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   ①(구원의 서정)

본 문 : 벧전1:13-17,이성렬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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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매당 심인곤 장로는 선천 신성학교 교사 시절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파면이 되자, 학교 앞에서 신기료 장수를 하며 제자들의 신을 기워 주는 가운데 무언의 교육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방 후 연세대 교수 시절에는 밀턴 강의로 이름이 높았고, 퇴직 후에는 충남 천안시 광덕면에서 은거하다가 1982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제자인 김찬국 목사와 김동길 교수가 중심이 되어 그의 저서인 『새 하늘과 새 땅』을 출판하였는데, 그 책에 보면 “신자의 인생관과 불신자의 인생관이 다르고, 자연은 동일하지만 신자의 자연관과 불신자의 자연관이 다르고, 사회는 동일하지만 신자의 사회관과 불신자의 사회관이 다르고, 출생은 동일하지만 신자의 출생관과 불신자의 출생관이 다르고, 결혼은 동일하지만 신자의 결혼관과 불신자의 결혼관이 다르고, 사망은 동일하지만 신자의 사망관과 불신자의 사망관이 다르다. 그런고로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신자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불신자와 무언가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와 불신자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점이 있지만, 그 중에서 하나가 ‘거룩한 삶’입니다. 본문 16절을 보면,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레11:44을 인용한 것인데,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 된 성도들 역시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 가는 것’을 가리켜 ‘성화’라고 하는데, 성화는 성도의 특징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증거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 가는 성화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신 그대로 우리를 의롭게 빚어 가시는데, 이것이 곧 성화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칭의 된 우리를 거룩하게 변화시켜 가는 것이 성화인 것인데, 이 시간에는 성화의 개념을 비롯하여 내용과 특징 등에 대하여 살펴봄으로써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본론』

Ⅰ.첫째, 성화의 성경적 개념과 정의가 무엇입니까?

1.첫째로, 성화의 어원적 의미가 무엇입니까?

구약성경에서 ‘거룩하다’는 뜻으로 ‘카다쉬’(שׁꕈꙌ)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는데, ‘자르다, 분리하다, 구별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에서는 ‘하기아조’(aJgiavzw)라는 말과 ‘하기오스’(a{gio")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기아조’라는 말은 ‘분리’와 ‘성별’을 의미하는데,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첫째는, 의식적으로나(히9:13) 도덕적 의미에서(고전6:11, 히13:12) 정결케 하는 것을 의미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둘째는, 거룩하게 사용되거나 바쳐지기 위하여 일반적인 것들로부터 구별짓는 것을 의미할 때 사용되었습니다.(마6:9, 요10:36)


그리고 ‘하기오스’라는 말도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첫째는, 의식적인 면에서나 도덕적인 면에서 순결하거나 깨끗한 것을 뜻하는 경우와(엡1:4) 성도와 같이 거룩한 무리를 의미하는 경우(롬12:7, 8:27)에 사용되었습니다. 둘째는, 봉헌된 것을 뜻하는 경우에 사용되었습니다.(마4:5, 행6:13, 계4:8) 따라서 지금까지 살펴본 용어들의 의미를 종합해 볼 때 의식적 혹은 도덕적인 성결을 위해서나 하나님께 헌신하기 위한 것과 같은 거룩한 목적을 위해 세속적인 것에서 분리되어지는 것이 거룩임을 알 수 있습니다.


2.둘째로, 성화의 성경적 개념이 무엇입니까?

