이며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은총의 실체는 우리가 아는 자연 법칙과 관습적인 과학의 개념적 틀로써는 여전히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여전히 기적적이고 놀라운 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의 질병은 심신 양쪽의 것, 즉 정신이 신체의 저항 체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실패와 관련하여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러한 저항 체계가 대부분 아주 잘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보통 박테리아를 산 채로 먹고, 암세포에 시달리며, 지방질로 인해 장애를 일으키고, 산성 물질에 의해 침식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자주 병에 걸리지 않으며, 그렇게 빨리 죽지 않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우리가 완전히 알지 못하는 어떤 힘이 있다. 그러한 힘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상적으로 작용하여 최악의 조건에서도 육체적 건강을 보호하고 북돋아 주는 것으로 여겨진다.

사고를 당하는 문제는 더욱 흥미로운 의문을 제기한다. 아홉 살 나던 어느 겨울날 나는 방과 후 눈 내린 길을 걸어 집으로 오다가 신호등이 바뀔 때 그만 미끄러져서 그대로 넘어진 일이 있었다. 급히 달려오던 차가 급정거했을 때 내 다리와 몸통은 차체 아래 있었고 머리는 바로 범퍼 앞에 멈춰 있었다. 나는 차 아래에서 빠져 나와 겁에 질려 집으로 달아났으나 다친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사실 사고의 문제를 살펴보면, 인간의 생존 욕구는 분명히 본능과는 다르며 더욱 더 기적적인 것임을 알게 된다. 우리는 자신의 생명만이 아니라 남의 생명까지도 보호할 수 있는 본능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본능 자체가 충분히 기적적인 일이지만, 이런 경우 본능이라는 전통적 개념보다는 동시 발생이라는 개념이 설명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동시 발생에 대해 논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무의식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무의식이라는 방대하지만 숨겨진 영역의 존재와 그것이 갖는 풍요로움을 알 수 있는 방법들 가운데 하나는 우리의 꿈을 통해서이다. 또한 무의식은 우리가 잠잘 때와 마찬가지로 깨어 있을 때도 똑같은 우아함과 사랑으로 우리에게 무언가를 전달해 줄 수 있다. ‘자유 연상’ 또는 스쳐 가는 단편적 생각들이 그것이다. 이 자유 연상은 대체로 우리에게 자신에 대한 통찰력을 줄 뿐 아니라, 우리 밖의 세계와 다른 사람에 대한 극적인 통찰력도 줄 수 있다. 무의식이 자신을 드러내고 우리에게 말해 주는 세 번째 방식은 우리의 무의식적 행동을 통해서이다. 무의식이 이런 식으로 전해주는 것은 우리의 영적인 성장을 돕기 위해 고안된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기만 하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프로이드와 그의 초기 추종자들은 이러한 무의식을 원시적인 것, 반사회적인 것, 그리고 우리 내부의 악마성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이유는 의식이 그것에 저항한다는 사실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신 질환을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무의식적인 악마라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을 수정할 의무가 융에게 떨어졌다. 그는 이것을 ‘무의식의 지혜’라는 말로 표현했는데, 내 자신의 경험은 이 점과 관련하여 융의 견해가 옳다는 확신을 주었다. 정신 질환은 오히려 의식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 또는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혼란된 관계이다.

우리가 의식하는 자기 개념은 실제의 모습과 다소 다르다. 그러나 무의식은 우리의 실제의 모습을 안다. 한 사람의 영적 발전 과정 가운데서 주된, 그리고 필수적인 과제는 자기가 의식하고 있는 자기 개념을 점차 실제의 모습과 일치시켜 가는 것이다. 한 환자에게 집중적인 상담 같은 것을 통해 이 과정이 빠르게 진행될 때 그 사람은 흔히 ‘거듭 태어난다’는 느낌을 갖는다. 환자는 자기 의식의 변화에 진심으로 기뻐서 “나는 완전히 새롭고 다른 사람”이며 “나는 한때 길을 잃었지만 이제 새로 찾았네. 눈이 멀었었지만 이제는 볼 수 있네.”라고 말한다.

