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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성화(2)
본 문 :
벧전1: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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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주일학교 예배 시간에
목사님이 어린이들을 향하여 “만약 착한 사람이 모두 흰색이고 나쁜 사람들은 모두 검정 색이라면, 여러분은 어떤 색깔일까요?”라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한 어린이가 “목사님! 저는 얼룩진 색깔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어린이의 대답 속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의인이 아니면 죄인이라는 이분법적인 분류를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이런 분류는 단순한 상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선 누가 의인이고 누가 죄인인지 우리는 구별을 할 수가 없고, 또
그렇게 구별하여 판단을 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을 살펴볼 때, 우리는 모두 죄 가운데 살고 있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다만 그 정도에 있어서 조금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죄를 전혀 짓지 않고 살아가는 의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흔히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에서 자신들의 거룩한 모양으로 자신들의 얼룩진 모습을 감추려고 하는 경향이 많이 있습니다. 종교 의식적인 거룩한
모습을 내세워 자신을 의인의 부류에 두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들의 정직한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죄인임을 알아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들의 모든 죄를 씻음 받았고,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확신 속에 살아갈지라도, 우리의 삶은 여전히 우리가 짓고 있는 죄로 말미암아 얼룩진 모습임을 하나님 앞에서 솔직히 고백하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거룩한 척, 깨끗한 척 할지라도, 나는 하나님 앞에서 별난 사람이 아닌 평범한 얼룩진 삶을 가진
부족한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가 끝까지 아닌 척하는 삶을 산다면, 그것은 자신과 하나님과 사람을 속이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고백 속에서 우리는 모두가 흰색도 검정 색도 아닌 얼룩진 사람임을 깨달아야 하며, 이런 깨달음 속에서 성화의 삶이 가능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화란 이미 깨끗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죄로 말미암아 계속 얼룩지고 있는 우리의 삶과 영혼의 얼룩을 지워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성화는 단시일 내에 완성되어지는 일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동안에서 계속되어져야 할 일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이어 성화의 이유, 방편, 결과 등에 대하여 살펴봄으로써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본론』
Ⅰ.첫째, 성화와 다른 단계들과의 관계가 무엇입니까?
1.첫째로, 성화와 중생은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중생이 자기 죄에서 사유함을 받은 것이라면, 성화는 아담에게서부터 시작된 원죄의 성질을 없이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중생이 죄의 지배에서 해방되는 것이라면, 성화는 죄의 존재를 없애 나가는 것인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중생은 범죄로부터 구원되는
것이고, 성화는 죄의 존재에서 구원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생이 죄의 열매를 따버리는 것이라면, 성화는 죄의
뿌리를 뽑아 버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중생을 통해 죄가 더 이상 자라지 못하도록 억제되고 정지된다면, 성화를 통해 죄가 박멸되고
근절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중생은 옛 사람, 즉 죄의 성질을 속박시키는 것이고, 성화는 옛 사람을 추방하고 소유를 몰수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중생이 물세례의 경험이라면, 성화는 불 세례의 체험인 것입니다. 이 외에도 중생이 미래에 대한 공포와
죄의 형벌에서 구원을 얻는 것이라면, 성화는 현재의 번민과 죄의 세력에서 자유 함을 얻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생이 새 생명을 받게 하는 성령의 창조적 사역이라면, 성화는 그 생명이 점점 자라나게 하여 우리 속에서 풍성해지게 하는 성령의 성장적 사역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생 함으로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수가 우리의 심령에서 솟아나고, 성화를 통해 주위의 사람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생수가
강같이 흐르는 것입니다. 중생 함으로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생기고, 성화를 통해 천국이 항상 마음속에 있는 상태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생이 소극적인 은혜라면, 성화는 적극적인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생이 성화의 시작이라면, 성화는 중생의
완성인 것입니다. 그래서 스트롱 교수는 ‘중생과 성화는 출생과 성장’의 관계로 설명하였으며, 하지 교수는 ‘성화는 중생에서 심겨진 새 생명의
원리를 정화하고 조정하는 가운데 영혼의 모든 기능들을 점진적으로 향상시키는 사역’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중생은 새 생명의 발생으로서 단번에 이루어지고 반복되지 않는 성령의 사역인 반면에 성화는 중생에서 시작하여 일평생 계속되는 성령의 사역인
것입니다. 또한 중생은 즉각 완성되는 사역인 반면에 성화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완성되지 않고 계속되어지는 사역이며, 중생은 잠재의식에서
이루어지지만 성화는 반복적 회심과 성령 역사에 대한 인간의 계속적인 분투 노력이라는 협조로 이루어지는 의식적인 변화인
것입니다.