‘거룩’이란 원래 하나님의 본질적 속성을 가리키는 것인데, 여기에는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첫째는, 피조물과 구별되는 하나님의 존재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앞에서 ‘거룩’의 본래의 뜻이 ‘자르다, 분리하다, 구별하다’라고 이미 말씀을 드렸는데, 이것은 모든 피조물로부터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피조물과 절대적으로 구별되어 하늘의 위엄을 가지고서 피조물들로부터 멀리 초월하여 계시기 때문에 가까이 접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존재를 가리키는 단어인 것입니다. 둘째는, 죄나 불결로부터 절대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하나님의 속성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이처럼 거룩은 원래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으나, 점차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가지는 사람이나 물건에도 적용되어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루살렘 성, 성전, 안식일을 비롯한 절기들은 모두 거룩한 것으로 칭하고 있으며, 선지자, 제사장, 레위인들은 하나님을 위해 특별히 봉사하기 위하여 구별된 인물들로서 거룩하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 거룩하다고 칭하여지고 있는 물건이나 건물 혹은 사람들이 그 자체로 죄나 혹은 불결함이 없는 성결을 소유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을 위해 봉헌되어졌기 때문에 거룩하다고 표현한 것인데, 이것은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완성되어질 거룩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상에 있는 선지자나 제사장, 혹은 성도들을 가리켜 거룩하다고 하는 것은 이들이 실제로 거룩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들이 부름 받은 목적이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택함 받은 자들은 성결케 하는 영인 성령으로 중생하여 신앙을 갖게 되고,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음으로 죄책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원리상 성도가 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주하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죄의 오염으로부터 점차 거룩에로 나아가게 됩니다. 물론 세상에서는 거룩이 완성되지 않지만 영혼은 개인의 종말인 죽음을 통해서, 육체는 부활을 통해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성결, 곧 영화의 자리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빌1:6, 3:21) 따라서 선지자나 제사장, 혹은 성도들을 가리켜 거룩하다고 한 것은 장차 하나님께서 완성시켜 주실 성결을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3.셋째로, 성화의 정의가 무엇입니까?

성화에 대하여 훅스마 교수는 “성화란 중생 및 칭의 된 죄인을 죄의 오염과 지배로부터 영적, 윤리적 능력으로 이끌어 내시어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라 새롭게 하시며,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모든 축복 가운데로 나오게 하는 하나님의 역사이다”고 하였으며, 하지 교수는 “성화란 성령께서 진리라는 도구를 통하여 인간의 전 심령에 계속적인 감화를 줌으로써 중생에서 심겨진 거룩한 원리와 성향을 증진시켜 완전한 데까지 자라게 하는 일”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화란 중생한 인간의 심령 속에 있는 죄의 오염을 점진적으로 제거하여 완전 성결하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도록 인간 의식과 함께 역사 하시는 성령의 계속적인 활동이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Ⅱ.둘째, 성화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1.첫째로, 성령의 초자연적 역사입니다.

성도의 성화는 일반적인 교육을 통하여 교양을 쌓는 것과는 다릅니다. 성화는 윤리 도덕적인 개선이 아닙니다. 또한 성화는 본인의 굳는 결심이나 끈질긴 노력으로 되어지는 것도 아니며, 교육이나 철학이나 사상을 통해서 되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성화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이루어 가시는 초자연적 사역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는 성화를 이루어 가시는 성령의 사역에 대하여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데, 성화는 성령의 사역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2.둘째로, 성도들이 협력하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화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성령의 사역이지만, 중생과 같이 잠재의식 속에서 성령께서 단독으로 하는 사역이 아닙니다. 인간의 의식 속에서 인간과 협력하여 이루어 가는 사역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성화를 이루어 가는 성령의 사역에 협력한다는 것은 인간이 독립적으로 따로 일부분의 일을 하고, 성령께서 또 다른 부분의 일을 하시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통하여, 즉 그의 기도와 회개, 의지적인 노력 등을 통하여 성화를 이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악과 시험에 대하여 인간은 능동적으로 피해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롬12:9, 16-17, 고전6:9-10, 갈5:16, 22)과 거룩한 생활을 위하여 끊임없는 노력이 있어야 될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미6:8, 요15:2, 8, 16, 롬8:12-13, 12:1-2, 17, 갈6:7-8, 15) 등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3.셋째로, 죄의 오염을 제거하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칭의 받음으로 죄의 책임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고 할지라도 아직은 죄의 오염은 남아 있습니다. 다만 중생 이전과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과거에는 죄가 우리를 주관하였으나, 지금은 죄가 우리 안에서 왕 노릇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롬6:17-18에서는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비록 죄의 지배로부터는 해방되었지만, 죄로 인해 더럽혀진 오염은 남아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생 이전의 죄를 ‘지배 죄’라고 하고, 중생 이후에도 남아 있는 죄의 오염을 ‘잔존 죄’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잔존 죄’가 바로 중생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를 짓고자 하는 욕망을 갖게 하는 ‘죄악의 성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고자 하는 성령의 소욕과 우리 속에 남아 있는 잔존 죄에서 비롯된 육신의 소욕이 공존하면서 서로 투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5:17에서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성화란 성령의 소욕을 따라 우리 속에 남아 있는 잔존 죄를 대항하여 싸워 이김으로써 잔존 죄를 제거해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4.넷째로, 성화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형상입니다.