우리보다 현명하며 우리 자신의 일부이기도 한 이 무의식은 어디에서 유래하는 걸까? 우리는 모른다. 무의식이 갖는 비범한 지혜를 기적적인 기술로써 작용하는 뇌세포에서 나온다고 설명할 수 있겠지만, 분명히 무의식의 작용과 관련된 이른바 ‘정신 현상’에 대해서는 여전히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인간 정신이라는 현상 앞에서 외경을 느낀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사색은, 하느님이 그의 군단과 우주에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 그를 돕는 천사를 데리고 우주를 지배한다는 생각과 본질적으로 거의 다르지 않다. 기적 같은 것은 없다고 믿는 정신 그 자체가 기적인 셈이다.

나는 어느 날 밤 7개의 연속된 영상으로 구성된 꿈을 꾼 적이 있다. 나중에 나는 내 친구가 우리 집에서 이틀 전 밤에 잠을 자는 동안에 똑같은 영상들이 순서대로 발생한 꿈을 꾸다가 잠을 깬 일이 있음을 알았다. 그와 나는 이 꿈을 우리가 함께 겪은 어떤 경험과도 연결시킬 수 없었다. 또한 사람들이 흔히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부서진 차 속에서 다치지 않고 나온다거나 육감 같은 것에 의해 정면 충돌을 모면하는 일이 있다. 이런 류의 사건들은 동시 발생의 예를 보여주며 이로운 결과를 낳는 사건이 일어나는 빈도가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높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이 낳는 이로운 결과란 생명의 구조였다. 단지 생명을 고양시키거나 성장을 도와주는 경우는 이보다 훨씬 많다. 이런 사건의 예로 칼 융이 경험한 ‘풍뎅이 꿈’을 들 수 있는데, 「동시 발생에 대하여」라는 그의 논문에 그 전문이 실려있다.

이 예는 한 젊은 여자 환자와 관련된다. 우리는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심리학적으로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문제는 그녀가 모든 것에 대해 무엇이든 잘 안다는 데 있었다. 훌륭한 교육은 그녀에게 이 목적에 아주 적합한 무기, 즉 실재에 대한 완벽하게 ‘기하학적’인 관념을 갖춘 고도로 세련된 데카르트적인 합리주의를 부여했다. 그녀의 합리주의를 부드럽게 하려는 몇 번의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자 나는 단지 예기치 못한 비합리적인 일이 일어나기를, 즉 그녀가 자신을 단단히 둘러싸고 있는 지식의 갑옷을 부숴 줄 무엇이 발생하기만을 희망할 따름이었다. 어느 날 나는 그녀 맞은편에 앉아 등을 창 쪽에 둔 채 그녀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그녀는 전날 밤 인상적인 꿈을 꾸었다. 그 꿈에서 누군가가 그녀에게 황금 풍뎅이 -아주 값비싼 보석이었다- 를 주었다고 했다. 그녀가 계속해서 내게 이 꿈을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등뒤에서 무엇인가가 창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뒤를 둘러보고 그것이 상당히 큰 벌레임을 알았다. 그 벌레는 분명히 어두운 방 속으로 들어오려고 창 밖에서 유리창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것은 아주 이상하게 보였다. 나는 즉시 유리창을 열었고 그 벌레가 날아 들어오자 붙잡았다. 그것은 풍뎅이였다. 황금색과 초록색이 뒤섞인 색깔은 마치 황금 풍뎅이 같았다. 나는 “여기 당신의 풍뎅이가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내 환자에게 건네주었다. 이 경험은 그녀의 합리주의 갑옷에 내가 원하던 구멍을 냈다. 얼음 같이 찬 그녀의 지적인 저항을 깨뜨렸다. 이제 계속 진료하기만 하면 성공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것이었다.