2.둘째로, 성화와 칭의는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칭의는 우리를 법적 지위의 면에서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인정받게 하는 법정적 선언 행위로서 우리의 법적 신분을 변화시켜 주지만, 성화는 그 법적 지위에 상응하는 내부 심령 상태를 만들기 위한
성령의 사역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칭의가 우리 밖에서 일어나는 변화라면, 성화는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심령 상태의 변화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화 시키시는 이유는 칭의 된 우리를 그 법적 지위에 합당한 사람으로 실질적인 면에서 만들
필요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실 때, 법적 지위에서만 의롭게 하시고 실질적으로는 죄의 오염이 있는 상태로는
들여보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실질적인 면에서도 완전 성화 시켜 천국으로 들여보내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칭의를 형식이라고 한다면, 성화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칭의는 죄에 대한 책임을 제거하는 반면에 성화는 죄로 인한 오염을 제거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닮아 자라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또한 칭의는 단번에 일어나지만, 성화는 생애에 걸쳐서 계속되는 과정인
것입니다.
3.셋째로, 성화와 회심은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신앙과 회개는 성화의 기구적(器具的) 원인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성화는 계속되는 신앙생활과 회개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15:9에서는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고 하였으며, 요일1:9에서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Ⅱ.둘째, 성화의 방편이 무엇입니까?
1.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령께서 성화를 이루어 가는 가장 중요한 방편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룩한 생활의 객관적 표준을
제시하는데, 영적 활동의 동기와 목적을 제시하며,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밝혀 행동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성령은 바로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방편으로 삼아 우리 속에서 성화가 이루어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17:17에서는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죄인 된 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참 모습을 들여다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울에 비교하기도 하였습니다.(약1:23-24) 말씀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며, 그 말씀을 행하여 실천할 때 성령께서 우리 속에 변화가 일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교를 듣고 은혜 받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설교를 듣고 은혜 받는 것만을 만족하는 데서는 성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행17:11-12에 보면, 베뢰아
사람들은 설교를 들을 때 간절한 마음을 들었으며, 설교를 들은 후에는 확증을 가지기 위해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는데, 그 중에는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들도 적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진리에
대한 확증을 가지고, 확증한 것을 행하여 실천할 때 그 속에서 성화가 이루어져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악한 삶에서 깨끗하게 해 줌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엡5:26에서는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매일 성경을 읽고, 그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은 순간적으로 잘못을
하더라도 문제가 오래 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읽을 때 자신의 죄를 발견하게 되고, 영적이 각성이 일어나 회개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영적 각성과 회개를 통해 그 영혼이 점점 깨끗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의 원리가 되기 때문에 그
말씀을 읽을 때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를 알게 되고, 그 말씀대로 행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점점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시켜 줍니다. 예수님을 닮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가 되어지면 되어질수록 더욱 예수님을 닮아가게 되고, 변화되어진 것이 겉으로도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깨끗한
말을 하고, 깨끗한 생각을 하고, 깨끗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어지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화인
것입니다.
2.둘째로, 성례입니다.
어거스틴은 성례를 가리켜 ‘신성한 것의 보이는 표’ 혹은 ‘보이지 않는
은혜의 형태’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성례는 우리의 약한 믿음을 받쳐 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그의 선하신 뜻의 약속을 우리의 양심에
인치는 외형적인 표식이고, 우리편에서는 그 표식에 의해서 주와 주의 천사들과 사람들 앞에서 주께 대한 우리의 충성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례는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외형적인 표식으로 확인하는 증거이며,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충성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성례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 문자적으로 표현된 진리들의 상징과 표식인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성례를 가리켜 ‘보이는
말씀’이라고도 부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례는 우리가 죄 씻음 받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진리를 물세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대속의 은혜를 성찬식과 같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상징적인 의식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점에서 ‘보이는 말씀’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말씀을 성화의 가장 중요한 방편으로 삼고 있는 우리와 달리 성례를 성화의 가장
중요한 방편으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례를 하나님의 말씀에 종속적인 것으로 보며, 그 말씀의 진리를 생동적으로 표현하는 실천적 말씀으로 보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이런 성례를 성화의 방편으로 사용하시지만, 성례는 하나님의 말씀에 종속적이기 때문에 말씀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성례는 언제나 말씀과 동반하고 있습니다.