인간은 처음 지음을 받을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범죄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게 되었는데, 이성, 지성, 양심과 같은 하나님의 속성은 불완전한 형태로나마 남아 있지만 거룩, 의, 선, 참 지식과 같은 것들은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성화란 바로 이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가는 것인데, 성경은 이것을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가는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화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온전히 닮아 가는 것인데, 엡4:22-24에서는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였으며, 골3:9-10에서는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5.다섯째로, 점진적이며 계속적인 과정입니다.

성화는 한 번으로 끝나는 변화가 아닙니다. 성화는 성령의 계속적인 역사로 진행되는데, 이 세상에서 완성되지 않습니다. 완성을 향해 점진적으로 계속되어 나가다가 종말에 가서 완성이 되어지는 성령의 사역입니다.


Ⅲ.셋째, 성화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1.첫째로, 옛 사람의 죽음과 새 사람의 형성입니다.

성화는 우리에게 두 가지 변화를 가져오는데, 소극적으로는 우리의 죄악의 성향 즉, 죄의 오염을 점차 제거하는 것이며, 적극적으로는 거룩한 성향을 점차로 증진시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옛 사람’이란 중생 이후에도 우리 속에 남아 있는 ‘죄악의 성향’을 가리키는데, 성화란 중생 이후에도 우리 속에 남아 있는 이 죄악의 성향을 제거하는 작업인 것입니다. 따라서 ‘옛 사람의 죽음’이란 우리 속에 남아 있는 ‘죄악의 성향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롬6:6에서는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라고 한 것이나 갈5:24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한 것은 모두 옛 사람의 죽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옛 사람이 죽은 만큼 새 사람의 모습이 나타나게 되는데, 중생으로 말미암아 새 생명의 씨가 심어진 후에는 그 씨가 자라 점점 옛 사람의 성향을 몰아내며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옛 사람의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동시에 새 사람, 즉 그리스도의 형상을 가진 성화 된 모습이 점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롬6:11에서는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중생으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새 사람의 씨가 심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속에 심어진 이 씨로 말미암아 새 사람의 모습을 형성하는 역사가 시작되어지는데, 신인(神人) 협력에 의해 우리 속에 심어진 새 사람의 씨가 자라서 점진적으로 새 사람의 모습을 형성해 가는 과정이 곧 성화인 것입니다.


2.둘째로, 전인격에 영향을 미칩니다.

성화란 영혼과 육체는 물론이고, 지, 정, 의를 포함한 전인격에 영향을 미칩니다. 성화는 주로 우리의 내면 생활에서 진행되지만, 내면 생활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외면 생활의 변화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화는 심령과 육체의 양면에서 변화가 이루어지게 하는 성령의 사역인 것입니다.


3.셋째로, 현실적인 변화입니다.

성화는 칭의나 양자와 같이 법적 지위나 신분상의 변화가 아닙니다. 성화는 우리 안에 현실적으로 일으켜지는 변화입니다. 중생에서 시작된 생명의 역사는 계속하여 심령 내부에서 역사 하여 죄와 그 죄로 말미암는 불안, 공포, 근심, 절망 등을 몰아내고, 대신 성결과 그로 말미암는 기쁨, 소망, 평강을 증진시켜 나갑니다. 그러므로 성화는 우리의 의식 속에서 현실적으로 체험되는 변화인 것입니다.


4.넷째로, 성장성이 있습니다.

중생이 새 생명의 씨를 심는 일이라고 한다면, 성화는 그 씨가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성장은 중생에서 시작하여 일평생 계속되어지는데, 때로는 그 성장이 움츠려들 때도 있지만 결코 중생을 통해 심어진 새 생명의 씨가 말라죽는 일은 없습니다. 루터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머물러 있는(성장이 없는) 자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라고 하였는데, 중생한 자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반드시 성장이 있게 됩니다. 중간에 어떤 계기로 인해 잠시 성장이 멈출 수도 있지만, 중생한 자는 반드시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성장이란 성령의 인도와 도우심으로 본인의 결단과 노력에 따라 점차 죄악의 성향에서 떠나 성결케 되고, 선을 행할 능력을 얻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성장이 없다면, 중생하지 못하였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5.다섯째로, 완성은 죽음과 부활 때 이루어집니다.

성화는 이 세상에서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영혼의 성화는 개인의 종말인 죽음을 통해서 완성되게 되며, 육체의 성화는 부활을 통해 완성되게 됩니다. 그러나 성화를 위한 이 세상에서의 노력은 지속되어야 합니다.


