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 시편 119:97-104,이한배목사
I. 서 론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읍니다.
그것은 책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책 속에 있는 한 구절이나 혹은 한 문장이나 혹은 한 단어가 우리를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책을 읽을 때 그 책의 내용을 다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중에 한 구절이나 아니면 한 문장이나 한 단어가 우리의 운명을 바꿀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역사적인 중거는 많이 있읍니다.
① 어거스틴입니다.
마니교에 빠져 있던 성 어거스틴은 386년 8월에 영적인 대혼란 속에 빠져 있었읍니다.
그래서 그는 이탈리아의 밀란에 있는 한 정원에 있는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주먹으로 그의 이마를 치다가 두손을 모우고 무릎을 끓었읍니다.
그때에 그는 소년인지 소녀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한 어린이의 노래 소리를 들었읍니다.
그런데 그 노래의 후렴구가 계속하여 반복되었읍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읍니다.
그 노래는 tolle lege라는 말이였읍니다.
이것은 라틴어로 “집어서 읽으라”는 말입니다.
어거스틴은 이것을 성경을 읽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듣고 성경책을 집어 들고 그냥 딱 펴서 첫눈에 들어오는 곳을 읽었읍니다.
그것이 바로 (롬13:13-14)입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그에게는 이 두 절 외에 더이상의 말씀이 필요 없었읍니다.
이 두 절에 지금까지 꼬였던 그의 모든 인생의 매듭이 다 끌러졌읍니다.
어거스틴은 그때의 상황을 고백론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읍니다.
“나는 더이상 읽고 싶지 않았고, 읽을 필요도 없었다. 그 두 절을 읽었을 때 확신의 빛이 나의 마음에 밀물처럼 밀려들어왔고, 모든 의심의 어둠이 다 사라졌다”
이렇게 단 두 절의 성경말씀이 타락할대로 타락하고 도저히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던 어거스틴을 변화시켰읍니다.
어거스틴이 많은 성경을 읽고 변화된 것이 아니라, 단 두 절의 성경말씀에 180도 변화된 자가 되었읍니다.
탕자가 성자가 되었읍니다.
② 루터입니다.
루터은 (롬1:17)에 회심을 했읍니다.- -
신부가 된 루터는 구원의 확신과 평안을 얻어보려고 온갖 고행을 다해보았읍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구원의 확신과 평안이 없었읍니다.
그런데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의 말씀을 읽을 때 완전히 회심하였읍니다.
이 말씀 때문에 자신만 변화된 것이 아니라, 세계사를 변화시켰읍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이 세계사를 바꾼 것입니다.
③ 조나단 에드워드스입니다.
그는 (딤전1:17)의 말씀에 회심하였읍니다.
조나단 에드워드스는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이란 말씀에 회심을 했읍니다.
④ 죤 웨슬리입니다.
조오지아주 선교에서 실패하고 돌아온 죤 웨슬리는 절망과 좌절의 세월을 보내고 있었읍니다.
그런데 1738월 5월 24일 저녁 9시 15분쯤에 올더스케잇에 갔다가 어떤 사람이 로마서 서문을 읽고 설교하는 것을 듣다가 가슴이 뜨거워지는 체험을 했읍니다.
그는 그날 일기에 이렇게 썼읍니다.
“그날 저녁 나는 마지못해 올더스케잇 거리에 모인 집회에 나갔는데, 어떤 이가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고 있었읍니다. 저녁 9시 15분쯤에 그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일으키시는 변화’를 설명하고 있을 때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나는 구원을 위해 오직 그리스도를, 오직 그리스도 한 분만을 의지한다고 확신하였으며, 그가 나의 죄를 온전히 없애고 죄와 죽음의 법에서 구하여 주셨다는 확실한 증거를 받았읍니다.”
이렇게 죤 웨슬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다가 완전히 회심을 하였읍니다.
그래서 영국을 부정과 부패에서 구원하는 위대한 영적인 지도자가 되었읍니다.
이말씀이 영국을 피의 혁명에서 구원한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떤 성경 한 구절이나 아니면 어떤 한 단어입니다.
성경말씀 전체가 어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중의 한 말씀이 그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책이나 책을 많이 읽을 필요가 없을까요 ?
아닙니다. 성경이나 책은 많이 읽어야 합니다.
많은 책을 읽는 것은 나무를 쌓아두는 것과 같읍니다.
그리고 그 쌓아둔 나무에 불을 붙이는 것은 한 절이나 한 문장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많이 읽지 않았으면 불이 붙어도 잠간 타고 꺼지고 맙니다.