이로운 결과를 낳은 기이한 사건들과 관련하여 여기서 우리가 말하고 있는 것은 초능력이라는 현상이다. 웹스터 사전에서는 초능력이라는 단어를 ‘추구하지 않으면서도 귀중하거나 좋은 것을 찾는 재능’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은총도 어떤 면에서는 ‘추구하지 않고 얻은 귀중하거나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누구나 이것을 얻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이용할 수 있으나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할 뿐이다. 풍뎅이를 안으로 들어오게 하고 붙잡아서 환자에게 줌으로써 융은 분명히 은총을 이용했다. 그러나 우리가 은총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재능이 우리에게 주어졌을 때 그것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초능력적인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지만, 흔히 우리는 그것이 초능력적인 것임을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은총이란 대략 어떤 특성들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을까? 첫째, 그것은 인간의 삶과 영적 발전을 조장하며, 지탱하고, 보호하며 고양시킨다. 둘째, 그것의 작용 방식은 과학적 사고로 해석되는 자연 법칙의 원리에 입각해서 보면 매우 모호하다. 셋째, 그 사건들은 자주 발생하며 일상적이고, 본질적으로 인간 사회에서 보편적이다. 넷째, 잠재적으로는 의식의 안쪽에 의해 영향을 받지만, 그것들의 기원은 의식적인 의지 밖에 있으며 의사 결정을 초월한다. 우리는 이 은총의 힘, 즉 기적에 의해 성장한다. 모든 생명의 성장 과정 자체가 기적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진화라고 이름 붙여 왔다.

나이가 들면 인간의 육체적인 능력은 필연적으로 퇴보하게 된다. 그러나 한 개인의 정신은 살아가면서 극적으로 진화할 수 있다. 영적인 능력은 죽을 때까지 증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영적 성장 과정이 수고스럽고 힘든 것임을 거듭 강조해 왔듯이 이 진화의 ‘흐름’ 또한 지난한 과정이다. 이 흐름은 열역학 제2법칙인 엔트로피의 힘과 반대 방향이다. 인간의 영적인 진화는 이 저항을 극복해 왔다. 우리 모두가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또한 쉬운 일도 아니지만, 우리에게는 이미 수렁 속에 안주하기보다 거기에서 빠져나오려는, 더욱 어려운 길을 선택하도록 하는 힘이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 개인이 진화해 나아가듯 우리 사회와 인류 전반에도 진화가 적용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진화했을 때 우리는 세계를 등에 지고 갈 수 있다. 그리하여 인류도 진화한다.

그러나 개인과 인류 전체를 떠밀어, 우리 자신의 관성이라는 자연적 저항을 이겨내면서 성장하도록 하는 이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우리는 이미 이것에 대해 이름을 붙였다. 그것은 사랑이다. 사랑, 즉 자아의 확장은 진화이다. 진보하고 있는 진화이다. 모든 생명 안에 있는 진화의 힘은 모든 인류에게 사랑으로 드러난다. 인류에게는 엔트로피라는 자연 법칙에 도전하는 기적적인 힘이 존재한다.

그러나 사랑에 관한 장에서 지적된 질문이 여전히 남아 있다. 사랑은 어디서 오는가? 이제서야 이 질문은 더욱 근본적인 질문으로 확대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질문은 우리에게 ‘은총’이라는 것의 근원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우리는 곧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사랑은 의식적인 것이지만 은총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의식 밖에 존재하면서 인간의 영적인 성장을 돕는 이 강력한 힘”은 어디서 오는가?

우리는 은총과 진화라는 기적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가 성장하기를 바라는 신, 즉 우리를 사랑하는 신을 가정할 수 있다. 너무 단순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마음 속 깊이 질문을 해 온 사람은 누구든 이보다 더 나은 가설을 세울 수 없을 것이다.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사랑의 신이라는 이 단순한 견해가 결코 쉬운 철학이 아님을 알 것이다.

사랑하는 능력, 즉 성장하고 진화하도록 하는 충동이 어떤 경로를 통해 신에 의해 ‘불어넣어졌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다시 그 목적이 무엇이냐고 묻게 된다. 왜 신은 우리가 성장하기를 원하는 걸까? 우리는 어디를 향해 성장하고 있는 걸까? 진화의 도달점은 있는가 아니면 없는가? 그리고 있다면 어디인가? 진정으로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결국 아주 간단하고도 외경스러운 생각, 즉 신은 우리가 자신과 같이 되기를 원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신은 진화의 목표점이다. 신은 진화시키는 힘의 원천인 동시에 우리의 운명이다. 이것이 우리가 하느님은 알파이며 오메가, 즉 시작과 끝이라고 할 때의 의미이다.