Ⅳ.넷째, 성화의 구별이 무엇입니까?

1.첫째로, 과거 성화가 있습니다.

‘과거 성화’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과거 어느 시점에서 거룩하게 하신 것을 말하는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날 때 이미 이루어진 성화를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들에게 보장된 성화를 가리키는데, 우리가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날 때 우리를 의롭다고 하신 그 성화를 말합니다. 칭의에 의해 우리는 거룩하지 못하지만 거룩한 자로 인정을 받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한 자리에 갖다 놓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완전히 깨끗해지지는 않았지만 위치적으로 하나님 편에 놓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과거 성화’를 ‘위치적 성화’라고도 합니다.


이 과거 성화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자기 몸을 드려 영원한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으로써 이루어진 성화입니다. 그래서 히10:10에서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성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진 성화이며, 이 성화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로 영원히 분리되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과거 성화는 미래에 이루어질 완전 성화를 보장하는 성화인데, 히10:14에서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과거 성화는 우리가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하며(히10:19-20), 순종의 삶과 관련이 있습니다.(벧전1:2)


2.둘째로, 현재 성화가 있습니다.

‘현재 성화’란 우리를 죄로부터 점진적으로 분리하여 온전함에 이르도록 하는 하나님의 현재적 사역을 말합니다. 따라서 현재 성화는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서 점진적으로 이루어 가시는 성화이기 때문에 ‘점진적 성화’라고도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현재 성화의 결과로 육신의 정욕과 육적인 욕구를 통제하게 되는데(살전4:2-7), 자기 육정대로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또한 현재 성화는 우리를 하나님을 섬기기에 적절하게 만들어 주는데, 우리를 변화시켜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 적합하게 합니다.(딤후2:21) 뿐만 아니라, 현재 성화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친밀히 교제하게 해 줍니다.(요13:8, 14:23, 15:3-4) 즉, 성화 되어 갈수록 주님과 더욱 가까워지고, 주님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하게 되는 것입니다.


3.셋째로, 미래 성화가 있습니다.

‘미래의 성화’란 미래에 ‘궁극적으로 완성될 성화’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거룩한 사람으로 인정하셨습니다. 그리고 현실을 살아가면서 여러 방법으로 우리들은 그리스도를 점점 닮아 갑니다. 그러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궁극적으로 성화가 완성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미래 성화인 것입니다.(살전5:23) 그리고 우리는 이 미래 성화를 통해 그리스도를 온전히 닮게 되는 것입니다.


미래의 성화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하여 우리들에게 약속되어진 일이기 때문에(살전5:23-24) 우리는 미래에 이루어질 완전한 성화에 대한 기대로 이 땅에서 더욱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벌써 거룩하다고 인정받은 사람들이요, 장차 완전하게 거룩하게 될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 중간에서 더 완전해지고 싶어서 우리는 하나님께 성화를 간절히 구하고, 우리를 성화 시킬 수 있는 하나님이 주신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서 점차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결론』

인도의 유명한 지도자였던 간디에게 어느 날 영국인 기자들이 “인도에서 시급한 과제는 무엇입니까?”라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간디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금 인도에 주어진 시급한 과제는 경제적 부강이나 사회복지의 건설이 아니라, 국민들의 올바른 인격 건설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성화란 우리의 인격을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세워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온전하심과 같이 우리의 영과 육을 온전하게 세워 가는 것이 성화인 것입니다. 영어의 ‘거룩함’(holiness)을 뜻하는 단어와 ‘온전함’(wholeness)을 뜻하는 단어는 그 어근이 같은데, 거룩하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처럼 전인격이 온전하게 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어의 ‘세속적’(secular)이라는 단어와 ‘종교적’(sacred)이란 단어도 그 어근이 같은데, 진정한 거룩함이란 의식적이거나 형식적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 같은 사람들은 종교적인 면에서 나무랄 데가 없을 정도로 거룩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세속적인 사람으로 취급하며, 엄하게 책망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종교 의식적인 면에서는 거룩한 모습을 취하고 있었지만, 그들 내면 속에는 하나님을 닮은 거룩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거룩이란 의식적이거나 외형적인 면에서의 거룩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내면까지도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 가는 거룩을 말합니다. 그 외면적인 것과 내면적인 것이 그리스도의 온전하심을 닮아 가는 것이 바로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거룩함을 이루어 가는 것이 곧 구원받은 성도들이 추구해 나가야 할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하며, 성화의 복이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의 복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성화의 복은 성령을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데,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구원받은 성도들 속에서 실질적으로 성화를 매일매일 이루어 가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속에서 성화를 이루어 가시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성화의 삶을 살아가다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영광스러운 부활을 통해 성화의 궁극적인 완성이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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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성화(2)