어거스틴이나 루터나 죤 웨슬리에게 붙은 불이 계속하여 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그동안 많은 책을 읽으며 많은 나무를 쌓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들 외에도 많은 사람에게 불이 붙었으나 그들에게는 평소에 쌓아둔 나무가 없어서 잠시 그 불이 붙었다가 꺼져 버린 자들도 많이 있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복된 2006년을 준비하기 위하여 실시하는 이 20일간의 제5회 벧엘기도회에 많은 책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특히 성경을 많이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경의 능력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II. 본 론
① 시편 119편은 176절로 성경에서 가장 긴 장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22개의 히브리어 알파벳를 머릿글자로 시작하여 하는 쓴 아크로스틱(acrostic) 시입니다.
각 글자를 가지고 각각 8절의 시를 썼읍니다.
그래서 176절이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모든 절의 첫 글자는 멤(מ - mem)이란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시작하고 있읍니다.
② 이 부분은 119편에 있는 22연들 중에 가장 통일성이 있는 연입니다.
아크로스틱의 시는 내용보다는 글자에 매이기 때문에 내용에는 통일성이 없을 때가 많이 있읍니다.
그런데 이부분은 내용에도 매우 통일성이 있읍니다.
③ 이 연의 주된 주제는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할 때 지혜를 얻게 되는데, 그 지혜가 최고의 지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함으로 얻는 지혜가 최고의 지혜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많은 책들이 있읍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장 큰 지혜를 주고, 우리를 변화시키는데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히4:12)고 말씀하셨읍니다.
④ 이 연의 특징은 이 연에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연에는 다 간구하는 것이 있읍니다.
그런데 이 연에는 간구하는 것이 없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연구하면 말씀에서 최고의 지혜를 얻게 되고, 그러면 간구가 필요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모든 것의 해답이 다 있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읽고 묵상하면 세상에 문제가 될 것이 없읍니다.
이번 제 5회 베델 기도회에 참석하면서 성경을 많이 읽어서 여러분의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시기를 바랍니다.
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시편기자의 자세와 그럴 때 그 말씀이 시편기자에게 주는 유익들이 나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것들이 나옵니다.
그래서 오늘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시편기자의 자세와 그때에 그 말씀이 가져다 주는 유익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I.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시편기자의 태도
1.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법을 매우 사랑했읍니다.(v. 97a)
이세상에 법을 사랑하는 자는 없읍니다.
법은 모든 사람들이 다 싫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우리를 구속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법을 사랑한다고 했읍니다.
그러면 어떻게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법을 매우 사랑한다고 했을까요 ?
그것은 하나님의 법이 무엇인가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법은 세상을 지키기 위하여,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고, 우리의 권리를 빼앗는 것입니다.
즉 세상의 법은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위한 것입니다.
법이 우리 인간을 위한다고 하나, 실상은 세상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법은 전적으로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우리를 구속하는 것 같으나 실상은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법을 매우 사랑하게 되었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였읍니다.(v. 97b)
그것도 종일 묵상하였읍니다.
종일 묵상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깊이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깊이는 한이 없기 때문에 종일 묵상을 하여도 다함이 없읍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가 없다면 시편기자는 그 말씀을 종일 묵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묵상을 하면 할수록 깊어지고, 높아지고, 길어지고, 넓어지고, 더욱더 귀하게 됩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종일 묵상하였던 것입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말씀의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생수와 귀한 보화들이 넘쳐나게 될줄 믿읍니다.
3.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했읍니다.(v. 98a)
시편기자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했읍니다.
하나님의 계명이 항상 함께 하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않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와 들을 때만 기억하고 곧 잊어버립니다.
그런데 시편기자는 그 말씀을 잊어버리지 않았읍니다.
말씀을 기억하고 마음 속에 간직을 했읍니다.
왜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계명과 항상 함께 했을까요 ?
하나님의 계명은 시편기자를 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하면 귀찮을 수 있읍니다.
그러나 그래도 그것이 나를 위한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이것을 깨달았읍니다.
그래서 조금은 귀찮을 수 있어도 계속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했읍니다.
그러므로 늘 하나님의 계명과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연말에 제5회 벧엘 기도회에 참석하면서 매일 성경 말씀을 한절씩 암송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루종일 그것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캔사스(Cansas)시에 살고 있는 한 남자가 폭발사고로 심한 상해를 입었다. 전도자 로버트 섬너(Robert L. Sumner)가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님의 말씀의 기적들”(The Wonders of the Word of God)이란 책에서 썼다. 그 상해자의 얼굴은 흉칙하게 망가졌다. 그는 두 팔과 시력을 잃었다. 그런데 그때가 그가 막 주님을 영접했을 때이다. 그의 가장 큰 절망 중의 하나는 더이상 성경을 읽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영국에 있는 한 부인이 입술로 점자 성경책을 읽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자기도 이제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희망에 그 점자책을 가져다 달라고 사람을 보냈다. 그런데 점자 성경책이 왔을 때 그는 다시한번 절망을 하게 되었다. 그의 입술 끝의 신경도 폭발사고 때 망가져서 점자를 느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입술로 점자책을 읽으려고 노력을 하던 그에게 혀가 점차책에 닿으면서 점자를 느끼게 되었다. 그때 그에게 나는 나의 혀로 성경을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이 섬광과 같이 찾아왔다. 로버트 섬너가 그의 책을 쓸 때 그는 이미 혀로 성경을 4번이나 완독을 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이렇게 절망적이고 비극적인 사람에게도 살길이 열렸고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충만하게 되었읍니다.