오랜 세월 동안 우리는 순전히 외경스러움 때문에 이 관념을 회피해 왔다. 이 관념은 다른 어느 생각보다도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한다. 이것은 인류 역사 가운데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많은 것을 요구하는 관념인 것이다. 그러니 인간이 신이 될 가능성을 믿는 것을 외면하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관념을 믿는다면 우리는 자기 개선과 영적 성장을 위해 수고롭고 지루한 일을 죽을 때까지 계속해야 할 것이다. 하느님의 의무가 우리 자신의 의무로 편입되는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이 우리가 성장하여 자신과 같이 되도록 능동적으로 우리를 돕고 있다는 생각은 다시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의 게으름을 직시하도록 한다.

우리는 게으름을 극복할 수 있다면 다른 것들도 뛰어넘을 수 있다. 게으름은 우리 모두의 삶에 나타나는 엔트로피의 힘임을 깨달아야 한다. 나는 오랫동안 원죄라는 관념이 무의미하며 부정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어린아이가 자기 조상이 선악과를 먹었다고 해서 이미 저주를 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 없었고, 그런 아이들에게 어떤 운명적 죄악이 있다고 느낄 수도 없었다. 그러나 점차 나는 게으름이 세상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뱀과 선악과의 이야기는 이 점에서 돌연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할 일을 하지 않았음에 있다. 아담과 이브는 하느님께 묻지 않았다. 그들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율법 뒤에 숨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회의를 제기해 보지도 않고 그냥 하느님의 율법을 깨뜨렸다.

어떤 행동의 타당성을 따질 때 인간들은 보통 하느님 쪽의 말을 듣지 않는다. 자기 내부에 있는 하느님의 말씀, 즉 모든 인류의 마음속에 내재하는 정의로운 지시를 경청하거나 그것에 도움을 받지 못한다. 우리는 게으르기 때문에 이런 실수를 한다. 아담과 이브처럼, 그리고 우리 앞에 있었던 모든 조상들처럼 우리는 모두 게으르다. 따라서 원죄는 존재한다.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덜 게으르다. 그러나 진정으로 자신을 성찰해 본다면 자기 안에 어느 정도는 게으름이 잠복해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끌어내리고 영적인 성장을 방해하는, 우리 내부에 있는 엔트로피의 힘인 것이다.

게으름의 주된 형태는 두려움이다. 아담과 이브로 하여금 하느님의 율법 뒤에 숨은 뜻을 묻지 못하게 한 것은 모두 게으름 때문만은 아니다. 두려움, 즉 하느님을 대면할 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느님께 묻는 것은 많은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두려움의 상당 부분은 현상을 변화시키는 데 따르는 두려움, 즉 현재의 위치에서 더 앞으로 나아가면 무언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이러한 게으름을 줄여나가는 첫걸음은 우선 자신에게 게으름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 각자의 내부에는 두 가지 자아, 즉 건강한 자아와 병든 자아가 있다. 즉 삶에의 욕구와 죽음에의 욕구가 있다. 우리 각자의 내부에는 신의 경지를 추구하는 본능이 있으며, 또한 게으름이라는 원죄가 있다. 이 원죄는 언제나 존재하는 엔트로피의 힘으로서 우리를 수렁 속으로 퇴행시킨다.