본 문 : 벧전1: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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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주일학교 예배 시간에 목사님이 어린이들을 향하여 “만약 착한 사람이 모두 흰색이고 나쁜 사람들은 모두 검정 색이라면, 여러분은 어떤 색깔일까요?”라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한 어린이가 “목사님! 저는 얼룩진 색깔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어린이의 대답 속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의인이 아니면 죄인이라는 이분법적인 분류를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이런 분류는 단순한 상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선 누가 의인이고 누가 죄인인지 우리는 구별을 할 수가 없고, 또 그렇게 구별하여 판단을 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을 살펴볼 때, 우리는 모두 죄 가운데 살고 있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다만 그 정도에 있어서 조금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죄를 전혀 짓지 않고 살아가는 의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흔히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에서 자신들의 거룩한 모양으로 자신들의 얼룩진 모습을 감추려고 하는 경향이 많이 있습니다. 종교 의식적인 거룩한 모습을 내세워 자신을 의인의 부류에 두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들의 정직한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죄인임을 알아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들의 모든 죄를 씻음 받았고,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확신 속에 살아갈지라도, 우리의 삶은 여전히 우리가 짓고 있는 죄로 말미암아 얼룩진 모습임을 하나님 앞에서 솔직히 고백하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거룩한 척, 깨끗한 척 할지라도, 나는 하나님 앞에서 별난 사람이 아닌 평범한 얼룩진 삶을 가진 부족한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가 끝까지 아닌 척하는 삶을 산다면, 그것은 자신과 하나님과 사람을 속이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고백 속에서 우리는 모두가 흰색도 검정 색도 아닌 얼룩진 사람임을 깨달아야 하며, 이런 깨달음 속에서 성화의 삶이 가능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화란 이미 깨끗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죄로 말미암아 계속 얼룩지고 있는 우리의 삶과 영혼의 얼룩을 지워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성화는 단시일 내에 완성되어지는 일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동안에서 계속되어져야 할 일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이어 성화의 이유, 방편, 결과 등에 대하여 살펴봄으로써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본론』

Ⅰ.첫째, 성화와 다른 단계들과의 관계가 무엇입니까?

1.첫째로, 성화와 중생은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중생이 자기 죄에서 사유함을 받은 것이라면, 성화는 아담에게서부터 시작된 원죄의 성질을 없이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중생이 죄의 지배에서 해방되는 것이라면, 성화는 죄의 존재를 없애 나가는 것인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중생은 범죄로부터 구원되는 것이고, 성화는 죄의 존재에서 구원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생이 죄의 열매를 따버리는 것이라면, 성화는 죄의 뿌리를 뽑아 버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중생을 통해 죄가 더 이상 자라지 못하도록 억제되고 정지된다면, 성화를 통해 죄가 박멸되고 근절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중생은 옛 사람, 즉 죄의 성질을 속박시키는 것이고, 성화는 옛 사람을 추방하고 소유를 몰수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중생이 물세례의 경험이라면, 성화는 불 세례의 체험인 것입니다. 이 외에도 중생이 미래에 대한 공포와 죄의 형벌에서 구원을 얻는 것이라면, 성화는 현재의 번민과 죄의 세력에서 자유 함을 얻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생이 새 생명을 받게 하는 성령의 창조적 사역이라면, 성화는 그 생명이 점점 자라나게 하여 우리 속에서 풍성해지게 하는 성령의 성장적 사역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생 함으로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수가 우리의 심령에서 솟아나고, 성화를 통해 주위의 사람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생수가 강같이 흐르는 것입니다. 중생 함으로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생기고, 성화를 통해 천국이 항상 마음속에 있는 상태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생이 소극적인 은혜라면, 성화는 적극적인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생이 성화의 시작이라면, 성화는 중생의 완성인 것입니다. 그래서 스트롱 교수는 ‘중생과 성화는 출생과 성장’의 관계로 설명하였으며, 하지 교수는 ‘성화는 중생에서 심겨진 새 생명의 원리를 정화하고 조정하는 가운데 영혼의 모든 기능들을 점진적으로 향상시키는 사역’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중생은 새 생명의 발생으로서 단번에 이루어지고 반복되지 않는 성령의 사역인 반면에 성화는 중생에서 시작하여 일평생 계속되는 성령의 사역인 것입니다. 또한 중생은 즉각 완성되는 사역인 반면에 성화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완성되지 않고 계속되어지는 사역이며, 중생은 잠재의식에서 이루어지지만 성화는 반복적 회심과 성령 역사에 대한 인간의 계속적인 분투 노력이라는 협조로 이루어지는 의식적인 변화인 것입니다.