3.셋째로, 섭리적 지도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그것이
순경(順境)이든 역경(逆境)이든지를 막론하고 유력한 성화의 방편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말씀을 통한 성령의 역사와 우리의 자연적
심성의 변천 과정을 통하여 깊은 종교적 진리에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적 지도를 깨닫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계시, 즉 말씀의
빛이 있어야 합니다.(시119:71, 롬2:4, 히12:10)
프랑스의 신비주의 작가인 기용(Guyon) 부인은 17세기에
프랑스는 물론 전 구라파에 명성을 드날리며, 종교계에 영적인 감화를 끼친 여인입니다. 그녀는 1648년의 4월 14일에 파리에서 남방으로
50마일 정도 떨어진 몬다기라는 곳에서 출생하였는데, 대대손손이 귀족인 가문에서 출생한 그녀는 전통적인 종교의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용모가 놀랍도록 아름다웠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기에 족했는데, 1662년에 그의 가족들은 모두 파리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루이 14세의 치하에 있던 프랑스의 수도 파리는 유행과 환락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녀가 파리의 사교계에
등장하자, 그 인기는 대단하여 수많은 청년과 한량들이 그녀의 주위에 몰려들었습니다. 그 결과 그녀는 신앙에서 멀어져 사치스러움과 환락에 빠지게
되었고, 16세의 나이에 돈 많기로 이름난 귀족 기용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남편은 그녀보다 22세나 많았을 뿐 아니라 신앙에 대해서도 전혀
무관심했으며, 돈과 육욕만을 탐하는 저속한 인물이었습니다. 또한 시어머니는 교육도 취미도 없이 굳고 각박하며, 심술궂은 노파였기 때문에 그녀의
결혼생활은 한마디로 비극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땅에서 구하였던 모든 희망이 동강난 그녀는 그 동안 잊고 있었던 주님을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모든 환락을 끊고, 유혹을 물리쳐 가며, 그 신앙이 더욱 깊어지게 되자, 당연히 핍박이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친구는 배반을 하고, 친척들은 마치 미친 사람처럼 취급하였으며, 시어머니와 남편의 학대는 더욱 극심하여졌습니다. 또한 주위에
넘실대는 사치와 음란의 물결이 왕년에 사교계의 여왕으로 이제 갓 20세가 넘은 그녀의 마음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유혹하여, 그녀가 지키고 있는
연약한 신앙의 보루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그녀에게 성화를 재촉하여 이루게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났습니다. 하루는 그녀가 센 강을 건너 노틀담 사원을 향해 가다가 어떤 거룩한 성도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그녀에게
“하나님은 사람이 사죄함을 받은 것만으로 만족하게 여기시지 않으십니다. 거기에다가 성결함을 얻은 마음을 요구하시지요”라고 경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한 마디의 말이 그녀의 마음속을 찔러 회개를 재촉하게 하였습니다. 후일에 그녀는 그 때의 느낌에 대하여 “그 날 그 때부터 나는 나의
전부를 하나님께 바치고, 조금이라도 세상이 내 마음 가운데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로 결심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결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온전한 성결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천래의 미모 때문이었습니다. 그녀의 미모는
너무나 빼어나서 모든 사람에게서 찬탄의 대상이 되었고, 그 찬탄과 칭찬이 언제나 그녀의 마음을 뒤흔들어 성결을 방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녀가 마마에 걸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하루아침에 절색의 미모에서 보기 흉한
곰보의 얼굴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병에서 회복된 그녀는 거울을 보고 자신의 흉측한 모습에 놀라기는 하였으나, 곧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로 말미암아 그녀가 세상과 육체에 대한 미련에서 벗어나 하나님만을 향하여 굳게 설 수 있는 자유의 기쁨을 얻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일은 그녀의 나이 23세 되던 해의 가을 10월 10일에 일어났는데, 그녀는 당시의 심정을 “이 외부적인
아름다움의 박탈은 내부의 기쁨과 평정으로 바뀌어져 내 영혼은 말할 수 없는 만족의 상태에 잠기게 되었다. 나는 지금 내 번민의 대상이었던 미모의
상실로 말미암아 얻은 내심의 자유로 무한한 희열에 잠기고 있다. 그것은 가득하고 충만한 희열이다. 나의 처지로서 생각한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왕자의 지위로도 바꿀 수 없으리만큼 내 영혼은 커다란 만족으로 하나님과 굳게 결합하고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녀를
성화를 이끄시기 위해 섭리적 지도를 하신 것입니다.