악의 문제는 모든 신학적 문제 가운데 가장 커다란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심리학이라는 과학은 마치 악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몇 가지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악을 인정해 왔다. 그러나 나는 악은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어둠은 빛이 그 모습을 비추어 드러내므로 빛을 싫어한다. 악인은 선이 자신의 악을 드러내므로 미워한다. 그들은 이런 자기 의식에 따른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빛과 선과 사랑을 파괴한다. 악은 게으름이 극한에 도달한 상태이다. 사랑의 반대는 게으름이라고 했듯이, 일상적인 게으름은 수동적인 상태로서 사랑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악은 사랑을 반대하는 것이다. 엔트로피와 사랑은 서로 갈등하는 힘이므로, 선이 악을 싫어하듯이 악이 선을 미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악은 사회적 권력의 형태로 인간의 진보에 맞불을 질러 그것을 방해한다.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악은 그 특성상 다른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횃불로 기능하기도 한다. 우리들은 대부분 악의 맹렬함에 대해 본능적으로 느끼는 두려움에 의해 은총을 받으며, 악의 존재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자신을 정화시키는 계기가 된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매단 것은 악이었는데, 오히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멀리서도 그분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세상의 악에 대한 싸움에 우리가 개인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우리가 성장하는 길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는 이제 정신적 발전이란 의식의 성장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지점에 도달했다. 그러나 의식이 갖지 못한 모든 지식을 갖고 있는 무의식에 대해서나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소유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모호하다. 다시 우리는 󰡒그것은 하느님이다.󰡓라는 가설만을 세울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하느님을 당신 내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 말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상호 대면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상호 대면임을 시사해 준다. 하느님은 우리 내부에 있으며 우리는 언제나 하느님의 일부이다. 하느님은 늘 우리와 함께 있었으며 앞으로도 언제나 그럴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내재하는 성신 또는 성령이라는 기독교 개념과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융도 자신을 󰡐무한한 신성의 파편󰡑이라 묘사한 바 있다.

무의식은 하느님이므로 우리는 정신적 성장의 목적을 의식적 자아에 의한 신성의 획득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그것은 각자가 완전한 신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그 목적이, 의식이 무의식에 통합되어 모든 것이 무의식이 되는 데 있음을 의미할까? 그렇지는 않다. 우리는 지금 문제의 핵심에 도달했다. 중요한 것은 의식을 보존하면서 하느님이 되는 것이다. 무의식의 하느님이라는 뿌리로부터 자양분을 받고 성장하는 의식 자체가 하느님이 될 수 있다면, 하느님은 새로운 형태의 삶을 취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 개인의 존재 의미이다. 우리는 의식적인 대체로서 새로운 형태의 삶을 가진 하느님이 되기 위해 태어났다.

의식은 존재의 전체 가운데 실행하는 영역이다. 결정을 내리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도록 하는 것은 의식이다. 완전히 무의식적 존재가 된다면 우리는 정말로 갓 태어난 아기와 같을 것이다. 하느님과 하나이기는 하지만, 세상으로 하여금 하느님의 존재를 느끼도록 할 수 있는 어떤 행동도 취할 수 없다. 힌두교나 불교 신학의 신비적인 어떤 부분에는 퇴행적인 성격이 있다. 거기서는 자아 영역이 없는 유아의 상태가 니르바나(열반)에 비유되며, 열반에 들어가는 목적은 모태로 되돌아가려는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기독교 신학의 목적은 이러한 퇴행성과 정반대이다. 그것은 자아가 없는 무의식의 아기가 되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이라는 자아가 될 수 있는 성숙된 의식적 자신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두 발로 이리저리 걸어다니며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독립적 선택을 할 수 있는 성인이다. 우리가 갖는 이 성숙된 자유 의지를 하느님의 그것과 동일시할 수 있다면, 하느님은 의식적인 자신을 통해 새롭고 잠재력 있는 형태의 삶을 취할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하느님의 대리인이자 그분의 손발이 될 것이며, 따라서 그의 일부가 된다. 우리의 의식적 결정을 통해 그분의 의지에 따라 세상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우리의 삶 자체가 하느님의 은총의 대리인이 될 것이다. 그때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은총의 한 형태가 되어 사람들 속에서 그분을 위해 일하며, 이전에 없었던 사랑을 창조하고 이웃사람들을 우리 정도의 의식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인류 진화의 수준을 끌어올린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긴다. 왜 우리 가운데 극소수만이 은총의 부름에 귀를 기울이는 걸까? 그것은, 은총에는 고통스러운 책임과 의무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어떤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 그것은 정신적으로 어린아이 상태에서 어른으로 나아가라는 부름이며, 인류의 부모가 되라는 부름이다. 그러므로 “부름받은 자는 많으나 선택받은 자는 적다.”는 말은, 은총에의 부름에 순응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쉽게 설명이 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다시 역설에 직면해 있다. 그 동안 나는 마치 영적인 성장이 질서 정연하고 예측할 수 있는 과정인 것처럼 이야기해 왔다. 본질적으로 나는 은총을 획득하는 것이라고 했던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전부가 아님을 나는 안다. 우리가 은총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은총이 우리에게 오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탐욕스럽게 영적인 삶을 원하는 사람들은 그 길에서 여러 가지 장애에 부딪친다. 반면 은총의 상태를 성취하여 “하늘로부터의 새로운 삶”이 주어진 사람들은 이 경험을 자신이 스스로 획득했다고 느끼지 않는다. 이들은 분명 자신은 자기보다 더 현명하며 능숙한 손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느끼며 그 신비함에 놀란다.