2.둘째로, 성화와 칭의는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칭의는 우리를 법적 지위의 면에서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인정받게 하는 법정적 선언 행위로서 우리의 법적 신분을 변화시켜 주지만, 성화는 그 법적 지위에 상응하는 내부 심령 상태를 만들기 위한 성령의 사역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칭의가 우리 밖에서 일어나는 변화라면, 성화는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심령 상태의 변화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화 시키시는 이유는 칭의 된 우리를 그 법적 지위에 합당한 사람으로 실질적인 면에서 만들 필요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실 때, 법적 지위에서만 의롭게 하시고 실질적으로는 죄의 오염이 있는 상태로는 들여보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실질적인 면에서도 완전 성화 시켜 천국으로 들여보내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칭의를 형식이라고 한다면, 성화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칭의는 죄에 대한 책임을 제거하는 반면에 성화는 죄로 인한 오염을 제거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닮아 자라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또한 칭의는 단번에 일어나지만, 성화는 생애에 걸쳐서 계속되는 과정인 것입니다.


3.셋째로, 성화와 회심은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신앙과 회개는 성화의 기구적(器具的) 원인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성화는 계속되는 신앙생활과 회개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15:9에서는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고 하였으며, 요일1:9에서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Ⅱ.둘째, 성화의 방편이 무엇입니까?

1.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령께서 성화를 이루어 가는 가장 중요한 방편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룩한 생활의 객관적 표준을 제시하는데, 영적 활동의 동기와 목적을 제시하며,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밝혀 행동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성령은 바로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방편으로 삼아 우리 속에서 성화가 이루어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17:17에서는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죄인 된 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참 모습을 들여다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울에 비교하기도 하였습니다.(약1:23-24) 말씀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며, 그 말씀을 행하여 실천할 때 성령께서 우리 속에 변화가 일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교를 듣고 은혜 받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설교를 듣고 은혜 받는 것만을 만족하는 데서는 성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행17:11-12에 보면, 베뢰아 사람들은 설교를 들을 때 간절한 마음을 들었으며, 설교를 들은 후에는 확증을 가지기 위해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는데, 그 중에는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들도 적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진리에 대한 확증을 가지고, 확증한 것을 행하여 실천할 때 그 속에서 성화가 이루어져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악한 삶에서 깨끗하게 해 줌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엡5:26에서는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매일 성경을 읽고, 그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은 순간적으로 잘못을 하더라도 문제가 오래 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읽을 때 자신의 죄를 발견하게 되고, 영적이 각성이 일어나 회개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영적 각성과 회개를 통해 그 영혼이 점점 깨끗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의 원리가 되기 때문에 그 말씀을 읽을 때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를 알게 되고, 그 말씀대로 행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점점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시켜 줍니다. 예수님을 닮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가 되어지면 되어질수록 더욱 예수님을 닮아가게 되고, 변화되어진 것이 겉으로도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깨끗한 말을 하고, 깨끗한 생각을 하고, 깨끗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어지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화인 것입니다.


2.둘째로, 성례입니다.

어거스틴은 성례를 가리켜 ‘신성한 것의 보이는 표’ 혹은 ‘보이지 않는 은혜의 형태’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성례는 우리의 약한 믿음을 받쳐 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그의 선하신 뜻의 약속을 우리의 양심에 인치는 외형적인 표식이고, 우리편에서는 그 표식에 의해서 주와 주의 천사들과 사람들 앞에서 주께 대한 우리의 충성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례는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외형적인 표식으로 확인하는 증거이며,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충성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성례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 문자적으로 표현된 진리들의 상징과 표식인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성례를 가리켜 ‘보이는 말씀’이라고도 부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례는 우리가 죄 씻음 받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진리를 물세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대속의 은혜를 성찬식과 같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상징적인 의식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점에서 ‘보이는 말씀’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말씀을 성화의 가장 중요한 방편으로 삼고 있는 우리와 달리 성례를 성화의 가장 중요한 방편으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례를 하나님의 말씀에 종속적인 것으로 보며, 그 말씀의 진리를 생동적으로 표현하는 실천적 말씀으로 보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이런 성례를 성화의 방편으로 사용하시지만, 성례는 하나님의 말씀에 종속적이기 때문에 말씀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성례는 언제나 말씀과 동반하고 있습니다.