혀로도 성경을 네번씩이나 읽은 사람이 있는데 우리가 어찌 성경을 읽지 않을 수 있겠읍니까 ?
이 연말은 성경 읽는 것과 함께하는 연말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I. 하나니의 말씀이 가져다 주는 유익들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하면 어떻게 될까요 ?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시편기자와 같은 자세를 취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유익을 가져다 줄까요 ?
1. 원수 보다도 더 지혜롭게 합니다.(v. 98b)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하면 그 말씀이 우리로 지혜롭게 하는데, 원수보다 지혜롭게 합니다.
그래서 원수를 이기게 합니다.
왜냐하면 싸움에서는 언제나 지혜로운 자가 이기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왜 시편기자가 (v. 95)에서 “악인이 시편기자를 멸하려고 엿볼 때에도 하나님의 증거를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하면 원수 보다 더 지혜로와져서 원수가 아무리 우리를 멸하려고 해도 우리가 이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읍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귀의 모든 시험을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읍니다.
예수님의 지혜에 마귀는 물러가고 천사들이 수종을 들었읍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원수보다 지혜로울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든 시험을 다 말씀으로 물리치셨읍니다.
그러므로 원수를 대적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더 열심히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원수가다 물러가게 될줄 믿읍니다.
2. 세상의 모든 스승들 보다도 더 지혜롭게 되었읍니다.(v. 99)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니, 시편기자가 세상의 모든 스승들 보다도 더 지혜롭게 되었읍니다.
우리가 스승보다 더 지혜로워지면 그것보다 더한 것은 없읍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한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마10:24-25)고 말씀하셨읍니다.
제자는 스승만큼만 되면 잘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스승보다 더 지혜롭게 합니다.
이것은 이렇게 비교하는 것이 좋읍니다.
세상의 모든 스승과 시편기자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스승들의 가르침과 하나님의 증거를 비교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좋읍니다.
즉 세상의 선생님들의 가르침도 좋지만, 알고보니 하나님의 말씀이 더 좋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늘 묵상하였읍니다.
그러다가 보니 세상의 스승보다 더 승하게 되었읍니다.
John Wanamaker가 미국에 백화점의 왕이 되었을때 한번은 이런 말을 했읍니다. “나는 지금까지 수 많은 것을 샀읍니다. 나는 수천 달러에 달하는 것도 샀읍니다. 그러나 내가 샀던 것 중 가장 위대한 것은 내가 11살 때였읍니다. 그때 나는 2달러 75센트하는 빨간 가죽으로 된 성경을 활부로 샀읍다. 나의 일생을 뒤돌아볼 때 그것이 내가 산 것 중 가장 귀하고 비싼 것이였읍니다. 왜냐하면 그 성경이 오늘 나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가장 큰 투자였고, 가장 귀한 물건이였고, 가장 비싼 구매였다.”
John Wanamaker는 비록 그가 가난한 소년이였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사랑했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이 되었읍니다. 그는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을 읽고 그 가르침대로 따라 갔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의 가르침보다 더 귀하게 여기고 묵상하여서 세상의 모든 스승보다도 더 승하게 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명철이 노인 보다 승하였읍니다.(v. 100)
하나님의 법을 지켰읍니다.
그랬더니 시편기자의 명철이 노인 보다 승하였다.
여기서 노인은 문자적으로는 장로들입니다.
이것도 장로들과 시편기자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장로들의 가르침과 하나님의 말씀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장로들의 말씀보다 승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많은 경험이 있는 노인보다도 승하게 됩니다.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여서 노인보다 더 승하게 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II. 결 론
성경은 가장 정확한 지도이다. 지도는 우리가 가려고 하는 목적지를 정확하게 가르쳐준다. 그러나 단순히 지도를 보는 것이 우리를 충주나 광주나 부산에 데려다 주지 않는다. 그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 한다. 표를 사고, 시간을 들여 여행을 하고, 거기에 도착할 때까지 교통수단 안에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하면 끈기 있게 노력을 해야 한다.
기독교인의 삶도 똑같다. 하나님의 지도인 성경은 믿을 만하고 능력이 있다. 또한 분명하고 똑바르다. 그런데 성경에는 우리를 우리가 가려고 하는 목적지에 저절로 데려다 주는 주문은 없다. 신앙의 노력이 있어야 그곳에 도착을 한다.
제5회 벧엘 기도회는 성경과 함께 끊임없이 노력하는 기도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