이와 같은 역설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아마도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최상은, 우리 스스로 은총이 기적적으로 올 때 자신을 열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비옥한 땅, 은총을 환영하는 장소로 만들 수 있다. 신학을 모르고 신에 대해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고 해도 은총을 받기에 적합한 장소로 준비할 수 있다. 부처는 해탈의 추구를 멈추었을 때 해탈을 얻었다고 했다. 하지만 바로 그가 16년간이나 준비했으며 적어도 6년간이나 해탈을 추구했으므로 해탈이 그에게 왔다는 사실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모든 사랑에 대해서도 이런 태도를 취해야 한다. 아무런 노력도 없이 사랑받기를 추구한다면 우리는 의존적이 되고 붙잡으려고 하며, 따라서 진정한 사랑을 하지 못하게 된다. 자기 자신에게 먼저 사랑을 베풂으로써 우리는 사랑을 받고 또한 사랑할 수 있다.

추구하지 않고서도 축복을 받는 능력은 그저 물건과 같은 선물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적 의지의 영역 너머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은총이라는 선물을 인식하고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 능력을 갖고 있으면 우리는 자신의 영적 성장의 여행이, 눈에 보이지 않는 손과 상상할 수 없는 하느님의 지혜에 의해, 우리의 의식적 의지가 해내는 것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안내된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이렇게 안내되면 여행은 훨씬 더 빨라진다.

모든 걸음걸이가 안전하고 가치 있음이 보장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한 마디로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다. 영적 성장의 여행은 용기와 주체성과 사고 및 행동의 독립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예언자의 말과 은총의 도움을 얻을 수는 있지만 여행은 여전히 혼자 가야 한다. 어떤 스승도 당신을 데리고 가지 못한다. 확고한 공식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좌절하기가 쉽다. 하지만 일단 은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기만 한다면, 자신을 의미 없고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우리의 이해 방식은 없어질 것이다.

우리 자신과 우리의 의식적인 의지를 넘어서 우리의 영적 성장과 발전을 돕는 강력한 힘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자기가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뒤집어 놓을 수 있다. 이 힘의 존재는, 일단 우리가 깨닫기만 한다면, 인간의 영적 성장이 우리 자신보다도 더 위대한 어떤 것에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고하게 가르쳐 준다. 이 어떤 것을 우리는 하느님이라고 부른다. 은총이 존재하는 것은 신이 실재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신의 의지가 개인의 정신적 성장에 기여한다는 사실에 대한 최상의 증거이기도 하다.

한때는 옛날이야기처럼 여겨졌던 것이 현실이 된다. 우리는 이제 변두리가 아니라 하느님의 보살핌과 관심을 받으며, 하느님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 우주는 하느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하나의 도약대에 불과할 수도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우주의 길 잃은 미아가 아니다. 오히려 은총의 실재는 인간이 우주의 중심에 있음을 가르쳐 준다. 오늘의 시간과 공간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나의 환자들이 자신의 중요성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리고 우리의 작업에 수반되는 노력이 너무 힘들어 마음 상해할 때, 나는 가끔 인류는 진화라는 뜀틀판 위에 있다고 말해 준다. “이 뜀틀 넘기에서 성공하든 실패하든 전적으로 당신의 개인적 책임이에요.”라고 나는 말한다.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우주라고 하는 도약대는 우리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스로 뛰어넘어야 한다. 은총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은총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자신이 따뜻하게 맞아들여지고 있음을 안다. 우리가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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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여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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