3.셋째로, 섭리적 지도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그것이 순경(順境)이든 역경(逆境)이든지를 막론하고 유력한 성화의 방편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말씀을 통한 성령의 역사와 우리의 자연적 심성의 변천 과정을 통하여 깊은 종교적 진리에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적 지도를 깨닫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계시, 즉 말씀의 빛이 있어야 합니다.(시119:71, 롬2:4, 히12:10)


프랑스의 신비주의 작가인 기용(Guyon) 부인은 17세기에 프랑스는 물론 전 구라파에 명성을 드날리며, 종교계에 영적인 감화를 끼친 여인입니다. 그녀는 1648년의 4월 14일에 파리에서 남방으로 50마일 정도 떨어진 몬다기라는 곳에서 출생하였는데, 대대손손이 귀족인 가문에서 출생한 그녀는 전통적인 종교의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용모가 놀랍도록 아름다웠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기에 족했는데, 1662년에 그의 가족들은 모두 파리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루이 14세의 치하에 있던 프랑스의 수도 파리는 유행과 환락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녀가 파리의 사교계에 등장하자, 그 인기는 대단하여 수많은 청년과 한량들이 그녀의 주위에 몰려들었습니다. 그 결과 그녀는 신앙에서 멀어져 사치스러움과 환락에 빠지게 되었고, 16세의 나이에 돈 많기로 이름난 귀족 기용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남편은 그녀보다 22세나 많았을 뿐 아니라 신앙에 대해서도 전혀 무관심했으며, 돈과 육욕만을 탐하는 저속한 인물이었습니다. 또한 시어머니는 교육도 취미도 없이 굳고 각박하며, 심술궂은 노파였기 때문에 그녀의 결혼생활은 한마디로 비극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땅에서 구하였던 모든 희망이 동강난 그녀는 그 동안 잊고 있었던 주님을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모든 환락을 끊고, 유혹을 물리쳐 가며, 그 신앙이 더욱 깊어지게 되자, 당연히 핍박이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친구는 배반을 하고, 친척들은 마치 미친 사람처럼 취급하였으며, 시어머니와 남편의 학대는 더욱 극심하여졌습니다. 또한 주위에 넘실대는 사치와 음란의 물결이 왕년에 사교계의 여왕으로 이제 갓 20세가 넘은 그녀의 마음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유혹하여, 그녀가 지키고 있는 연약한 신앙의 보루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그녀에게 성화를 재촉하여 이루게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났습니다. 하루는 그녀가 센 강을 건너 노틀담 사원을 향해 가다가 어떤 거룩한 성도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그녀에게 “하나님은 사람이 사죄함을 받은 것만으로 만족하게 여기시지 않으십니다. 거기에다가 성결함을 얻은 마음을 요구하시지요”라고 경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한 마디의 말이 그녀의 마음속을 찔러 회개를 재촉하게 하였습니다. 후일에 그녀는 그 때의 느낌에 대하여 “그 날 그 때부터 나는 나의 전부를 하나님께 바치고, 조금이라도 세상이 내 마음 가운데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로 결심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결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온전한 성결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천래의 미모 때문이었습니다. 그녀의 미모는 너무나 빼어나서 모든 사람에게서 찬탄의 대상이 되었고, 그 찬탄과 칭찬이 언제나 그녀의 마음을 뒤흔들어 성결을 방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녀가 마마에 걸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하루아침에 절색의 미모에서 보기 흉한 곰보의 얼굴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병에서 회복된 그녀는 거울을 보고 자신의 흉측한 모습에 놀라기는 하였으나, 곧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로 말미암아 그녀가 세상과 육체에 대한 미련에서 벗어나 하나님만을 향하여 굳게 설 수 있는 자유의 기쁨을 얻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일은 그녀의 나이 23세 되던 해의 가을 10월 10일에 일어났는데, 그녀는 당시의 심정을 “이 외부적인 아름다움의 박탈은 내부의 기쁨과 평정으로 바뀌어져 내 영혼은 말할 수 없는 만족의 상태에 잠기게 되었다. 나는 지금 내 번민의 대상이었던 미모의 상실로 말미암아 얻은 내심의 자유로 무한한 희열에 잠기고 있다. 그것은 가득하고 충만한 희열이다. 나의 처지로서 생각한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왕자의 지위로도 바꿀 수 없으리만큼 내 영혼은 커다란 만족으로 하나님과 굳게 결합하고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녀를 성화를 이끄시기 위해 섭리적 지도를 하신 것입니다.