4.넷째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우리를 모든 선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게 합니다. 기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하나님과의 대화와 교제는 모든 인자한 성정(性情), 경건, 사랑, 감사,
복종, 신앙, 기쁨, 헌신을 불러내어 전진하게 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까이 오실 때에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며, 그의 사랑을 널리 미치게 하시며, 모든 자각 위에 뛰어난 평강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교제는 성령의
거룩케 하시는 능력을 받게 하여, 우리 속에서 성화가 일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Ⅲ.셋째, 성화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1.첫째로, 하나님의 자녀 됨이 나타납니다.
본문 16절을 보면,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들도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도록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대표적인 속성에 속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거룩하게 살아갈 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화 되어지면 되어질수록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가 더 뚜렷하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2.둘째로, 심판 때에 의롭다고 판별 받게 됩니다.
성화는 우리 속에 남아 있는 죄의 뿌리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중생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실질적인 모습을 갖추어 가는 것은 성화를 통해서인
것입니다. 우리는 성화 되어진 만큼 하나님을 닮은 자가 되어지게 되며, 그만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온전한 모습을 갖추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화 시켜 나가시는 것은 마지막 때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는 온전한 모습으로 서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엡1:4-5에서는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살전3:13에서는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으며, 살전5:23에서는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처럼 우리를 성화 시켜 마지막 때 그 앞에서 흠이 없게
하시려고 하시는 이유는 마지막 심판 때에 의롭다고 판별을 받아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우리는
칭의를 통해 이미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의롭게 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인인 것입니다. 이런 우리가
실제적으로 의인의 상태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성화는 우리의 상태를 실제적으로 의인의 상태로 만들어 가는 성령의 사역으로 우리 속에
실제적으로 의인의 상태를 갖추어 가게 하여 마지막 심판 때에 실제적으로 의인의 판결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결론』
성화의 최종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성화뿐만 아닙니다. 성화를 포함한
모든 구원의 놀라운 복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데 그 최종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성화의 또 하나의 목적은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여금
완전함에 이르게 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로 하여금 최종적으로 하나님 자신과 그 본체의 정확한 형상이신 그리스도를 완전하게
닮도록 하는 데 성화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웨슬레 신학에서는 성화를 보통은 죽을 때 완성되는 변화 과정이지만,
현세에서도 ‘완전한 성화’의 경험을 통해 완전해질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웨슬레 신학에서는 이것을 ‘두 번째 은혜’(the second
grace)라고 합니다. 첫 번째 은혜는 구원이고, 두 번째 은혜가 나타나면 어떤 심각한 체험을 통해서 우리들이 완전히 변해서 이 땅에서도 죄를
범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웨슬레 신학에서 이렇게 성화를 정의하는 것은 죄에 대한 정의를 다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즉, 웨슬레 신학에서는 악의로 고의적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만을 죄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웨슬레 신학을 따르는 사람들은 “나는 중생한
이후로 25년 동안 죄를 범한 적이 없다. 나는 성령께서 큰 역사로 나타났을 때에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두 번째 은혜를 받으며 완전히 성화
되었다”는 식의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칼빈주의 신학 노선을 따른 개혁주의에서는 이 세상에서는 완전한 성화가
불가능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성화가 계속되다가 영혼은 죽음을 통해서 완전 성화에 이르게 되고, 육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죽음에서의 부활을 통해 완전 성화에 이르게 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순간에,
이미 죽은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이루어지는 부활을 통해 순식간에 모두 신령한 모습으로 변화를 받게 됩니다. 이렇게 완전한 성화에
이르게 되는 것을 ‘영화’(榮華)라고 하는데, 영화란 육신의 죄성이 완전히 제거되고, 죄를 범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죄를 범할 수도 없는
완전히 성환 된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 속에서 성화를 이루어 가는 성령의 사역에 협력하여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완전한 성화를 향해
전진하다가, 마지막 때에 그 성화가 궁극적으로 완성되어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