4.넷째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우리를 모든 선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게 합니다. 기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하나님과의 대화와 교제는 모든 인자한 성정(性情), 경건, 사랑, 감사, 복종, 신앙, 기쁨, 헌신을 불러내어 전진하게 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까이 오실 때에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며, 그의 사랑을 널리 미치게 하시며, 모든 자각 위에 뛰어난 평강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교제는 성령의 거룩케 하시는 능력을 받게 하여, 우리 속에서 성화가 일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Ⅲ.셋째, 성화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1.첫째로, 하나님의 자녀 됨이 나타납니다.

본문 16절을 보면,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들도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도록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대표적인 속성에 속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거룩하게 살아갈 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화 되어지면 되어질수록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가 더 뚜렷하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2.둘째로, 심판 때에 의롭다고 판별 받게 됩니다.

성화는 우리 속에 남아 있는 죄의 뿌리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중생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실질적인 모습을 갖추어 가는 것은 성화를 통해서인 것입니다. 우리는 성화 되어진 만큼 하나님을 닮은 자가 되어지게 되며, 그만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온전한 모습을 갖추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화 시켜 나가시는 것은 마지막 때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는 온전한 모습으로 서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엡1:4-5에서는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살전3:13에서는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으며, 살전5:23에서는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처럼 우리를 성화 시켜 마지막 때 그 앞에서 흠이 없게 하시려고 하시는 이유는 마지막 심판 때에 의롭다고 판별을 받아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우리는 칭의를 통해 이미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의롭게 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인인 것입니다. 이런 우리가 실제적으로 의인의 상태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성화는 우리의 상태를 실제적으로 의인의 상태로 만들어 가는 성령의 사역으로 우리 속에 실제적으로 의인의 상태를 갖추어 가게 하여 마지막 심판 때에 실제적으로 의인의 판결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결론』

성화의 최종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성화뿐만 아닙니다. 성화를 포함한 모든 구원의 놀라운 복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데 그 최종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성화의 또 하나의 목적은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여금 완전함에 이르게 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로 하여금 최종적으로 하나님 자신과 그 본체의 정확한 형상이신 그리스도를 완전하게 닮도록 하는 데 성화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웨슬레 신학에서는 성화를 보통은 죽을 때 완성되는 변화 과정이지만, 현세에서도 ‘완전한 성화’의 경험을 통해 완전해질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웨슬레 신학에서는 이것을 ‘두 번째 은혜’(the second grace)라고 합니다. 첫 번째 은혜는 구원이고, 두 번째 은혜가 나타나면 어떤 심각한 체험을 통해서 우리들이 완전히 변해서 이 땅에서도 죄를 범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웨슬레 신학에서 이렇게 성화를 정의하는 것은 죄에 대한 정의를 다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즉, 웨슬레 신학에서는 악의로 고의적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만을 죄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웨슬레 신학을 따르는 사람들은 “나는 중생한 이후로 25년 동안 죄를 범한 적이 없다. 나는 성령께서 큰 역사로 나타났을 때에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두 번째 은혜를 받으며 완전히 성화 되었다”는 식의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칼빈주의 신학 노선을 따른 개혁주의에서는 이 세상에서는 완전한 성화가 불가능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성화가 계속되다가 영혼은 죽음을 통해서 완전 성화에 이르게 되고, 육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죽음에서의 부활을 통해 완전 성화에 이르게 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순간에, 이미 죽은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이루어지는 부활을 통해 순식간에 모두 신령한 모습으로 변화를 받게 됩니다. 이렇게 완전한 성화에 이르게 되는 것을 ‘영화’(榮華)라고 하는데, 영화란 육신의 죄성이 완전히 제거되고, 죄를 범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죄를 범할 수도 없는 완전히 성환 된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 속에서 성화를 이루어 가는 성령의 사역에 협력하여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완전한 성화를 향해 전진하다가, 마지막 때에 그 성화가 궁극적으로 완성되어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